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나무는 그 열매로써 알 수 있고 사람은 그의 사귀는 친구로써 판별된다' 는 말씀과 취지가 동일하다. 지혜라는 것은 정확한 지식이 바른 품성과 결합하여 일어나는 것이므로 반드시 유익한 결과를 낳게 만든다. 흔히 어떤 사람을 두고 "머리 좋다"고 한다. 사실 그는 지능 지수가 뛰어난 사람이 아님에도 그런 칭찬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의 지능지수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인정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특성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실천이 어려운 것을 해냈을 때, '대단한 사람'의 대용어로 사용한 것이다. 코로나가 한참 창궐할 때, 사람이 많이 모인 곳, 밀폐되고 협소한 장소, 그리고 사람끼리 밀착될 수 있는 것을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들은 기부금이 걷히지 않는 것을 염려하여 일요일 대면 집회를 강행하곤 함으로써 그 '우둔함'을 과시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 예배에 참석함으로써 코로나에 감염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것은 우둔함의 자녀가 그 행한 일로 증명된 것이다. 요즈음 한국 사회는 대통령 탄핵 이슈로 온 나라가 혼란에 휩싸여 있다. 이것은 진영에 따라 여러가지 해석과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국민들이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따로 국회 따로 국밥이 되므로 인하여 피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우둔함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삼권 분립의 야소여대 정국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견제가 가능하다. 그런데 대통령은 여당에서 국회의 다수당은 야당이 되게 함으로써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지혜가 아니라, 우둔함을 드러내는 결과가 된 것이다. 상황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는 국민들의 우둔함의 결과이다. 달면 삼키고 조금 쓰면 뱉아내는 충동적 감정의 결과이다. 국민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처음 기회는, 대선에서 정치 경험이 부족한 사람을 대통령의 후보로 세우지도 말고 뽑아서는 더욱 안 되었다. 두 번째 기회는 뽑았으면 견제하면서도 밀어주고 참아나가야 하며 5년 뒤에 정치적 심판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 안이 조금 쓰다고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 뱉아낼 때는 지금과 같은 혼란된 정국이 온다는 것을 왜 예상하지 못하는가? 이것은 지능지수가 낮아서 현재와 같이 된 것이 아니다. 미래를 보는 통찰력의 부족, 곧 지혜의 부족인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라의 정치는 국민의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다. 현재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지금 내가 얼마나 정확한 정보와 그 정보를 어떤 식으로 적용해 내는가의 결합이 곧 지혜를 드러내는 것이다. 지혜는 조금만 바르게 생각하면 얻을 수 있다. 견리망의(見利忘義)면 미련함이요 견리사의(見利思義)면 지혜로움인 것이다. 조금 달면 삼키고 조금 쓰면 뱉아내는 것은 결코 지혜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