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부산 아시안게임 유도 81kg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br>야키야마 요시히로(27·일본 간사이 소속). 그는 일본 이름 '야키야마 요시히로'보다<br> 한국 이름 '추성훈'이 먼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br><br>
추성훈 선수는 재일동포 4세다. 그는 74년 전국체전에 재일동포 <br>유도대표로 뛰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도를 시작했다.<br> 일본 유도명문 긴키대를 졸업한 98년 4월 "한국인으로서 최고 영광인 유도 국가대표"를<br> 위해 현해탄을 건너왔다. <br><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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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추 선수는 조인철 선수에 가려 만년 2인자로 지내다가 <br>3년 7개월간의 한국 생활을 접고, 지난 해 겨울 '자신에게 맞는 유도'를<br> 위해 일본에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지난 1월 일본 대표에 선발된 뒤<br> 이번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안동진(경남도청) 선수를 판정으로<br> 이긴 뒤 시상대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br><br>
<스포츠피플> 기자는 어렵게 추성훈 선수와 만나기로 약속을 <br>하고 급히 부산 구덕체육관으로 몸을 옮겼다. 그런데 체육관에 거의 도착했을<br> 때 바로 앞 건널목에 검은 얼굴에 강렬한 눈빛, <br>건장한 체격의 추 선수가 보이는 게 아닌가. 재빨리 움직여 길을 건너는 <br>추 선수에게 말을 걸었다. <br><br>
"지금 요 앞 숙소로 짐을 가지러 가고 있다."<br>
숙소? 일본 대표팀 숙소는 '아시아 경기대회 선수촌'일 터인데.<br> 알고 봤더니 유도 경기가 열렸던 부산 구덕체육관 바로 건너편<br> '문화 아파트 802호'는 추 선수가 한국에 있을 때 <br>소속팀 부산시청 선수들과 함께 3년간 사용했던 숙소였다. <br>그리고 추 선수는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이틀간 이곳에서 머물렀다.<br> 아직까지 802호는 부산시청 선수들의 숙소다.<br><br>
"정든 곳이다. 대표선발 된 뒤 하루빨리 오고 싶었다. <br>부산은 내가 선수생활 하던 곳이다. 바로 내가 살던 동네였다.<br> 바로 이곳에서 금메달 땄다는 것은 다른 일본선수들이 느끼는 기분과 <br>차원이 다를 것이다." <br><br>
추 선수는 부산에서의 기억들을 되살리며 미소를 지었다.<br> 그리고 한국어로 기자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했다.<br> (추 선수의 한국어 구사 능력은 일상 대화는 편하게 나눌 수 있었지만<br> 세밀한 심정 묘사에는 문제를 겪는 듯 했다. 그는 자주 "어떻게 말해야 하나"며<br> 일본어로 중얼거리곤 했다.)<br><br>
추 선수의 기대대로 그의 경기가 있던 날 부산 시민들은<br>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하지만 안동진 선수를 이기고 <br>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땐 야유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는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br>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고 한다.<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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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운했다. 하지만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br> 아마 한국 선수를 이기고 금메달 따서 그랬을 것이다."<br><br>
그렇다면 왜 추 선수는 한국을 떠나야만 했을까.<br> 이는 관중들이 박수만 보낼 수 없었던 주된 이유였을 것이다.<br>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시점인 지난 해 겨울,<br> 그는 이미 목표였던 국가대표가 돼 있었고(물론 2진이었지만), 작년 체전에서는 <br>1인자 조인철 선수를 눌렀기 때문에 국가대표 1진이 될 기회도 있었다. <br><br>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 선수는 자신에게 보다 맞는 유도를 <br>하고 싶었다고 한다. 20년 이상 해왔던 자율적인 훈련 방식을 택했던 것.<br>
- 일본에 왜 돌아가야만 했나?<br>
"한국 유도스타일보다 일본 스타일이 내게 더 맞는다고 생각했다.<br> (한국에서는) 감독님과 선수들이 모두 열심히 하지만 <br>모든 것을 짜여진 대로만 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은 조금 더 자율적이다.<br>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 나를 위해서 보다 자율적으로 훈련하고 싶었다."<br><br>
