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사 잘 봤어요. 이렇게라도 제가 잊혀지지 않게 (기사를) 다뤄줘서 정말 고맙네요.” 르완다에 머물고 있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서 전화 답신을 받은 건 지난 14일 늦은 밤이었다.
당
초 3일 전이었던 지난 11일 ‘무상급식 논란으로 다시 주목받는 오세훈 전 시장…르완다에서 뭐하나?’라는 기사를 준비하면서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오 전 시장의 인터넷 전화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직접 통화를 하지 못한 채 오 전 시장 주변을 취재한
내용으로만 그 다음날(12일) 기사를 내보냈었다. 그때 오 전 시장에게 이메일도 함께 보냈는데, 뒤늦게 오 전 시장이 메일을
확인한 것이다.
현재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일원으로
르완다에서 봉사와 자문 활동을 하고 있는 오 전 시장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예산 부족 문제와 맞물려 무상복지 논란이 불거지며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 서울시장이었던 3년 전(2011년 8월),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추진했던 일 때문이다. 투표함 개봉에 필요한 유효 투표율(33.3%)에 미치지 못해 결국 시장직에서 물러났던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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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지난 6월 말 페루 자문 활동을 마치고 귀국했을 당시 본지와 인터뷰하는 모습. /조선일보DB
오 전 시장은 최근 국내에서 벌어진 무상복지 논란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전화와 이메일로 함께 진행된 인터뷰에서 “소득을 구분하지 않고 이뤄지는 보편적 (무상)복지의 최대 피해자는 정작
도움이 필요한 열악한 계층”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복지 재원을 전 계층에 골고루 나눠주다 보면 소외계층에게 집중적으로
분배돼야 할 예산이 고소득층에게도 가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야당에서 재원 부족 해결책으로 증세(增稅)를 요구하는 데 대해선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의) 소득을 구분하지 않는 무차별적 복지는 아무리 증세를 해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현
재의 르완다 활동이 마무리되는 내년 1월 귀국할 예정인 오 전 시장에게 정치 복귀 계획을 묻자, “현실 정치에 참여할 마음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국민 여러분이 내게 주셨던 공직자로서의 소중한 경험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했다. ☞오세훈 전 시장과의 일문일답 ―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 정부·여당과 야당은 자신들이 각각 공약했던 무상복지 정책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그동안
실시돼온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중 하나는 지역에 따라 예산지원이 중단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미 3년 전 시장직을 걸 때부터 이런
일들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던 것인가. “내
가 3년 전에 어떻게 이런 상황을 다 구체적으로 예측했겠나? 다만 당시 이른바 ‘3무1반’(무상급식·보육·의료, 반값등록금)으로
지방선거와 총선, 대선을 치르겠다는 야당의 정략적 접근에 흔들리는 민심을 바라보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대중영합적 전략의
엄청난 폐해만은 미리 알리고 막아야 미래 대한민국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 뿐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상황은 결국
(정치권이) 정략적인 동기를 갖고 갑자기 준비없이 한꺼번에 시작해 문제가 생긴 것 아니겠는가. 세입 먼저 정해놓고 세출을 짜야
하는데, 공약부터 정해놓고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니…. 하여튼 지금이라도 이런 문제에 대해 논의와 토론이 생긴 건 다행이라고
본다.” “3년 전엔 ‘미래형 복지’로 오도된 현금살포형 복지 막는 게 절박… 시장직까지 건 것 무리” ―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했던 3년 전 소신에 전혀 변화가 없나.“그렇다. 이미 당시 예측했던 것처럼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부작용들은 ‘교육 본질’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부모님들은 이를 피부로 느끼고 계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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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8월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 전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따른 시장직을 물러나겠다는 방침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다가 눈물을 닦기 위해 뒤돌아선 모습. /조선일보DB
― 그 당시 무상급식 범위를 서울시민들에게 정하도록 하자는 주민투표를 추진했는데, 당시 서울시의회를 장악했던 야당과 타협할 다른 방법은 없었나. “그
때는 ‘보편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소득 구분 없는 현금살포형 복지’가 미래형 복지로 오도(誤導)되는 상황을 막지 않으면
이어지는 큰 선거에서 여야 모두 그 방향으로 달려갈 것이 불을 보듯 명확했다. 이걸 막는 게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절박감이 날
짓눌렀다. 하지만 이를 막을 수단이 없었다. 시의회 4분의 3을 장악한 (당시) 민주당은 정책과 예산 양면에서 시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시장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재적 3분의 2로 재의결했고, 시장은 그 정책을 시행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식물시장’ 처지였다.
