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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방놀이
현 기 영
큰 흉년이던 계축년 삼월, 정의고을에 진휼(賑恤)이 실시되어 기민에게 죽사발을 돌리던 날, 같은 시 같은 곳에서 기민창(饑民倉) 색리(色吏) 윤관영(尹寬永)이 부형(釜刑)을 받았다.
그날 오시가 가까워져 붉은 상모 달린 창대를 치켜든 군뢰(軍牢) 열두 명에게 둘러싸여 옥문을 나선 윤관영은 몹시 불안스러웠다. 과연 사또가 약속을 지킬 것인가? 간밤에도 은밀히 사람을 옥으로 보내어 걱정 말라는 다짐을 준 사또였지만, 막상 일이 닥치고 보니 미심쩍은 생각이 앞서는 것이었다. 약속인즉슨 목 자르는 호수(梟首) 대신 부형으로 때워 주겠다는 것이었다. 부형이라면 원래 사창미를 축낸 아전을 끓는 가마솥에 집어넣어 찝쪄 죽이는 잔혹한 증살형이었지만 요즘 와서는 말이 부형이지 그것은 참으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아궁이에다 시늉으로 불때는 척하면 죄인 편에서 죽는 시늉 해보이는 것인데, 그것도 요즈음은 더욱 약식화되어서 솥뚜껑 하나 달랑 갖다 놓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으로 끝나기도 했다. 죄인이 일단 부형을 받으면 사망한 것으로 치부되어 여생을 망인(亡人)으로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어떤 골빈 아전이 삭신이 멀쩡한데 죽은 사람 취급당하며 산송장으로 살겠는가. 모두 가산을 정리해서 타관으로 떠나 버리던 것이었다.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사정은 도무지 다르지 않은가. 효수하라는 어명이 떨어진 판국에 장난지거리나 다름없는 부형으로 과연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을까? 혹시 처음부터 안 되는 일 가지고 호도책을 쓰는 거나 아닐까 하는 의심이 더럭 치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상전과 하전 간에 맺어진 신의라 할지라도 그렇게 헌신짝처럼 저버릴 리가 없어. 바로 그 신의 때문에 자기 죄를 기꺼이 넘겨받아 대신 짊어진 심복 아전의 모가지를 어떻게 벨 수 있는가 말이다. 부형이란 소드방놀이도 따지고 보면 지방 방백이나 수령이 자기 죄를 대신 짊어진 심복 아전을 차마 죽일 수는 없고 해서 창출해 낸 고육지책이 아니던가.
그는 목뼈를 짓누르는 칼머리를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떠받치고 맨발로 종종걸음을 치며 끌려갔다, 목에 걸린 칼 널판에는 큼직한 먹글씨로 환곡미범포죄인(還穀米犯逋罪人)이라고 쓰인 종이때기가 붙어 있고, 그 위에 상투 풀린 머리칼 끝 한 모숨이 와닿고 있었다.
줄곧 칼 널판에 눈을 준 채 걸어가던 그는 별안간 이상한 예감이 들어 흠칫 고개를 쳐들었다. 대관절 형장인 비석거리로 가지 않고 어디로 가는 건가? 그는 어느새 군뢰들에게 이끌려 형장과 정반대방향인 마올 안길 쪽으로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이때 느닷없이 앞장선 고수가 북을 치기 시작했다. 덩덩덩덩. 이게 뭔 짓이여? 구경꾼을 불러모으다니! 진땀이 부쩍 솟고 칼머리를 붙든 양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을 안길을 돌아 사람들을 모으라는 것이 사또의 지시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겨우 솥뚜껑에 앉아 죽는 시늉만 하는 순전히
장난지거리 가지고 저렇게 북까지 쳐가며 설칠 리가 없는 것이다. 기어코 사또가 날 속였나. 어명대로 목을 칠 작정인가? 그렇다. 형장에 구경꾼올 모으라는 것은 어명이었다. 대회군민(大會軍民)하라. 환곡미 이백 석 이상 범포한 자를 적발하교 대회군민하여 효수하라.
유난히 붉은 철릭자락을 펄럭거리며 고수는 신나게 북을 쳐 사람을 모았다. 먼저 부엌강아지같이 때가 꾀죄죄한 조무래기들이 졸졸 뒤따르고, 어른들도 주밋주밋 끼여들기 시작했다. 덩덩덩덩. 사람들은 점점 불어났다. 올챙이같이 배가 팅팅 부은 어린것들을 들쳐업은 아낙네들도 지팡이를 짚은 노파들도 먼발치로 따라 나섰다. 그러나 개들은 따라오지 않는다. 흉년 들어 잡아먹힐까 봐 사람이 두려워진 이 비쩍 야왼 짐승들은 삽짝에 꽁무니를 박은 채 힘없이 캥캥거릴 뿐 따라오지 않는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오자 사람들의 행렬은 길을 가득 메웠다. 가뭄 타는 땅거죽은 사람들이 떼지어 움직이자 마른먼지가 구름같이 일어나 높이 공중에 뻗어 올랐다. 부황 들어 누르께한 얼굴에 휑뎅그레 걸린 눈망울들. 덩덩, 북소리는 그들의 허기진 뱃속을 아프게 울리고 있었다.
