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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당문노(耕當問奴)
농사 일은 머슴에게 물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은 항상 그 부문의 전문가와 상의하여 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耕 : 밭갈 경
當 : 마땅 당
問 : 물을 문
奴 : 종 노
(유의어)
불치하문(不恥下問)
耕當問奴 織當問婢.
경당문노 직당문비.
欲伐國而與白面書生謀之事何由濟.
욕벌국이여백면서생모지사하유제.
농사 짓는 일은 머슴에게 물어야 하고, 베짜는 일은 계집종에게 물어야 한다. 나라의 정벌을 백면서생과 도모하면 성사되겠느냐.
북위(北魏)와 전쟁을 하려는 중국 송(宋)나라 4대 황제 효무제(孝武帝)에게 무관 심경지(沈慶之)가 충고한 말이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이란 말이 있다. 이 구절에서 단장적구(斷章摘句; 고전이나 원서의 일부를 인용한 글이나 구) 한 말로 자구 그대로 해석하자면 얼굴이 하얀 선비란 뜻이다. 곧 글만 읽어 세상 물정에 어둡고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인구에 회자된다.
농사짓는 일을 대감에게 묻고 임금에게 묻는다고 알 수가 없다. 농사에 관한 일은 당연히 머슴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모름지기 모든 일은 그 일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 전문가에게 의논해야 한다는 말이다.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일을 잘 처리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다양한 분야가 얽히고 설켜서 서로 상부상조하며 공존하는 유기적인 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많고 많은 분야에는 소위 전문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윗글은 어떤 일을 알고자 한다면 그 분야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 혹은 전문가와 의논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이 잘 하는 분야가 있어 그 일로 살아간다. 보통 사람은 어느 정도 타고난 재주이든, 뒤늦게 각별한 노력으로 습득했든 그것으로 생업을 영위한다.
하지만 모두에 능통할 수는 없어 분야마다 전문가가 있기 마련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고위직이 잘 모르는 분야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자(孔子)도 지위나 학식이 자기보다 못한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며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말을 남겼다. 실제 뽕따는 아낙에게 구슬에 실 꿰는 법을 물었다는 공자천주(孔子穿珠)의 고사도 따른다.
논밭을 경작하는 농사일은 글을 많이 읽어 아는 것이 많을 주인도 모르는 분야다. 이런 일은 의당 머슴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는 뜻의 이 성어는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문인 심약(沈約)이 쓴 송서(宋書)에서 유래했다. 직당문비(織當問婢)라는 말도 같은 뜻으로 나왔다.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는 남쪽에 한족의 송(宋)나라가 북쪽의 오호십륙국(五胡十六國)과 대치한 서기 420~589년 시기를 말한다. 북쪽의 혼란을 수습한 북위(北魏)가 북방의 이민족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키자 송(宋)나라의 문제(文帝)는 정벌할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당시 송(宋)에는 심경지(沈慶之)라는 책략이 뛰어난 무관(武官)이 있었다. 먼저 왕이 출병의사를 물었으나 아직 북위(北魏)를 이길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문제는 고집을 꺾지 않고 전쟁 경험이 없는 문신(文臣)들을 불러 모아 논의했다.
심경지가 북벌의 실패를 들어 문신들을 꾸짖으며 여전히 반대했다. “국가를 다스리는 일은 집안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밭가는 일은 농부에게 물어보고, 베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야 합니다.”
治國譬如治家 耕當問奴 織當訪婢.
치국비여치가 경당문노 직당방비.
그러면서 임금께 얼굴 허연 선비들과 전쟁을 도모하면 안 된다고 간언했다. 여기서 백면서생(白面書生)이란 성어도 나왔다. 이처럼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군사를 일으켰다가 참패했다.
