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훈 洪錫勳(1921 ~ 1945)】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정훈처 부관"
1921년 7월 5일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 신양동(新陽洞)에서 태어났다. 일제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었다가 중국에서 탈출하여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서기,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정훈처 부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한미합작특수훈련(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s)에 참여하였다.
1944년경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에 재학하다가 학병으로 일본군에 징집되었다. 그해해 2월 16일 중국 쉬저우(徐州) 지구 일본군 치중대(輜重隊)에 배치되었다. 일제에 불만을 품고 한국광복군에 합류할 생각으로 1944년 7월 7일 밤 9시경 장준하(張俊河)·윤경빈(尹慶彬)·김영록(金永錄) 등과 의기투합하여 일본군 부대를 탈출하였으며, 1944년 8월경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였다.
1944년 무렵 한국광복군의 초모 공작과 일본군 내 학도병들의 탈출에 의한 한인 훈련병들이 증가하자, 체계적이고 집단적인 간부 양성과 교육 훈련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중국 측과의 협의 끝에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린취안(臨泉)에 소재한 중앙군관학교(中央軍官學校) 분교에 광복군 간부 양성, 중국군과의 연합 작전 기능 향상, 독립 후 국군 기간요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광복군간부훈련반(韓國光復軍幹部訓練班)을 설치하였다. 1944년 10월 22일 한국광복군간부훈련반 제1기로 입교하여 김우전(金祐鐘)·김용민(金容旻)·윤영무(尹永茂) 등과 함께 훈련을 수료하였다.
1944년 11월 한국광복군간부훈련반을 수료한 동료들과 함께 린취안을 떠나 6,000리를 거쳐, 1945년 1월 30일 신송식(申松植) 교관의 인도로 충칭에 도착하였다. 이때 각 신문에 대서특필 될 정도로 크게 환영받았다. 박영록(朴永錄)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에 배치되었다.
1945년 2월 조성철(趙誠轍)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서기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정훈처 부관으로 근무하면서 대일 선전 방송을 통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행태에 대한 폭로와 한인의 독립 의지를 내외에 선전하였다. 1945년 6월 조선민족혁명당 기관지 『앞길』 제42호에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문화적 압박 정형」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이래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한국인이 어떠한 문화적 억압을 받았는지 고발하였다.
1945년 6월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의 한국광복군 제2지대로 배치되어, 미국의 한미합작특수훈련(OSS) 국내진공작전 계획에 참여하였다. 한미합작특수훈련 제2진으로 선발되어 전 훈련과정을 수료한 후, 한국 후방의 특수공작 임무를 맡은 공작조(工作組)에 편성되었다. 한국 내 정진군(挺進軍)으로 대기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