윤관영은 비틀거리며 비석거리 복판으로 끌려갔다.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소리지르며 몰려들었다.
“죄인 윤관영 이가 온다!”
“이놈, 윤가야!”
“이놈아, 죽어도 먹은 곡석 게워 놓고 죽어라!”
“저 녀석은 세미(稅米)를 안 냈다고 우리집 정지 솥단지꺼정 떼간 놈이여!” “우리집은 씨나락 오쟁이꺼정 훑어 갔당께.”
“화살로 저놈 양귀때기 뚫어 낯짝을 구경시켜라!”
“대강이를 난장박살혀라!”.
사람들은 무섭게 숨을 헐떡거리며 바싹 죄어들었다. 자칫하다간 형 집행 받기도 전에 몰매 맞아 죽을 판이다. 겁이 덜컥 난 윤관영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앞으로 꾸부렸다.
“물러서라, 물러서라!”
“훤화(喧譁)를 금한다. 훤화를 금한다!”
군뢰들이 창대를 가로 잡고 사람들을 밀쳐 댔다. 칼머리가 몹시 흔들리고 옷고름이 좌르륵 트더졌다.
“물러서라, 물러서라!”
겹겹이 둘러싼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치자 흙먼지 기둥이 치솟아올라 정자나무 꼭대기의 까치둥우리를 찔렀다. 윤관영은 겁에 질린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사람들이 옆으로 물러나며 앞을 트자 다섯 말들이 큰 가마솥 열 개가 꺼멓게 드러났다. 가마솥을 보자 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럴 수가 있나! 솥뚜껑놀이한다고 해놓고선 가마솥을 갖다 놓다니. 어찌 된 일인가? 설마 나를 저 끓는 물에 처넣어 증살시킬 요량은 아닐 테지. 뻘겋게 웃통 벗은 관노 세 명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다. 그런데
호방(戶房) 임춘일(林春日)은 웬일로 나와서 뒷짐지고 부뚜막 주위를 왔다갔다하고 있는 것일까? 형방 관속이 아닌 호방이 미리 나와서 설치는 게 이상스럽다. 더군다나 알 수 없는 일은 증살형이라면 가마솥 하나면 충분할 텐데 솥 열 개가 모두 불을 때고 있는 것이었다. 끓는 물에 튀겨 죽일 죄인이 나말고 또 있는가? 윤관영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자 다시 욕설이 튀어나왔다.
“저놈 보게. 뻔뻔스레 얻다 낯짝 돌려?”
“어찌 된 셈판이여? 저 윤가놈을 죽인다는 거여, 안 죽인다는 거여? 칼춤 추는 망나니도 없고…….”
“글씨, 저 가마솥에 집어넣어 찜쪄 죽일랑가?”
“저건 진휼솥이랑께. 솥 열 개가 모두 죽을 끓인단 말여. 자넨 죽사발 갖곤 나오란 말도 못 들었당가?”
이 말에 윤관영은 귀가 번쩍 틔었다. 죄인을 튀겨 죽일 풀을 끓이는 게 아니라 진휼죽을 쑨다지 않는가.
“혹시나 하고 사발은 갖고 왔지만 기민명부에 못 올랐응께 헛일이여. 니기미, 죽 한 사발 후루룩 마셔 봤으면 참말보! 원이 없겠는디…… 곡기를 입에 댄 지도 달포가 넘는구만.”
“되레 그 편이 낫제. 대관절 요렇게 무도한 진휼이 어디 있당가? 손에 사발을 들고 나오라니, 우리가 걸벵이여, 뭐여? 진휼 그릇은 마땅히 저들이 마련해 놔야지.”
“돌림병이 돈다고 그런다지 않는가. 그릇 하날 여럿이서 쓰면 병이 전염된대여. 엠병, 숭년 들어서 굶기를 밥 먹듯 하는 씨도 서러운디, 숭년 때마다 엠병은 돌아 쌓고…….”
“돌림병이 워디 그것뿐이랑가. 삼남지방에 민란이 일어나 돌림병보다 더 무섭게 퍼진대는 소문이여.”
“숭시는 숭시여. 쯧쯧.”
“하여튼지, 죽사발은 돌림병이 무서워서 그렇다 치더라도 요 꼬라지가 뭔가? 맨땅에 덕석도 안 깔고 주저앉혀서 죽올 멕일 모양인디, 참말로 이럴 수가 있는가? 진휼이란 모름지기 사람 체모가 안 다치게 신중해야 되는 법이여.”
그때까지 바싹 귀기울여 듣고 있던 윤관영은 억눌렀던 한숨을 한꺼번에 몰아쉬었다. 내가 공연히 물색 모르고 노심초사했구나. 아무렴, 사또가 약속을 안 지킬 리가 없지. 부뚜막 한쪽 켠에 쌀을 비워 낸 가마니가 대여섯 장 내던져져 있는 걸 봐도 가마솥에는 진휼죽이 끓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빈 가마띠들 위에 마른미역을 잔뜩 쌓아 놓았는데, 관노 한 놈이 미역을 다발째 버석버석 분질러 삼태기에 옮겨 담고 있었다. 들나물 철이 아닌지라 미역을 구해 온 모양이구나.
