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변 분들을 만나면,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AI, 챗GPT에게 묻는다.
그리고 AI에게 문제해결을 맡겨 버린다.
이렇게 챗GPT에 묻고 또 묻다 보면,
‘우리, 생각하는 법을 까먹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든다.
AI에게 묻는 것이 효율적이긴 한데,
이렇게 살다 보면 쓸데없지만
재미있는 질문, ‘내 머리’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잊어버릴지 모른다.
어쨌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질문과
예상 못 한, 기발한 답으로
다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같다의 동의어는?’이라고 물으면,
AI는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슷하다, 똑같다, 동일하다’ 등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정철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같다는 건 없다는 것.
내 표정이 없으면 내 존재도 없다.”
또 다른 질문, ‘김밥은 왜 김밥일까?’에
대한 물음에, AI는 ‘김밥은 ‘김’과 ‘밥’이 합쳐진 말로,
이름 자체에 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담겨 있습니다.’
반면, 정철 작가의 답은 ‘포옹에서 찾아야 한다.
김은 자신이 옆구리 터지는 일이 있어도
밥을 껴안기를 포기하지 않는다’였다.
또 다른 질문 ‘나를 바꾸고 싶다면?’에 대한 물음에
AI는 ‘어떤 부분을 바꾸고 싶은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정철 작가의 답은,
‘나를 바꾸려 하지 말 것.
내 입에 나오는 말을 바꿀 것.
말의 절반을 질문으로 바꿀 것’이었다.
AI는 정답을 말하고, 인간은 생각을 말한다.
생각을 외주하는 시대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스스로 묻고 쓰는 법을 잊으면 안 된다.
AI(인공지능)는 할 수 없는 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질문과 사유’이다.
AI가 내놓는 정답 받아 먹는 일에 익숙해지면
질문을 건너뛰게 된다.
사유는 생략하게 된다.
질문과 사유가 안겨주는 통찰의 순간과도
영영 멀어지게 된다는 게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