아랫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은 직위가 높은 사람에겐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 생각하기 쉽다. 부족함을 채워 일을 더욱 잘 처리하기 위한 것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도 다른 사람은 모른다고 벽을 쳐서 접근을 막고 자기들만의 이익을 도모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방산이나 원전 등에서 일어나는 비리가 마피아라고 욕먹는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
논어(論語)에는 나를 낮추고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 여기서 아래 下자는 나를 낮춘다는 뜻입니다. 나를 낮추어 그 일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진정 성숙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 분야 전문가를 찾아 믿고 맡기는 것, 진정 최상의 리더입니다.
옛날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송(宋)나라 황제가 북쪽의 북위(北魏)를 침공하여 실지(失地)를 회복할 계획을 하고서 그 타당성을 총사령관인 심경지(沈慶之)라는 사람과 논의(論議)해 보았다.
그러나 심경지는 자기 나라의 군대는 북위보다 약하기 때문에 침공을 하면 자기 나라 군대가 반드시 패배(敗北)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침공을 하고 싶은 황제는 군사전문가인 심경지의 말을 믿지 않고 또 다시 다른 문신(文臣)들과 논의하였다.
이에 심경지가 화를 내며“밭 가는 일은 마땅히 사내 종에게 물어보고, 베 짜는 일은 마땅히 계집종에게 물어보라[耕當問奴,織當問婢]고 했거늘 지금 폐하께서 전쟁하는 일을 저 백면서생(白面書生)들에게 물어서 어쩌겠다는 것입니까?”라고 항의했다.
전문가인 자기의 말을 믿지 않고 군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문신(文臣)들에게 다시 문의한 황제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모든 일은 다 그 방면에 뛰어난 전문가(專門家)가 있게 마련이다. 안과의사는 눈을 치료하고, 치과의사는 이를 치료한다. 이가 아픈데 안과로 가는 사람은 없다.
집 짓는 일은 목수가 잘하고 돌 다듬는 일은 석수장이가 잘 한다. 축구 선수는 축구대회에 참가해야지 수영대회에 참가해서는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없는 법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 전문가를 찾아서 일을 맡긴다. 각각의 분야에는 전문가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나 행정에 있어서는 전문가를 배제(排除)하고 전문가 아닌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일이 계속되어 왔고,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잘못에 대해서 거의 무감각이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농림부장관은 역대로 농학을 전공한 사람이 맡아 본 적이 없고 대부분 법과나 정치과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맡아왔다.
건설부장관은 젊은 시절 마이크나 들고 대중을 선동하는 일만 해온 직업적인 정치가가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국립중앙도서관장 자리에 도서관학을 전공한 사람이 앉아본 적이 없는 등 전문가가 맡아야 할 자리를 전문가가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별히 전문성을 요하는 국책연구소의 책임자 자리마저도 역대 대통령들의 논공행상(論功行賞)에 쓰일 한 자리쯤으로 간주되기 일쑤였다. 중국 전문가가 주중대사를 맡는 경우와 중국을 전혀 모르는 정치인이 주중대사를 맡는 경우 국익에 미치는 영향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그 자리에 좀 오래 맡겨두면 업무라도 정확하게 파악할 텐데 그것마저 자주 바꾸어 버리니 더더욱 행정업무가 잘 돌아갈리가 없다.
여러 외국의 외무부장관들이“한국의 외무부장관과는 인사할 필요가 없다”고 공공연히 말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한국 외무부장관은 너무나 자주 바뀌어 다음에 무슨 회의에서 만나서 보면 또 다시 다른 사람이 오기 때문이라 한다. 이러고서도 국가가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전문가를 우대해 오고 있다. 우리 나라도 하루 빨리 전문가가 우대받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다. 오늘날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이유도 다 전문가를 우대하지 않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세종대왕(世宗大王)은 소년시적부터 공부하고 연구하며 일하는데 정력적인 분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때로는 아마 상당히 오버(over)하기도 했나보다. 임금으로 즉위해서도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참견하고 지시까지 하고는 했단다.
어느날 주방을 들여다 보니 자기를 가까이 섬기던 여인이 임금께 드릴 홍시 감을 깨끗이 닦은 다음에 혀로 하나하나 핥아내는 것이 아닌가.