“그러면, 진휼허는디 저놈은 뭘 할라고 데려다 놨제?”
“글씨, 모를 일이여.”
“우리가 묵을 전휼곡석은 저놈 배야지에 들어갔응께, 저놈을 가마솥에 집어넣고 달궁달궁 삶아 갖고 국물을 나눠 주겠다는 거 아닌가?”
“쌀 이백 가마 집어먹은 배야지가 어찌 저러콤 홀쭉하디야?”
“윤가놈 혼자 먹었을 리도 만무여, 허긴.”
“다, 한통속이랑께. 보나마나 소드방 위에 앉혀 놓고 죽이는 시늉만 할 것 아녀?”
관노 석산(石山)이가 반물두루마기를 입은 채 명석을 허리에 이고 휘청휘청 걸어나와 땅바닥에 털썩 부렸다. 명석 위에 돗자리를 깔고 병풍을 둘러친다. 사또와 감영에서 파견된 감형관(監刑官)이 앉을 자리인가 보다. 아니다. 감형관이 나타날 리가 없어. 목 베는 효수형이라면 몰라도 겨우 소드방놀이에 불과한 형집행을 지켜보려고 삼십 리 감영길을 달려올 턱이 있겠는가. 하지만 아직은 모를 일이다. 효수형 대신 솥찜질 시늉으로 끝내 줄지 어떨지는 그때 가봐야 안다. 과연 일이 어떻게 되어 갈 것인가?
이제 석산이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땅바닥에다 말뚝을 때려 박고 있었다. 말뚝을 박으면서 이쪽을 핼끔핼끔 쳐다보는 눈치였으나 윤관영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저 녀석도 이번 일 때문에 이틀 밤 꼬박 애먹었지. 한밤중에 달구지 여덟 대분인 사창미 이백 석을 아무도 모르게 사십 리 밖 군경계(君境界)에 있는 나루터까지 운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달구지 소리가 날까 봐 바퀴를 새끼줄로 칭칭 동여매고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 일부러 고생스러운 산길을 택하여 운반했던 것이다. 하여간 아직 나이도 어린데 무척 담이 큰 놈이다. 게다가 사근사근 붙임성도 좋고 하니, 장차 수노(首奴) 자리 한번 할 녀석임에 틀림없으리라.
석산이는 한아름의 말뚝을 다 박은 다음 물바가지를 들고 다니며 땅바닥에 물을 주어 말뚝과 말뚝 사이를 잇는 금올 만들었다. 이렇게 비석거리 바닥을 정방형의 여러 구획으로 나눠 놓자, 호방 임춘일이 앞을 썩 나서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몬저 강(江) 동녘 동네들버텀 나오시오! 가마솥이 모자라서 죽을 두 번에 쑤기로 했응께, 몬저 동녘 동네들버텀 나오시오! 남녀유별 장유유서라. 저편엔 남자분네, 이편엔 여자분네, 어른은 앞에, 아이들은 뒤에 방리(坊里)별로 차례차례 앉으시오!”
자리를 비켜 주기 위해서 군뢰들은 윤관영을 이끌고 부뚜막 한쪽 편으로 옮아갔다. 먼저 진휼을 베풀고 형집행은 뒤로 미룰 모양이었다. 잠시나마 뭇사람들의 시선에서 놓여나자 그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사람들은 금세 윤관영의 존재를 잊어 먹은 듯 저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아마도 아이들의 사방치기 놀이판같이 줄 긋고 말뚝 박은 맨땅에 주저앉아 죽사발을 들이켤 일이 아무래도 꺼림칙한 것이리라. 사람들이 얼른 나오지 않자 다소 의외라는 듯이 엉거주춤 서 있던 임춘일이가 느닷없이 쌍욕을 해댔다.
“넨장, 빌어묵을! 싸게싸게 기어나오라니깐 그러네.”
빌어먹는다는 말에 더 토심(吐心)이 치밀었던지 사람들 틈에서 당장 악다구니가 튀어나왔다.
“머시어? 빌어묵어? 저녀러 자슥 말본새 좀 보게.”
“뭔 소릴 고로콤 빼락빼락 싸지른디야? 아서라, 홑바지에 생똥 쌀라.”
“된급살맞을 녀석! 이 숭년에 삼시 안 거르고 이팝 처먹더니 관격들렸는가?”
“농사도 안 짓는 것들이 이런 숭년살년(凶年殺年)에 되레 호의호식한당께. 우리네야 맨날 저것들에게 밥 널아 똥 사먹는 팔자고 말이여.”
“그렁께 저것들이 우릴 걸벵이 취급하제. 맨땅에 덕석도 안 깔고 말이여.”
