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을 것이 없는데도 머물면 옳지 못하다.
본래 가진 한마음(一心)을 바로 깨달았지, 뭘 차례차례 단계적으로 없는 걸 만들어서 마지막에 완벽하게 부처를 이룬다는 그런 건 아니라는 거다.
'마음을 일으켜서 생각을 움직이면 법의 근본체(體)에서 어긋나고 곧바로 모양에 집착한다' 했는데,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모양이 나타나는 것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란 자체가 그냥 일어나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을 반연했을 때 거기에 대한 생각이 일어난 것이다.
본래 일체 모양이나 모든 것이 없는데, 한 생각 일으켜서 모양을 만들어서 집착하게 되나니, 그런 모양에집착한 부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한마음을 깨닫기만 한다면 다시는 작은 법도 얻을 것이 없다' 하였지만, 그 얻을 것이 없는데도 머물면 옳지 못하다. 얻을 것이 없다 하니까 얻을 것이 없다는 데에 머무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앉아서 시방세계를 끊으려 하나 오히려 이마에 점만 찍음이라. 가만히 한 걸음 나아가야만 나는 용을 보리라(坐斷十方猶点額 密移一步見飛龍)." 하는 게송이 있다. 시방세계를 다 끊는다는 말이 여기서는 일체의 생각이 일어나지도 않고 얻을 것이 없다는 거기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용문폭포 끝에 바위가 내밀어 있는데, 잉어가 그 용문폭포를 타고 올라가다 바위에 이마를 부딪혀 상처만 내고 떨어진다. 이게 이마에 점을 찍는단 말이다. 폭포 끝에 내민 바위를 뛰어 넘어가야 용이 되는데, 용이 못 되고 떨어지고 떨어지길 반복한다. 도를 닦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다.
일체 하나도 얻을 수 없고 생각이 움직이지도 않는 것에 딱 매여 있는 것이 오히려 이마에 점 하나 찍은 사람과 같고,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야만 잉어가 용이 되듯이 참된 부처가 되는 것이다.
(학산 대원 대종사)
첫댓글 ()()()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