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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9개국 탐방
날짜:2011년 9월 7일 수요일~18일 일요일 11박 12일
여행국:루마니아,불가리아,세르비아,마케도니아,알바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 루마니아에서 불가리아 가는 국경선
국경선 진입 도로가 EU통합 후 도로가 개선되었다. 편도 3차선이다. 언제나 국경선을 넘을 때는 긴장된다. 유럽은 절차가 간편하여서 쉽지만 관리 건물과 직원들의 경계가 삼엄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학창시절 공산국가로 배우며 멀게만 느껴졌던 두 나라의 국경선에 머물고 있다. 지금은 지구촌의 한 나라에 왔다는 매끄러운 상념이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개 한 마리가 평화로이 국경선을 넘나든다.
*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국경다리
루마니아에서 국경선을 넘으면 불가리아로 들어가는 다뉴브강 다리를 넘어야 된다. 다리세를 내고 통과한다. 넓은 다뉴브강이 전개된다. 좌우 풍경과 다리가 아름답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불가리아 영토다. BULGARIA라고, 영어로 씌어져 있다. 직원이 버스에 올라와서 여권을 거두어 갔다.
* 불가리아 입국
제일 먼저 대형 EU국기가 펄럭인다. 2007년 EU가입국이다. 불가리아 국기도 펄럭인다. 사무실과 경찰차도 보인다. 이제 불가리아에 온 것이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버스는 다음 여행지로 떠났다. 울창한 숲을 지나자 불가리아 들녘이 나온다. 루마니아와 다를 것은 없는데 느낌이 새롭다. 불가리아는 북쪽으로 루마니아, 남쪽으로 그리스와 터키, 서쪽으로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흑해Black Sea가 넘실거린다. 불가리아는 동북쪽으로 러시아, 서북쪽으로 폴란드, 남서쪽으로 마케도니아, 서쪽으로 세르비아 등 2억7000만 명이 사용하는 슬라브어의 모태인 키릴문자를 855년에 창제한 문화선진국이다. 세계 단일 언어다. 러시아에서 갖다 사용한 것이다. 국경 도시에 들어선다. 고층 아파트와 주택이 많다. 도심에는 차도 많고 공중에 걸린 전차선이 이색 풍경이다. 불가리아와 한국이 수교를 맺은 지는 21년 밖에 안 되었지만 많은 교류가 있다.
* 불가리아 휴게소
푸른 잔디가 곱다. 도심의 도로변 휴게소인데 잘 가꾸어 놓았다. 주변 시가지 풍경도 잘 보인다. 불가리의 고층 아파트가 오롯하다. 타워식 건물로 베란다 창문 구조가 원형으로 돌출된 것이 시선을 끈다. 저층 아파트도 곁에 있다. 공터의 풀들도 낯선 나라의 것이기에 예사롭지 않다. 장수의 나라, 동서양을 느낄 수 있는 불가리아는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비교적 풍족하게 살았던 나라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조용하게 혁명이 일어났고, 현 정부도 공산당 시절 간부로 있었던 사람이 대부분이다. 정통 스탈린 추종 국가이며 러시아가 쓰는 키릴 문자를 만들기도 했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조용하고 멋스러움이 넘치는 불가리아, 유럽에서 동방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해는 서산으로 향하고 이제 우리는 서둘러 벨리코투르노보로 가야 한다.
