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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지애] 01
#1. 다방 앞
지방도시의 한산한 거리.
인적이 거의 없고 과자봉지만 바람에 날린다.
인철의 낡은 중고 자동차가 끼익 선다.
차문이 열리고 검은 선그라스에 싸구려 양복을 나름대로 한껏 빼입었지만
한눈에도 불량스러워 보이는 인철이 차에서 내린다.
인철, 선그라스 속에서 눈을 돌려 사방을 예리하게 둘러보고 다방의 출입문을 노려보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운의 돌풍이 인철을 날려버릴 듯 불어 닥친다.
폼 잡고 있던 인철, 당황하여 옷가지와 선그라스를 부여잡으며 하늘을 쳐다보는데
먹구름이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어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번개가 인철의 눈앞으로 내리꽂히듯 떨어지며 하늘이 두 쪽 나는 것 같은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다.
인철 :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헉!
뒤이어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자 인철, 폼이고 뭐고 없이 서둘러 차로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급하게 잡아당기는데
손잡이만 쑥 빠져버린다.
인철 : 에이, 씨…
인철,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들고 열쇠구멍을 찾아 더듬거리다가 안되겠는지 다방 쪽으로 뛰어간다.
#2. 다방 안
전형적인 시골 다방. 문이 거칠게 열린다.
다방 안에서 바깥 날씨를 보며 웅성거리던 종업원들, 놀라 돌아본다.
종업원 : 어서 오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인철, 다방 안을 싸늘하게 둘러보고 자리를 잡고 앉아 계속 주변을 살벌한 눈빛으로 살핀다.
초미니스커트의 아가씨가 엉덩이를 흔들며 다가와 물잔을 내려놓는다.
종업원 : 뭐 드릴까요?
인철 : 커피.
이때 번개가 번쩍 하더니 전기가 나가버리고 이어 물잔이 덜덜 떨릴 만큼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린다.
다방 안에 있던 사람들, 놀란 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본다.
소리 : 웬 정전이야? 옆집도 나갔나 확인 해봐라.
소리 : 날씨가 왜 이래?
소리 : 겨울에 미쳤나?
소리 : 전화는 돼?
이때 배달 나갔던 아가씨 한 명이 머리를 산발을 해갖고 들어와 보온병을 내려놓고
머리와 옷에 묻은 물방울도 털어내고 카운터에서 계산도 하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자 궁시렁댄다.
아가씨 : 어으, 추워. 겨울에 웬 태풍이야? 치마 뒤집어져서 쪽팔려 죽는 줄 알았잖아.
그 변태 같은 자식 갈 때마다 더듬어. 짠돌이 같은 놈. 티켓을 끊던가.
인철, 아가씨를 보자 눈을 번뜩이더니 벌떡 일어선다.
인철 : 야!
아가씨 : (돌아보다가 흠칫 놀란다)
인철 : 오랜만이다?
아가씨 : (비명) 어머! 나 어떡해?
인철 : 얘기 좀 하자.
아가씨, 잠깐 망설이다가 밖으로 내뺀다.
인철 : 야!
인철, 급한 마음에 앉아 있던 테이블 위를 붕 날아 넘고 다른 테이블과 의자 위도 마구 건너 뛰어 입구쪽으로 돌진하다가
마지막 순간 테이블에 발이 걸려 허공을 날아 출입문 앞에 철퍼덕 고꾸라진다.
다방 안에 있던 사람들, 인철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 비명을 지르다가 인철이가 바닥에 엎어지자 경악한다.
잠시 정신을 못 차리고 엎어져 있던 인철, 너무 아프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벌떡 일어나 쫓아나가려는데
어느새 덩치 두 명이 인철의 앞을 가로막는다.
인철 : 니들 뭐야?
#3. 창고
덩치들에 밀려 지저분한 창고 구석에 몰려선 인철.
덩치, 느닷없이 인철의 배를 가격한다.
인철, 순간적으로 허리가 푹 꺽이고 숨을 못 쉴 만큼 충격을 받지만 얼른 손을 뻗어 벽을 짚고 자세를 가다듬으며
다른 팔을 뻗어 덩치의 다음 동작을 제지하려는 시늉을 한다.
인철 : 윽! 잠깐! 잠깐! 으…으…
덩치 : 잠깐, 뭐?
인철 : 명치.. 급소에 맞아…으…
덩치, 인철의 뒤통수를 뻑 갈긴다.
인철,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너무나 쪽 팔리다.
인철 : 아! (머리를 어루만지며) 아, 정말.
덩치 : 정말, 뭐? (다시 때릴 듯이 손을 치켜 든다)
인철 : 스톱! 알았어. 알았어. 그냥 가면 될 거 아니야?
덩치 : (인철의 뒤통수를 기분 나쁘게 딱딱 때리며) 정 데려가고 싶으면 삼천만원 갖고 와. 알았어?
인철 : (강한 부정) 나는 데려가려는 게 아니라 내 돈만 받으면,
하는데 덩치, 다시 갈긴다.
인철 : 윽!
덩치 : 두 번 다시 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마라, 응? 내 눈에 다시 띄면 그땐 정말 죽는다.
덩치들, 돌아서서 가는데.
인철 : (몹시 아파하며) 야!
덩치들, 돌아본다.
인철 : 한 가지만 부탁하자.
덩치 : …
인철 : 그 기집애한테 이 말만 전해주라.
덩치들 : …
인철 : (비장하게) 진정으로 사랑했었노라고… 하지만 계산은 계산이라고…
덩치들, 기가 막혀하며 사라진다.
배를 부여잡고 아파하던 인철, 덩치들이 사라지자 갑자기 멀쩡하게 허리를 펴고 옷을 툭툭 털더니
뒷주머니에서 빗을 꺼내 머리를 빗어 넘긴다.
인철 : 아, 머리 다 망가졌네.
인철, 머리를 능숙하게 빗어 넘기고 다시 뒷주머니에 빗을 푹 꽂고
구두에 묻은 먼지도 바지에 쓱쓱 문지르며 창고를 빠져나가려다가
문득 문 밖에 덩치들이 있나 없나 확인해보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나간다.
#4. 지방도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초저녁, 한산한 국도를 달리는 인철의 차.
차창 밖으로 언뜻 언뜻 스치는 풍경이 심상치 않다.