젊은 임금이 보기에 안되어 꾸짖었다. “그만 두지 못할꼬. 내가 먹을 것을 그렇게 침발라 놓으면 어떻게 하나”
그 때 옆에 수행하던 황희 정승이 머리를 조아리며 간(諫)했다. “전하, 송서(宋書)에 보면 경당문노(耕當問奴)요, 직당문비(織當問婢)라고 하였나이다. 밭을 가는 일은 남종에게 묻고, 베를 짜는 일은 여종에게 물으라는 말입니다. 전하께서 부엌일까지 간섭하시오면 이 나라의 일이 어디로 가겠나이까. 전하가 몰라야 할 일은 모른 척 하시는 것이 낫겠나이다.”
이 충고에 크게 깨달은 임금은 그 후로는 황희 정승의 지도에 따라 임금으로써의 임무에만 충실하였다고 한다. 역시 그 임금에 그 신하이다.
무엇을 알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평생 배우며 산다. 배운다는 것은 곧 묻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묻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면서 질문을 자주 하지 않듯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는 남에게 묻는 것을 곧잘 부끄럽게 여긴다.
경당문노(耕當問奴)라는 말이 있다.
耕(경)은 ‘논밭을 갈다’라는 뜻이다. 경지(耕地)는 갈아 먹을 수 있는 땅, 즉 농사가 가능한 땅이라는 뜻이며, 주경야독(晝耕夜讀)은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는다는 뜻이다.
當(당)은 ‘마땅히 ∼해야 하다’라는 뜻이다. 당연(當然)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라는 말이고, 당연지사(當然之事)는 마땅히 그래야 할 일이라는 말이다. 然(연)은 그러하다 라는 뜻이고, 事(사)는 일이라는 뜻이다.
問(문)은 ‘묻다’라는 뜻이다. 학문(學問)은 배우고 묻는다 라는 말이다. 학(學)은 배우다 라는 뜻이다. 질문(質問)은 진실이나 본질을 묻다 라는 말이다. 질(質)은 바탕, 진실, 본질이라는 뜻이다.
奴(노)는 ‘종, 노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농노(農奴)는 농사를 짓는 노예라는 뜻이고, 가노(家奴)는 집안의 종이라는 뜻이다. 종, 노예라는 뜻으로부터 천한 사람이라는 뜻이 나왔다. 매국노(賣國奴)는 나라를 팔아먹는 천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런 의미를 정리하면 경당문노(耕當問奴)는 농사를 지으려면 마땅히 종에게 물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모르면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말고 아는 사람을 찾아서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고기를 잡는 법은 어부에게 묻고, 기술은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묻고, 경제는 경제를 아는 사람에게 묻고, 정치는 정치를 아는 사람에게 물으면 된다.
이 세상에는 2만 여종의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저 마다의 직업에는 전문인이 있게 마련입니다. 몸이 아프면 전문 의사에게 물어야 하고, 자동차가 고장 나면 카센터나 정비공장으로 가야 하고, 집을 지으려면 전문 건축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처음부터 전문적인 사람은 없으며, 그리고 무엇을 알고 태어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평생 배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곧 묻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질문을 하듯이 전혀 모르면 물을 수도 없습니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묻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인생이란 사실 알고 보면 묻고 배우는 연속이 아닐까요? 이 세상에 물음표를 계속 던지며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분명히 전문인이 될 것입니다.
양반과 상것의 구별이 현저했던 옛날에는 그들의 생활 속에 권위주의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양반은 대부분 위에서 지시하고, 상것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논리 아래 그들은 철저하게 권위주의를 지켜나갔다.
양반은 양반대로 자신들의 위치가 평민과 상것들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고 권위주의로 무장했고, 상것들은 그들대로 다른 상것들보다 먼저 철저히 이에 순종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양반은 어떠한 문제를 풀어감에 있어서 일의 순리에 따라 지혜롭게 해결하기 보다는 상것들을 향해 큰소리만 치면 되었다. 문제의 속성이 뭐고, 더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 알기에 앞서 저항의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열외 시키고 따돌리면 되었던 것이 옛날의 실정이다. 이에 따라 상것들은 그 말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었다.
