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 조해주
저쪽으로 가 볼까 그는 이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얇게 포 뜬 빛이 이마에 한 점 붙어 있다 이파리를 서로의 이마에 번갈아 붙여 가며 나와 그는 나무 아래를 걸어간다
― 시집 『가벼운 선물』 (민음사, 2022) -------------------------
* 조해주 시인 1993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가벼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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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너무 좋지 않은가. ‘얇게 포 뜬 빛이 이마에 한 점 붙어 있다’는 표현이라니. 시인의 예전 시집, 그러니까 첫 시집을 읽었을 때도 마음의 정물을 기가 막히게 표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에도 음미할 표현이 가득이다. 이런 시를 발견하면 가슴이 뛴다. ‘이게 그 말이지? 이 장면이 그런 장면 아니야? 그걸 이렇게 적은 단어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고?’ 시를 읽으면서 혼자 생각해 보고 그려 보면서 마음에 깊이 박아두게 된다.
나에게도 서로의 이마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말을 나누며, 어두운 길을 밝게 걸을 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조금 아팠는데, 우리 다시 저렇게 걸었으면 좋겠다. 늙는 내내 저렇게 걸으면 좋겠다. -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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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소도시의 밤길을 걸었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별이 제법 촘촘한 하늘을 보고는 새삼 깨달았다. 그렇지, 빛은 어두울 때 비로소 ‘빛나는’ 것. 밤에 하는 산책이 내 각별한 취미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빛 때문이다.
어둑한 골목을 걷다 보면 불이 환한 저마다의 창, 창들을 만나게 되고 거기 스민 순도 높은 온기에 넋을 잃곤 한다.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때면 다름 아닌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이마로 옮겨 온 또 다른 모양의 빛을 발견할 수도 있을까.
생활의 사소한 정황, 작은 움직임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이 시인은 그 빛의 생김을 “얇게 포 뜬”이라고 표현했다. 잘게 썰린 빛의 조각이 아직 살아 파닥이는 낱낱의 잎처럼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시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보며 나란히 한 방향으로 오래 걸어갈 것 같다. 참 다행이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 봄이 임박해 있다.
-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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