* 불가리아 벨리코투르노보 가는 길
여기서 벨리코투르노보까지는 1시간 30분 소요된다. 내일은 성을 오르기 때문에 많이 걷는단다. 소피아에서도 2시간을 걸어야 하는 도보여행이란다. 불가리아는 루마니아보다 허술한 느낌이 든다. 시가지에 높이 솟구친 타워가 있다. 도시를 지나자 광활한 평야다. 대부분 옥수수밭과 초지다. 농촌 마을에는 마차를 타고 다니는 농부가 있다. 발칸에는 집시가 많다. 호텔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여권과 호텔 명함, 그리 20유로 정도를 갖고 나가고, 만일 길을 잃으면 타 호텔에 가서 택시를 불러 달라 하여 들어오란다. 이곳 집시는 가방 지퍼를 열고 손을 넣어 도둑질 한단다. 그것도 직업이라며 당당하단다. 집시에게 아파트 분양권을 주어도 1개월 살고는 나와서 다시 다리 밑으로 간단다. 산길로 접어들자 하얀 낮달이 절경이다. 벨리코투르노보에 가까워지며 깎아지른 절벽의 산이 평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 불가리아 벨리코투르노보 호텔 도착
불가리아 제2왕국의 수도였으며 불가리아의 아테네로 불리우는 벨리코투르노보에 도착했다. 6만 5천명이 사는 도시로 옛 수도였다. 호텔 로비가 넓다. 엘리베이터에서 로비층을 n으로 표시했다. u자를 엎어 놓은 형상이다. 식당은 0층이다. 나라마다, 호텔마다 조금씩 달라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익혀 두어야 한다. 내일은 모닝콜 6시, 조식 7시, 출발 8시다. 우리 부부의 방은 561호다. 창밖의 언덕 마을 야경이 아름답다.
2011년 9월 9일 금요일 불가리아
* 불가리아 벨리코투르노보 호텔 출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산책했다. 계곡의 다리를 건너가니 첨탑과 함께 말을 타고 치솟는 장군들의 동상이 있다. 아센 형제 동상이다. 비잔티움 제국의 지배하에서 벨리코투르노보를 중심으로 아센 형제가 봉기하여 승리하여서 제2불가리아제국을 탄생시켰는데 그때가 1185년, 그후 800주년 기념으로 1985년에 아센 형제의 동상에 이곳에 세웠다. 언덕 마을이 비경이다. 숲과 물이 장관이다. 호텔도 상당히 크다. 계곡에 긴 기둥을 세워 지은 모습이 예술이다. 복도의 전등불이 자동센서로 사람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켜진다. 불가리아는 요쿠르트가 유명한 나라여서 조식 뷔페에도 유제품이 많다. 식사를 마치고 불가리아 교포 남자 가이드를 만났다.
벨리코투르노보Veliko Turnovo의 옛 이름은 투르노보다. 1393년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왕국은 멸망하였으나, 이후 5세기에 걸쳐 문화, 교육의 중심지로 번창하였다. 500년간 오스만 터키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1989년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40여 년간 러시아 통치를 받다 보니 수수께끼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1867년에는 오스만에 저항하는 무장봉기의 중심지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반파시즘 운동의 최대 거점이었다. 주변에 비옥한 농경지가 펼쳐져 식육, 제당, 통조림, 우유가공, 포도주 제조 등의 식품공업이 활발하다. 벨리코투르노보는 인구 6만여 명의 역사적인 도시다. 오늘 온도는 12도에서 32도, 온도 차이가 크다.
* 불가리아 벨리코투르노보 차르베츠 언덕
벨리코투르노보는 구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불가리아의 대표 관광지다. 1396년까지 불가리아의 수도였다. 12세기 불가리아 왕국의 성채다. 오스만이 침공했어도 차르베츠 성은 3개월을 견뎠다. 그 성을 다 부수고 오스만이 500년을 지배했다. 현재 불가리아의 13%가 터키인이다. 정당 중에서 터키당도 있다. 터키에 대한 미운 마음은 없으나 세르비아는 미워한다. 불가리아 왕국의 성채였던 차르베츠 언덕은 왕의 언덕이라고도 불리며 많은 황제들이 머물렀던 성이다. 자연 절벽이 천혜의 요새다. 성 입구에는 차르베츠 성 문장이 새겨진 방패에 앞발을 얹고 있는 사자상이 떡 버티고 있다. 언덕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빙둘러 성채가 서서 천혜의 요새를 더 요새답게 한다. 올라가면서 내려다보이는 언덕 성벽과 시가지가 절경이다.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뾰족한 성당 등 중세시대 불가리아 왕국의 찬란한 면모를 본다.
* 불가리아 벨리코투르노보 차르베츠 언덕 성모승천교회
차르베츠 성 정상에 다다르자 성모승천교회가 성당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성당 내부에는 불가리아 왕국의 옛 영화를 그린 작품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아기 안고 승천하는 성모 등 성화도 많다. 외경도 아름답고 내경도 아름다운 성당이다.