그 시절의 분위기에서는 바로 제거되었어야 할 말이 오늘날까지 온전히 살아남은 고사성어가 하나 있다. 경당문노(耕當問奴)이다. 즉, 밭갈이는 마땅히 노비에게 물어야 한다는 말로 전문가에게 물어보라는 뜻이다.
속사정이야 어찌 되었던 큰소리만 치면 되었을 사회에서 양반이 노비에게 자문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보다 나은 식견을 가졌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의 고견에 귀기우려야 함을 일깨워 주는 말일 게다.
요즈음에 와서 느닷없이 이런 경당문노의 지혜가 그립기 시작한다. 아직까지도 관(官)을 다스림의 주체이고, 민(民)을 행정과정의 피동적 객체로 인식하는 공직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본래 공직자의 대표 격인 장관(長官)의 뜻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심부름꾼이었다. 15세기부터 서양에서는 장관을 의미하는 말로 미니스터(minister)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의 뜻은 여염집 심부름꾼이다. 서양 정치에서 로비스트를 인정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문화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또 우리의 경우를 보면 고려시대에 장관을 상서(尙書)라 했는데, 이 말의 뜻 역시 심부름꾼이다. 결코 다스리는 주체가 아니고, 심부름꾼인 것이다. 심부름꾼을 자처했다면 국민의 가려운 곳이 어딘가를 알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비록 가려운 데를 긁어 주진 못하더라도 알아내려는 노력의 흔적은 있어야 한다.
행정가는 업무 추진의 전문가이다. 그러나 실행 이전에 일의 정확한 파악과 올바른 길의 선택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 때에 전문가의 고견이 가미되어야 일은 성공한다. 이 과정을 무시하고 독단과 아집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다면 실패할 공산이 크다.
행정가는 일 추진의 심부름꾼이지, 그 숱한 민원과 시정에 대한 것을 아는 전문가는 아니다. 집행에 앞서 그 문제에 대한 자문을 실시하여 좋은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경당문노의 정신이 필요하다. 무조건 결론을 내려놓고 민(民)이 따라 주기만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서울시내 어느 남자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약간 덜렁대지만 성격이 밝고 명랑해 급우들과 잘 어울리는 학생이 있었는데, 이 친구에게 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학교가 끝난 뒤 누가 뭘 물으면 아는 데까지 대답해 주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자기가 모르는 것은 다른 친구한테 물어서라도 설명을 해 주는 것이 남달랐다.
그 뿐이 아니었다. 친구들도 모르면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찾아가 선생님들께 물어서까지 설명해 주었다. 학생 대부분은 묻는 것을 약간 창피하게 생각하거나 주저하는데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 주니 학급 친구들이 모두 그를 좋아하며 모르는 것은 전부 그에게 떠넘겼다. 시쳇말로 인기 짱이었다. 장난 끼 섞여 시작된 그의 질문 대행이 차츰 본격화돼, 질문에 관한 한 학급 대표처럼 되었다.
그가 입학할 때 성적은 중위권이었다. 그러나 학기가 바뀌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성적이 무섭게 향상되었다. 질문을 위해 교무실 문턱이 닳도록 다니다 보니 선생님들간에도 이미 명물로 통했는데, 성적까지 급성장하니 모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그의 질문대행에 있었다. 모르는 것을 물어서 이해하는 것도 적잖은 소득인데, 그걸 친구들에게 설명을 해야했기 때문에 더욱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다.
아는 것과 남에게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 설명하기 힘들고, 자기도 잘 모르면서 우물우물 적당히 대답하면 상대가 제대로 이해할 턱이 없다. 그 학생은 질문을 통해 모르는 것을 알고,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체득한 것이다. 그러니 실력이 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결과 졸업 때는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최상위권 대학에 거뜬히 합격했다. 그는 친구들의 질문을 대행해주며 인기만 얻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까지 차곡차곡 쌓은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학교 친구들이 모두 그의 공부를 도와준 셈이었다. 이것이 바로 질문의 힘이다.