인철, 운전을 하며 라디오 뉴스를 무심코 듣고 있다.
소리 : 오늘 낮 중부지방을 강타한 돌풍에 의한 피해규모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조차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돌풍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충청남북도 지방 곳곳에서는
화훼용 유리온실과 비닐하우스, 축사 등이 무너지고 군부대 막사의 지붕이 날아가는가 하면
일부 도로에서는 산사태까지 일어나 한때 차량 운행이 통제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다만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관측된 이번 돌풍에 대해 기상청에서는
학계와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한다는 방침입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인철, 채널을 돌리면 음악이 흘러나온다.
인철, 무심코 창 밖을 내다보는데 차창 밖으로 뿌리 채 뽑힌 아름드리 나무가 보이더니
조금 지나 뒤집어진 자동차가 보이고 조금 더 가면
길 아래 지붕이 날아간 농가주택 안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 사람들이 뻥 뚫린 천장을 통해 들여다보인다.
인철, 눈이 점점 휘둥그레진다. 비로소 자신이 방금 무심코 들은 방송뉴스의 현장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철,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지붕이 날아간 집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차 앞에 흰 그림자가 확 뛰어든다.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는 인철.
인철, 핸들을 꽉 쥔 채 눈을 꼭 감고 있다가 눈을 살며시 뜨는데
헤드라이트 불빛을 환하게 받고 선 이상한 옷차림의 여인, 넋 나간 얼굴로 잠시 인철을 빤히 보다가 차 앞에 푹 쓰러진다.
경악하는 인철의 얼굴.
자막 : 제 1부
#5. 남부여 왕궁
자막 : 의자왕 재위 이십년 (서기 660년), 남부여의 서울 사비성
#6. 왕궁 복도
정교하게 조각되고 고급스럽게 칠이 되어 있는 작은 자개 상자가
비단 받침 위에 올려져 시녀의 손에 의해 옮겨지고 있다.
상자 안에는 대단히 귀한 물건이라도 들어 있는 듯 물건을 옮기는 시녀의 발걸음이 사뭇 조심스럽다.
#7. 공주의 처소
한 켠에 놓인 탁자에는 음식과 과일이 차려져 있고
주를 위시한 공주들과 후궁들, 고관의 딸들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앉아
공주에게 바쳐지는 진귀한 선물들을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공주는 시큰둥하다.
시녀1 : 월주에서 공주님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온 비단입니다.
함에서 색색의 비단이 꺼내져 펼쳐진다.
여인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소리 : 어머! 예쁘다.
소리 : 색이 어쩜 저렇게 고와?
시녀1 : (다음 물품을 받아들고 공주 앞에 내밀며) 유구에서는 산호와 별갑으로 만든 머리장식을 보내왔습니다.
다시 작은 탄성.
이때 문이 열리며 자개상자가 들어온다.
방 안에 있던 일동, 상자로 눈길을 돌린다.
시녀, 공주 앞에 상자를 바친다.
시녀 : 공주님. 방금 왜국에서 도착한 사신 편에 풍왕자님께서 보내오신 선물입니다.
공주, 그제야 눈을 반짝이며 반색을 한다.
공주 : 풍오라버니께서?
공주, 시녀의 손에서 자개 상자를 받아든다.
방 안에 있던 모든 여인들, 상자 안에 과연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공주, 천천히 자개 상자 뚜껑을 열면 안에서 휘황한 광채가 쏟아져 나온다.
공주, 눈이 휘둥그레진다.
다른 여인들, 궁금증을 못이겨 고개를 쭉 빼 상자 안을 들여다보려 애쓴다.
공주, 상자 안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야광주(진주)로 만든 목걸이를 꺼낸다.
여인들, 입이 떡 벌어진다.
소리 : (작게) 야광주잖아?
소리 : 저렇게 귀한 물건을…
소리 : 공주님, 정말 좋으시겠어요.
소리 : 풍오라버니가 주만 예뻐하시는 거 같애.
소리 : 주는 좋겠다.
여인들, 공주의 주변에 모여들어 한마디씩 하며 한번씩 만져본다.
공주, 입가에 미소를 띄며 자기 손으로 목걸이를 목에 채운다. 공주의 얼굴까지 환해진다.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온갖 금은보화로 호화스럽게 치장을 한 금화가 시녀들을 거느리고 들어온다.
일동, 금화를 보자 말을 멈추고 금화의 눈치를 살핀다.
공주, 얼굴이 굳는다.
금화, 건방진 시선으로 방안을 훑어보다가 공주의 목걸이가 눈에 콱 박힌다.
금화, 천천히 공주 앞으로 다가온다.
금화 : (목걸이와 공주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오늘이 주공주의 생일이라면서요?
공주 : 그래서요?
금화 : 나한테도 미리 말해주셨으면 신경을 좀 쓰는 건데. (돌아보지도 않고 뒤에 있는 시녀에게) 갖고 와라.
금화의 시녀, 작은 함을 갖고 와 금화에게 건낸다.
금화 : 부끄럽습니다. 상아로 만든 빗입니다. 급하게 준비해서 보잘 것 없지만 그냥 내 마음이라 생각하세요.
금화, 공주에게 함을 건네며 공주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유심히 살핀다.
공주, 마지못해 함을 받아 뚜껑을 열어 보지 않고 한 옆에 내려놓는다.
금화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다.
여인들, 긴장한다.
금화 : 그럼, 난 바빠서 이만.
공주 : 그러세요.
금화 : (노골적으로 자기를 홀대하는 공주에게 기분이 점점 상하지만) 귀한 목걸이를 하셨군요. (시녀에게) 가자.
금화, 홱 돌아서 나간다.
금화 : (나가며 싸늘하게 공주 쪽을 흘긴다. 들릴 듯 말 듯하게) 건방진 년!
금화가 나가자 방안에 있던 여인들, 다시 웅성웅성 거린다.
공주 : (밝게) 자, 다과나 드십시다.
여인1 : (걱정스럽게) 금화를 그렇게 막 대하면 어떡합니까? 나중에 무슨 화를 당하시려구요?
여인2 : 대왕의 총애를 받아서 요즘 무서운 게 없다던데.
여인3 : 아까 보니까 공주님 목걸이를 탐내는 거 같던데요?
여인4 : 조심해라. 맘에 드는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는다더라.
