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본문: 시 62편
- 제목: 권능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 기도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 하시지만... 저 역시 사람입니다. 의지할만한 존재가 되어주지 못함은 저역시 똑같습니다. 타인에 대한 실망감을 안고 되뇌이는 삶보다는, 저에 대한 실망감을 안고 되뇌이는 삶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알아 주님께 달려가는 존재로 지어주십시오.
◆ 본문살핌
하나님만이 신뢰할 만한, 의지할 만한 분이 되어 주시며 사람은 그럴 깜냥이 되지 못한다. 인생이란 덧없고 보잘것 없으며 순간 지나가는 것이니 의지할 것이 없다. 또한 자신을 흔들려고 오는 원수의 공격에서 건져주실 분도 하나님 뿐이시다. 시인은 하나님께 지혜의 말씀을 들었는데, 이는 권능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란 말씀이었다. 또한 인자하심도 주님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의 행한대로 갚으실 것이다.
◆ 묵상
두번째 100日 결사는 좀더 빠르게 지나간다. 오늘이 66일째, 그러니까 합쳐서 166일차가 된다. 첫 시작 때는 일주일이 참 길었다. 트레이너의 지도아래 운동을 시작한지도 8개월이 넘어간다. 처음엔 앉았다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매우 힘든 1시간을 보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그렇다고 인터넷에서 보듯이 무거운 쇠를 들고 나는 수준은 전혀 아니다.
성장도 회복도 학습도 모두 더딘데, 더딘만큼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간다. 감사한 것이 있다면 그럼에도 조바심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이루고 해내려는 삶은 버렸다. 흔들리고 무너지지 않게 내 존재를 채워 나가는 삶이면 족하다. 그마저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됐다. 나귀 턱뼈 하나라도 주신다면 주님나라 위해 일기당천 해 보겠다던 불타는 마음은 사라졌다. 그게 참 헛된 마음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의 주체는 '능력 주시는 자'의 존재다. 그런데 나는 '뭐든지 할수 있다'를 주체로 삼았던 것 같다. 뭐든지, 뭐라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순서가 심각하게 뒤바뀐 채 달렸고 그 결과는 당연히 실패였다. '내가' 뭐든지 해내기 위한 도구로 하나님을 의지했고 그 와중에 하나님의 뜻은 무시됐다. 하나님 나라 일은 내가 내 손으로 이루어드릴테니, 그저 서포트 좀 잘 해주십사 했던 듯 하다. 잘 될리가 있나.
오늘 본문에서 시인이 하나님께 들었다던 말씀이 진리로 다가온다. "권능의 주인(주체)은 하나님이시다!"(62:11) 능력을 주시는 이유는 그 능력이 필요한 어떤 것을 수행해 내도록 돕기 위해서다. 즉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께서 바라고 계시기 때문에, 이를 돕고자 능력을 주신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듣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거기에 순종하면 능력은 필요한 날, 필요한 때를 따라 따라올 것이다.
칼을 갖고 싶어서 전쟁에 나가는 자는 어리석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에게 대한 인정의 욕구, 무언가 이루고 싶은 성취와 성공의 욕구, 불안한 실존을 상쇄시킬 일 중독의 욕구 같은 것들이 우선시 되어 사역에 뛰어들면 당연히 망할 길이겠구나. 성공과 성취가 목적이 되지 않고, 순종과 경청이 전제가 될 때 포악을 행하고도 합리화한다던지, 늘어나는 재물이 하나님의 O.K 사인이라도 되는 양 착각한다던지 하는 일들이 좀 방지될 것 같다(62:10).
능력 주실 것을 목빠지게 쳐다보지 말고, 능력의 주인이시며 인자와 긍휼이 풍성하신(62:11,12) 주 하나님 자체를 바라보자. 하나님의 본질이 계시되는 영광의 자리를 주목하자. 매일의 교제, 여기서 그 일이 상시로 일어남을 잊지 말자. 나귀턱뼈는 아무것도 아니다.
◆ 기도
아버지.. 육신도 영혼도 아주 조금씩 성장, 회복되어 갑니다. 중간에 멈추면 금새 되돌아갈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중간에 멈추는 순간이 올 수 밖에 없더라도, 곧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무너진 것들을 세우는 삶을 살겠습니다. 이래사나 저래사나 어차피 입김같은 인생, 조바심할 것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다윗이면 무얼하고 삼손이면 무얼 합니까. 어차피 저를 영구히 기억해 주실 분은 하나님 뿐이십니다. 오늘을 주님께 의탁하니, 제 영혼과 육신을 보전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