고대 중국의 위(魏)나라 대부는 행실이 형편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죽은 뒤, 받은 시호가 문(文)이라는 존칭이므로 제자가 이상히 여겨 공자(孔子)에게 묻자 그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不恥下問 불치하문)며 그 타당성을 부여했다. 행실이 문제지만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서 누구에게나 묻는 점은 별도로 봐주어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평소에도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묻기를 생각하라(疑思問 의사문)며 질문을 중시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은 물어야 하고, 묻는 대상도 위아래 구분 없이 그 방면에 잘 아는 이라면 누구든지 꺼리지 말고 물으라고 한 것이다.
공자의 정통을 이어받은 증자(曾子) 역시 유능해도 능하지 않은 사람에게 묻고, 학식이 많아도 적은 이에게 묻는다(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이능문어불능 이다문어과)라 하여 자신의 지식을 깊고 넓게 하는 데에는 질문이 최선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묻기를 주저한다.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생각이 깊이 자리잡고 있는 탓이다. 학생들만 그런 게 아니다. 사회에서도 그런 경향이 적지 않다. 특히 지위, 학력, 나이 등이 자기보다 낮은 사람이라도 물으면 될 일을 묻기는 커녕 그들이 의견을 제시하면 윽박지르기 부터 하는 상사들이 많다. 이른바 체면 때문이다.
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이들 가운데 이처럼 속 좁은 사람이 많은데 그야말로 우물안 개구리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소크라테스도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내가 무지하다는 점이다’라고 하여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이 매우 하찮고 왜소한 것임을 역설했다.
모르는 것은 지위,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물어야 한다. 밭갈이는 사내종에게 묻고 길쌈은 계집종에게 물어야 한다(耕當問奴 織當問婢 경당문노 직당문비)도 같은 맥락의 말이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고 학식이 뛰어나도 세상일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든 일을 다 아는 것처럼 나서야 직성이 풀리고 자기가 모르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못난이들이 많다.
공자가 구슬을 꿰다(孔子穿珠 공자천주)도 마찬가지다. 공자가 구슬을 선물 받아 실로 꿰매려는데 그 구멍이 아홉 구비나 되어 쉽지 않았다. 생각 끝에 바느질하는 아낙네라면 방법을 알겠구나 싶어 뽕잎을 따던 여자에게 물었다.
천하의 공자가 그렇게 애쓰던 문제를 아낙네는 간단히 해결했다. 실을 개미허리에 묶은 뒤 구멍에 집어넣고, 반대편에는 꿀을 발라놓으라고 했다. 개미가 꿀 냄새를 따라 반대편 구멍을 찾아가니 자연히 실이 꿰매졌다.
묻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르면서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이다. 물으면 5분 바보 묻지 않으면 영원한 바보라는 말처럼 몰라도 묻지 않으면 평생 바보가 되는 것이다.