공주, 목걸이를 만지작거린다.
#8. 공주의 침실 (밤)
등잔불이 공주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시녀 한 명이 잠옷 차림으로 앉아 있는 공주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다.
공주의 목에 걸려 있는 야광주가 등잔불을 받아 반짝 빛난다.
시녀 : 밤이 되니까 더 빛이 나는 것 같아요.
공주 : 그래?
시녀 : 이런 진주를 갖고 계시면 영원히 늙지 않는대요. 그치만 인어의 눈물로 만들어진 거기 때문에
갖고 있는 사람이 눈물도 많아진대요.
공주 : (픽 웃는다) 별 걸 다 아는구나.
시녀 : (신나서) 그리구요, 보름달 밤에 용들이 싸우다가 하늘에서 떨어뜨린 거라서
그걸 받는 사람의 운명이 바뀐대나 어쩐대나.
이때 멀리서 늑대가 길게 울부짖는다.
공주와 시녀, 창쪽을 돌아본다.
시녀, 괜히 오싹하다.
시녀 : 참, 공주님, 얼마 전에 왕궁 안에 흰 여우가 들어왔답니다.
공주 : 여우가?
시녀 : 궁 안을 돌아다니다가 좌평 어른의 책상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갔대요.
공주 : ….
시녀 : 그것 뿐만이 아니구요, 태자궁에서는 암탉이 글쎄… (민망해하며) 아유, 이런 말씀을 공주님한테 드려도 되나?
암탉이요, 글쎄, 참새하고 교미를 했다잖습니까. (공주의 눈치를 보다가) 게다가 샘물은 피처럼 붉은 빛을 띠었다고 하고요,
검은 구름이 용처럼 서로 싸웠답니다. 그리고 귀신이 나타나서 백제가 망할 거라고, (흠칫 말을 끊는다)
공주 : 네 눈으로 보았느냐?
시녀 : 아뇨, 그건 아니지만…
공주 : 그런 것들은 다 혹세무민하는 말들이다. 그런 말을 퍼뜨려서 이로운 자가 누구겠느냐?
시녀 : (잠시 생각하다가) 그럼, 공주님께선 그런 일들이 다 신라의 농간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공주 : 김춘추나 김유신이나, 원래부터 반간계에 능한 자들이다. 김유신이란 자가 자기 누이동생을
어떻게 김춘추에게 시집 보냈는지 너도 소문을 들었을 거 아니냐. 쓸데없는 얘기 퍼뜨리지 말고 입조심해라.
공주, 침상에 눕는다.
공주 : 물러가라.
시녀 : 예.
시녀, 등잔불을 끄고 밖으로 나간다.
차츰 어둠이 눈에 익으면 창을 통해 달빛이 방으로 들어온다.
공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창에 비친 달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검은 그림자가 창 앞을 휙 지나간다.
공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바깥의 동정에 귀를 기울인다.
나뭇잎 밟는 소리가 들린다.
공주, 소리 없이 침상에서 내려와 칼을 찾아들고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공주 : (낮지만 단호한 소리로) 누구냐!
이때 검은 그림자가 저만치서 담을 넘는 것을 발견한 공주, 앞뒤 가리지 않고 그림자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공주 : 서라!
공주, 그림자를 향해 몸을 날린다.
#9. 왕궁 안 (밤)
그림자(유석)와 공주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담을 뛰어넘고, 지붕 위로 달리는 뛰어난 무공의 그림자.
하지만 공주도 그림자 못지않은 무공으로 그림자의 뒤를 쫓는데
그림자, 높은 담장을 넘어 궁 밖으로 사라진다.
공주, 담장 위에 뛰어올라 주변을 살피는데 저만치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공주, 날카롭게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다가 담장 위를 달려 병사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는 곳까지 달려가
그곳에 묶여 있는 말을 발견하고 공중을 날아 말 등에 올라탄다.
병사들, 깜짝 놀란다.
공주 : 문을 열어라.
비장 : 아니, 공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공주 :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태세를 하며 다급하게) 빨리 문을 열라니까!
비장 : 성문을 열어라.
영문을 모르는 병사들, 얼떨결에 문을 열면
공주, 쏜살같이 밖으로 말을 달려 나간다.
비장 : 빨리 군호를 울려라.
병사 한 명, 목에 메고 있던 나발을 힘껏 불어댄다.
밤하늘에 나발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고 비장(중간급 장교), 나머지 병사들을 거느리고 허겁지겁 말에 올라 공주를 뒤쫓는다.
#10. 성문 (밤)
사비성의 성문. 유석이 탄 말이 거칠게 질주해와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을 무시하고 밖으로 달려 나간다.
성문을 지키던 군사들, 놀라 사방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가 다시 모이며 무슨 일인가 하여 유석의 뒷모습을 보는데
다시 안 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자 돌아보다가
자신들을 밟을 듯이 달려오는 공주의 말을 보고 기겁을 하고 다시 몸을 날려 피한다.
#11. 사비성 밖 (밤)
급하게 말을 몰아 언덕에 오르는 공주, 사방을 둘러보다가
언덕 아랫길로 달려가는 유석을 발견하고 지름길로 앞질러 내려간다.
#12. 산길 (밤)
유석, 산모퉁이를 돌아드는데 공주, 산비탈로 말을 몰아 내려와 유석의 앞길을 막아선다.
유석의 말, 놀라 앞발을 들고 선다.
그 바람에 유석, 말에서 떨어질 뻔 하고
공주, 그 틈에 잽싸게 칼을 뽑아들고 다짜고짜 유석을 공격한다.
급히 칼을 뽑아들고 공주의 공격을 막아내던 유석, 뒤늦게 자신을 추격해 온 사람이 묘령의 여인이라는 것을 알고 놀란다.
점차 공주를 밀어붙이는 유석.
유석의 힘에 밀려 뒷걸음질치는 공주.
유석이 마지막 공격을 하려는 순간 달빛에 공주의 얼굴이 드러난다.
유석,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리는데
이때 뒤쪽에서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유석, 흠칫 놀라 돌아보는 사이 공주의 칼이 유석을 찌른다.
유석 : 흑!
공주, 유석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공주 : 정체를 밝혀라.
유석, 순간적으로 공주의 칼을 쳐내고 거칠게 공주를 몰아붙여 틈이 생기자 말머리를 돌려 다시 도망친다.