* 불가리아 벨리코투르노보 옛 고성터
차르베르 언덕 성당에서 나와 뒤편으로 걸어가니 옛 고성터가 있다. 13세기 궁전을 방어했던 중세의 성채 벨리코투르노보 성의 흔적이다. 성은 허물어 졌어도 형상은 그대로 보존하여 고스란히 전시되고 있다. 황제 22명이 머물렀던 벨리코투르노보 성이며 현재는 복원 중에 있다. 산정 높은 곳에서 많은 왕들이 거주하던 흔적을 보며 소슬한 세월을 읇는다. 지배를 당하며 높은 고지로 왕의 거처를 마련했던 것 같다. 그것이 오늘날에 큰 유적이 되어 후세 사람들에게 그날을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 불가리아 벨리코투르노보 차르베츠 언덕 하산길
올라가던 때와는 또 다른 풍경들이 들어온다. 성당의 종이 고즈넉하게 자라하고 있다. 어둠이 내리면 차르베츠 성에서는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는 조명등이 있다. 차르베츠 성에서 중요시하는 야경이다. Sound and light라고 이름 붙여진 이 쇼는 색색깔 레이저가 뿜어지면서 종소리와 구슬픈 불가리아 민속음악이 뒤섞인다. 붉은 열매가 한가득 나무에 매달려 불가리아의 가을을 수놓는다.
* 불가리아 벨리코투르노보 정통공예방 거리
공예 상가들을 걸으며 관광하는 곳이다. 차르샤 거리다. 차르샤는 이곳 말로 시장을 뜻한다. 좁은 골목에 고풍스런 상가가 늘어서 있고 옛 생활용품들을 그대로 재현하여 전시해 두었다. 한국 방송 프로에도 나왔다는 가게도 있다. 여러 가지 정통공예 기념품을 판다. 종류도 다양하다. 아주 긴 거리다. 가게 주인들도 친절해서 어떤 상가든 들어가서 구경만 해도 환영이다. 우리나라의 인사동과 같은 거리다. 다 구경하고 벨리코투르노보를 떠나 장미의 도시 카잔락으로 이동한다.
* 불가리아 카잔락 가는 길
장미의 카잔락으로 간다. 1시간 30분 소요된다. 불가리아는 터키 유목민 이주와 발칸의 슬라브인이 합해서 형성된 국가다. 발칸 산맥을 넘고 있다. 소피아까지 이어진다. 불가리아 물가가 2자리수로 뛴다. 평균 월급 400유로 중에서 세금 45% 내고 실수입이다. GNP 8천불, 한국과 동일한 시기에 시작한 IMF를 계속 겪고 있다. 불가리아는 북쪽으로는 다뉴브강을 경계로 루마니아, 남쪽은 그리스 및 터키와 접하고 있다. 면적은 남한보다 약간 크다. 발칸 산맥 중심을 계속 넘고 있다. 잠시 내리막, 다시 오르막 산중 산정도로를 버스가 달린다.
* 불가리아 러시아 정교회
벨리코투르노보에서 카잔락으로 가는 도중에 들렀다. 예정에는 없었던 코스다. 카잔락에서 장미를 보는 것인데, 지금은 계절이 초가을로 장미가 다 져서 카잔락은 잠시 들르는 것으로 하고 대신 발칸 산맥의 산중에 세운 시프카 마을의 러시아 정교회에 온 것이다. 터키로부터 해방을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의 기념 성당이다. 불가리아는 러시아 도움 없이 승전은 불가하다. 특정지역 산정에 지었다. 붉은색, 노랑색 등 색상이 화려하다. 지나는 행인 눈에 띄게 하려고 그렇게 지었다. 체코 건축가가 건축했다. 1885년~1902년까지 17년간 지었다. 54m 높이의 종탑도 있다. 1902년 2월 28일에 오픈한 성당이다. 지붕 돔이 17개로 큰 것은 20톤 무게다. 상층은 도금이다. 34개 대리석에 러시아인 도움자의 이름을 새겼다. 러시아 전사자가 깔린 모래를 명예의 모래라 하는데 그 모래로 17개의 석관을 지하에 안치했다. 국가문화 기념물로 선포했다. 첨탑 끝 2개의 카렐리아식 십자가, 또는 러시아식 십자가는 예수 제자 2명을 상장한다. 1명은 천국, 1명은 지옥으로 간다는 뜻으로 러시아 정교에만 있다.