곤경에 몰린 임춘일은 대번에 낯빛이 헬쑥해져 가지고 슬금슬금 부뚜막 뒤편으로 몸을 비켰다. 분위기가 어째 심상찮게 돌아가는 듯 하더니 마침 관노들이 부뚜막에 올라 일제히 솥뚜껑을 열어 젖히자 장내는 물 끼얹은 듯 숙연해졌다. 뚜껑 열린 열 개의 가마솥에서 흰 증기기둥이 뭉게구름처럼 왈칵왈칵 치밀어오르고, 물씬거리는 고소한 쌀냄새가 사방으르 퍼져 나갔다. 여기저기 땅바닥에 맥없이 주저앉는 아낙네들이 눈에 띈다. 고소한 쌀냄새에 그만 어지럼증이 일어난 것이리라. 죽솥에다 마른미역을 세 삼태기씩 쏟아 넣고 간장을 부었다. 빈 삼태기와 간장초롱을 함부로 밖에 내던지고 난 다음, 관노들은 긴 작대기로 천천히 죽솥을 휘젓기 시작했다. 홉사 열 척의 거룻배를 느릿느릿 노저어 가는 사공들처럼 보인다. 부뚜막의 열기로 붉어진 그들의 얼굴에 비지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마침내 사람들이 뭣에 홀린 듯 스적스적 앞으로 걸어나와 방리별로 자리잡고 앉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제정신을 차렸던지 임춘일이 부뚜막을 올려다보며 제법 호기 있게 소리친다.
“야들아, 죽이 늘지 않게 싸게싸게 젓거라!”
사또 일행이 도착하는 대로 즉시 진휼이 시작될 모양이다. 진휼이 끝나면 그때는 별수없이 내 차례지. 윤관영은 다시금 가슴이 저릿해 옴을 느꼈다. 혹시 칠성판 멜 상두꾼들이 미리 나와 있지 않나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지만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간밤에 옥으로 찾아온 장남더려, 혹시 구경꾼들에게 봉변당할는지 모르니까 식구들은 일체 형장에 나타나지 말고 상두꾼 넷만 사서 보내라고 신신당부해 두었던 터였다. 부형집행에서는 반드시 칠성판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솥뚜껑 위에 올라갔다 내려온 죄인은 망인 취급을 받으므로 집으로 옮겨 가려면 칠성판에 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해주고 죽어도 거짓 죽는 것이니 아무 걱정 말라고 타일렀지만, 아들놈은 아무래도 뭣인가 불안했던지 옥문 창살을 부여잡고 꺼이꺼이 울던 것이었다. 빌어먹을 자식, 청승맞게 울어 쌓긴. 다 큰 녀석이 저리 눈물이 헤퍼서야 쓰겠나. 열여섯 나이면 좀 의젓할 줄 알아야지. 더군다나 이 흉년만 넘기면 내년 가을에 새각시 볼 놈이 말이여. 멀쩡한 아비를 앞에 두고 맏상제 울음을 울다니, 불효막급한 녀석!
그러나 아들의 울음 소리를 듣자니 윤관영 자신도 처연한 느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방정낮게 운다고 아들놈을 엄하게 꾸짖고 돌려보낸 뒤에도 그는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혀 밤새도록 전전반측 잠을 이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 과연 사또는 약속을 지킬 것인가? 그는 문득 풀무망치에 얻어맞아 무참하게 깨어진 사또의 선정비가 생각나서 정자나무 그늘 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에게 가려서 보이지는 않지만 저 정자나무 밑에는 그 중동만 남은 비석이 부러진 이빨처럼 날카롭게 서슬져 서 있을 것이다. 아니, 벌써 치워 버렸을걸. 하여간 사또가 그 일로 해서 불안한 나머지 병을 칭탁하고 이 자리에 현신하지 않으면 어떡할까?
환곡미 이백 석 이상 범포한 자를 적발하고 대회군민하여 효수하라. 만약 범포자가 있음에도 불문에 부친 수령은 금부로 하여금 나문정죄(拿問定罪)토록 하여 엄중히 다스리겠노라. 삼남지방에 어사들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더니 바로 닷새 전에 이런 공문이 벼락 같이 떨어진 것이었다. 예감이 어째 불길했다. 삼남지방에 민란이 속출하고 있는 때인만큼 이번엔 아무래도 유야무야 끝날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나야 무슨 죄가 있나, 사또가 사창미를 팔아 작전(作錢)해 달라기에 그 명을 좇았을 뿐인데. 이렇게 자위해 보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執는 것이 창고란 창고는 모두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장부상에는 환곡 이백 가마가 남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이른바 허록(虛錄)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사또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이런 궁벽한 산골짝까지 어사가 찾아올 리도 없지만, 와봤대야 별거 아니야. 