공주, 온 힘을 다해 다시 유석을 쫓는다.
#13. 유곽 거리 (밤)
홍등이 켜 있는 유곽들이 늘어선 거리.
인적 없는 거리에는 바람만이 지나가고 유곽 앞에는 말들이 묶여 있다.
공주, 거리 입구에서 급하게 말을 세운다. 그림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공주, 날카롭게 거리를 둘러본다.
#14. 유곽의 방 (밤)
윤기 흐르는 긴 머리카락을 어깨 위로 부드럽게 흘려 내리고 앞가슴은 풀어헤쳐
흐트러진 모습으로 술병을 낀 채 창가 침대 위에 엎드려 별을 보고 있는 아리.
그런 아리의 발치에 앉아 비파를 뜯고 있는 여랑.
아리 : (비파 소리에 맞춰 시를 읊는다) 슬프다. 사나이의 삶이 때를 얻지 못하여 그림자를 돌아보며 홀로 있음이 부끄럽구나.
언제나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예로 돌아가며 높은 이상과 행위가 알려지지 않을까 두려워했네.
재주는 뛰어나나 세상이 어지러우니 장차 죽을 때까지 오래도록 근심하리라. 비록 몸이 있으나 드러내지 못하고
능력이 있으되 펼치지 못하네. 곤궁함과 현달함은 구별하기 어렵고 선악은 나누기 어려워라.
시대는 어둡고 어지러우니 장차 몸을 굽혀 펴지 않으리라.
여랑, 연주를 멈추고 아리를 보면
슬픈 비파 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슬픈 시 때문인지 아리의 차가운 눈엔 눈물이 맺혀 있다.
아리 : 옛날에 사마천이 굴원과 가의를 생각하며 지은 시다. 가야에서 왔다고 했지?
여랑 : 예.
아리 : 가족은?
여랑 : 모두 뿔뿔이 흩어져 생사를 알지 못합니다.
아리 : 너도 세상이 우습겠구나.
두 사람 잠시 침묵하다가 아리, 문득 술병을 들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단숨에 마셔버리고
술병을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 입는다.
여랑 : 가시게요?
아리: 가 봐야 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가 봐야지.
아리, 금화 몇 개를 홱 던지고 미련 없이 나간다.
여랑, 아리가 나가자 얼굴의 미소를 거두고 바닥에 떨어진 금화를 잠시 보다가 마지못해 집어 드는데
창 밖에 인기척이 느껴지자 긴장한 얼굴로 돌아본다.
#15. 유곽 입구 (밤)
공주, 말에서 내려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손으로 찍어보고 유곽 문을 노려본다.
#16. 유곽 안 (밤)
취객과 여인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로 왁자지껄한 유곽.
쟁반 가득 음식그릇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던 유곽의 종업원, 아리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자 놀라 옆으로 비켜선다.
아리, 밖으로 나가려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속옷 바람에 칼을 들고 얼굴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공주가 안으로 들어와 입구를 막고 선 채 유곽 안을 날카롭게 둘러본다.
느닷없는 속옷 여인의 출현에 유곽 안이 조용해진다.
아리,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공주를 아래 위로 스윽 훑어본다.
공주 : (아리를 무시하고 유곽 안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짐짓 위엄있게) 방금 이리 들어온 자를 찾고 있다.
그 자를 알려주는 자에게 큰 상금을 내리겠다.
아리 : 좀 지나갑시다.
공주 : (쏘아보며) 넌 누구냐?
아리 : (피식) 나는 귀실아리라 하오만 그대는 뉘신지?
공주 : 난 이 나라의 공주, 부여주다.
전혀 뜻밖의 대답에 잠시 황당해하던 아리와 유곽 안에 있던 사람들, 피식 피식 실소를 시작하다가
미친 듯이 웃어젖히며 제각각 떠들어댄다.
소리 : 이야, 여기 계집들보다 나은데?
소리 : 오늘은 공주랑 놀아봐?
소리 : 어이, 아가씨! 화끈한데?
공주, 부들부들 떠는데
웃음이 쉽사리 그치질 않자 아리, 손을 들어 사람들의 웃음을 자제시킨다.
아리 :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게) 공주님께서 야심한 밤에 속곳 차림으로 유곽엔 어쩐 일이십니까?
공주, 아리의 말에 자신의 차림새를 돌아보고 속으로는 흠칫 놀라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아리를 꾸짖는다.
공주 : 네 성이 귀실이라면 부친께선 혹시 서부은솔이시던 복신장군 아니시냐?
아리, 얼굴이 굳는다.
공주 : 놀라는 걸 보니 내 말이 맞는 모양이구나.
아리 : …
공주 : 부친은 죽음을 무릅쓰고 대왕께 충언으로 직간하는 충신이신데, 아들이란 자는 술과 여자에 빠져
이런 유곽이나 들락거린단 말이냐? 다음부턴 네 성을 함부로 말하지 마라. 아비와 조상의 이름에 먹칠을 할까 두렵다.
유곽 안에 긴장이 감돌고 사람들, 아리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는데.
아리 : (공주를 빤히 보다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으하하하하. (비웃으며) 명심하겠습니다, 공주님.
그나저나 공주께서 백성들의 조롱을 당할까 두렵습니다. 속이 훤히 비치지 않습니까? 제 옷이라도 좀 걸치시지요.
사람들, 비로소 아리가 농담을 하는 줄 알고 다시 웃음을 터뜨린다.
아리, 겉옷을 벗어 공주에게 걸쳐주려는데.
공주 : (매몰차게 치우며 아리의 귀뺨을 갈긴다) 이것들이!
아리, 고개가 홱 돌아간다.
이때, 문이 활짝 열리며 무장을 한 병사들이 들이닥쳐 공주를 에워싼다.
비장 : 공주님!
아까의 그 비장이 공주의 어깨에 망토를 걸쳐주고 호위한다.
유곽 안에 있던 사람들,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누군가 바닥에 엎드리자 일제히 따라 엎드리고 아리도 할 수 없이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갖춘다.
공주, 싸늘한 눈으로 머리를 숙인 아리를 노려보며 뒤에 서 있는 비장에게.
공주 : 이 유곽 안에 상처 입은 자가 있다. 철저히 수색해서 반드시 잡아내라.
