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관광명소탐방객 즉석 시낭송대회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
고두현 시 낭송대회
지정시 -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집 우 집 주
고두현 시인 토크쇼 - 10월 6일 오후 6시
고두현 시 낭송대회 - 10월 7일 오전 10시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 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헤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 고두현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 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지난 여름 푸른 상처
온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척이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집 우 집 주 / 고두현
천자문 처음 배울 때
아버지는 왜 그렇게 천천히 발음했을까
집 우宇
집 주宙
남해군 서면 정포리 우물마을
유자나무가 많은 그 마을에선
우물에서 유자향이 났고
꿀 치는 벌통에도 유자꽃이 붕붕 날아다녔다
먼 북방 땅까지 가는 동안
짊어지고 간 집과
따뜻한 남쪽까지 오는 동안
벗어 놓고 온 집
모시밭 한가운데 부려 놓고
흙 볏짚에 물을 주는 아버지
수건 벗어 먼 데 보며
하시던 말씀
한 그루만 있어도 자식 공부 다 마친다는
저 유자나무
대학나무 없어도 집만 잘 앉히면 된다고
네가 곧 집이라고
해 질 녘 밥때 넘길 적마다
장모음으로 일러 주던
옛 집터에 와 생각노니
왜 그때는 몰랐을까
내가 그토록 가닿고 싶었던
바다 건너 땅 끝에서
여태까지 가장
오래 바라본 곳이
바로 여기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