산 깊은 곳의 성당은 러시아에서 보았던 성당들과 아주 유사했다. 푸른 나무 숲 사이로 영롱한 색상들이 성스럽고 찬란하다. 내려오면서 저 멀리 우리가 넘어온 발칸 산맥이 보인다. 산 아래 마을의 붉은 기와지붕이 곱다. 우람한 산과 나무와 들녘, 저 풍경이 비경이어서 여러 배경사진으로도 사용한다. 잠시 들렀지만 마음의 휴식을 취한 고요한 교회다. 시프카 마을은 소박하고 아담하다. 집 앞 화단에 기른 포도나무 열매가 싱그럽다. 마을 입구에는 공동묘지도 있고, 산 사이로 정교회가 살짝 비치는 모습이 평화롭다.
* 불가리아 발칸 산맥
시프카 마을에서 카잔락으로 가는 길도 끝없이 산이 이어진다. 벨리코투르노보에서부터 함께 달리는 발칸 산맥이다. 불가리아가 발칸반도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것도 과언은 아니다. 사계절이 있고, 산과 계곡이 많은 나라다. 짙푸른 흑해의 바다와 발칸반도 최대 산맥인 발칸산맥 등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고 있고 역사 유적지도 많아 관광산업이 발전하기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외침으로 한이 서린 나라이기도 하다. 애절한 애국의 노래도 있다. 불가리아의 자연 경관이 참으로 아름답다. 끝없는 평원의 들녘에는 옥수수가 출렁거리고, 목초지에는 소와 양떼, 목부가 평화로운 풍경을 선사하고, 지금은 겹겹이 즐비하게 늘어선 우람한 산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시리도록 짙푸른 빛이 계곡에 서리고 그 밑에는 평온한 품사위의 들녘이 누워 있다. 해바라기가 가을을 맞이하여 노랗게 여물고 있다. 이런 장면이야말로 세계 여행에서 보는 멋진 풍경이며, 나를 자꾸 세계로, 세계로 이끄는 요소 중 하나다.
* 불가리아 장미 도시 카잔락
벨리코투르노보에서 시프카 마을을 거치면서 발칸 산맥을 넘어왔다. 장미 도시, 카잔락이다. 장미 오일 세계 최고 생산지다. 100% 원액으로 물이 아니고 찐득찐득하다. 카잔락에서 장미를 재배한 역사는 300년에 이른다. 해가 뜨면 향기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해뜨기 전 새벽에 꽃을 딴다. 장미오일 1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장미가 무려 3000송이나 필요하다니 얼마나 많은 재배 면적인지 상상케 하는 매목이다. 비누도 세계 80%매출이다. 장미 산업박물관도 있다 장미밭을 가꾸는 농기구와 바구니에서부터 장미를 증류하는 기기 등이 전시돼 있다. 60년 전에 사용했던 증류기기 뚜껑에는 아직도 진한 장미향이 풍겨 나온다. 장미는 5월~6월에만 꽃이 핀다. 매년 6월 장미 축제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지금은 9월, 장미 축제는 볼 수 없어서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도심 공원을 둘러보았다. 정원에 늦게 피어오른 장미가 있어서 몇 송이이나마 카잔락의 장미를 보았다. 시가지도 아름답다.