또 흐지부지 끝나 버릴 일인데 뭐” 하기도 하고, 또 엉뚱하게시리 한술 더 떠서 “들은 바에는 어사가 전사간(前司諫) 심모라는 소문이야. 그 사람이라면 내 잘 알지. 같은 해에 사마시에 등과한 동기생이고, 또 연치도 비슷하거든. 그러니 염려 말고 마을에 관패자(官牌字)를 돌려 어사 주안상에 쏘가리나 잡아 올리도록 하게” 하면서 능청을 떨던 것이다. 그러나 사또는 다른 무엇보다도 감사를 잔뜩 믿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하기야 이백 냥을 상납받았으니 감사가 어련히 알아서 처리해 줄 만도 하지만, 그도 열홀 후 이달 말이면 퇴임할 사람이었다. 게다가 감사 차신도 형식적이긴 하지만 어사의 염찰(廉察) 대상인 바에야 죄인을 두둔하면서까지 일부러 호해를 살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사또의 환곡미 횡령죄가 드러나는 날이면 감사 자신의 입장도 무척 난처해질 터인즉, 감사가 직접 나서서 손써 주리라는 기대도 전혀 무망한 것온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그 이백 냥은 상납이 아니었다. 쥐오줌 얼룩진 병풍 하나를 거금 이백 냥 주고 샀던 것이다. 이달 말에 경직(京職)의 요직으로 영전하는 감사는 외방직 일 년 동안 들어온 값진 선물들을 은밀히 처분하고 있었다. 목민관은 모름지기 청렴해야 하는 법, 목민관의 퇴임길 행장은 초라할수록 보기 좋다. 헌 수레와 비루먹은 야윈 망아지 하나. 수레 속에 서책 이외에 패물, 은식기 따위나 그 지방 토산물이 섞여 있으면 재임시에 토색질했다는 비난올 면치 못하는 법. 도임할 때 말채찍 하나만 들고 갔던 제주목사 김모는 퇴임할 때도 바로 그 말채찍 하나만 달랑 들려 있을 뿐 적수공권이었다지 않은가. 그래서 감사는 거추장스러운 선물들을 돈으로 바꿔치려고 뜻맞는 곳에다 은밀히 사람을 놓아 홍정을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전하는 감사의 신임을 얻어 장차 관운을 터볼까 하코 궁리하던 몇몇 수령들과 지방 좌수들에게는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 다퉈 가며 엄청난 값에 물건을 사들였다. 그래서 윤관영은 사또의 재촉을 받고 두 번째 환곡분급이 있고 나서 사홀 뒤, 사창에 남아있던 이백 가마를 급히 처분하여 사백 냥을 마련해 놓았다.
하여간 곡가가 평년보다 두 배나 뛰어 가마당 두 냥을 호가하는 올해 같은 흉년은 일하기에 안성맞춤의 시기였다. 이백 가마를 팔아 작전한 사백 냥 중에 이백 냥은 쥐오줌 싼 병풍값으로 나가고 남은 이백 냥은 팔아치운 이벼 가마를 내년에 다시 매입하여 창고에 도로 채워 놓을 밑천이었다. 내년까지 흉년 들라는 법은 없올 테니까 내년 수확이 풍작이 아니라 평년작만 되더라도 현시세의 반값인 이백 냥 돈으로 횡령한 이백 가마를 매입하여 빈 창고를 다시 채울 수 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빌미잡아 사또는 비윗살 좋게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창고를 다시 채우는 게 좀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긴 안목으로 따져 보면 사창의 재고량은 조금도 축나는 것이 아니야. 그러니 그건 횡령이랄 것도 없어. 암, 그렇고말고.
하기는 사창이 텅 비어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작폐가 아니었다. 지방 수령이 사창의 미곡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는 것은 이미 관례가 되다시피 해온 터이다. 사창미 중 절반은 춘궁기에 환곡으로 대여해 주고 나머지 절반은 유사시에 군량미로 사용되거나 흉년 들어 진휼미로 분급될 것이므로 결코 손대어서는 안 된다고 국법은 정하고 있지만 어디 그게 한 번이라도 제대로 지켜진 적이 있었더냐. 창고쌀은 일 년만 지나면 냄새나는 묵은쌀이 되게 마련, 아무리 갈무리를 잘 해도 쥐들이 먹어치운 양이 적지 않고, 볕 좋은 날 내다 널기도 하지만 좀벌레 뭉텅이는 여전하여 자연히 변질되고 말았다. 그러니 그걸 일 년 내내 묵혀 두어 썩이느니 차라리 쌀 대신 썩지 않는 돈으로 바꿔 두고, 또 이왕 그럴 바에야 취급자가 다소 이익을 본다고 죄 될 것까지야 없지 않으냐, 하는 것이 수령들이 내심에 품은 변명이었다. 거기에다 사또는 한 가지 더 옹색한 변명을 덧붙였다. 요사이 사창에다 곡식을 비축해 두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소백산맥 근처 고을들이 명화적(明火賊)떼가 출몰하여 사창을 털어 간다고 야단인데, 난리 때를 대비해서 군량미 조로 비축해 둔 곡식을 오히려 바로 그 화적떼의 손아귀에 뻬앗겨서야 될 말이냐. 차라리 창고를 비워 두
게 백 번 낫지, 안 그런가? 이렇게 사또는 염치 좋게 너스레를 별던 것이다.
