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부를 준비하는 듯하다.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8일 '젤렌스키와 푸틴이 전방을 가다'(Зеленский и Путин едут на фронт)라는 코너에서 두 정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최전선 시찰을 통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독려하는 모습을 부각시켰다.
푸틴 대통령, 헤르손에 있는 드네프로군 본부 방문/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푸틴 대통령의 전방 시찰 영상 묶음
대통령의 전선 시찰 영상을 먼저 내보낸 것은 러시아다. 크렘린은 이날 아침 "푸틴 대통령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헤르손 지역을 방문, 미하일 테플린스키 공수부대 사령관과 올레그 마카레비치 '드네프로' 지역 담당 사령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며 관련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 푸틴 대통령은 "오랫동안 최전선에서 부대를 지휘해온 테플린스키 사령관이 준비한 보고서를 국방부와 군참모부가 모두 높이 평가했다"고 치하했다. 그는 이후 대우크라 특수 군사작전의 '동부군'사령부가 있는 루간스크로 날아가 알렉산드르 라핀 사령관을 만났다.
크렘린은 그의 헤르손 방문 장소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영국 BBC 방송은 공개된 영상을 분석한 뒤 아조프(아조우)해 연안 게니체스크에 있는 브리간틴 휴양지내 사령부를 방문한 것으로 파악했다.
푸틴 대통령이 방문한 곳으로 추정되는 게니체스크 위치. 아래쪽이 크림반도, 맨왼쪽에 (우크라이나 통제의) 헤르손시가 있고, 맨 위쪽에 자포로제가 보인다/얀덱스 지도 캡처
주요 지휘관들과 면담하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스트라나.ua가 주목한 것은 푸틴 대통령을 만난 러시아군 지휘관들이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언론에 의해 경질된 것으로 알려진 테플린스키 사령관과 라핀 사령관이다. 테플린스키 사령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지역 공격 작전에 실패해 경질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그러나 "테플린스키 사령관은 계속 공수부대를 지휘하고 있으며, 특수 군사작전의 부사령관(사령관은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을 맡고 있다"며 '러시아군 패배-담당 사령관 경질' 식의 서방 측 '가짜 뉴스'를 비꼬기도 했다.
스트라나.ua는 "도네츠크 출신인 테플린스키 사령관이 푸틴 대통령에게 남부 전선의 전황을 보고한 것은 그가 이 지역을 책임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올해 초 그의 후임자로 부각된 마카레비치 사령관은 '드네프로' 담당으로 소개됐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이 현장에서 두 사람을 좌우에 앉힌 것은, 군사작전 지휘부내 갈등이나 혼선은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푸틴 대통령 좌우에 앉은 테플린스키 공수부대 사령관(왼쪽)과 마카레비치 사령관/사진출처:크렘린.ru
이콘을 소개하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전날(17일) 이뤄졌다는 푸틴 대통령의 전방 시찰 영상은 18일 아침에 공개됐다. 영상에는 푸틴 대통령이 부대 지휘관들에게 "오늘 부활절이죠?"(Сейчас вот Пасха будет, да?)라고 물은 뒤 부활절을 축하하는 '이콘(성화)'을 선물하는 장면도 들어있다. 이콘은 러시아 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국방장관 중 한 명이 소유했던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다만, 영상으로 미뤄 그의 방문이 진짜 16일(부활절)에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
푸틴 대통령이 방문한 헤르손과 루간스크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4개주(도네츠크, 루간스크, 자포로제, 헤르손)에 속한다. 그는 지난달 18일 도네츠크주의 마리우폴을 방문한 바 있다. 형식상으노는 이제 자포로제(자로리자) 주 방문만 남은 셈이다.