*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가는 길
카잔락에서 4시간 소요된다. 국도 반, 고속도로 반이다. 불가리아 인구는 750만 명이다. 10년 전만해도 800만 명이었는데 계속 감소 추이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다. 결혼기가 늦다. 살아보고 결혼다. 학제는 1~12년제인데 1~5년은 초등, 6~12는 중등이다. 13~16은 고등이다. 외고 체제가 있는데 상위 1%가 가는 학교다. 1년 학비가 3천 유로다. 고등학교 졸업식이 화려하다. 부모의 마지막 지원으로 300~400유로, 즉 한달 월급을 다 주고 빌린 렌트카로 논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내쫓는다. 자립과 독립시킨다. 대학은 1학기가 12만원이다. 1년 24만원이다. 집시는 40만 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젊은 집시들이 아기 출산을 많이 한다. 아기를 앞세워 구걸하기 위함이다. 인도 사람 모습이다. 자기들 언어가 따로 있다. 교육 전무로 대물림이다. 3D 직업에 겨우 취업하기도 한다. 아기 재우려고 술을 먹이기도 한다. 투표권이 없다. 소피아에는 집시 군락이 있다. 우범지대로 무섭다. 양배추 농사는 집시들의 일터다. 검은 양파, 마늘이 불가리아 주산물이다. 포도와 철광석도 있다. 조금 있으면 남부쪽은 산이 없고 평원이다. 평원 끝에 산맥이 절경이다. 해바라기, 양배추 밭이 많다. KBS1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프로에서 불가리아가 방영되었다. 대사관에 등록된 불가리아 한인은 180명이다. 50%가 선교사다. 지방에서 90명이 선교한다. 30%는 주재원 가족이다. 나머지 90명 30명이다. 모임 때 70명 정도가 참석한다. 젊은이들은 월급이 많은 서유럽 쪽으로 돈벌이 하러 나간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의 인구는 130만명이다. 소피아로 천도하며 불가리아 3차 왕국을 건국했다. 러시아와 터키 전쟁으로 터키도 독립했다. 1997년 이전 투자국이 한국이 1위다. 대우가 불가리아에 자동차를 비롯하여 많다.
* 불가리아 소피아 휴게소
카잔락에서 소피아 가는 중에 들렀다. 불가리아의 드넓은 평원과 멀리 앉은 산 풍경이 아름답다. 민가의 기와지붕이 모두 붉은 색으로 나무 사이로 곱다. 흑해 주변 국가, 불가리아에서는 대우 자동차로 인해 한국 위상이 높아졌단다. 불가리아 유산균은 러시아 박사가 생명 연장 연구 논문에서 발표되었다. 불가리아 장수 마을의 유산균을 발견했다. 학명이 불카루쿠스다. 매일 먹으면 150세까지 산다고 했는데 자신은 71세에 사망했단다. 그 당시 유럽 평균 수명이 47세였으니 오래 산 셈이다. 불가리아인들은 개사랑이 크다. 그래서 유기견에게도 밥을 준다. 개고기 안 먹는다. 베트남인이 베란다에서 개 가죽을 말리다가 쫓겨난 적이 있단다. 유기견 큰 개들이 거리를 활보하여 2007년에 안락사 시켰다. 남한과 수교는 1990년, 북한과 수교는 1945년이다. 불가리아 집시들이 많아서 소매치기도 많아 주의하란다. 평원의 휴게소를 떠나 소피아로 달린다.
* 불가리아 소피아 도착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시가지에 들어서자 벌써 웅장한 느낌이 든다. 도로에는 전차선 철로가 있고 그 위로 전차와 자동차들이 함께 질주한다. 인구 120만 명, 자동차 100만대인 도시로 교통이 복잡하다. 시내 곳곳에는 이슬람 사원과 그리스 정교 사원이 서 있고 과거 공산주의 체제를 상기시키는 9월 9일 광장, 레닌 광장 등이 있다. 터키, 세르비아 등과 철도로 연결되는 국제 교통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도심 곳곳에서 다양한 건축물들이 시선을 끈다. 궁전 옆에는 정교회 성당이, 이슬람교 예배당인 모스크 옆에는 가톨릭 성당이 나란히 서 있다. 809∼1018년 불가리아 제1왕국, 1194∼1386년 비잔틴, 14세기 말부터는 투르크의 지배, 1877년 러시아와 투르크 전쟁으로 러시아에 점령, 이듬해 불가리아에게 넘어가 1879년 이곳이 수도가 되었다. 소피아는비토샤 산 계곡에 위치하여 공원과 녹지가 많은 도시이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로 유적과 돌로 포장된 도로가 많아 역사의 향취가 절로 스며든다.
* 불가리아 소피아 온천수
소피아 도심에 온천수 받는 곳이 있다. 시민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받아간다. 김이 나는 따뜻한 물이 벽면 꼭지에서 계속 나온다. 여러 개의 시설을 마련해 두었다. 장수의 나라에서 천연 온천수를 받아먹는 것도 이색체험이다. 예쁜 건물 온천장도 있다. 온천장 건너편에는 모스크가 있다. 불가리아에는 터키인들이 많아 이슬람 교인이 13%다. 국교를 바꾸기 위해 세웠다. 2개의 모스크 중 이곳에서만 예배를 본다. 온천장 건물도, 모스크도 아름답다.
