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라 (롬 12:19-21)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 시간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제목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을 빼놓고는 무엇이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도 사랑, 예수님도 사랑, 성령님도 사랑, 제자들도 사랑, 성도들도 사랑, 그래서 사랑이 기독교인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 어떤 특징을 나타내는 이름, 문구, 로고, 디자인 등을 뜻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랑함으로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5:43-44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말씀하십니다.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할까요?
1.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마5:44-45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여기서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우리 혹은 원수 누구가 아들이 된다는 걸까요? 주석을 보면 “아들은 아버지의 성품까지도 이어받는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의 유업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우리에게서 하나님과 동일한 성품이 발견되어야 한다”는 설명으로 보아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지만 사랑할 때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 인정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셨듯 하나님의 성품을 설명하는 이 말씀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요일3:10에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한 바와 같습니다.
2.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일4:11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셨고, 마6:15에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신하 비유 끝에도 그와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마18:35). 이것이 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해야 할까요?
1. 축복하고 선대하라.
롬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원수를 미워하지 않는 것도 대단한데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은혜받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그리고 우리 믿음이 어느 수준인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이방인도 합니다(마5:47). 문제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느냐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하셨습니다. 대단한 기도입니다. 용서가 안 될 때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 해보세요. 그러면 용서가 됩니다.
2.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율법에는 원수를 갚았습니다. 동해보상법이라 하여 눈은 눈, 이는 이, 피해를 입힌 만큼 원수를 갚았습니다.
구약은 교회가 국가형태였기 때문에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그런 형법이 필요했습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신정정치를 할 때도 교회와 국가가 합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강력한 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국가가 아니므로 신령한 관점에서만 징계를 할 수 있습니다. 출교가 가장 큰 징계입니다.
우리 개인적으로는 원수를 만들지 말아야 하고 원수가 생겨도 그 원수를 내가 갚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원수를 갚고자 할 때는 나도 그것 때문에 그만큼 고통을 당해야 하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하면서 달게 받아들이면서 회개하는 기회를 삼으면 아픈 상처도 치료가 됩니다. 나아가 나 때문에 저 사람이 심판의 몽둥이로서 악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하면 원수를 축복해 줄 수 있게 됩니다.
3. 원수가 넘어질 때 기뻐하지 말라.
잠24:17-18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 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성경의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하던 에돔이 멸망을 당합니다. 자기가 책임지고 돌봐야 할 형제국가인 것을 알지 못하고 원수의 나라와 손을 잡고 침략했기 때문입니다.
사유재산과 기업을 원수 보듯 하는 공산주의 국가들 잘 사나요? 현혹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공산주의가 퍼져나가고 있는데 기업 다 죽이고 나눠 먹을 파이가 없는데 어떻게 잘 사는 세상이 옵니까? 세금이 과중해도 안 됩니다. 기업들 모두 떠나고 나면 남는 건 가난밖에는 없습니다.
4. 원수의 필요를 채워 주라.
롬12:20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했습니다. 잠25:21~22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악인을 악으로 대해주면 그 악인이 그 악을 이용해서 자기를 정당화하고 더 악을 행합니다.
악을 선으로 갚아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올려놓는다는 의미가 뭘까요? 의견이 분분한데 확실한 것은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이 진짜 이기는 것이란 말입니다. 머리에 숯불이 있으면 함부로 거동할 수 없어 그가 악행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 중인데 두 나라 특히 팔레스타인이 생존하는 방법은 사랑밖에는 없습니다. 억울하지만 항전하면 할수록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옛날 유대를 로마에서 회복시켜 보려고 열심당이 로마에 항전하다가 마지막 로마군에게 몰려 사해 서남쪽 요새 마사다에서 가족을 포함 약 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치욕을 피하려고 가족을 먼저 죽이고 집단으로 자결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일생은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사랑의 극치는 십자가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도 원수를 용서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때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 받아 사랑의 예수님을 본받아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