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님들은 추석연휴에 고향에 다녀오시고 일가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나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셨겠죠?
저는 제 고향에 가지 못하고 대전에서 그냥 보냈습니다.
사실, 일가친척이 계신 경기도 의정부와 동두천을 가봐야 사람의 도리이겠는 데,
언제부턴가 저희 큰 댁에서 종교를 이유로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저희는 제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대전에서 그냥 저희끼리 보냅니다.
부산에서 사는 하나뿐인 제 동생네를 맞이하는 데, 건설관련회사와 종합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는 동생네가 저희보다 바쁜 일이 너무 많아요.
이번 추석에는 조촐하게 저희 식구끼리 보냈습니다.
사흘간의 연휴라 해도, 저는 지난 토요일(17일)과 어제(19일)에도 사무실에 출근했었어요.
제가 남들이 쉬는 날 까지도 출근해야 하는 게 별로 재미없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사실은 멀리서 대전에 오시는 분들이 다녀가실 수 있게 신경 쓴다는 면에서
큰 사건사고 없이 명절 연휴를 잘 보내는 게 보람 있는 일이죠.
저는 지난 금요일(16일) 퇴근시간이 지난 저녁에 문창동에 있는 문창시장에 갔었어요.
그날은 대형할인마트의 영업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재래시장 상인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게 하고자
우리 직원들이 재래시장을 이용하기로 한 날이었거든요.
저도 직원들과 함께 장보기를 하였습니다.
거금(?)을 주고 사과를 샀어요.
평소에는 주로 둔산동에 있는 할인마트를 이용하는 저이지만,
그래도 어릴 적에 어머님과 함께 갔던 5일장과 재래시장의 추억이 있고,
사람이 사는 멋과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서 시장이 좋아요.
언제 유성시장 5일장에도 가봐야겠는 데요.(ㅎㅎㅎ)
문창시장 장보기를 끝내고는 직원들과 같이 순대집에서 맛있는 순대에 쐬주를 곁들여
즐거움을 나눴어요.
그날 자가용을 가져온 직원들이 술에 약한(?) 모습 보이기 때문에,
저처럼 차(車)를 집에 두고 온 사람들이 두 몫을 먹어 주느라 바빴다죠. (하하하)
그날 밤에 집에 들어가니, 연휴 앞두고도 술 많이 먹고 다닌다며 잔소리가 심한 짝꿍이었어요.
그 다음날 토요일에 일어나 보니, 성묘를 가기로 했는 데 자동차 키가 없는 거여요.
사무실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그냥 집에 왔으니...
그래서, 점심 식사까지 하고는 비상용인 “카드 키”로 차 시동을 걸고 중촌동, 목동, 선화동,대흥동, 용두동, 오류동을 돌아서 살펴보며 사무실로 향했죠.
잠깐 들른 사무실 제 책상서랍에서 자동차 키를 찿고서, 성묘를 하기 위해 산내 천주교공동묘지에 갔어요.
그곳에는 제 선친(김요셉)께서 계시거든요.
"사람아 너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갈 것인가?"
"사람아 너는 먼지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
"사람이 천하를 다 얻을 지라도 제 영혼에 해를 입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
위 글은 우리 대전지역 신자들이 묻힌
천주교 산내 공원묘지에 있는 표지석에 있는 내용입니다.
너무 의미심장한 글이죠.
저는 제 선친께서 이곳에 계시기에 일년에 몇번은 가보죠.
자동차를 입구에 세워두고는 제 선친의 묘소를 찿아 기도드렸어요.
공동묘지라 특별히 벌초라고 할 것까진 없는 데, 그래도 혹시나 해서 낫을 준비해 갔는데,
낫 대신 손으로 잡초를 뜯어내어도 금방 할 수 있었어요.
워낙에 얼마 안 되는 묘지 면적이다 보니...
이 세상에 살았을 때 땅과 건물 같은 부동산에 큰 욕심 부리던 사람이나
제 아버님처럼 평생을 남의 집 셋방살이하다 돌아가신 분이나
죽으면 얼마 안 되는 공간에서 있게 되는 것인데... (쩝!)
그날은 저처럼 성묘 오신 분들이 엄청 많았어요.
여기저기에서 음식을 차리고 고인을 위한 기도를 드리던데,
돌아가신 분들의 영령을 위해 저도 기도서의 기도문은 물론, 화살기도도 많이 했어요.
제 아버님이 누워계신 좌측 옆에는 1989년 2월 중순에 제 선친보다 몇일 먼저 교통사고로같이 돌아가신 어느 부부의 묘가 있는 데,
언젠가 그전에 제 아버님 묘소 성묘 갔다가 그 부부의 아들을 보았었는데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그분들의 아들이 지금은 어디서 뭘 하면서 잘 살고 있을는지...?
지금은 20대 후반(28세? 29세?)이겠는 데...
