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도종환
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
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
심지만 뽑아 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
그으름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하랴
욕심으로 타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
결국은 심지만 못 쓰게 되고 마는데
들기름 콩기름 더 많이 넣지 않아서
방안 하나 겨우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등잔이 이 정도 담으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나를 태우고
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
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
욕심 부리지 않으면 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
분에 넘치지 않으면 법구경 한 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
등잔.....신달자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 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게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줌 흘리고 불을 켜 보니 처음엔 당혹한 듯 눈을 가리다가 이내 발끝까지 저린 황홀한 불빛
아 불을 당기면 불이 켜지는 아직은 여자인 그 몸
등잔.....김석윤
내 책상 한구석에 등잔이 하나 있다
10여 년 전쯤 형님 宅 헛간에서
버림받고 울고 있는 걸 데려온 거다
화류계 退妓는 쌈짓돈이라도 있으련만
舊 시대의 유물가치도 없는
어디에도 쓸모없는 저 작은 몸
쌍식이 아버지 밤마다 술에 취해
도깨비 씨름하고
머슴 만득이는 양조장 집 아씨를
맘먹었다 호되게 경을 치던
저 작은 몸이 세상의 빛이었던 시절
유난히 빛나는 개밥바라기도
내별이라고 우기면 내별이요
얼음 속 동치미와 밤하늘의 별
뉘 집 개 짖던 소리가 물고 물리던
저 작은 몸이 세상에 빛이었던 시절
어제 읽으신 심청전
오늘 또 읽으시던 아버지와
동네를 열두 바퀴나 돌고 들어 와
새우 잠든 누이
몽당연필에 침 바르던 나
아버지도 누이도 잠든 지 오래인 이 밤
새삼 그립다
저 작은 몸이 세상의 빛이었던 그 시절이,
등잔.....유기열
해가 지면 언제나, 너는 보이는 빛을 모두 모아 하나의 불꽃으로 피어나 그림자 만한 어둠을 남긴다 구름이 바람을 몰고 와도 비킬 데는 없다
그대로 맞서 흔들거리며 빛으로 견디는 것이 보람이기에 꼭지를 숯처럼 태운다
가진 것이 없어 속절없이 애태우다가 떨어진 기름을 채우지 못한 어느 날 손 그리고 눈 안에서도 밝음이지 못했다. 그러한 네가 빛이어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한 올 한 올 핏줄같은 실날을 태우다가 한 생명 연기로 날려보내고 심지가 없어진 그 자리를 넘어 지천에 수천의 빛들을 불러오다니 태초의 어둠인들 어찌 어둠으로 어둠으로만 남아 있으려 하겠는가
해가 지면 언제나, 너는 보이는 빛과 보이지 않는 빛까지 모두 모아 하나의 거대한 횃불이 될 지라도 있을 것은 있어야 하는 법 어둠이 있으려 하는 한 그림자 만한 어둠은 쫒으려 하지 마라 모든 이가, 모든 것이 원래대로 있으려 하는 한 눈동자 만한 빛으로도 넉넉하고 좋다
시집 "바다에는 후회 없는 길이 있다" 중에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법정스님
허균이 엮은 <한정록>에는 왕휘지王徽之에 대한 일화가 몇 가지 실려 있다. 중국 동진 때의 서예가로 그는 저 유명한 왕희지王羲지의 다섯째 아들이다. 그는 산음山陰에서 살았다. 밤에 큰 눈이 내렸는데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자 사방은 눈에 덮여 온통 흰빛이었다.
그는 일어나서 뜰을 거닐며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외다가 갑자기 한 친구 생각이 났다. 이때 그 친구는 멀리 섬계라는 곳에 살았는데, 서둘러 작은 배를 타고 밤새 저어 가서 날이 샐 무렵 친구집 문전에 당도했다. 그러나 그는 무슨 생각에선지 친구를 부르지 않고 그 길로 돌아서고 말았다.
어떤 사람이 이상하게 여기고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흥이 나서 친구를 찾아왔다가 흥이 다해 돌아가는데, 어찌 친구를 꼭 만나야만 하겠는가." 흥이란 즐겁고 좋아서 저절로 일어나는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흥은 합리적이고 이해타산적인 득실이 아니다. 그때 그곳에서 문득 일어나는 순수한 감정이 소중할 따름이다.
