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4FBR 기우초
아마추어
무선사들은 일반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나라와 교신하여 Country수를 늘리려 한다. 많은 Country로부터 받은
QSL카드는 여러 지역의 무선사 들을 만났다는 의미도 있을 뿐더러, 많은 Country와 교신한 무선사에게 수여되는
Award 때문이다. 누구나 DX er가 되면 DXCC Award를 받아보고 싶고 Honor roll도 되고 싶어한다.
1997년 몽골 고비사막 DX Pedition 참가 이후 다음 가능한 지역이 어디일까 생각하다가 남태평양 여러섬을 생각하게
되고 Midway라는 섬이 떠오르면서 관심을 갖게 되어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Top 10 Most wanted
country list에 항상 10위 안에 드는 미드웨이는 KH4라는 Prefix가 붙은 별도 Country로 오랫동안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전파가 나오지 않아서 점차 관심을 잃어가던 중, 1996년8월 민간인 Ham이 들어가 전파를 낸
기사를 CQ誌에서 읽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해에 군 통할에서 환경청으로 이관되면서 민간인 상륙이 더욱 어려울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희귀한 생물, 조류 등 환경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치에 이해는 갔으나
교신하기엔 더욱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으므로 아쉽게 됐구나 했는데, 그로부터 3년뒤, 우연한 계기로 Richard
Darling이 Midway에 들어가 전파를 낸다는 기사를 DX News에서 보고 기다렸다가 교신하여 QSL Card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미드웨이 해전과 암호통신
하와이
북서쪽에 위치한 미드웨이 제도는 이스턴과 샌드라는 2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다. 미 해군 기지가 있었으며, 전성기에는 군인과
가족 등 11,000명이 상주했지만 지금은 5명의 장교와 환경청 소속 공무원, 필리핀, 스리랑카 근로자, 미 정부와 계약된
스텝진 만이 살고있고 환경보호를 위하여 금렵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아시아와 아메리카 두 대륙의 중간에 있다 하여,
미드웨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그 전략적인 위치로 인해,2차 세계대전 때 미드웨이 해전이란 유명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에
불리했던 전세가 일거에 뒤집혔던 전투가 미드웨이 해전이었고, 여기에는 암호해독이 커다란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동안 Midway(1976)란 전쟁영화도 보고 여러자료를 접하며 이 세기적인 항공모함 해전사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오래전에 비밀해제가 되었고 영화화까지 된 62년 전의 역사적 사건을 미,일 양측자료를 검색하면서 통신보안이
국가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왜 우리가 보안의식을 가져야 하는지를 더 알게되었다. 우리에게는 엄연히 주적이 상존하여
대치하고 있고 자국의 실리만을 추구하는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정의로 통하는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살고있다. 이 현실 안에서
경쟁하며 생존, 발전해 가야 하는 우리는 군사정보 뿐만 아니라 일반산업, 무역, 과학기술의 각 분야에 정보누수나 빈틈은
없는지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제3의 물결인 정보화 시대이다. 인터넷에 올린 모든 자료를 정보라고 한다. 너무 자주쓰다 보니 정보의 개념조차 희박해져
버렸다. 미 CIA와 국가정보원의 정보라는 단어에서부터 인터넷상의 단순한 지식까지도 정보라 하여 구분 없이 남용하다보니
뒤죽박죽 되어버렸다. 전파를 타고 날라가는 모든 신호는 도청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몇이나 될까? 사소한 작은 정보가
얼마만한 위력을 발휘하며 역사의 물결을 바꿔 버리는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미드웨이 해전을 소개한다.