그러나 사창을 파괴하는 것은 화적떼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민란이 꼬리 물고 일어나 사창과 옥이 파괴되고 아전들은 몰매 맞아 죽었다. 이 정의고을에도 요사이 어째 심상치 않은 기색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 삼남을 뒤덮은 한발에 큰 피해를 입은 정의고을은 한겨울부터 절량농가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큰 흉년이었으나 세곡이 면제된 가구는 이십여 호에 불과했으니, 세곡 내고 소작료 내고 가마당 한 말 닷 되씩 이자를 얹어 환곡을 상환하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평년보다 한 달 앞당겨 두 번에 걸쳐 모두 오백 석 가량의 환곡미가 방출되었으나 그것은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누기나 매한가지였다. 사람들은 끈기 없는 우거지죽을 끓여 먹으며 양곡을 아꼈지만, 두 번째 환곡분급이 있은 지 한 달 열홀드 채 못 된 지금, 쌀독은 거의 바닥나 있었다. 그럴 밖에 더 있는가. 어느 모로 보나 구호대상이 될 수 없는 양반들과 그들이 거느린 가노(家奴)들까지 다수가 진휼명부에 등재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물론 평소에 뇌물을 잘 쓰는 이들에게 사또가 모처럼 생색내 보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번 기회에 이들 지방 토호들이 민간에게 창의(倡義)를 내어 자신의 선정비를 세워 주었으면 하는 것이 사또가 내심에 품은 소망이었으리라. 눈치 빠른 무리들인지라, 이들은 그날 당장 환곡 배급하는 자리에 지켜 섰다가 선정비를 건립한답시고 쌀 한 되씩 가로채 거두어들였던 것이다.
분급과정에서도 차등을 두어 이들에게는 일인당 쌀 여덟 말씩 넉넉하게 주었지만 일반 백성들에게는 고작 세 말씩이었는데, 그것도 쌀이 아니라 수수곡이었다. 특히 영세소작인은 더욱 박대하여 겨우 수수곡 일곱 되였다. 명분인즉슨, 환곡미 상환능력이 모자라는 이들에게 함부로 양곡을 많이 나눠 주었다가는 추수기에 받아 내려면 골탕먹는다는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추수기까지 갈 것도 없이 환곡 수수쌀을 얼마 받아먹자 벌써부터 밤도망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또는 동네별로 다섯 가구씩 묶어 서로 감시하도록 명을 내렸지만 밤도망치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았다. 비럭질이라도 해서 흉년을 넘겨야지 어쩔 것인가. 사람들은 낯이 알려진 본고장에서 빌어먹기는 차마 어려운 일이라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몰래 타관으로 흘러가던 것이다. 이런 판국에 사창미를 처분하라니. 윤관영은, 들나물이 나와서 나물죽이라도 끓여 먹으려면 아직도 달포 반은 더 기다려야 하니, 그 사이가 고비인지라 그간에 남은 사창미를 조금이라도 내놓지 않으면 반드시 큰 말썽이 생길 것이라고 아뢰었다. 그러나 사또는 오히려 화를 벌컥 내면서, “하라면 할 일이지, 무슨 대거리여! 저들이 파종하고 남은 씨보리를 몰래 숨겨 놓고 공연히 엄살떠는 줄을 어째 모르는가”
하면서 어거지를 쓰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야산을 헤매고 다녔다 경칩이 겨우 엊그제 지낸 초봄이라 산나물은커녕 들나물도 안 나올 때였다. 그들은 칡뿌리, 잔대뿌리를 캐고 소나무껍질을 벗겨 먹었다. 십 년생 아래쪽 어린 소나무들은 껍질이 허옇게 벗겨져 죽어 갔다. 윤관영은, 송충이떼처럼 야산을 허옇게 뒤덮고 파먹고 갉아먹으며 이산 저산 옮아 다니는 사람들을 멀찍이 바라보면서, “이러다간 누가 죽어도 몰매 맞아 죽지, 아마” 하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이때를 당하여 사또가 기껏 한다놘 일은 향청(鄕廳)의 유생에게 의뢰하여 먹을 수 있는 구황(救荒)식물 수십 종을 방을 붙여 알리는 일과, 술과 떡 빚는 행위를 엄금하는 것뿐이었다. 그건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어디 먹는 풀 이름을 몰라서 사람들이 매양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있단 말인가. 소리쟁이, 냉이, 고들빼기, 조릿대, 원추리, 고사리, 둥굴레…… 어디 이름 몰라서 못 캐먹는가, 게을러서 굶는가. 숭덕산 밑에 사는 사람들이 말랑말랑한 진흙으로 흙떡을 빚어 먹는다는데, 그 사람들은 산나물 들나물 죽이 좋은 줄 몰라 토식(土食)하고 있단 말인가. 때가 일러 싹도 안 난 것들올 어떻게 캐먹는가.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술과 떡을 빚지 말라니, 도대체 누굴 보고 하는 말인가. 숭덕산 밑의 저 흙떡 해먹는 사람들 두고 떡 며지 말란 말인가. 술쌀, 떡쌀은커녕 쌀독은 바닥난 지 오래고 솥은 동녹이 뻘겋게 앉아 있었다. 양식을 축낸다고 닭, 돼지를 잡아먹은 지도 벌써 오래된 일, 요즘 들어서는 야밤중에 심지어 소 밀도살까지 성행하고 있었다. 아무리 단속하여도 막무가내였다: 사실 밀도살을 단속하기 전에 먼저 나졸들을 풀어 소도둑을 단속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농사꾼이 왜 농우를 잡아먹으랴마는 요사이 부쩍 늘어난 소도둑들에게 빼앗길 바에야 차라리 잡아먹고 말겠다는 것이었다. 뼈가래가 앙상한 개종자들만 사람똥을 받아먹으며 그럭저럭 연명하고 있지만 그것도 이달이 그물기 전에 고깃값이나 하고 죽어 갈 것이다.