매사를 합리적으로만 생각하고 손익 계산을 따지는 요즘 사람들은 눈이 내리는 날, 밤을 새워 친구를 찾아나선 그 흥겨운 기분과 삶의 향기로운 운치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때 만약 친구집 문을 두드려 친구와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며 아침을 얻어먹고 돌아왔다면, 그 흥은 많이 줄어들고 말았을 것이다. 시와 산문의 세계가 다른 점이 바로 이런 데에 있다.
왕휘지가 서울을 떠나 시골에 있을 때다. 그전부터 환이桓伊라는 사람이 피리의 명인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서로 만나지 못했는데, 때마침 수레를 타고 가던 중인데, 동료 중에 그를 아는 이가 있어 환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는 사람을 시켜 서로 알고 지내기를 바라면서 피리소리를 한 번 들려줄 수 없느냐고 청했다. 피리의 명인인 환이는 평소 왕휘지의 인품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는 즉시 수레에서 내려 의자에 걸터앉아 세 곡조를 불었다. 그리고 나서 급히 수레에 올라 떠나갔다.
이와 같이 나그네와 주인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피리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이에게 피리를 들려주고, 듣고 싶었던 소리를 듣는 것으로써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었다. 피리를 불고 나서 번거롭게 수인사를 나누지 않고 그대로 떠나간 환이의 산뜻한 거동이 피리의 여운처럼 우리 가슴에까지 울려온다.
전통적인 우리네 옛 서화에서는 흔히 '여백의 미'를 들고 있다. 이 여백의 미는 비록 서화에서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끼리 어울리는 인간관계에도 해당될 것이다. 무엇이든지 넘치도록 가득가득 채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여백의 미가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두루 헤아려 보라. 좀 모자라고 아쉬운 이런 여백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숨통이 트일 수 있지 않겠는가. 친구를 만나더라도 종일 치대고 나면, 만남의 신선한 기분은 어디론지 새어나가고 서로에게 피곤과 시들함만 남게 될 것이다. 전화를 붙들고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우정의 밀도가 소멸된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바쁜 상대방을 붙들고 미주알 고주알 아까운 시간과 기운을 부질없이 탕진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고 자신의 삶을 무가치하게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직한 인간관계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받쳐주어야 한다. 덜 채워진 그 여백으로 인해 보다 살뜰해질 수 있고 그 관계는 항상 생동감이 감돌아 오랜 세월을 두고 지속될 수 있다. 등잔에 기름을 가득 채웠더니 심지를 줄여도 자꾸만 불꽃이 올라와 펄럭거린다. 가득 찬 것은 덜 찬 것만 못하다는 교훈을 눈앞에서 배우고 있다.
'오두막 편지' 중에서.........
등 잔
나는 목이 짧은 등잔이다내 주위만을 밝히고 섰는
난 먼 곳만을 바라본다.
나는 흔들리고 있으면 바람 몸을 날리면서
열흘을 살고
캄캄한 밤중
별들이 하나 둘 머리 위를 스쳐가고
찬 서리 속에 풀벌레 소리 다가오면
뒷모습을 갖고
짧아진 심지에 그을린 그림자 소리를
끊이고 있는
등잔불이란 게 그랬다.
아무리 심지를 돋워도 어느 정도 이상의 빛을 내주지 않았다.
그을음만 신경질적으로 뿜어낼 뿐이었다.
등잔이 특별히 인색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과도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걸 몸으로 말해줬다.
어쩌면 그 정도의 빛이 삶을 영위하는 데 적절한 것인지도 몰랐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빛은 등잔불만큼이어야
밤하늘의 별도 제대로 반짝이고,
반딧불도 소중해지는 것이었을 게다.
어쩌면 인간은 전기가 발명된 뒤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것, 그걸 꿈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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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ood Day For Freedom(어둠은 빛을 낳고)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 벨기에 음악가의 이름은 그의 나라에서 조차 생소했지만,
이제 그의 인기는 "메가-콘서트의 거장", "신서사이저의 귀재"
혹은 "바다의 작곡가"로 통할 정도로 높다.
뤽 배위르, 그는 현재까지 수 십 만장의 음반을 판매하였고,
50개 이상의 TV 쇼에 출연하였으며
벨기에 내에서 개최한 연주회에서 40만 이상이란
기록적인 숫자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그의 음악 스타일은 "뉴 에이지 음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경력 초기에는 장 미셀 자르의 계승자로 평가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일반 팬은 물론 언론에서 조차
릭 베위르의 "또 다른 음악세계"를 지적한다.
베 위르 고유의 음악 스타일을 카테고리화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계사년 삼월 그믐날
정효 불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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