군사들, 몇 명씩 조를 이뤄 유곽 안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아리를 비롯한 유곽 안 사람들, 공주를 희롱한 죄를 묻지나 않을까하고 서로 눈치를 보며 불안해 하는데
병사들, 아래위층을 모두 뒤져 방마다 문을 열어보고, 상처 입은 사람이 있는지 일일이 살피고 돌아온다.
비장 : 안에는 없습니다. 공주님께선 먼저 궁으로 돌아가시지요. 저희가 주변을 더 수색해 보겠습니다.
공주 : (실망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상처가 깊어 멀리는 못 갔을 거다.
공주, 못내 아쉬워하며 돌아선다.
아리, 공주가 돌아서자 고개를 들어 공주를 보는데
공주, 밖으로 나가려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고개를 홱 돌려 뒤를 돌아본다.
아리, 공주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눈을 내리깐다.
공주 : 아리라고 했던가? 기억해 두겠다.
공주, 찬바람을 일으키며 병사들을 몰고 밖으로 나간다.
아리, 다시 고개를 들어 나가는 공주를 본다.
#17. 유곽의 방 (밤)
아리가 있던 방.
여랑, 살짝 열린 문틈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공주가 군사들을 이끌고 떠나고 뒤이어 아리가 나와 말에 올라탄다.
아리, 떠나려다 말고 느닷없이 이층을 올려다본다.
여랑, 흠칫 놀라 얼른 창에서 떨어진다.
아리, 잠시 올려다보다가 떠난다.
여랑, 모두 떠난 것을 확인하자 급히 바닥에 깔려 있던 호피를 걷어내고 마루바닥을 들어내면
한 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공간에 유석이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누워 있다.
#18. 유석의 꿈 - 불타는 대야성
군사들의 함성소리, 비명소리, 말발굽 소리와 병장기 소리가 요란하다.
#19. 대야성주 김품석의 방
방문이 거칠게 열리고 갑옷 차림에 피투성이가 된 품석이 칼을 들고 안으로 들어온다.
품석의 아내(고타소랑)는 어린 아이들을 품안에 끌어안고 공포에 질린 얼굴로 덜덜 떨고 있고,
아들 유석(7세)은 그 옆에서 엄마와 동생들을 지키려는 듯 서 있다.
품석, 부인과 아이들을 슬픈 눈으로 돌아본다.
밖에서는 요란한 함성과 비명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온다.
품석 : … 미안하오.
소랑, 품석의 말에 공포에서 벗어나 이를 악물고 치마로 아이들을 덮어 더욱 힘주어 끌어안으며 눈을 질끈 감는다.
품석, 칼을 뽑으려다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유석과 눈이 마주친다.
순간적으로 갈등하던 품석, 유석의 멱살을 잡아 다락 안으로 집어던진다.
유석 : 아버지!
품석, 비장한 얼굴로 다락문을 확 닫아버린다.
#20. 다락 안
거칠게 닫힌 반탄력으로 살짝 열린 문틈으로 방안의 상황이 언뜻언뜻 보이는 다락.
캄캄한 다락 구석에 처박힌 채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눈물만 뚝뚝 흘리는 유석.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것처럼 지척에서 들려오는 말발굽소리.
품석,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지 부인과 자식들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자신도 그들의 뒤를 따라 자결을 한다.
그 순간 백제군 기병대의 말발굽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이미 처참하게 죽어있는 품석과 그의 가족들을 짓밟으며 다시 난도질한다.
그 장면을 문틈으로 보며 오열이 새어나올까 봐 입을 가리고 분노의 눈물을 흘리는 유석.
문틈 밖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소리들이 유석의 심장 뛰는 소리와 숨소리에 묻힌다.
복신 : (소리) (낮고 싸늘하게) 이 자가 대야성주 김품석인가?
부하 : (소리) 예.
복신 : (잠시 시체들을 내려다보다가, 차갑게) 년놈들의 시체를 끌어내라.
복신, 말머리를 돌려 방밖으로 나간다.
그 순간 복신의 얼굴이 유석의 눈에 각인된다.
#21. 유곽의 방
유석, 웃옷을 벗은 채 잠을 자고 있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헛소리를 한다.
유석 : 아버지! 아버지!
유석, 소스라쳐 놀라 벌떡 일어나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대야에 물을 떠오던 여랑, 급히 다가온다.
여랑 : 또 같은 꿈을 꾸셨군요.
유석 :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여랑 : 이제 원수를 갚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유석 : …떠나야겠소.
여랑 : 아직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게다가 사방에 백제 병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으니
부상을 입은 몸으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유석 : 당신까지 위험에 빠뜨릴 순 없소.
여랑 :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는 장군이 아니었으면 벌써 여러 번 죽은 목숨입니다.
유석, 여랑을 잠시 안쓰러운 눈으로 보다가 부드럽게 여랑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는데
여랑, 그런 유석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싸 잡는다.
유석, 손을 슬그머니 빼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상처에 통증이 느껴지자 배를 움켜쥔다.
배에 감긴 붕대 밖으로 피가 배어나온다.
여랑, 유석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한다.
#22. 공주의 처소
공주, 두루마리로 된 책을 펼쳐놓고 공부를 하고 있다.
공주의 앞에는 도침이 앉아 있다.
공주, 딴 생각을 하느라 도침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도침 : 그 때에 중국 대륙을 평정한 북위가 여세를 몰아 보기군 십만명으로 산동반도의 백제 영지와
당시 우리 백제의 제후국이었던 남제를 공격해 왔습니다. 이에 동성대왕께서는 감나루 백제군을 본군으로 하고
나라백제와 외백제의 지원을 받아 직접 출병하여 두 번에 걸쳐 위나라 군사를 대파함으로써
우리 백제의 위용을 천하게 과시하였던 것입니다. (공주를 물끄러미 보다가) 공주님!
공주 : …
도침 : 공주님!
공주 : (깜짝) 예?
도침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공주 : 생각은요, 어디까지 했죠?
도침 : (잠시 보다가 다시 책을 본다) 당시 우리 백제의 강역은 서쪽으로 바다 건너 월주를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바다 건너 가우리 국경까지,
공주 : (문득) 복신장군에게 아리라는 아들이 있습니까?
도침 : 아리요?
공주 : 예.
