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선지서 개론 』
12권의 책들은 주전 4세기 말엽부터 소선지서로 불려지는데,
덜 중요하거나 덜 영감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5권의 대선지서들과 비교할 때 그 길이가 짧기 때문입니다.
LXX은 12권이고, 유대교 성경 타낙에서는 1권입니다.
내용 순서는 동일하며, 타낙에서는 (후기)예언서에 포함시켰습니다.
호쉐아로부터 시작해 말라키까지 소선지서는
앗시리아(앗수르)와 바빌로니아(바벨론), 페르시아(바사) 제국을 포함하는
약 400년간의 역사 무대에서 주신 여호와의 말씀이다.
3권의 선지서들은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활동했고(요나, 아모스, 호쉐아),
6권의 책들은 남유다 왕국을 향한 묵시들입니다(오바댜, 요엘, 미카, 나훔, 즈판야, 하밬쿡).
나머지 3권은 포로 귀환 이후의 선지서들(학가이, 즈카르야 , 말라키)이다.
비록 모든 소선지서 저자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지만 그들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그들의 배경과 개인적인 성격 등은 다양합니다.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을 왕족에서 농부까지 자기 뜻대로 불러서 세웠다.
호쉐아서
호쉐아와 그의 음탕한 아내 고멜과 혼인해서 음란한 아이를 출생한 선지자입니다.
불행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과 이스라엘의 영적인 간음에 대한 좋은 예입니다.
호쉐아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드러내면서 이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대조시켰다.
이스라엘은 그 죄로 인해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 때문에 장차 회복될 것입니다.
요엘서
유대 땅을 황폐화시킨 메뚜기 재앙을 회고하면서, 이보다 더 공포스러울 주님의 날을 묘사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백성들로 하여금 다가올 재난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
백성들이 회개하려 하지 않음으로 인해 심판은 결국 오게 될 것이지만, 그후에는 놀라운 축복이 뒤따를 것이다.
요엘서 2장은 사도 페트로가 펜테코스테절에 첫설교할 때에 인용한 구절이다.
성령의 시대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펜테코스테절에 성취된 것이다.
아모스서
아모스는 BC 750년경 이스라엘의 선지자 아모스는 원래 순박하고 정직하며
돌무화과(뽕나무)를 재배하는 가난한 농민이었다.
아모스가 백성들에게 다가올 운명을 경고했을 때는 북왕국의 전성기였다.
여덟 차례의 심판의 선포들을 통해 아모스는 이스라엘에 앞서 먼저 그 주변국들에게 대해 차례로 경고했다.
그후에 그는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열거하면서 3편의 설교를 선포했으며,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백성들은 아모스의 경고를 무시했고, 그들에게 임박한 심판은 다섯 개의 일련의 환상들로 묘사되어 있다.
그럼에도 아모스는 마지막에 미래의 소망에 대한 짧은 언급으로 끝을 맺습니다.
오바댜서
남왕국 출신의 이 무명 선지자는 그의 간략한 경고의 메시지를
유다와 남쪽으로 인접한 나라인 에돔에게 증거 했습니다.
에돔(에서의 후손)은 유다(야곱의 후손)를 형제로서 보호할 역할을 거부했다.
예루살렘이 침략을 받았을 때 고소해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완전히 멸망당하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요나서
요나서의 역사적 실재성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직 한 줄의 예언 메시지를 가진 요나서는 모든 선지서들 중에서 가장 자서전적인 성격이 강한 책입니다.
요나는 앗수르 수도인 니느웨에서 회개를 선포해서 회복시키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고
(페니키아가 스페인 땅에 식민지로 건설한 타르쉬쉬로 향하는,
최초로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한 선지자다.
그럼에도 여호와께서 그 요나를 통해서 니느웨에 복음을 전파했다.
미카서
미카서의 예언은 이스라엘과 유다 사회 각 계층, 즉 통치자들, 선지자들, 제사장들, 사사들, 장사꾼들,
그리고 지주들 내에 만연한 부패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들은 미래의 메시야의 왕국에서 성취될 것이다.
심판이 지난 뒤에는 궁극적으로 용서와 회복이 따라 올 것인데 본서는 약속에 대한 강조로 끝맺고 있다.
나훔서
니느웨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지 125년이 지난 후에 나훔이 이 동일한 성의 임박한 몰락을 예언했다.
앗수르 수도에 살던 이 백성들은 우상 숭배와 강포로 되돌아갔고 또 북왕국 이스라엘을 파괴하고 점령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함과 능력으로 인해 니느웨는 비록 무적 불패인 것처럼 보였지만
반드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니느웨는 요나의 전도로 회개했지만 곧 포악의 제국이 되었다.
하밬쿡서
유다 왕국의 거의 마지막 때에 하밬쿡 은 왜 그의 민족 사악함을 치리하지 않는지 질문한다.
여호와께서 반문한 대표적인 선지자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막대기로 바벨론인들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하밬쿡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더 사악한 민족을 통해 유다를 심판할 수 있는가?”라고 다시 물었다.
주님이 두 번째로 대답하셨을 때 선지자는 하나님의 능력과 뜻하심(목적)으로 인해서 그분의 이름을 찬양했다.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소출이 없어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고 선언했다.
즈판야 서
즈판야 는 분명한 용어를 사용해, 무서운 심판과 뒤따르는 놀라운 축복의 날로서의 여호와의 날이라는
주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즈판야는 유다에 임박한 심판으로부터 시작해 그 범위를 외국인들까지 넓혀갔다.
유다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축복(번영)을 회복할 때는 남은 자들이 기뻐 뛸 것이다.
학가이서
바벨론 포로 유배에서 돌아와 유대인들은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지만,
자신들의 집을 짓느라 이를 중단하고 말았다.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데 실패한 까닭에 그들은 그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했다.
학가이는 성전이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강조하면서
백성들에게 성전 재건을 마치도록 촉구했다.
백성들의 부패를 꾸짖은 후 학가이는 미래의 축복에 대한 약속으로 글을 맺었다.
즈카르야서
학가이와 동시대인인 즈카르야 역시 성전의 재건을 완수하도록 유대인들을 권면하였다.
즈카르야가 백성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던 방법은,
성전이 이스라엘의 영적 유산의 가장 중심이고
메시야의 도래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강조하는 것이었다.
즈카르야의 일련의 환상들과 메시지들,
그리고 경고들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몇몇 가장 뚜렷한 메시야 예언들을 제공해 줍니다.
즈카르야의 환상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요한계시록의 모습과 연결된다.
말라키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백성들의 영적, 도덕적 상태가 냉담해져 있었다.
말라키서에는 '십자가'가 등장하는데, 말라키에서 십자가의 말씀은 문자적으로 받는 것도 좋지만
엄격한 문자를 적용해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모든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가 초개같이’ 사라지며,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게 될” 심판의 무서운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고 선언했다.
400년이 지난 뒤에 엘리야 세례자 요한이 등장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외쳤는데, 메시아가 오시려면 예비하는 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