사태가 이러한데 술, 떡을 해먹지 말고 양식을 아끼라니. 어린것들이 밥을 너무 처먹어서 저렇게 배부른가. 종아리, 팔은 밴댕이처럼 삐삐 말랐는데 어이없게도 배만 북통같이 불룩 솟아오른 아이들. 모두가 잔대뿌리나 칡뿌리, 나무껍질 따위 거친 음식 때문이었다. 거친 음식을 먹은 어른들은 뒷간에서 노루똥같이 까맣게 타고 딱딱한 똥을 누느라고 노상 기운이 빠지곤 했지만, 아이들에겐 애당초 이런 음식이 맞지 않았다. 설사를 하든가, 아니면 병이 들어 올챙이배처럼 헛배만 터무니없이 부풀어오르는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 어사가 잠행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더니 드디어 환곡미 횡령죄인을 효수하라는 어명이 덜컹 떨어진 것이었다. 이 어명이 떨어진 후 지금까지 닷새 동안 얼마나 조바심을 태우며 지내 왔던가. 요 며칠 사이 사또의 둥과 동기생이라던 어사는 가짜로 밝혀져 그 작자에게 양찬(糧饌)과 주육(酒肉)을 빼앗긴 삼례고을 현감은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었다. 금명간 어사가 객사(客舍)에 들이닥치리라는 소문이 흉흉한 가운데, 한번은 어사가 들어옴직한 북쪽 길목의 큰 소나무 밑동에 사창미 횡령을 고변하는 방이 붙어 있어서 관아를 아연 긴장시킨 일도 있었다. 일이 이쯤 되자 사또도 불안했던지 이웃 고을에 관노들을 보내어 어사의 행적을 염탐시켰다. 그러나 어사의 행방은 아직 묘연했다.
독버섯을 잘못 캐먹고 실성한 자가 제 집에 불을 놓은 일이 발생한 나흘 전부터, 한밤중 동헌 뜰에 돌멩이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당장 수직(守直)하는 군졸의 수효를 늘려 경계하였으나 돌멩이는 여전히 날아들었다. 한밤중 기왓장에 딱 부딪힌 돌멩이가 기왓골을 타고 떼굴떼굴 굴러 내리는 소리에 사또는 번번이 잠을 설치는 모양이었다. 그저께는 누가 풀무망치로 때려부쉈던지 불과 닷새 전에 세워 놓은 사또의 선정비가 중동이 딱 부러져 비신(碑身)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사람들이 진휼미를 내놓으라고 당장 들이닥칠 기미가 역력했다.
사흘 동안 상투 끝을 흔들며 안절부절못하던 사또가 어제 감영에 갔다 오더니 윤관영을 불렀다. 기어코 올 게 오고 말았구나. 윤관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한다?” 하면서 사또는 넌지시 윤관영의 눈치를 살폈다. “참, 낭패로고…… 일이 틀려도 아주 뒤틀리고 말았네.”
태산같이 믿고 있던 감사가 손 털고 일어나 버렸다는 것이었다. 어사는 일체 뇌물이나 향웅 따위는 거절하고 나섰단다. 아무래도 예사로 끝날 일이 아니란다. 이번 어명은 흉흉한 민심을 다소나마 가라앉혀 보려는 안간힘에서 취해진 것인지라, 그냥저냥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별도리가 없지 않은가. 환곡 부정처리한 사백 냥 중에 이백 냥은 이미 감사에게 상납된 것이니 어찌할 수 없다고 치더라도 남은 이백 냥 가지고 어사의 창고점고가 있기 전에 한시바삐 묵은쌀이라도 사들이고 나머지 모자란 것은 빈 가마니를 구해다 쌀겨를 채워넣든지 방책을 구해야 할 것이다. 윤관영이 이렇게 진언하자 사또는 짐짓 노기를 띠고 나무랐다. “누구더러 속임수를 쓰라 이르는가! 공연히 속임수를 쓰다 들키면 그게 또 무슨 망신이여.” 효수하라는 공문이 코빼기에 떨어진 판국에 고작 망신당하는 게 두렵다니 무슨 말씀인가? 대관절 어찌하자는 얘긴가? 윤관영은 가슴을 졸이며 사또를 바라보았다. 사또는 잠시 연죽만 풀썩풀썩 빨며 뜸올 들이더니, “하여간 큰일이여. 어사가 들이닥치기 전에 먼저 선수쳐서 죄인을 다스려 놔야지 어명을 거행하지 않고 어물어물하고 있다간 큰 봉변을 당한다는구먼. 감사영감께서 한시바삐 죄인을 징치하라고 성화가 득달같으셔.” 환곡미 횡령 죄인이 바로 사또 자신인데 누가 누구를 징치하란 말인가? 혹시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속셈이 아닐까? 그러자 펀뜻 문제의 공문내용이 머리에 떠올랐다. 환곡미 이백 석 이상 범포한 자를 적발하고 대회군민하여 효수하라. 만약 범포자가 있음에도 불문에 부친 수령은 금부로 하여금 나문정죄토록 하여 엄중히 다스리겠노라. 역시 그렇구나! 공문에는 수령 자신이 범포자가 되는 경우를 슬쩍 빠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감독불찰의 책임만 진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일이 터지면 매양 당하는 건 아전붙이들뿐이었다. 수령을 도와 일해 준 대가로 얻어먹은 잔전부스러기 몇 푼이 빌미가 되어 일이 닥칠 때마다 상전의 부정을 혼자 뒤집어쓰고 벌을 받게 마련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솥찜질 시늉에 지나지 않는 부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효수형이라니! 안 될 말이다. 당치도 않은 수작이다. 수고했다고 얻어먹은 노랑전 닷 푼이 둔갑해도 분수가 있지, 왜 내가 남의 사백 냥의 죄를 짊어지고 효수되어야 하나. 아무리 미천한 아전붙이일망정 이토록 억울하게 죽올 수는 없다. 기어코 발명(發明)을 해놓고 말리라. 열화 같은 분노가 치밀어올라 목구명올 태웠다.