* 불가리아 소피아 세인트 페트카 지하교회
소피아에 남아 있는 14세기의 중세교회 중 하나로 불가리아 정교회다. 터키 지배하에 있을 때 그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세운 지하교회다. 이슬람 지배 당시에는 교회 건축을 허용은 했으나 땅 위로 솟는 높이를 1m로 제한해서 이렇게 땅을 파서 반 지하의 교회를 지은 것이다. 교회 문 입구에 성인 페트카 사진과 이름 새겨져 있다. 내부에는 예수탄생과 못 박힘, 재림 상징 등의 프레스코화 그림이 있다. 터키의 제약에 거부하고 페트카 성인의 뼈를 묻어 세운 불가리아인들의 지하교회는 완전 지하는 아니고 주변 건물보다 조금 낮은 돌벽의 조그만 건물로 애잔하다.
* 불가리아 소피아 레닌광장
과거 공산주의 시절, 러시아의 혁명가인 레닌의 거대한 동상이 있던 소피아의 중심 광장이다. 레닌 동상이 있었는데 현재는 지혜의 여신 소피아의 동상이 높이 세워져 있다. 오른손엔 월계관, 왼손에 부엉이가 있는데 신화에서 여신은 부엉이를 좋아했고, 부엉이는 어둠에서도 사물을 잘 볼 수 있는 총명한 새다. 민주화가 되면서부터 공산주의를 싫어하며 이 광장도 네델리야 광장으로 바꿔 부른다. 네델리야는 일요일이란 뜻이다. 옛날부터 소피아의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주요 간선도로가 교차하는 곳이다. 주변에는 역사적 건물이 많이 남아 있는데 대통령 집무실, 구 공산당본부 의원회관, 백화점, 호텔 등이 접하여 있어 광장을 더욱 빛낸다.
* 불가리아 소피아 성네델리야 정교회
소피아 쉐라톤 호텔 앞에 있는 불가리아 정교회다. 거대한 돔의 비잔틴 건축 양식으로 1856년에서 1963년까지 지었다. 소피아 도심에서 우람하고 큰 돔 지붕의 건물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입구의 아치형 문도 예술적이면서도 엄숙함이 서려있다. 나무에 들러 싸여 더욱 육중한 자태다. 이 교회 안에서 1925년 높은 관료의 장례행사가 있었는데 공산주의 반역자들이 왕을 암살하려고 폭격하여 120명이 사망했다. 왕의 암살은 미수로 그쳤다. 현재는 복원된 모습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아주 귀한 장면을 보았다. 불가리아의 장례식 행사로 한 할머니가 사망한 남편을 종교의식으로 하늘나라에 보내는 순간이다. 케익과 간단한 음식을 나누어주는데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주었다. 간단한 영어로 고인을 위해 기도한다고 전했다. 교회 앞에는 꽃가게가 있다. 가까운 거리에 쉐라톤 호텔이 있다. 그곳 화장실이 깨끗하여 잠시 들렀다. 원래는 대우 자동차 소유였는데 2002년에 2천 2백만 달러에 그리스인에게 매각했다. 현 시가는 15억 달러로 약 2조원이다. 한때는 한국인의 소유였다는 쉐라톤 호텔, 그래서 정감이 서린다.
