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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인들도 끊임없이 귀화 했습니다.
물론 말갈인으로 천명한 자들만 말갈인으로 기록한 것이지, 실제 이들을 제외한 거란인의 귀화와 족속을 밝히지 않는 이도 많았습니다. 요하일원의 거란인이 한반도로 귀화할 이유가 그리 많지 않으므로 고려로 귀화한 거란인은 요나라가 강성해진후 거란인으로 불리게 된 말갈인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920. 2월 흑수말갈 고자라 등170명 귀화
1017 8월 동여진 개다불 등4명
흑수말갈 아리불 등 6명
1018 1월 정안국 골수
4월 서여진 목사 목개 등 2백여호
1024 3월 서여진의 고두로, 동여진의 슬불단 등 90명
1028 1월 여진 고두 등 70여명
1030 11월 서여진 만투 등 27호
1031 8월 여진 아두한 등 340호
1032 1월 서여진 자곤 등 8명
6월 동여진 야어포 등 8명
1033 5월 서여진 사어하 등3명
6월 서여진 고사 등6명
1040 10월 여진 잉화도 등 13명
1064 12월 흑수의 포기등 8명
1072 1월 동여진 마두한 등 25명
1073 1월 동여진 고도화등 13명
4월 동북변강 15개주 바깥에 있는 번인들이 귀순
5월 서여진 추장 만두불 등 여러번인들이
평로진의 유원장군 골어부 멱해촌의 요갈 이제촌 35호에 인구252명
6월 삼산대란 지절 등 9개촌락 소을포촌 소지즐 대지즐 1238호귀순
대지즐로부터 소지즐 료응포 해변까지 장성이 약7백리
동번의 대제자고하사 제12촌 번장 곤두괴발 등 1970호 귀순
두룡골이 여파한 등 우락의 번장 아로한 등도 주현되기를 청
여파한 령 바깥에 있는 제차고 대사이 칭견 곤준 단준 물비화두 등 지역
9월 동여진의 대란 등 11주 자기들의 귀화인들이 자기들의 거주 지역인
11개주 귀순주에 소속
과연 말갈계통과 예맥계통을 구분할 수 있는가?
말갈이란 세력이 독자적으로 존재 했지만 한반도 북반부에서 만주일원에 존재한 말갈이 수천년동안 예맥과 구분된 세력으로 독자적으로 존재해왔을 가능성이 있는가?
삼국 초반부터 끊임없이 신라와 백제를 침공한 말갈은 신라와 백제에 접하여 근거하였던 세력이며 이들이 대륙으로 이동하지 않았다면 이 엄청난 인적자원들도 고려속에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고려나 조선속으로 말갈인은 끊임없이 내투해 왔으며 고구려속에 있었던 말갈 중 속말말갈의 남쪽에 있었던 백산 말갈등은 발해의 역사에만 참여하였던 것이 아니라 고려속으로 녹아 들어왔을 것입니다
한반도인 속에도 말갈로 불리던 선조가 많았을 것인데 말갈인의 후손이라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발해와 금나라를 이룬 백성들이 말갈계통이라고 하는데 고구려가 멸망하고 예맥족은 어디로 사라지고 일부의 예맥족과 다수의 말갈족이 등장한단 말인가? 대다수의 예맥족이 한반도로 이주해 들어오고 당나라에 끌려가서 수천년을 이루어온 예맥인의 땅은 공지가 되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말갈인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역사무대에 등장하는가
한반도와 만주일원의 선조들중 한축을 이루는 계통은 홍산문화 세력의 후인들일 것이며 그들이 이주해 들어오기 이전에도 선조들의 또 다른 한 축이 살고 계셨으니 그분들이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세력인지, 아니면 홍산문화의 선조와 동계로 선 이주한 세력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민족의 선조는 두 계통이 혼합하여 이룬 문명이며 이미 고대국가 시대에 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고조선에서 고구려 멸망기 까지 짧게 잡아도 천년세월 이상을 공존해온 운명공동체 였습니다. 누가 홍산문화 세력이고 누가 원주민 세력인지 구분할 재간도 구분할 이유도 없습니다. 고구려속에 완전히 결속되지 않은 세력들 또한 홍산문화세력과 원주민의 차이는 아닌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고구려에 결속되지 않았던 세력이었을 뿐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이질의 종족은 아닌것입니다. 후대에 이루어진 발해나 금나라 청나라의 지배층이 고구려에 결속되지 않았던 세력일 수는 있으나(사실 이또한 가능성이 낮은 경우입니다.) 그들속의 백성들은 전시대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말갈과 예맥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예맥의 국가에서 예맥과 구분된 세력의 등장은 읍루가 처음일 것입니다. 읍루 이전에도 숙신이 있었지만 전대의 숙신은 읍루 보다도 예맥과 가까웠으며 초기에는 예맥으로 불리던 족속과 다른 족속들이 많았을 것이나, 읍루가 등장할때는 모두가 예맥이 되고 오로지 읍루만 예맥과 달랐습니다.