미드웨이 해전 발발
유럽에서
전쟁이 한창이었던 1940년 7월, 미국은 각종 전략광물, 화공약품, 항공엔진 부품, 항공연료, 특수금속, 고철의 금수를
단행하고 대일 교섭에서 삼국동맹 파기, 중국에서의 전면철수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일본의
해외자산을 동결시켜 경제제재를 가한다. 숨통을 죄인 도오조 내각은 자위자존을 달성하기 위해 대미, 영국, 네덜란드를
포함하여 전쟁을 불사할 결의를 하고 그 해 10월, 전쟁준비를 완료한다. 대미 교섭에 최후의 기대를 걸었으나 진척이 없자,
41년 12월 7일 일본 기동함대가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미 태평양 함대에 일격을 가하여 일시 무력화시킨다. 이는 미국이
함대를 건조, 재정비하는 2~3년 동안 태평양과 동아시아에서 우위를 확보하여,
풍부한
자원, 즉 식량, 고무, 주석, 석유 등의 전략물자를 손에 넣고, 이를 발판으로, 미국을 위협하면 염전운동이 일어나 유리한
강화의 시기가 올 거라는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이어 파죽지세로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 보르네오를 점령하여 미, 영,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버마 인도양 연안에서 자바, 뉴기니 남태평양의 솔로몬제도까지 방대한 지역을 3개월 만에 공략하였으며,
그 승승장구에 도취되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역사상 한번도 공격을 받아 본 일이 없었던 국가라는 자부심에 상처를
입고 침체된 미국민의 애국심을 일깨우기 위해 일본 본토폭격을 주문한다. (이 부분은 2001년에 개봉했던 영화 진주만 에
잘 묘사되어 있다)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명령으로, 폭격 후 귀환이 가능한 폭격기는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복수심을
꺾을수 없었기에, 중형폭격기를 항모에 싣고 가서 일본근해에서 띄운 뒤, 회수는 중국본토의 비행장에서 하는 작전을 세운다.
16대의 B25 중형폭격기는 호네트 호를 이륙하여 1280킬로를 날아 도쿄, 요코하마, 오오사카, 고베, 나고야를 분산
공격하여 병기창, 군부대, 정유소, 제강소를 폭격하였다. 피해는 미미하지만 기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미국민의 사기를 높인
계기를 만들었다. 여기서 가장 놀란 사람은 야마모도 사령관이었다. 하버드의 우등생이고 워싱턴 주미대사관 해군무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어 미국의 경제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그는 미국이 공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조만간 일본해군을 제압할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게 됐으며,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여 강력한 예방조치로서 미 기동함대와 해군기지를 철저히 분쇄하려는
작전을 구상 하게된다.
AF라는 암호의 해독
갑자기
늘어난 무선통신에 대규모 작전기도를 눈치챈 미정보부 암호 해독반은 함정, 항공대, 공격날짜와 야마모도 사령관이 전함
야마또에 장기(將旗)를 걸고 직접 지휘하는 것까지 해독했으나 공격목표만은 알지 못했다. 한달 째 밤잠을 못 자며
해독반원들이 매달렸지만 풀리지 않았고 공격목표라고 생각되는 AF 지점이 어디냐를 놓고 참모들도 고심을 했다. 당시
일본해군은 JN25 코드를 암호로 사용하였다. 97식 구문인자기라는 암호기로 두 대의 타이프라이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알파벳을 치면 미로의 전선에 연결된 로타리 엔진이 달린 타자기에 암호문이 나타난다. 평문은 어느 정도 이상이면 그 통계적
성질을 이용하여 해독이 가능하며 보통 25문자 이상이면 해독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평문의 각 문자를 치환법칙에 따라
바꾸는 바꿔치기 암호, 일정한 블럭을 일괄 암호화하는 블럭암호 등 고전적 이지만 여기에 계열이 다른 복수의 다른 계열을
조합할 때는 더욱 해독이 어렵다. 니미츠 제독의 정보 참모로 머리가 명석했던 조셉 로슈포트 중령은 이를 간파할 수 있는
계략을 썼다. 해저 전화로 미드웨이에 있는 증류기 고장이라는 내용을 평문으로 타전하게 하고 48시간 이내에 도청한 모든
정보는 사령부로 보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곧, 일본 대본영으로 보내는 전문 중에서 AF에는 신선한 물이 부족하다는 내용을
발견하고 AF가 미드웨이인 것을 알게된다. 일본 무전병이 평문으로 작성된 전문을 복무규정에 따라 암호로 바꿔 타전한 것이
천금같은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외국과의 조약, 외교훈령, 국가원수나 지휘관의 행선지,
군이동 사항, 전략거점 등은 반드시 암호화 해야하고 이를 어기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처벌받는다. 여기서 일본군은 왜 미군이
중요한 거점을 암호를 쓰지 않고 평문으로 보냈는지를 의심했어야 했다. 곧 사령관에게 보고하자 니미츠 제독은 미드웨이를
시찰하고 방위대장 시릴.시마드 해병 중령에게 공격날짜를 알린다. 이어서 병력이 증파되었고 활주로 공사와 지하요새, 해안선
유자철조망, 증류시설, 대공포화, 지뢰매설 등 무장을 철통같이 강화하였다. 적의 공격기도를 사전에 간파한다는 것은 대단히
유리하다. 그럼에도 일본에 비해 병력면에서 3:1 정도로 열세이고 당시 최강 최신예 항모전단에 찌를 듯 한 사기의 우수한
해군비행사들을 갖춘 일본은 미국의 적수가 되지 않았다. 미국으로선 미드웨이를 공략 당하면 1800 킬로 떨어진 하와이제도와
미 본토까지 위험에 처하게 되는 어려운 지경이 된다. 약세를 만회하기 위해 산호해전에서 대파된 요크타운 항모를 3일만에
가동할 수 있도록 하여 미드웨이로 보낸다. 한편 하와이 근해에서 미 해군을 감시 초계하던 일본 잠수함대가 계속되는 작전으로
일시 휴식이 필요하게 되어 보급과 정비를 하고 다시 초계라인에 도착하기 하루 전, 미해군 항모 요크타운이 지나가 버린다.
