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동반 나들이
김상득
올해 여름은 장마기간도 길었지만, 유난히 더운 날이 많았다. 여름이 더운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그 어느 해보다 수은주를 밀어 올리며 한낮에는 찜통 더위로, 밤에는 열대야로 구워삶을 듯한 열기를 내뿜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발생시켜 온난화 현상으로 지구의 온도가 상승해서 그렇다지 않은가.
푹푹 찌는 가마솥 더위라며 견디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동안 조금은 편하게 살아왔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자원이 풍부하지 않는 나라에서 여태까지 물 쓰듯 전기를 아낌없이 펑펑 사용하던 습관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정부의 절전 정책으로 찌는 듯한 폭염에도 에어컨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으니, 이럴 때 엎친데 덮친격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 하여야 할까.
그렇지만, 국민들은 전력난의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정부의 절전 보조를 맞춰주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한여름 일에 지치고 더위와 싸워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시원한 곳을 찾아 휴가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아내도 내색은 없지만 폭염을 피해 하루쯤 나들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8월 초순,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으려니 핸드폰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상대방은 목소리만 들어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고향 선배 중 한 분이셨다. “나야 동생! 다름이 아니라 8월 15일 놀지, 그날 괴산 쌍곡으로 부부동반 야유회를 가기로 했는데 괜찮겠어.” 나는 스케줄을 봐야 한다며 달력을 보고 잠시 동안 망설였다. 그날은 동창 친구들과 저녁 모임 약속이 있는 날이 아니던가. 그래도 일단은 가겠다고 대답을 했다.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어 토요일 오후로 약속을 미뤘다.
퇴근해 아내에게 “동네 모임에서 15일 괴산 쌍곡으로 부부동반 야유회를 간다는데 갈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더니 가겠다는 대답이다.
15일 오전 10시까지 고향 선배네 집으로 모이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출발했다.
아내도 모처럼 나들이에 한껏 부풀어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올 여름에는 휴가 한 번 가지 못하고 넘어가나 하는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태껏 30여년을 넘게 살면서 아이들 뒷바라지와 남편을 위해 헌신해 온 아내였다. 그렇다고 하루쯤 마음놓고 집을 떠나 쉴 수 있는 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래 전 친정이라고 있었지만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외아들이던 처남마저 자신의 아내가 가출하자 술로 세월을 보내다 건강이 나빠져 갓 40의 나이에 어린 아들 둘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 했다. 그러니 아내의 속은 숯검댕이가 되지 않았겠는가.
아내는 나에게 시집와 3남매 낳아 키우며 모진 시집살이까지 겪어야 했다. 오랜 세월, 어려운 가사를 묵묵히 꾸려가며 아이들 뒷바라지와 남겨진 친정 조카들까지 챙겨야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볼 때 그 고달픔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
하루정도 나들이를 한다고 해서 얼마나 위안이 될까마는, 아내와 해로를 하면서 과연 이런 나들이를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드는 10월 중순쯤 휴일을 택해 청천 후영 뒷길 도로를 따라 화양동까지 드리이브를 즐길 때면 아내는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하루뿐인 야유회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는 식으로 아내는 기분이 꽤나 좋은 듯 보였다. 서둘러 고향 선배네 집에 도착을 하니 모두들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모처럼 부부동반으로 야유회를 가게 된 우리의 모임은 20여년 전 고향을 떠나 도시 생활하는 선후배간인 장남들만 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며 서로간의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면서 도타운 정을 나누기도 한다. 연말이나 여름이면 부부동반으로 고향에서 살았던 추억의 향수 깊은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일이 어쩌면 모임의 전부일 뿐이다.
오랫동안 모임을 갖다보니 여자분들은 예전 한동네에 살면서도 속속들이 다 알지 못했던 서로간의 가족사의 이야기 보따리를 솔솔 풀어놓으며, 즐거운 만남을 가져 왔다.
이렇듯 오랫동안 모임을 가져온 일행들은 두 대의 승용차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선배차와 내 승용차로 가기로 하고 승용차에 올라 탔다. 내차에는 동네 형수 두 분과 아내가 동승했으니, 나는 졸지에 사모님을 모시는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신세가 됐다.
야외 나들이에는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다 함께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동심 같은 마음의 기분이랄까. 유쾌한 나들이의 기분 좋은 출발이다. 승용차는 에어컨을 틀어 시원한 공간이 되었으며, 중년들이 좋아하는 조용한 트로트 음악이 흐르니 이보다 더 좋은 드라이브는 없었으리라. 휴가철인데도 도로는 그다지 막히지 않았다.
괴산 쌍곡은 내가 3년 동안 괴산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도로상황이나 걸리는 통행 시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거리낌 없이 시원스레 달렸다.