▶ 耕(경)은 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가래 뢰(耒; 쟁기, 경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井(정, 경)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井(정)은 가로와 세로로 테를 짜는 일이고, 가래 뢰(耒)部는 쟁기를, 耕(경)은 논밭을 가로세로 가지런히 갈다의 뜻이다. 회의문자로 보면 뢰(耒)와 井(정)의 합자(合字)이다. 그래서 耕(경)은 밭을 갈다, 농사에 힘쓰다, 농사짓다, 노력하다, 생계를 꾸리다, 경적(耕籍; 임금이 신하를 거느리고 적전을 갈던 일), 농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밭 갈 전(佃)이다. 용례로는 땅을 갈아 농사를 짓는 데 쓰는 기구를 경구(耕具), 경작하는 과수원이나 뽕나무 밭 따위를 경원(耕園), 토지를 갈아서 농작물을 심음을 경작(耕作), 갈아 놓은 땅 또는 농지로 삼는 땅을 경지(耕地), 논이나 밭을 개간하여 갊을 경간(耕墾), 땅을 일구어 농작물을 심어 가꿈을 경식(耕植), 논밭을 갈 때의 그 깊이를 경심(耕深), 농사 짓는 직업을 경업(耕業), 논밭을 갊을 경전(耕田), 논밭을 갈고 씨를 뿌려 가꿈을 경종(耕種), 농사 짓는 일과 거두어 일을 경확(耕穫), 곡식을 심기 위하여 땅을 파 일으킴을 경기(耕起), 농사를 지음을 경농(耕農), 밭 갈고 김을 맴을 경운(耕耘), 땅을 갈아서 농사를 짓는 사람을 경자(耕者), 농사 짓기와 글읽기 논밭을 갈고 글을 읽는다는 경독(耕讀), 농사일은 머슴에게 물어야 한다는 경당문노(耕當問奴), 산에는 밭을 갈고 물에서는 물고기를 잡는 생활을 한다는 경산조수(耕山釣水), 남편은 앞에서 밭을 갈고 아내는 뒤에서 김을 맨다는 경전서후(耕前鋤後), 밭을 갈고 우물을 판다는 뜻으로 백성이 생업을 즐기면서 평화로이 지냄을 이르는 경전착정(耕田鑿井) 등에 쓰인다.
▶ 當(당)은 형성문자로 当(당)과 통자(通字), 当(당)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밭전(田; 밭)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尙(상, 당)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尙(상, 당)은 높은 창문에서 연기가 나가는 모양에서 위, 위에 더하다, 충당하다란 뜻을 나타낸다. 田(전)은 논밭의 뜻으로, 當(당)은 이 밭과 저 밭이 서로 포개어 맞추듯이 꼭 들어 맞는 일의 뜻으로 쓰인다. 當(당)은 명사 앞에 붙어서 그 바로 그 이 지금의 등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어, 어떠한 말 뒤에 붙어서 앞에 마다 등의 뜻을 나타내는 접미어, 그 당시의 나이를 나타내는 접두어로 쓰인다. 그래서 마땅, 밑바탕, 바닥, 저당, 갚음, 보수, 갑자기, 이, 그, 마땅하다, 임무나 책임을 맡다, 당하다, 대하다, 주관하다, 주장하다, 필적하다, 짝하다, 균형되다, 어울리다, 때를 만나다, 당면하다, 저당하다, 막다, 지키다, 방어하다, 비기다, 비교하다, 벌주다, 단죄하다, 마주 보다, 곧 ~하려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마땅 의(宜), 마땅 해(該)이다. 용례로는 그 사건에 직접 관여함을 당사(當事), 그 시대의 세상을 당세(當世), 어떤 일을 만난 그때 그 자리를 당하(當下), 어떤 곳의 꼭 가운데가 되는 곳을 당중(當中), 바로 그 시각을 당각(當刻), 당면한 이제를 당금(當今), 사람의 한 평생살이를 당대(當代), 어떤 한 곳이나 일에 닿아서 이름을 당도(當到), 말로써 어찌하라고 단단히 부탁함을 당부(當付), 일이 생긴 처음을 당초(當初), 지금 바로 이 자리를 당장(當場), 일이 생긴 그때를 당시(當時), 일이 생겼던 바로 그 날을 당일(當日), 무슨 일을 당하여 정신이 헷갈려서 처치할 바를 몰라 어리둥절함을 당혹(當惑), 도리 상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당연(當然), 당선과 낙선을 당락(當落), 이 세상에서는 어깨를 겨눌 사람이 없음을 당금무배(當今無輩), 부모를 명당에 장사하여 그 아들이 곧 부귀를 누리게 됨을 이르는 말을 당대발복(當代發福), 앞으로 마땅히 닥쳐 올 일을 당래지사(當來之事), 상례에 따르지 아니하고 특별히 논하여야 마땅하다는 당이별론(當以別論) 등에 쓰인다.