이 미묘한 차이로 인하여 후세의 전사가들은 행운의 여신이 미국측에 손을 들어 주었다고 한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미군에 대해 일본군의 정보는 엉성하여 해병1개 대대와 60여대의 군용기가 있다고 하는 정도였다. 나구모 함대 만으로도
가볍게 제압할 것으로 알았으니...
미드웨이에서의 전투
6월4일
새벽에 일본의 1차 공격대인 108대의 공습부대는 항모 아까기에서 발진하여 미드웨이로 향한다. 대기하고 있던 미드웨이의
미군기들이 이륙하여 공습부대를 상대했으나 맥없이 격추되고 곧 이어 미드웨이 섬이 불길에 휩싸인다. 나구모 제독은 제2차
공격을 퍼부을 수 있도록 폭격기에 어뢰를 폭탄으로 바꿔 달도록 했다. 그때 수상정찰기로부터 적 함대 발견. 적함대는
순양함5, 구축함5척 이라는 전문을 받는다. 이 정도면 미드웨이를 공략하고 난 후 천천히 요리해도 된다고 생각한 나구모는
2차 공격은 잠시 연기하고 1차 공격대가 귀함 할 수 있도록 갑판을
비워 놓았다. 미 기동함대가 가까이 온 줄은 까마득히 모른 채. 멀리서 1차 공격대의 전투기들이 가솔린이 떨어져 착함을
요청하자 우선 수용하고 연료와 탄약을 보급하도록 한다. 미해군 전투기들도 일본 함대를 찾기 위해 수색하던 중 3척의 항모와
선단의 항적을 발견하고 급강하 기습한다. 아까기의 상갑판에서 폭격기가 한대가 이륙하자 마자 들이닥친 미 급강하 폭격기의
폭격으로 갑판의 많은 전투기가 화염에 쌓이고 탄약과 어뢰에 번져 폭발이 쉴새없이 일어났다. 이어 벌떼처럼 옮겨 맹공격하여
소요류와 가가도 거대한 기둥처럼 연기가 솟아올랐다. 일본 항공모함 3척에 동시에 명중된 것이다. 이로써 불과 10분 사이에
최강의 함대는 사라졌다.
히류우로부터 발진한 18대의 폭격기와 뇌격기가 요크타운을 공격하여 불타오르게 하였고 마지막 남은 히류우마저 4발의 폭탄을
맞고 격파되었다. 가꾸 함장은 사령관으로서 히류우와 소오류우를 잃어버린 책임을 통감하고 모함과 운명을 같이 한다. 전원
퇴함을 명하고 구축함에 명령해 어뢰를 맞고 바다밑으로 가라앉자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해전사에 이처럼 극적인 역전의 전투는
없었다. 주력 해군기동함대가 박살나버린 상승 일본군은 미드웨이 해전 이후 해상 보급선이 차단되고 역공세를 당하여 패전의
길을 걷는다. 역사의 진로를 바꾼 통쾌한 미국 측의 승리였다. 별것이 아니라고 가볍게 여긴 정보, 결과는 엄청 날수도
있다. AF의 교훈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