* 불가리아 소피아 번화가
네델리야 정교회 앞에 있는 소피아 번화가 거리로 한국의 명동 거리와 같은 곳이다. 공중에는 전차선이 걸려 있고, 도로에는 차들이, 인도에는 사람들이 많다. 인도의 보도블록이 로마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고대 유적의 블록이다. 하얀 법원 건물이 있고 그 앞에는 사자 동상이 서 있다. 삼성 건물도 있다. 복잡한 거리여서 불가리아 경찰이 나와 단속한다. 여자 경찰도 있다. 이 거리는 어느 곳을 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 불가리아 소피아 성게오르기 교회
소피아의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다. 영어로는 성조지 교회다. 395년에 콘스탄티누스 1세 때 동로마 제국에 의해 세워진 교회다. 5세기부터 예배를 시작했다. 오랜 역사의 흔적을 느끼게 해준다. 로마 시대에는 교회로 사용되다가 16세기에는 터키인들이 이슬람 사원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것이 특징으로 건축 당시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교회를 지을 때는 성인의 뼈가 필요한데 이 교회에는 게오르기의 뼈가 들어갔다. 성인은 사후 시신이 썩지 않고 오래가야 된다. 그때 뼈를 사용한다. 곁에는 대통령궁이 있다. 로마 지배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소피아를 로마제국의 수도로 정하려고 훌륭한 건축물을 많이 지었는데 그 시대를 대표하는 양식의 건축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내부의 프레스코화도 유명하다.
* 불가리아 소피아 세르디카 유적지
레닌 광장 맞은편 발칸 쉐라톤 호텔 안뜰에 있는 로마 시대의 유적지다. 성 게오르기 교회와 함께 도심에서 보는 이색적인 고대 유적 풍경이다. 이곳 유적지에 있던 건물은 이교도의 사원이나 목욕탕으로 추정된다. 다 허물어져 터전만 남아있다. 시람들은 휴식으로 가장자리에 걸터앉기도 한다. 오랜 역사가 말해주듯 소피아는 구석구석에서 오래된 유물들이 많다. 지하철 공사 도중 유적이 발굴되기도 했다. 지하철역 벽면 귀퉁이에 유적을 그대로 보존해 두었다. 호텔을 짓다가 발굴된 유적을 장식용으로 사용한 곳도 있다. 세르디카는 비잔틴 시대의 소피아 지명이다. 세르디카는 기원전 7세기경 세르디 부족이 살면서 탄생한 이름이다. 14세기 이후 그리스어로 지혜를 상징하는 소피아로 바꾸었다. 3세기경 로마는 세르디카 지역에 강한 성벽들을 건립했다. 현재는 세르디카의 동문에 해당하는 성벽과 2개의 탑이 보존되고 있다. 이것은 지하도를 건너가면서 구경했다. 전철역 지하도에는 당시의 모습 보여주는 성곽의 모형과 발굴작업의 기록사진 등을 고스란히 전시해 두었다. 세르디카 고대도시의 많은 부분들이 아직도 현대 건물 아래에 많이 남아있다.
* 불가리아 소피아 대통령 궁
성 게오르기 교회를 보고, 세르디카 유적지를 본 후 아치형의 건물 문을 통과했는데 이곳이 대통령 궁이란다. 대통령 집무실로 한국의 청와대와 같은 곳이다. 근위병 두 명이 보초를 서고 있는 것 빼고는 다른 건물과 다를 것이 없다. 별다른 경계나 수색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근위병은 방문객과 사진을 함께 찍도록 허락한다. 시간을 잘 맞추면 대통령궁 앞에서 근위병 교대식을 볼 수도 있다. 공산주의 잔재가 다 증발된 민주화의 꽃을 보는 훈훈한 현장이다.
* 불가리아 소피아 벼룩시장
소피아 시내 곳곳에는 동양의 매력이 담긴 거리와 시장이 있다. 주점과 작은 상점들에서는 동양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알렉산드르 넵스키 사원 앞의 이곳 벼룩시장도 규모가 작고 노변상인이라는 점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인사동 옛 유물을 파는 한 블록의 거리 표정이다. 공산주의와 나치시대에 사용하던 물품들로 칼, 훈장, 메달, 배지 등도 전시해 놓고 판다. 바라만 봐도 소슬한데, 더러는 유물로 보관하려고 사 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불가리아에서는 머리를 끄덕이면 No, 가로 저으면 Yes란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어서 상인과 잘 소통해야 한다. 울창한 나무가 운치를 더해 주는 고풍스런 벼룩시장이다.