읍루가 맥족과 결합하지 않은 예족의 일원이었는지,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고아시아족의 일족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이질의 집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읍루가 하늘에서 떨어진 종족이 아닐것이므로 예족의 일원이거나 고아시아족들인 그들과 동계일족들의 대부분은 부여속으로 녹아들어 갔을 것입니다. 읍루는 부여의 조세부담이 무거워서 부여를 이탈한 세력이었습니다. 읍루는 부여의 동북방 끝에서 형성된 일개의 부족세력일뿐이었습니다. 부여가 멸망한 후 읍루의 지배자들이 남하하여 말갈 7부를 형성하였을 가능성은 전혀 없으나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맥인의 종족계통이 바낀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확인하지 않아서 함부로 말하고 있는것이지만, 저는 부여의 동북방 천여리 밖에서는 만주일원의 종족계통을 바꿀만한 세력들이 절대 없었다고 단정 짓습니다. 만주일원의 종족계통을 바꿀만한 문명의 흔적이 그 지역에서 발견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절대 없었던 역사 일것이므로 대문명의 흔적이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 합니다.
읍루는 물길이나 말갈 일부의 선조는 될 수 있지만 읍루에서 물길, 말갈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말갈은 고구려속의 백산말갈과 고구려와 접하는 송화강 일원의 속말말갈과 고구려 북반부에 등장하는 말갈이 있었습니다. 고구려 북반부의 말갈은 고구려 동북방 끝에서부터 시작하여 서로는 거란과 접하여 근거하였습니다. 전 시대 부여가 있었던 곳입니다.
이러한 말갈이 한민족과 다른 계통이 될려면 부여가 고구려에 병합된 후 부여민의 대부분은 고구려 속으로 이주하여야 하고 그런한 과정에에 공지가 된 곳에 동북방 끝의 읍루의 후인들이 남하하여야 합니다. 천년세월 이상을 통해서 이루어진 예맥인의 문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동북방 끝에서 어떠한 문명이 이루어져 내려왔길래 종족이 교체한단 말입니까
송화강 일원을 비롯한 고구려의 북반부는 부여가 있었던 곳입니다.
부여의 백성들은 어디로 자취를 감추고 말갈인이 등장한단 말입니까?
말갈 계통은 어떠한 과정으로 역사 무대에 등장합니까?
부여가 멸망하자 읍루인이 남하하여 고구려 북반부에서 말갈족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멸망하자 또 남하하여 고구려 전역에 말갈인이 등장합니다. 이것이 역사 입니까? 장난입니까?
그렇다고 말갈이라는 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말갈이라는 세력은 예맥계통과 구분하여 천년 세월이상을 독자적으로 존재한 세력이 아니었습니다. 말갈은 예맥속에서 생겨난 세력입니다. 예맥인과 구분하여 존재하였던 세력이 아니었습니다. 한민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예맥인과 구분된 말갈계통이 별도로 존재하였던것이 아니라 부여가 멸망하고나서 부여가 있었던 곳에서 세력을 형성하였던 자들을 말갈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들의 후예들이 발해를 건국하고 금나라, 청나라를 건국하였던 것입니다.
예맥인과 말갈인은 계통도 다르지 않았고 여진족속에서 말갈계통으로 불리던 사람들중에는 말갈이 역사무대에 등장하였을때는 예맥계통으로 불렸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며 그리하여 예맥계통과 말갈계통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예맥과 말갈을 구분하기 어려운것과 마찬가지로 여진인과 한반도인을 구분하는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원나라의 힘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고려의 왕족들이 요동의 왕이 되었고 요동인구의 3/10이 고려인이였다고 하며 명과 후금의 전쟁에서 조선인의 수만명이 만주일원에 정착하였으니 만주일원의 역사가 한반도의 한민족과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한반도인을 형성한 한 축은 신라와 백제를 침공하던 말갈인과, 고구려속에 있었던 백산말갈, 그리고 발해가 멸망하고 귀화한 속말말갈인, 고려나 조선으로 귀화한 말갈인등입니다.
부계와 모계의 혈통을 종합하면 한반도인 모두는 말갈인의 혈통을 이어받았습니다.
말갈과 예맥계통을 어찌 구분하시는지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말갈, 고구려 백산말갈, 발해속말말갈, 고려와 조선으로 귀화한 말갈이 한반도인과 구분하여 존재하였더라면 말갈인과 한반도인은 구분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말갈인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100%의 결합이 이루어 진것입니다. 이들이 한반도인의 10%는 훨씬 넘을 것이나 10%만 된다고 하여도 4대 120년만 지나면 모두에게 말갈의 피가 흐르게 됩니다.
10명중 한명이 말갈인이 있는데 이들이 결합하여 5섯쌍을 이루었습니다.
대문자는 남자이고 소문자는 여자일 경우 4대만 지나면 모두에게 말갈인의 피가 녹아들어 가 있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론과 실제가 달라서 중복된 집안에서 반복하여 결합할 수도 있으나 유구한 역사에서는 반복만 되지 않을 것이므로 크게 다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지배층이 아니었을 것이므로 지배층과의 결합은 늦게 이루어 졌을 것이나 나라는 백성의 것이며 민족은 백성을 말합니다.
우리 대부분의 선조는 지배층이 아닙니다.
예맥(A) 예맥(B) 말갈(C) 예맥(D) 예맥(E)
Ab Bc Cd De Ea
Abc Bcd Cde Dea Eab
Abcd Bcde Cdea Deab Eabc
Abcde Bcdea Cdeab Deabc Eab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