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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사랑하는 이에게/ 오세영
은하수 추천 0 조회 17 15.07.25 04: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사랑하는 이에게/ 오세영

 

 

집으로 오르는 계단을 하나 둘 밟는데

문득 당신이 보고 싶어집니다

아니 문득은 아니예요

어느 때고 당신을 생각하지 않은 순간은 없었으니까요

언제나 당신이 보고 싶으니까요

 

오늘은 유난히 당신이 그립습니다

이 계단을 다 올라가면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어요

얼른 뛰어 올라갔죠

빈 하늘만 있네요

 

당신 너무 멀리 있어요

왜 당신만 생각하면 눈앞에 물결이 일렁이는지요

두눈에 마음의 물이 고여서 세상이 찰랑거려요

그래서 얼른 다시 빈 하늘을 올려다보니

당신은 거기 난 여기 이렇게 떨어져 있네요

 

나.. 당신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어요

햇살 가득한 눈부신 날에도

검은 구름 가득한 비 오는 날에도

사람들 속에 섞여서 웃고 있을 때에도

당신은 늘 그 안에 있었어요

 

차를 타면 당신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구요

신호를 기다리면 당신은 건너편 저쪽에서

어서 오라고 나에게 손짓을 했구요

계절이 바뀌면 당신의 표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나 알고 있어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당신은 내 마음 속에서 지울 수 없으니까요

 

당신 알고 있나요

당신의 사소한 습관 하나에도

당신이 내게 남겨준 작은 기억 하나에도

내가 얼마나 큰 의미를 두고 있는지

당신은 내 안에 집을 짓고 살아요

난 기꺼이 당신에게 내 마음을 내드렸구요

 

보고 싶은 사람

지금 이 순간 당신을 단 한번 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오늘도 나는

당신이 이토록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

 

 이 연시의 출처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시는 인터넷상에서 버젓이 오세영이란 시인의 이름으로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세영 시인의 시가 아니라 시인과 이름이 같은 누군가(여성으로 짐작됨)의 연시를 인터넷에서 마구 퍼다 나르는 동안 오세영 시인의 시로 둔갑한 것이다. 물론 시라고 해도 무방하며 개인의 연서로서는 손색없는 글이다. 내게도 멀리있는 '당신'이 있다면 구구절절 빌려 갖다바치고 싶은 달달한 문장들이다. 하지만 서울대에서 시를 가르쳤고 이 나라 시인협회장을 지낸 시인의 시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글 아닌가.

 

 그럼에도 이 글을 의심 없이 오세영 시인의 시 목록에 태연히 끼워 넣고 유명 방송인에 의해 낭송되고, 문학카페에까지 유통되고 있으니 이런 현상을 두고 묻지마식 막무가내 시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시를 보는 안목을 탓해야 할는지 씁쓸하기만 하다. 문제는 이 한 편에 그치지 않고 여러 편이 온오프라인을 넘다들며 오세영 시인의 시와 마구 뒤섞여 당사자로서는 적잖은 정신적 고통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언젠가 오세영 시인이 시집을 내면서 책을 지인들에게 보낼 때 이같은 오해가 없기를 당부하는 쪽지를 따로 끼워넣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같은 사례로 윤동주 시인도 전혀 다른 사람의 엉뚱한 작품이 그의 시목록에 들어있는 것을 본 일이 있고, 김수영 시인은 1967년생 조선일보 신춘문예 출신 여성시인과 이름이 같아 종종 헷갈린다. 동명이인의 이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있으나 일단은 작품으로 변별할 도리밖에 없다. 심지어 비슷한 이름일 따름인데 오기하는 얄궂은 경우도 있다. 정희성 시인이 전 육참총장 정희승으로 변신했다가 다시 정호승 시인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가끔은 권순진이 김순진으로 젊어질 때도 있다. 얼마 전 이원규 시인 사진전 작가와의 대화 진행자 노태맹 시인을 한 지방 일간지에서는 노태명으로 개명하여 보도했다. 

 

 주최측 보도자료에는 분명히 노태맹으로 표기되었음에도, 설마 이름자에 '맹'을 썼겠냐며 예단하고서 친절하게 밝을 '명'으로 고쳐 내보낸 것이다. 대구시인협회장인 김선굉 시인은 이런 일을 다반사로 광범위하게 겪은 분이다. 김선광의 오타일 것이라 지레짐작한 편집자의 소신 탓이다. 신문뿐 아니라 책을 만들때도 가장 신경 쓰이는 게 이름을 바르게 표기했는지 살피는 일이다. 작가의 이름을 오기하여 크게 곤욕을 치른 경우를 더러 보았고, 나도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이름으로 인한 난처하고 난감한 일은 우리의 삶 가운데 얼마든지 있으며 문학동네에서도 잦은 편이다.

 

 과거 김성동과 김성종의 프로필을 혼용해 소개하는 바람에 깔린 책을 회수하는 등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가장 난감하고 찝찝한 경우가 자신의 작품보다 함량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동명이인의 시가 자신의 것으로 오인받을 때이다. 반대로 남의 수준 높은 작품이 자기 것인양 오해받는다 해서 마냥 즐겁기만 할까. 하기야 자기 본명으로 글을 발표했을 뿐인데 무슨 문제일까 싶기는 하다. ‘사랑하는 이에게’를 쓴 오세영 씨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오세영이란 시인을 잘 알고 혼란의 개연성을 예상할 수 있음에도 다른 필명을 사용하지 않는 건 어쩌면 미필적 고의에 해당될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이름을 변별토록 배려하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의 예의이자, 오히려 자존심을 세우는 노릇이 아닐까.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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