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들은 왜 화가 났을까 50년대 영국은 ‘분노의 시대’ 기성세대 향한 집단적 냉소 참을수 없는 속물들의 위선 그 허울 벗기고 정체성 찾기
어느 시대를 특정한 시대정신으로 규정짓는 일은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영국의 50년대를 통틀어 흔히 ‘분노의 시대’라 일컫는다.이 명칭은 존 오스본의 56년 연극 작품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와 이에서 유래한 ‘성난 젊은이들’(The Angry Young Men)이란 젊은 세대 작가들의 문학운동과 직접적 관련성을 갖는다.이 연극의 주인공이 초라한 하숙방에서 사회에 대해 던진 분노의 외침은 제2차대전 이후 등장한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에게 향한 집단적 감정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성난 젊은이들’이 표출한 환멸과 좌절감,그리고 분노는 단지 일시적인 세대갈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그것은 부조리한 현실사회에 대한 비판이었으며 전후 급속히 변모하는 영국 사회의 새로운 정체성을 탐색하는 작업의 일환이었다.오스본의 작품에 앞서 킹슬리 에이미스의 첫 소설 ‘행운아 짐’(1954)이 출판되자마자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이들 젊은 세대가 겪는 사회적 갈등과 내적 탐색을 적나라하게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행운아 짐’은 전후 영국의 새로운 정신을 담은 총체적 작품이다.20세기 전반기에 유행했던 모더니즘 소설이 집착했던 내면적 심리묘사와 형식상의 과격한 실험성을 거부하고 사회현실을 보다 충실히 반영하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성향을 이 소설은 철저하게 따른다.모더니즘이 갖고 있는 여러 특성 모호성,일상성으로부터의 도피,대도회지적 감수성,국제적 보편성 추구,부르주아적 비대중성에 반발하며 오히려 과거 영국문학의 리얼리즘 문학전통을 다시금 천착하고 있다.
이 소설의 새로움은 무엇보다 젊은 세대의 사회적 인식을 투영한 동시대성이라 하겠다.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이 고착된 사회구조에 직면하면서 겪는 갈등에서 시대적 사회상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과거의 인습대로 따르기를 거부하고 주어진 기성세대의 가치체계를 냉소적으로 희화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50년대 젊은 세대들이 공감하는 전형적 자화상이다.
‘행운아 짐’은 어느 지방대학 강사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50년대 사회상을 보여준다.시간강사인 딕슨은 계약기간 만료가 가까워지자 재임명받지 못하고 해고될 가능성에 몹시 초조해한다.그러나 딕슨만 안달하지 그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다.자연히 그의 개인적 불만은 사회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된다.
그의 재임명에 절대적 권한을 쥐고 있는 역사학과 학과장 웰치 교수는 그야말로 무능력과 위선의 표본이 된다.웰치 교수는 자신의 논문을 딕슨에게 대신 부탁할 정도로 지적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으면서도 위엄과 권위만을 내세우기에 바쁜 위선자다.남의 감정에는 철저히 무관심한 이기주의자인 만큼 그는 딕슨의 곤경을 오히려 즐기는 무딘 감수성의 소유자다.그러면서도 남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통제하는 권력을 움켜쥔 권력집단으로 존재하고 있기에 딕슨은 기성세대에 절망감을 느낀다.
웰치 교수댁에서 주말에 벌어지는 작은 연주회는 에이미스의 대표적 풍자대상이 된다.이날 연주곡목으로 선정된 바이올린 소나타는 지루하고 현학적인 독일풍의 곡목이며,16세기 연가(戀歌)는 낭만주의적 인위성을 풍긴다.전후 영국의 사회풍토와는 유리된 이 모임은 이국적이고 허세어린 예술세계를 즐기는 딜레탕트들의 집합체처럼 딕슨에게는 여겨진다.부르주아적 딜레탕트들의 회고적 기호야말로 문화적 속물의 표본이라고 딕슨은 비난하지만,역설적이게도 웰치 교수는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역사학 강사의 임명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대표적 속물은 웰치 교수의 아들 버트런드다.그는 대륙풍의 유행을 뽐내듯 오렌지색 외투에 푸른 베레모,포도넝쿨 무늬의 넥타이를 차려입고 이곳 지방도시에 내려와 마치 문화의 후원자인양 으스댄다.화가인 버트런드의 그림은 구상성이 없는 모호성으로 가득차 있으며,정치에 대해서도 그는 열심히 떠들어대지만 유한계급의 왜곡된 편협성을 곳곳에서 드러낸다.현실에 초연한 순수예술가인 척하면서도 비굴하도록 부자의 뒤만 따라다니는 실제 모습이나 유부녀를 유혹하는 그의 비도덕성은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위선자임을 말해준다.
웰치 교수 부자(父子)에 대한 딕슨의 강한 거부감과 적의감은 단순히 문화적 취향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문화적 감수성의 차이 뒤편에 깔려있는 유한계급의 무감각한 도덕성과 정치적 허위의식을 겨냥하고 있다.사회의 권력층으로 자리잡은 기성세대들은 사회적 변화에는 등을 돌린 채 자기도취에 빠진 진부한 이기주의자들이어서 남에게 권태감과 무력감을 안겨줄 뿐이다.
이에 반해 딕슨은 세속적일 정도로 모든 일에 솔직하며 현실세계에 충실하다.그가 중세 역사를 전공으로 택한 이유도 학구적 탐구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 분야가 제일 쉬워 보였기 때문임을 친구에게 솔직히 자인한다.지적 현학성에 냉소를 보내는 딕슨이 주된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는 곤궁한 자신의 처지에 맞게 돈 담배 맥주 직장 여자 등 개인적 생활과 직결된 세속적인 사항들이다.그가 좋아하는 것은 고귀한 모차르트 음악이 아니라 재즈 가락이다.
딕슨의 관심사는 바로 그 세대의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성세대와 구별짓는 자신들만의 사회적 정체성이다.유럽 대륙의 도회지적 취향에 반발하는 영국전통의 지방적 색채,문화적 현학성을 조롱하는 반지성적 세속성,상류계급의 특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계급의식이 ‘성난 젊은이들’에 짙게 깔려 있다.
이러한 사회적 동질성을 밑바탕으로 젊은 세대는 기성 권력집단과 충돌하며 대항하는 반항자 국외자 또는 이탈자의 냉소를 퍼붓는다.
대영제국의 화려한 깃발이 내려진 전후 영국의 사회적 변화기에 기성세대와 차별되는 자신들의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을 탐색한 ‘행운아 짐’은 비록 사회적 변혁을 요구하는 급진적 사고와 구체적 방향성이 미흡하지만 뚜렷한 문화적 반발과 사회적 저항의 독특한 몸짓이었다.
그 몸짓은 때로 사회적 이탈자의 천박함으로 간주되기도 했지만 기존 질서의 두터운 벽을 두드리며 도덕적 가치를 모색하는 성실성을 담고 있다.거칠도록 과시적인 저항의 손짓에도 불구하고 국외자로서 중립적 위치에서 신중하게 기존 가치의 허울성을 벗기는 그 시도에서 ‘성난 젊은’ 세대의 진지함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