차창으로 스치는 산야의 푸른 나무들과 벌써 이삭이 올라오기 시작한 들녘의 벼를 보노라니 올해도 이미 풍년을 예견하는 풍요로움이 농민의 땀을 보상해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50여분 동안 달리는 시간이지만, 가는 내내 뒷자리의 동네 형수들은 도란 도란 가정사 이야기라든지, 아니면 살아온 세월의 추억어린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쌍곡에 도착했다. 승용차에서 내리니 정말 푹푹 찌는 가마솥 더위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미리 예약해 놓은 곳에 가져온 먹을거리들을 풀어 놓았다. 우리 일행은 쌍곡에서도 가장 물이 많아 어른 아이 모두가 물놀이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어서 금세 더위가 싹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나무가 우거져 그늘 진 계곡 옆에 원두막처럼 만들어진 마루가 우리 일행들이 하루 야유회를 하기로 한 곳이다. 주변에는 펜션과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기 위해 자리를 잡고 물놀이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이가 제일 어린 후배와 나는 가져온 각종 야채와 과일을 씻는 역할을 담당했다. 주 메뉴는 평소에 쉽게 먹어보지 못한 소고기 구이였다. 버너에 불을 붙이고 철판을 달구기 시작했다. 씻어온 각종 야채와 과일을 펼쳐 놓았다. 대충 먹은 아침 덕분에 굽는 고기냄새가 코를 자극하니 갑자기 시장끼가 느껴지며 입안에 군침이 감돌지 않는가.
‘지글 지글~’ 고기가 구워지자 말소리가 적어졌다. 서로 시장끼를 해결하느라 고기는 구워지기가 무섭게 불판에서 사라졌다. 잘 구어진 소고기를 야채에 싸 먹는 맛이라니, 남자들이 가끔 먹었던 삼겹살 맛에 비교하면 말 그대로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할 정도로 맛있지 않는가.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볼 때, 그래도 우리 일행은 천만 다행으로 최고의 명당자리를 차지했으니, 지나는 사람들조차도 부럽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런데다 맛있는 소고기에다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 신선이 부럽지 않다는 말을 해야할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물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다시는 겪어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어릴 적 물놀이 하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여자분들은 슬그머니 계곡으로 내려가더니 물에 발을 담그고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지 행복한 웃음꽃이 만발이다.
어쩌면 살면서 겪은 시집살이와 남편들 흉보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웠으리라. 그때는 어떻게 살았는지 꿈만 같다느니, 그래도 그 어려운 시집살이를 견뎌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일이 용하다느니 하면서 서로 위로하는 말로 일상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며 초록은 동색처럼.....
그에 반해 남자들은 한동네에서 눈만 뜨면 보고 자랐기 때문에 짓궂은 개구쟁이였던 선배나 후배들은 어느새 머리가 희끗 희끗한 초로의 중년이 된 지금, 시간을 거꾸로 돌려 그 시절 동심어린 추억의 이야기로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행복이 넘치는 하루였다고 해야 할까. 물이 있고 숲이 우거진 시원한 쌍곡의 풍경속에서 부부동반으로 맛있는 소고기와 소주로 포식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라 하지 않으리요.
동네 선후배들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가끔은 이런 나들이를 즐기며 아름다운 노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욕심을 가져본다.
첫댓글 "그래도 그 어려운 시집살이를 견뎌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일이 용하다느니 하면서 서로 위로하는 말로 일상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며 초록은 동색처럼..... 눈녹듯 시름이 녹으셨겠어요. ~ 사랑가득한 글 고맙습니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건강하게 잘 지내셨는지, 안부인사 전합니다. 불과 몇개월 전 고구마 심던 생각이 납니다. 그날도 무척 더웠는데....
푸른솔 문학인이라는 것밖에 달리 낯익지 않았는데도 손발을 척척 맞춰가며 고구마 심던 추억 잊혀지지 않는 답니다. 고구마도 풍년이 들었겠지요?
그리고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확의 계절 가을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_^~
" 아내는 나에게 시집와 3남매 낳아 키우며 모진 시집살이까지 겪어야 했다. 오랜 세월, 어려운 가사를 묵묵히 꾸려가며 아이들 뒷바라지와 남겨진 친정 조카들까지 챙겨야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볼 때 그 고달픔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
하루정도 나들이를 한다고 해서 얼마나 위안이 될까마는, 아내와 해로를 하면서 과연 이런 나들이를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
하루정도 나들이를 한다고 해서 얼마나 위안이 될까마는, 아내와 해로를 하면서 과연 이런 나들이를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드는 10월 중순쯤 휴일을 택해 청천 후영 뒷길 도로를 따라 화양동까지 드리이브를 즐길 때면 아내는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처럼 재밌게 가족 야유회를 즐기셨군요. 쌍곡의 시원한 바람이 음이온이 되어 청정한 공기를 마시며 고기를 구어 드신 그 진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아주좋은 기회를 틈타 알찬 휴가를 보내심을 축하드림니다. 부럽네요.ㅎㅎ
언제 오후반만 모여서 갈수 있도록 호르락 한번 홱 불어보시면 어떨까요?
'차창으로 스치는 산야의 푸른 나무들과 벌써 이삭이 올라오기 시작한 들녘의 벼를 보노라니
올해도 이미 풍년을 예견하는 풍요로움이 농민의 땀을 보상해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
좋은 분들과 좋은 곳으로 휴가를 다녀오셨군요 선생님 참 잘 하셨습니다.
가시는 차안에서 창밖을 보시고 사색하시는 선생님게선 역시 글쟁이이십니다.
더욱 건필하셔서 꿈도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감상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