저는 제 선친 묘 뿐 아니라 양쪽 옆에 계신 분들의 묘도 손봐드리고, 고인들을 위해 위령기도를 드렸어요.
천국에서라도 같은 형제자매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저희를 위해 주시면 좋겠죠.
저희가 그분들을 위해 기도 드리듯이요.
선친 묘소 성묘를 한 다음에는 산내 면허시험장 앞길로 들어서서 동구 장척동과 소호동을 지나 우리구 금동, 어남동, 정생동, 목달동, 무수동, 침산동을 지나면서 관내 순찰을 하였어요.
무수동은 제가 1주에 한번씩 짝지와 함께 “쇠비름과 싸리나무잎”을 땄던 바로 그 마을이죠.
이날은 그냥 지나만 갔어요.
성묘가 바빴으니까요.
대전동물원 앞을 지나 사정동에서 서구 복수동으로 간 다음에
계속 차를 몰아서 괴곡동에 있는 대전시 납골당인 “구봉산 영락원”으로 갔지요.
2년전에 불행한 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님이 그곳에 계시거든요.
입구부터 차가 많아서, 멀찌감치 차를 주차 시키고는 걸어서 납골당에 가서 어머님 납골함 앞에서 기도 드렸어요.
최근에 돌아가신 분들도 많던데...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한 분들의 사진을 보면서
정말로 사고 없이 천수(天壽)를 다하는 것도 큰 행복이겠다고 생각했죠.
저는 부모님 성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그날(토요일) 저녁에는 아녜스와 성당에서 특전미사를 참례했어요.
평소 못 보던 신자분들이 많았던 걸 보면, 고향인 대전을 찿아오신 신자 형제자매님들이
제법 많으셨나봐요.
오늘은 9월20일입니다.
이젠 9월도 하순에 접어 들었는데,
이번 추석명절에도 충남서북부인 천안, 아산, 예산, 홍성 일부지방에는 호우로 인한 비피해가 있었어요.
대전에도 어제 간간히 비가 내렸구요.
뜻하지 않은 비피해 입은 수재민들께서 잘 이겨내고 힘내셔야죠.
수확기인 요즘에 내리는 비는 농사에도 별 도움이 안 되는 거라는 데,
어서 화창하고 높푸른 가을날씨가 되면 좋겠어요.
울 님들 힘내시고, 이번 주에도 멋진 날 되게 파이팅하세요~!!!
오늘은 월요일 같은 화요일입니다.
아래에다 작년 추석에 썼던 글(1편)에서 간추려,
그전에 교도관시절에 만났던 어느 택시기사님과의 사연을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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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제가 도마동에서 남의 집 셋방살이 하며 대전교도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해 추석에도 울 아녜스와 어린 두 애들과 택시를 타고
(물론, 그땐 제가 자가용이 없었을 때였죠.)
아버님 묘소를 갔던 때였어요.
어린 애 둘 딸린 저희가 성묘하고자 택시를 잡으려도 어렵더군요.
귀찮아서 그냥 지나치시는 택시가 몇 대 있었다면...
한참을 기다린 끝에 어느 고마운 택시기사님이 차를 세우셔서 뒤 트렁크에
성묘음식을 싣고 기사님께 "산내 천주교 묘지로 가주세요."말씀드리니
깜짝 놀라시며,
자기 부모님도 거기 계시다며, 반갑다 시더라구요.
자기 부모님을 산내에 모시고도 택시영업하며 먹고살기 바빠 3년가까이
못가보고 죄송스러웠다며,
우리 형제님 가정 덕분에 자기도 간만에 성묘를 하게 됐다면서 기뻐하셨지요.
저희 식구들과 성묘 음식을 나누고 자신의 부모님 묘소를 돌보신 후,
저희가 성묘를 끝마치길 기다리셨다가
다시 태워서 시내에 까지 안전하게 운전해 주셨던 그분.
그런데, 한사코 택시요금을 안 받으시는 거였어요.
오히려 저희때문에 부모님 생각을 하고 성묘까지 하였다며 고마워 하셨죠.
그분은 대전지역 천주교신자 택시운전기사 형제들모임인 "운전기사 사도회"에 계셨어요.
저는 "교도사도회" 였으니,
제가 근무할 때에 한번 교도사도회와 운전기사 사도회 합동 모임이 있었는 데.
저를 고맙게 대해주셨던 그분을 만날 수는 없었죠.
그렇지만, 오래된 지금도 따스하게 느꼈던 인정과 그분의 열심히 운전하시던
모습은 뚜렷이 생각납니다.
그만 제가 지금은 그분의 성함과 본명을 잊고 말았으니... (쩝!)
하여간, 언제 어디서든 성가정의 모범 속에서 잘 지내실 것을 믿어요.
우리가 어디서 와서(출생해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던지 간에
생활을 하루하루 열심히 하는 게, 우리가 믿는 주님(불자님께는 부처님)의 뜻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