스트라나.ua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군의 '춘계 반격' 루트로 유력시되는 남쪽 지역을 방문지로 선택한 데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 현지 방어군의 사기 진작은 물론, 러시아가 미국과의 '물밑 협상'을 통해 크림반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대신, 이 곳을 떠날 것이라는 소문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러시아 민간 용병 업체 '와그너 그룹'의 프리고진도 이 소문을 겨냥해 최근 "철군은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에도 비슷한 소문이 돌았고, 실제로 11월에는 러시아가 헤르손주와 자포로제주를 가로지르는 드네프로강 서안(西岸)에서 군대를 물렸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도네츠크주 마리우폴을 찾을 때만 해도 야간에 '패딩 점퍼'(날씨 탓?)를 입었으나 이번에는 대낮에 정장차림이었다. 두 곳의 치안이 비교적 안정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브데예프카를 찾은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푸틴 대통령의 영상이 공개된 지 몇시간 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격전지 아브데예프카(아우디이우카)를 방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 곳에서 도네츠크주 작전 사령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오늘 이곳에 오게 돼 영광"이라며 "조국 우크라이나와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한 여러분의 헌신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아브데예프카는 러시아군이 점령한 도네츠크주 주도인 도네츠크시(市) 중심가에서 불과 10㎞ 안팎 거리에 있는 곳으로, 바흐무트와 함께 현재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 오늘(17, 18일)의 주요 뉴스 요약
- 간첩 혐의로 모스크바 레포르토보 감옥(전 KGB 감옥?)에 수감 중인 에번 게르시코비치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가 18일 모스크바 법원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법원은 그의 석방을 거부했다. 모스크바 법원은 이날 게르시코비치 기자가 청구한 구금 결정에 대한 항소심(우리 식으로는 구속 적부심)에서 "구금이 유지돼야 한다"고 결정했다. 지난달 30일 러시아 중부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의해 간첩 혐의로 체포된 그는 두달간 '구속(5월 29일까지) 영장'이 발부됐다. 린 트레이시 주모스크바 미국 대사도 법원에 나와 선고를 지켜봤다.
모스크바 법원에서 게르시코비치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린 트레이시 주러 대사/영상 캡처
- 유출된 미 기밀문서는 '돈바스 제부쉬카'(돈바스 여성) 계정(채널)을 통해 더욱 확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 FBI는 이 계정을 운영하는 전 해군 부사관 사라 빌스(37)를 조사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빌스는 '돈바스 제부쉬카'의 계정 관리자이고, 모금 활동에 참여는 했지만, 기밀 문서는 게시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길을 열어준 소위 '흑해 곡물협정'이 중단 위기에 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재건부는 17일 "협정 체결 후 9개월 만에 두 번째로 선박 검사 계획이 마련되지 않아 단 한 척의 선박도 검사를 받지 못했다"며 "협정이 중단될 위기"라고 주장했다.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러-우크라-터키-유엔 4자 공동조정센터(JCC)에 파견된 러시아 대표단이 협정에 위배되는 검사 계획을 고집하고 있다고 재건부는 불만을 터뜨렸다.
현편,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이날 흑해 협정 갱신에 대한 질문에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다"고 말했다.
- 우크라이나 농산물의 대량 유입에 따른 시장의 동요를 막기 위해 폴란드와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이 전격적으로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자, 유럽연합(EU)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EU집행위원회 대변인은 17일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유입 급증으로 피해를 본 회원국을 위한 2차 지원 패키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U는 현재 밀려들어오는 우크라이나산 농식품으로 각국의 시장 가격이 폭락하고 그로 인한 농가 피해로 수개월째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작년 2월 주요 수출길인 흑해 항구가 봉쇄되자 기존 농식품 수출물량의 상당 부분을 접경국인 폴란드 등 EU 회원국을 경유하는 우회로로 돌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있는 폴란드 집권당은 농민들의 항의 시위가 빈발하자 수입 금지 조치를 선제적으로 단행했다.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앞장섰던 폴란드의 이같은 조치에 동유럽 국가들이 뒤를 따르면서 EU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 러시아와 인도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은 이날 뉴델리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양국간 FTA에 대한 사전 합의를 이뤘다"며 "인도 산업계가 러시아 기술의 수혜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인도 정부는 대금 지급, 허가 및 물류 등 핵심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다. 자이산카르 외무장관과 회담한 만투로프 러시아 부총리도 "우리는 인도에서 (FTA룰 통해 서방의 대러 제재에 따른) 대체 상품의 영역을 찾고자 한다"고 밝혔다. 인도는 서방의 대러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에너지와 산업 측면에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