도침 : 있지요. 그런데 아리장군 얘긴 갑자기 왜 물으십니까?
공주 : 장군이라구요?
도침 : 지금은 아니지만 한 때는 부친인 복신장군 못지 않게 이름을 날리던 장군이었습니다.
공주 : (믿을 수 없다) 그자가요?
도침 : 그런데 신라와의 전투에서 고립무원의 지경에 빠져 투항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신라와의 담판으로 부하들과 함께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그 일로 적의 첩자로 몰려 죄인처럼 수레를 타고 돌아왔지요.
공주 : 훌륭한 장수라면 그런 치욕을 당하고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습니까?
도침 : 그랬기 때문에 부하들의 목숨과 무고한 백성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던 겁니다.
현명한 사람은 진실로 자신의 죽음을 중히 여기는 법입니다. 비록 치욕을 당하였지만 부끄러움 가운데 살아 있는 것은
아직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자신의 재능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공주 : 그래도 그건 진정한 대장부의 마음가짐이 아니에요.
도침 : 능히 몸을 굽히고 필 줄 아는 것도 대장부가 가져야 할 덕입니다. 한신은 무뢰배의 다리 사이를 기었고,
계포는 스스로 죄인이 되는 치욕을 견뎌내었기 때문에 결국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천한 사람이 분개하여 자살하는 것은 용기가 아닙니다. 계획을 다시 고쳐 실현시킬 용기가 없을 따름이지요.
공주 : …
도침 : 더 궁금하신 게 있습니까?
공주 : 아뇨.
도침 : (씩 웃는다) 자, 다시 공부를 시작하십시다. 어디까지 했더라…
공주, 수긍하기는 싫지만 도침의 말에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다.
공주,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23. 유곽 앞 거리
여랑, 주변을 둘러보며 바쁘게 유곽 쪽으로 걸어오는데
아리가 불쑥 여랑의 앞을 가로막는다.
여랑, 기절할 듯이 놀라 들고 오던 보자기를 툭 떨어뜨린다.
보자기에서 약초가 쏟아져 흩어진다.
여랑, 쏟아진 약초들을 급히 주워 담으려는데 아리가 먼저 집어 들어 본다.
여랑, 당황한다.
아리 : 이건 자상에 쓰는 약촌데… 누가 칼에 베이기라도 했나?
여랑 : (섣불리 대꾸도 못하고 사색이 되어 굳어 있다)
아리 : 어디 누가 다쳤는지 한 번 가보자. 앞장서라.
여랑, 잠시 망설이다가 돌아서는 척하며 품 안에 숨겨둔 비수를 꺼내 아리를 찔러 들어온다.
아리, 기습적인 여랑의 칼을 가까스로 피한다.
여랑, 계속하여 놀라운 무공으로 아리를 공격하지만
아리, 순식간에 여랑의 손목을 잡아 비틀어 손에서 칼을 빼앗아 여랑의 목에 겨눈다.
아리 : 네 비파소리가 왜 그리도 처량했는지 이제야 알겠구나. 널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그자가 어디 있는지만 말해라.
여랑, 아리를 빤히 보며 미소를 짓다가
갑자기 잡히지 않은 팔을 뻗어 아리의 칼 쥔 손을 잡고 칼로 뛰어들 듯 자신의 목을 찌른다.
아리, 놀라 칼을 뒤로 빼지만 여랑, 아리에게 스르르 엎어진다.
아리, 당황하여 여랑을 한 팔로 받쳐들고 목에서 솟구치는 피를 다른 손으로 막는다.
아리 : 여랑아!
여랑, 눈을 가늘게 뜨고 마지막 힘을 다해 아리를 바라보더니 침을 퉤 뱉고 숨을 거둔다.
사람들, 하나둘씩 모여 들어 구경을 하고
어느새 사람들 틈에 섞여 있던 유석, 비통한 얼굴로 돌아서 그 자리를 떠난다.
#24. 아리네 집 후원 (밤)
복신, 달빛 아래 홀로 검을 연마하고 있다.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젊은이 못지 않은 힘과 속도가 느껴진다.
아리, 후원으로 들어온다.
아리 : 부르셨습니까?
복신, 움직임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아리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칼을 칼집에 넣어 잠시 눈으로 어루만지듯 본다.
복신 : 신라의 첩자를 잡았다면서?
아리 : 정작 중요한 자는 놓쳤습니다.
복신 : …천지만물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 …일어날 때와 스러질 때.
아리 : …
복신, 갑자기 칼을 아리에게 던진다.
아리, 본능적으로 한 손을 뻗어 칼을 받아든다.
복신 : 그 칼은 네 할아버지뻘 되시는 무왕께서 하사하신 칼이다. 앞으로는 네가 간직하도록 해라.
아리, 칼을 내려다본다.
복신 : 나는 내일 임존성으로 떠난다.
아리 : …
복신 :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으니 지금은 내 한 몸의 영달을 도모할 때가 아니다.
아무쪼록 천기를 잘 살피거라.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복신,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후원 저 편으로 가버린다.
아리, 부친이 남기고 간 칼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부친이 사라진 쪽을 바라본다.
#25. 아리의 방
창호 문을 투과한 햇빛이 아리 앞에 놓인 검을 비추고 있다.
아리, 망연한 얼굴로 미동도 없이 앉아서 검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소리 : 도련님.
아리 : 무슨 일이냐?
소리 : 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아리 : 궁에서?
아리, 의아한 얼굴로 돌아본다.
#26. 궁
아리, 호위무사들과 함께 공주의 처소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공주가 자신을 왜 불렀는지 생각하느라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금화, 시녀들을 거느리고 맞은 편에서 걸어온다.
금화, 잘 생긴 아리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걸어오며 자기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길 기다리는데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호위무사들과 달리 아리는 금화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슥 지나가 버린다.
한껏 콧대를 세우고 지나가던 금화, 걸음을 멈추고 바르르 떤다.
금화 : (아리의 뒷모습을 싸늘하게 노려보다가) …저자가 누군지 알아 봐라.
금화, 다시 콧대를 세우고 걸어간다.
#27. 공주방
공주, 나이 많은 유모와 다른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머리하고, 옷을 입고, 버선을 신고, 띠를 두르고, 장식을 달고 있다.