- 한국에선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가?<br>
"가장 컸던 것 중 하나가 국가대표 된 뒤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있어야만<br> 했다는 것이다. 다른 선수들은 그런 훈련방식을 좋아할 수도 <br>있지만 내겐 맞지 않았다."<br><br>
일본의 경우, 국가대표에 선발돼도 소속팀 선수들과 훈련을 받는다고<br> 한다. 그러다 가끔씩 대표 선수들을 소집해 기량을 점검한다거나 미팅을 갖는다고. <br><br>
혹시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추 선수가 한국에서 선수생활 할 땐<br> 그의 앞에는 항상 조인철 선수(은퇴, 용인대 강사)가 있었다.<br> 늘 2인자 역할만 해온 것.<br><br>
"조인철은 정말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2인자였던 것<br>에 대해 아쉬웠다든가 하는 점은 없었다."<br><br>
아니면 유도계 시스템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일단 유도 경기장 안팎에서<br> 만난 유도인들과 팬들은 하나같이 우리나라 유도계의 문제점에 <br>대해 지적했다.<br><br>
"추성훈이를 보면 일본에서 기본기 잘 배워 기술과 힘 모두 뛰어나다.<br> 유도계에서 유도대(용인대)를 나오지 않으면 국가대표 달기 힘들다.<br> 추성훈이도 피해자다. 어떻게 보면 성훈이가 자기 스타일에 맞게<br> 일본으로 잘 돌아간 것인지도 모른다."(부산 모 팀 감독)<br><br>
"비통할 따름이다. 우리 스포츠계는 지연과 학연 때문에 올바로 선수들<br>이 운동을 못하는 거 같다. 실력 있는 선수보다는 후배랍시고 실력<br> 떨어지는 선수를 뽑는다. 어떤 사람들은 추성훈이 조국 버렸다고 <br>말하는데 나는 오히려 조국이 추성훈을 버렸다고 생각한다."(유도 팬 하원옥씨)<br><br>
하지만 정작 추 선수는 이에 대해 함구했다. 아니 입을 열 수 없었을지<br>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그는 포기하고 도망간 것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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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걸림돌은 언론이었다. 추 선수는 '조국을 메쳤다'는 제목의 기<br><br>사를 1면에 다룬 모 스포츠 일간지를 보고 처음에는 좋아했다.<br><br> 그는 말은 잘 했지만 읽는 것엔 서툴렀기 때문에 내용을 몰랐던 때문이었다. <br><br>
그래서 그에게 '조국을 등지고 한국 선수를 이겼다'는 기사내용을 <br>읽어주자, 이내 들고 있던 신문을 무릎에 내려놓으며 당황하는 듯한 표정<br>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그가 입을 열었다. <br>
"(이런 기사가 나왔는지) 잘 몰랐다. 그냥 나를 유도선수로 봐줬으면 좋<br>겠다. 이런 기사를 보니까 (마음)아프긴 아프다. 서운하기도 하다다.<br> 그런 거 때문에(조국 배반하기 위해) 유도한 거 아닌데... 그래도<br>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이해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기사 안 냈으면 좋겠다.<br> 이렇게 하는 건 자제했으면 좋겠다. 관심 가져주는 것은 감사하지만..."<br><br>
이 대목에서 추 선수는 답답한지 "어떻게 말하지"를 되뇌며 일본어 통역<br>을 찾았다. 주위에서 통역원을 못 찾자 경기장 옆 연습장으로 기자들<br>과 함께 갔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와<br> <스플> 기자와의 인터뷰를 매듭지을 수밖에 없었다.<br><br>
추성훈 선수는 한민족의 핏줄을 가지고 한국의 대표가 되기 위해 한국에<br> 왔다. 하지만 돌아가야만 했다. 어떤 이들은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br>고 야유를 보냈고, 어떤 이들은 박수를 보냈다. 추 선수는 그에게 부<br>정적인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지만, 이를 <br>강조하는 그의 마음 한 구석엔 상처가 있는 듯 했다. <br><br>
"(금메달 땄을 때) 특별히 더 많이 기쁘다거나 만족감이 든 것은 아니<br>다. 보통만큼만 기쁘다고 생각했다. 내가 금메달 딴 것을 두고 나쁘<br>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솔직히 유도가 좋았<br>을 뿐이다."<br><br>
그의 말대로 그는 단지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아 일본으로 간 것일<br> 지도 모른다. 사인을 부탁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친절하게 사인을<br> 해주는 추 선수의 모습이 조금은 측은해 보였다. 4일 아침 9시, 경<br>기를 마친 유도대표팀과 한국을 떠나는 추 선수의 마음은 어떨까. <br>
"그동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어요. 일본에 돌아가면 일단 쉬어<br>야죠. 여행이나 갈까요. 음...그리고 난 조국을 배반하지 않았어요.<br> 아까 뭐라고 했죠? 그 신문에서..."