▶ 問(문)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門(문; 출입구)으로 이루어졌다. 말이 나는 곳, 남의 안부를 묻거나 죄인에게 따져 묻는 일을 뜻한다. 그래서 問(문)은 물음, 질문, 옛날 경서의 뜻 따위를 구술 시험으로 묻는 문제를 뜻하여 묻다, 문초하다, 방문하다, 찾다, 알리다, 부르다, 소식, 물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물을 자(咨), 물을 신(訊), 물을 순(詢), 물을 추(諏), 물을 자(諮)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대답 답(畣), 대답 답(答)이다. 용례로는 남의 상사에 대하여 슬픈 뜻을 나타냄을 문상(問喪), 웃어른에게 안부를 여쭘을 문안(問安), 남에게서 글자를 배움을 문자(問字), 모르는 것을 알려고 물음을 문구(問求), 서로 묻고 대답하고 함을 문답(問答)예절을 물음을 문례(問禮), 앓는 사람을 찾아보고 위로함을 문병(問病), 죄를 지은 사람이 죄의 사실을 진술하도록 하는 심문을 문초(問招), 물어서 의논함을 문의(問議), 대답이나 해답 따위를 얻으려고 낸 물음을 문제(問題), 잘못을 캐묻고 꾸짖음을 문책(問責), 묻는 항목을 문항(問項), 동쪽을 묻는 데 서쪽을 대답한다는 문동답서(問東答西), 병든 데를 찔러 보는 침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시험으로 미리 검사하여 봄을 문안침(問安鍼), 정의 경중을 묻는다는 뜻으로 천하를 빼앗으려는 속셈이나 남의 실력을 의심하는 행위에 비유하는 말을 문정경중(問鼎輕重) 등에 쓰인다.
▶ 奴(노) 회의문자로 㚢(노)는 고자(古字)이다. 계집 녀(女; 여자)部와 又(우; 손; 일한다)으로 이루어졌다. 노동에 종사하는 여자의 뜻이, 나중에 널리 남에게 부림을 받는 천한 사람을 가리켜 특히 남자 종의 뜻이 되었다. 奴(노) 어떤 명사에 붙어 몹시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놈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또는 사내종의 뜻으로 공천(公賤)과 사천(私賤)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종(사내종), 놈, 저, 자신을 낮추는 말, 접미사, 종으로 부리다, 둔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종 복(僕), 종 예/례(隷)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종 비(婢)이다. 용례로는 종이나 노비의 계집으로서 남의 첩이 된 사람을 노가(奴家), 종의 이름을 노명(奴名), 사내종을 노복(奴僕), 사내종과 계집종을 노비(奴婢), 여러 종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노속(奴屬), 종 대하듯 멸시함을 노시(奴視), 종의 이름을 적은 장부를 노안(奴案), 하인처럼 굽실거리는 비굴한 얼굴을 노안(奴顔), 사용자의 마음대로 혹사 당하는 일 또는 노예로서 부림을 당하는 일을 노역(奴役), 자유를 구속 당하고 남에게 부림을 받는 사람을 노예(奴隸), 열등한 재주 또는 남자 종을 노재(奴才), 종이 낳은 어린아이를 업신여기어 이르던 말을 노추(奴雛), 노예처럼 천대하여 기름을 노축(奴畜), 자식들이나 놈들의 뜻으로 남을 얕잡는 말을 노배(奴輩), 주인이 종의 이름으로 소송을 제기하던 일을 노명소지(奴名所志), 사내종의 얼굴과 계집종의 무릎이란 뜻으로 사내종이 고개를 숙이고 계집종이 무릎을 끓듯이 남과 교제할 때 지나치게 굽실굽실하며 비굴한 태도로 일관함을 이르는 노안비슬(奴顔婢膝), 종과 상전의 나뉨이란 뜻으로 매우 거리가 멀어 바꿔 설 수 없는 대인 관계라는 노주지분(奴主之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