유모 : (옷을 차근차근 입혀주며) 정말 아름다우세요. 제가 궁에 들어온 이후 사십 여년 동안 수많은 공주님들을 모셨지만
공주님처럼 아름다운 분은 없었습니다.
공주 : …
유모 : 아, 딱 한 분 있었네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제가 있고 있었습니다. 이제 보니 공주님이 보황녀님을 꼭 닮으셨네요.
공주 : 누구요?
유모 : 사이메이 천황님이요. 그 분이 왜로 시집가실 때 딱 지금의 공주님 나이셨지요. 그 무렵에 제가 궁에 처음 들어왔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예쁜 분은 처음 보았답니다. 지금의 공주님처럼 정말 아름다우셨지요.
공주 : 고모님하고 제가 닮았다구요?
유모 : 그러고보니 생김새뿐만 아니라 성격도 닮은 거 같네요.
공주 : 성격은 어떠셨는데요?
유모 : 뭐, 별로 좋은 성격이랄 수는 없었지요.
공주 : (흘긴다)
유모 : 호승심이 강하고 쓸 데 없는 의협심도 있는데다가 성질까지 급해서 걸핏하면 지금의 대왕님이신 오라버니와
싸우시곤 했답니다. 그리고 한 번 싸우시면 끝장을 보셨죠. 그래서 두 분이 아직도 우애가 깊고 멀리 떨어져서도
서로를 그리워하시는가 봅니다.
유모, 말을 하다가 잠시 회상에 젖으며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이때, 밖에서 시녀가 들어온다.
시녀 : 공주님, 도착했습니다.
공주 : 벌써? 알았다. 잠깐 기다리라고 해라.
시녀 : 예. (다시 나간다)
공주, 마음이 급해져 시녀가 들고 있던 동경을 빼앗아 들고 자기 모습을 살핀다.
공주 : 유모, 나 어때?
유모 : 예쁘시다니까요.
공주 : 그래? 그럼, 나가고 그 사람 들어오라 그래.
유모와 시녀들, 나가면 공주, 후닥닥 자리에 앉아 두루마리 책을 펴 들여다보는 척 하다가
책이 거꾸로 놓인 것을 발견하고 얼른 바로 놓는 순간 문이 열리고 아리가 들어온다.
공주, 책에 시선을 두고 모르는 척 한다.
긴장하여 들어서던 아리, 전에 보았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앉아 있는 공주를 보고 순간 넋이 나간다.
공주 : (그제야 눈을 들어 아리를 본다. 건방지게) 오랜만이다.
아리 : 지난 번 일은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공주 : 그 일 때문에 부른 건 아니다.
아리 : (긴장한다)
공주 : 네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들었다.
아리 : (기분 나쁘다) …
공주 : 부친인 복신장군을 봐서라도 너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데…
아리 : (삐딱하게) 어떤 기회 말씀이십니까?
공주 : 왕궁수비대에 자리를 하나 만들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아리 : …(픽 웃고 잠시 생각하다가) 공주님께서 제 처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의 제 처지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공주 : (발끈한다) 그래서?
아리 :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공주 : … 내가 너의 무례를 개의치 않고 특별히 앞길을 열어주려 하는데 거절을 해?
아리 : 제 처지에 대해 들으셨다면 아시겠지만 제겐 아무런 재주도 없습니다.
공주 : 뛰어난 장수라고 들었다.
아리 : 제겐 나라와 백성을 위해 싸우는 재주 밖에 없습니다. 권력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면서도
백성들에겐 한없이 가혹한 간신배와, 아무런 업적이 없으면서도
일생을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권신들을 지킬 재주는 없습니다.
공주 : (부르르 떨리지만 할 말은 없다)
아리 :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물러가겠습니다.
아리, 부르르 떠는 공주를 뒤로 하고 나가버린다.
공주, 분하지만 한편으로 아리의 기개에 끌린다.
#28. 금화의 처소
호화스러운 방.
금화, 반투명한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시녀에게 손톱 소제를 받고 있는데
다른 시녀가 급히 들어온다.
금화 : 그래, 알아봤느냐?
시녀 : 예, 이름은 귀실아리라 하고 복신장군의 아들이랍니다.
금화 : (손톱소제를 하고 있는 손을 탁 뿌리쳐 그만하라는 손짓을 한다) 복신의 아들이라구?
시녀 : 예.
금화 : 그런데 궁에는 무슨 일로?
시녀 : 주공주님이 부르셨답니다.
금화 : 주가?
시녀 : 아마 지난번 궁에 들어왔던 첩자 때문인 듯 합니다.
금화 : (긴장하고 몸을 반쯤 더 일으킨다) 그 일이 그 자하고 무슨 상관이냐?
시녀 : 그때 그 유곽에서 신라의 첩자가 한명 죽었는데,
금화 : (깜짝 놀라지만 내색 않으며) 죽어?
시녀 : 예, 그 귀실아리라는 자가 유곽에서 여자 첩자를 찾아내어 죽였다고 합니다.
금화 : (일어나 바로 앉다가 어지럼증을 느낀다)
시녀 : 아마 그 일로,
금화 : 됐다. 나가 봐라.
시녀들, 금화의 갑작스러운 명령에 꾸물대는데
금화, 소리를 버럭 지른다.
금화 : 나가라잖느냐!
시녀들, 화들짝 놀라 사라진다.
금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뭔가를 생각한다.
#29. 움막
자막 : 신라의 수도 서라벌
얼기설기 흙과 나무로 지어놓은 형편없이 초라하고 낡은 움막.
장군복을 입은 유석, 말안장에 앉아 움막을 내려다보고 있다.
움막 안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인기척도 없고 연기도 피어오르지 않는다.
유석, 잠시 보다가 말에서 내려 때에 전 거적문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간다.
#30. 움막 안
대낮인데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 컴컴한 움막 안.
유석, 어둠이 눈에 익기를 기다려 안을 둘러본다.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온기라고는 없는 집안. 아궁이에는 불을 땐 흔적이 없고 집 안 어디에도 먹을 거리가 보이지 않는다.
차가운 침상 위에는 늙은 여자가 죽은 듯이 누워 누가 들어오든 말든 돌아보지도 않고
침상 및 흙바닥에 누더기를 걸친 여덟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앉아 흙을 파먹고 있다가
멍한 얼굴로 유석을 올려다본다.
유석 : 여기가 여랑의 집이 맞소?