<br>- '조국을 메쳤다'요.<br><br>
"난 조국을 메치거나 그러지 않았어요."<br><br>
<스포츠조선>의 이상한 '추성훈 금메달' 보도<br><br>
'추성훈 선수 금메달 보도'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신문은 <스포츠조선><br>(이하 '조선')이다. 2일자 조선은 1면과 4면에 걸쳐 `추성훈 선수`<br>에 대해 가장 많은 지면과 사진을 할애했다. 또한 5개 스포츠신문 <br>중 유일하게 추성훈 선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소개<br>했다.<br>
1면에는 '조국을 메쳤다'는 제목 아래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슬픈" 추성<br>훈 선수의 운명적 스토리를 소개했고, 4면에는 '선수는 승부에서 이<br>기는 게 생명' 제하로 추성훈 선수의 결승전 소감과 한국 텃세에 좌<br>절해서 일본으로 귀화했다는 내용의 박스기사를 함께 실었다.<br><br>
그런데 조선에서는 다른 신문사에 실려 있는 추성훈 선수의 '말'을 찾아<br>볼 수가 없다. 조선은 '한국 선수로 활약하다가 일본대표로 출전한다<br>는 것이 어색했을텐데', '이번 대회에 대비해 훈련은 어떻게 했<br>나', '결승전에서 승리를 자신했나', '앞으로의 목표' 등 4개 질문을 던<br><br>졌다. 조선의 인터뷰 기사에서 볼 수 있는 '귀화'와 관련한 멘트<br>는 "부담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운동선수는 우선 승부에서 이기는 것<br>이 생명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답이 유일하다. <br><br>
"유도를 하기 위해 귀화했고 유도는 국적과 관계없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br>니다" "그래도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우승해 기분이 좋<br>습니다"(스포츠서울)<br>
"대한민국 구호가 나를 응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적은 상관없다.<br> 유도를 계속하고 싶었을 뿐이다" "유도가 좋아 선택한 길인만큼<br>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것이다" (일간스포츠)<br>
"나는 한국사람입니다. 귀화는 유도 때문에 했습니다. 유도에는 국적이 <br>없습니다" (스포츠투데이) <br><br>
모두 '조국을 메쳤다'는 조선의 기사 제목을 어색하게 만드는 말들이다.<br> 다른 신문들의 기사 제목 또한 조선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br>도 전 한국입니다'(스포츠서울), '유도가 좋았을 뿐'(일간스포<br>츠), '추성훈 "유도위해 귀화...난 한국인"(스포츠투데이)<br><br>
특히 <한겨레신문>을 보면, 신문 기사가 '사람을 보는 시각'에 어느 만<br>큼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한겨레 기사는 "추성훈은 1일 금메<br>달을 따낸 뒤 '열심히 응원해주신 동포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린다'는 <br>말을 잊지 않았다"로 시작, "그가 경기장을 나서며 던진 능숙한 한국<br>말은 우리들의 가슴을 깊숙이 찌른다"며 '나는 영원한 한국 사람입니<br>다'는 추성훈 선수의 말로 끝맺고 있다. <br><br>
조선이 왜 그렇게 추성훈 선수 보도에 많은 공을 들였는지 이해하기 힘들<br>다. '조국을 메쳤다'고 보기 힘들게 만드는 추성훈 선수의 말들은 <br>왜 쏙 빼버렸을까. 2일자 조선은 확실히 이상했다. 특히 아키야마의 <br>마음속에 '추성훈이란 이름 석자와 한국'이 살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br>들에게는 더욱. / 이정환 기자<br><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