* 불가리아 소피아 알렉산더 네프스키 교회
터키 지배시 19세기 후반 불가리아 독립에 큰 도움을 준 러시아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교회 사원으로, 러시아와 투르크 전쟁에서 죽은 러시아 병사들 전몰자 20만 명의 혼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교회다. 이름도 러시아 영웅 이름과 같다. 1882년~1912년에 건립된 비잔틴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러시아에서 금 20만 톤을 보내서 돔 지붕을 도금했다. 햇빛을 받으면 황금빛을 뿜어대는 돔이 12개로 가장 큰 것은 12톤이다. 반경 3Km까지 들린다. 십자가가 불가리아식, 러시아식 2가지가 있다. 교회 정면의 벽에는 막대기 2개인 러시아식 십자가, 교회 돔 지붕 꼭대기와 아치형 정문 위에는 막대기 1개인 불가리아식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불가리아와 러시아의 아름다운 조화다. 내부의 프레스코 벽화와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샹들리에는 규모가 대단하다. 우리 부부가 들어갔을 때는 2층에서 성가대의 합창소리가 울려 퍼져서 더욱 거룩한 분위기였다. 나이 지긋한 여자 성도가 1층에서 관람객들을 단속하고 있다. 7천 명을 동시 수용하여 예배 가능하다. 8천 명~1만 명 수용 예배 성당은 베오그라드에 건축 중이다. 벨리코투르노보에 세우려 했는데 그 당시 인구가 2만 명 밖에 안 되어서 이곳 소피아에 세웠다. 소피아의 상징 건물이며 대표 명소로 발칸 최대 성당이다.
* 불가리아 소피아 호텔 투숙
우리가 유숙할 엑스포 호텔 곁의 돛단배 모양으로 푸른빛을 발하는 건물이 우람하다. 석양을 받아 더욱 고운 빛을 발한다. 호텔에는 온천장이 있는데 유료다. 이곳 사람들은 의사 처방전을 받아 자기 몸에 맞는 물로 3~6개월 정도 질병 치료용 온천을 한다. 아까 보았던 고운 온천장 건물이 현재는 건설 중인데 오픈하면 이런 온천장이 된다. 내일은 6시 모닝콜, 6시 30분 조식, 7시 40분 출발이다. 세르비아 국경선까지 1시간 30분 소요되며 시내까지는 4시간 30분 걸린다. 내일 버스 승차 시간이 6시간이다. 중식 후 시내 관광한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오늘 걸은 것만큼 걷는다. 3시간 도보 투어다. 그리고 다시 3시간 버스 이동하여 호텔 투숙할 예정이다. 버스를 타는 것도, 도보 투어도 내게는 모두 행복하고 아름다운 여정이다.
2011년 9월 10일 토요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 불가리아 소피아 호텔 출발
새벽 일찍 일어났다. 호텔 주변을 돌아보고 싶어서다. 항상 세계여행 중에는 호텔 주변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차츰 밝아오고 범상치 않은 건물들이 일어선다. 멀리 아름다운 산자락도 일어선다. 이곳 인종은 슬라브계와 아시아계가 합해져 있다. 산세, 수종, 피부색 등 한국과도 닮은 것이 많다. 호텔 룸에서 바라본 소피아 시가지의 풍경이 곱다.
* 불가리아 소피아 시가지의 아침 풍경
소피아 시가지의 아침은 분주하다. 자동차도, 버스 정류장의 사람들도 출근 준비로 바삐 움직인다. 공중의 줄을 타고 달리는 전차도 지나간다. 어제 소피아에 들어올 때 사람들로 가득하던 공원의 광장이 고요하다. 네프스키 성인이 처형당한 곳에 세운 기념비도 있다. 아파트와 상가, 학교 건물도 보인다. 도로 위에는 공중의 전차선이 널려 있다. 이제 불가리아 소피아를 떠나 세르비아로 간다.
* 세르비아 가는 길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국경선까지는 1시간 30분 걸린다. 여기도 해바라기 밭이 많다. 옥수수와 해바라기, 참으로 많이 보아온 풍경이다. 밭을 불태운 모습도 있다. 불가리아의 기름진 농토가 전개된다. 농작물이 아닌 광활한 초지의 들녘 중간에 높은 나무들이 서 있다. 시원한 이색풍경이다.
* 불가리아와 세르비아의 국경 마을
불가리아와 세르비아의 국경 마을의 농장에는 말이 한가로이 풍을 뜯고 있다. 동화 같은 풍경이다. 유럽 여행에서 항상 부러운 정경이다. 두 나라의 경계 구역인데도 고요하고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