나중에는 무상급식을 하되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초등학교만 하자는 파격적 타협안도 냈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의 지시를
그대로 강요하던 시의회는 ‘100% 즉시 시행안’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잘 아시다시피 80만명의 서울시민들이
자신들의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시면서도 주민투표 발의 서명을 해주셔서 주민투표 절차에 돌입하게 됐다. 당시는
서울시민들의 이런 자발적 움직임이 계기가 되어 역사의 물결이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책무라는 생각을 했다.” ― 이를 위해 서울시장직까지 걸었다가 결국 재선(再選) 임기 1년만 마치고 중도 사퇴하게 됐는데. “서
울시장 직까지 건 거는 무리수였다.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나라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행보를
하더라도 자리만은 거는 게 아니었다고 본다. 그 자리는 유권자들이 부여해주신 막중한 책무를 부여받은 자리이기 때문에 더 숙고했어야
했다. 지난 여름 르완다로 가기 전에 잠시 귀국했을 때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죄인의 마음’이라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내겐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증세가 해법? 아무리 증세해도 무차별적 복지는 지속가능하지 않아… 세출 우선순위 정해야” ―
무상급식 예산지원 중단으로 논란을 요즘 다시 촉발시킨 홍준표 경남지사는 오 전 시장이 서울시장이었을 때 한나라당 대표였다. 홍
지사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오 전 시장이 3년 전 의제 설정을 잘못했다. 그냥 (무상급식) 예산 편성만 하지 않았으면
됐는데, 주민투표를 추진하려다 문제가 생긴 것”이란 취지로 말했는데. “홍
지사의 이번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 선택은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웠다.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3년 전 서울시와 현재의 경남도는 사정이 다르다. 경남도 의회는 여당이 다수지만, 3년 전 서울시의회는 4분의 3분이 야당이었다.
이 점을 알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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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전 시장이 르완다에 있는 커피 공장에서 그곳 근로자와 함께 찍은 사진(왼쪽). 오른쪽 사진은 평상시
맨발로 다니면서 모래벼룩의 공격에 노출된 어린 학생들에게 선물할 고무 신발을 들고 좋아하는 모습이다. /오세훈 전 시장 블로그
― 3년 전 사퇴 기자회견 때 “이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과잉복지에 대한 토론이 더욱 치열하고 심도 있게 전개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후 오 전 시장의 바램대로 이뤄졌다고 보나. “그
렇지 못한 것 같다. 치열하고 심도있는 토론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무상급식이 학교 현장에 미친 부작용에 대해 심층분석이 선행됐어야
했는데, 그 분석작업이 산발적으로 이뤄졌다. 그나마 이것이 쌓여 작금(昨今)의 여론이 형성됐다고 본다.” ― 결국 해결책이나 대안은 뭐라고 보나. 현재 야당에선 이번 기회에 증세를 논의하자고 하는데. “증
세는 마지막 수단이다. 우리는 세금을 늘 ‘혈세(血稅)’라 부른다. 그만큼 국민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재원이다. 그러므로 이를
늘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나 불경기일 때는 더욱 그렇다. 해법은 세출 우선순위에 있다. 소득구분 없는 무차별적
복지는 아무리 증세를 해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보편적 복지의 최대 피해자는 정작 도움이 필요한 열악한 계층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복지 재원을 전 계층에 골고루 나눠주다 보면 소외계층에게 집중적으로 분배돼야 할 예산이 고소득층에게도 가게 된다.
이런 정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현실정치 참여 안할 것… 다만 국민이 주신 소중한 ‘공직 경험’은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환원” ― 현재 르완다에서 KOICA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데, 르완다에서 머물면서 바라본 우리나라는 어떤가. “흔
히, 가르치며 배운다고 하지 않느냐. ‘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라는 말도 있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가진 것이 훨씬
많으면서도 우리보다 뒤처진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보다 가진 것이 적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능성이 보이는 나라들이 있다.
이런 나라 사회 깊숙이 들어와 정책자문 과정을 통해 그 사회적 특성과 정책 방향, 정치적 리더쉽을 들여다보는 것은 시간낭비가
아니다. 거기에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들, 빈부 격차와 공존, 화해와 용서, 양보와 배려의 가치를 투사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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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전 시장이 르완다에 있는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어린 학생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위 사진). 아래
사진은 르완다 정부에서 공무원 역향강화 교육 등을 담당하는 부서의 장과 만나 자문을 하고 있는 모습. /오세훈 전 시장 블로그
― 블로그에다 르완다에서 접한 새마을운동에 대해 여러 번 글 올린 것을 봤다. 요즘 국내에선 새마을운동을 ‘옛날 옛적’ 일처럼 이야기하는 게 현실인데.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새마을 정신은 개발도상국 뿐 아니라 미래의 대한민국에서도 늘 가슴에 새겨야 할 소중한 가치임이 분명하다. 이 나라 새마을 현장의 변화는 혼자 보기 아까운 작은 기적의 보고(寶庫)다.” - 내년 1월이면 르완다 활동이 끝난다. 최근 국내에서도 무상복지에 대한 반성 움직임이 보이는데, 명예회복을 위해 정계 복귀나 총선·대선에 재도전할 계획이 없나. 그게 아니라면 다음 총선이나 대선 때 친정인 새누리당을 지원할 생각은. “현실 정치에 참여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이 내게 주셨던 공직자로서의 소중한 경험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사회에 환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