여자 : (반응이 없다)
아이 : (힘없이) 우리 언닌데…
유석 : (눈물이 핑 돈다)
아이 : (경계의 눈빛으로) 누구세요?
유석 : 어머니시냐?
아이 : 예.
유석 : 아버지는?
아이, 구석을 돌아본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 보면 둘둘 말린 거적 밑으로 삐져나온 사람의 발이 보인다.
유석, 비로소 코를 찌르는 시체의 냄새를 맡고 갑자기 속이 뒤집어진다.
아이 : 우리 언니 아세요?
유석 : … 그래.
아이 : 언니, 어디 있어요?
유석 : 언니 보고 싶냐?
아이 : 먹을 거 많이 갖고 온다 그랬는데.
유석, 주머니를 뒤져 돈을 있는 대로 꺼낸다.
아이, 눈을 반짝이더니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유석이 미처 건네주기도 전에
번개같이 유석의 손에서 돈을 빼앗아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 돈을 꼭 쥐고 유석을 본다.
유석 : 언니는 걱정마라. 잘 있으니까. 그 돈은 언니가 보낸 거야.
아이, 비로소 안심하고
침상에 있던 아이의 엄마, 그제야 유석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유석 : (잠시 보다가) 시신은 제가 수습하겠습니다.
유석,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은지 시체의 발을 잡아끈다.
#31. 장군의 숙소 문 앞 (밤)
늙은 장군들과 젊은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문 밖으로 터져 나온다.
유석, 문을 노려보고 서 있다가 벌컥 연다.
#32. 방 안 (밤)
널찍한 방 안에 큰 상이 차려져 있고 장군 서넛이 여인들을 하나씩 끼고 앉아 술을 먹고 있다가
문이 벌컥 열리자 불쾌한 얼굴로 돌아보는데 유석이 서 있자 반색을 한다.
장군1 : 난 또 누구시라고. 어서 오시고, 유석공.
장군2 : 유석공이라고? 저 분이?
장군1 : 자, 이리 앉으시죠.
장군들, 모두 일어나 깍듯이 유석을 맞이한다.
유석, 잠시 보다가 장군1이 내 준 가운데 자리에 앉으면 장군들도 따라 앉는다.
장군1 : 여러분도 익히 들어서 아시겠지만 우리 유석공은 김품석 장군님의 아드님이자 김춘추 대왕님의 외손이십니다.
그동안 남부여에서 큰일을 하고 돌아오셨습니다. 유석공이 수집한 정보가 우리 신라군이 작전계획을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장군들 : 아, 예. 그러시군요…..
여인, 유석에게 술을 따르려는데 유석, 여인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직접 자기 잔에 따라 들이킨다.
장군들, 유석의 무례한 태도에 기분이 상하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서로 눈짓만 주고받는다.
유석 : 성 안에 식량이 씨가 말랐더군요.
장군1 : 징발령이 내려졌습니다.
유석 : 듣자니 당나라 군사의 군량미까지 대기 위해서라던데요?
장군1 : 당연한 일 아닙니까?
유석 : 당연하다구요?
장군1 : 우리를 위해 싸우러 오는데 그 정도는 해야죠.
유석 : 백성들은 굶어 죽어 가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해 싸운단 말입니까?
장군1 : 큰일에는 사소한 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우리 그런 얘기로 취흥을 깨지 말고 술이나 마십시다.
출정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자! 우리 신라의 승리를 위하여.
장군2 : 당나라, 신라 연합군의 승리를 위하여!
장군3 : 신라, 만세! 당나라, 만세!
유석, 장군들이 호기롭게 술잔을 비우는 모습을 보며 괴로워한다.
#33. 유석의 방 (밤)
유석, 갈증이 나는지 자다가 잠에서 깨어나는데 옆에 여자가 누워 있다.
유석,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유석, 벌떡 일어나 창가로 가 창을 열면 달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유석, 창가에 기대 달빛을 바라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그 순간 달빛에 비친 공주의 얼굴이 느닷없이 유석의 뇌리를 파고든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한지 피식 웃음을 날린다.
#34. 공주의 방 (밤)
공주, 침상에 누워 아리의 말을 생각하며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아리 : 아무런 업적이 없으면서도 일생을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권신들을 지킬 재주는 없습니다.
공주, 벌떡 일어나 방안을 서성대다가 창문을 벌컥 열고 숨을 들이킨다.
#35. 아리네 집 마당
아리, 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면 공주의 호위무사들이 마당으로 들어와 이열종대로 선다.
아리네 집 시종들, 두려움에 떨며 구석에 몰려 서 있다.
아리 : (날카롭게) 무슨 일이냐?
이때, 대문 안으로 말을 탄 공주가 천천히 들어온다.
아리, 공주를 보자 깜짝 놀라 얼른 마당으로 내려온다.
공주, 아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척하며 집을 찬찬히 둘러보는 척 하다가
마치 선녀가 하강하듯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말에서 내리는데 치맛자락을 밟아 앞으로 고꾸라진다.
아리, 공주가 자기 품으로 넘어지자 잽싸게 몸을 날려 공주의 엉덩이와 등을 받쳐 준다.
공주, 얼굴이 벌개지며 벌떡 몸을 일으켜 아리의 뺨을 갈긴다.
공주 : 감히 어디다 손을 대느냐!
아리 : (어처구니가 없지만) 죽을 죄를 졌습니다.
공주, 병사들을 돌아보면 병사들, 안 본 척 고개를 돌리고 시치미를 뗀다.
공주, 옷매무새를 바로 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느라 애쓴다.
공주 : 됐다. 용서하겠다. (계속 아리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엉뚱한 데를 보며) 복신 장군께선 어디 계신가?
아리 : 집에 안계십니다.
공주 : 그래?……
아리 : 급한 전갈이면 제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공주 : 복신장군을 뵈러 온 건 아니다.
아리 : ? (의아한 얼굴로 본다)
공주 : 왕명을 전하러 왔다.
아리, 무릎을 꿇고 구석에 있던 시종들도 모두 무릎을 꿇는다.
공주 : 귀실아리를 왕궁 친위대의 비장으로 임명한다. 즉시 의관을 갖추고 나를 따르도록 하라.
공주, 돌아서서 폼나게 말에 오른다.
아리, 의아한 얼굴로 공주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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