그렇지만 어디 가서 발명하고 누구에게 고변하랴. 저들의 허물은 서로 감추어 체통을 세워 주는 것이 사대부의 미덕이라던가. 심지어는 재야의 사림(士林)에서도 세도척신이나 지방 방백, 수령보다는 아전의 작폐가 더 혹심하다고 지탄의 소리가 높았다. 환정(環政)의 문란은 전적으로 실무를 담당하는 아전충의 농간 때문이고, 환정 자체는 나무랄데 없이 훌륭한 제도라고 입을 모았다.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 농민의 양곡을 가지고 도로 그 농민들을 상대로 장리놀이를 해먹는 이 조직적인 수탈방법이 훌륭한 제도라는 것이었다. 원래 환자(還子)란 참새나 쥐가 축낸 자연소모량을 보충한다는 명목으로 조금씩 걷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근래에 와서 작은 참새나 쥐가 식성 좋은 사람쥐로 둔갑하여 막대한 양의 곡식을 축내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환곡업무에 편승하여 횡령하거나 장리를 주어 부당이익을 취하며 떼돈을 만지는 수령보다 그 밑에 빌붙어 잔전부스러기나 얻어먹는 아전의 폐막(弊虞)이 더 크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야릇하구나, 야릇하구나. 어째서 큰 부정은 죄가 안 되고 작은 것만 죄가 되나. 부정이란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부정의 탈에서 벗어나는가? 그렇다. 도둑도 좀도둑이 훨씬 도둑답다. 그것이 대담해져서 명화적쯤 되면 이미 도둑의 달은 벗겨지는 법. 부정이란 것도 좀스럽고 쩨쩨한 구석이 있어야 진짜 부정이지, 쥐가슴 태우며 훔쳐 내는 쌀 한 톨, 실 한 가닥은 부정이지만 환곡미 이백 석 횡령은 이미 부정이 아니었다. 그건 백성들의 상상올 훨씬 능가해 버린 것, 손에 찹히지 않는 막연한 추상(抽象)이었다. 그건 이미 부정이 아니라 지체 높은 권세였다. 큭 부정일수록 이렇게 모두 환골(換骨)하고 탈태(脫胎)하여 나라 경영(經營)의 대종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니 재야 사림측이 이런 지방 수령들의 작폐를 몰라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공리공담을 일삼는 책상물림들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 세상물정을 모를 위인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가 지방 수령에게 그치는 일이 아닌 것을 어찌하랴. 팔도 지방수령의 돈줄이 세도척신의 고루거각 안방까지 맥맥이 담고 있는 줄을 왜 모르랴마는, 그들은 그야말로 유구무언이었다. 그럴밖에. 이제나저제나 관직에 부름받는 날을 고대하여 허구한 날 세월만 낚는 저들이 아닌가. 관직은 한정되어 있는데 임육 못 한 과시합격생은 사방천지에 득실거리고 있는 판국에 세도척신의 비위를 건드려서 뭐 하나 이로울 게 없는 것이었다. 설령 어찌어찌하여 미관말직일망정 하나 굴러들어온다 한들, 그간에 쓰여진 엽관운동비가 그 얼마더냐. 그러니 저들이라고 용빼는 재주가 있겠는가. 관직에 오른 다음 그 돈을 몇 배 이를 붙여 회수해야 함이 정한 이치인 바에야 어떻게 저들이 남의 일처럼 수령의 부정을 들먹거리고 시비를 논하겠는가. 알고도 모르는 척, 만만한 아전 무리나 태질칠밖에.
물론 윤관영은 자신이 결백하다고 우기고 싶지는 않았다. 항산(恒産)도 없고 녹봉도 없이 고달픈 대민업무를 맡은 아전직이라 먹고 살려면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종종 있었다. 먹고 살 낙정미를 농민으로부터 좀 넉넉하게 받아 내려고 농간칠 때도 있고 수령의 부정을 도와 잔전 몇 푼 얻어먹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렇지만 문자 그대로 뜰에 떨어진 낙정미(落庭米)만 주워먹고 살라니 아전 입은 사람 입이 아니고 참새 입이던가. 농가 마당에 홀린 낟알이나 쏘아먹고 살라니 말이다. 모름지기 이도(吏道)의 염치를 확립하려면 무엇보다도 낙정미가 아니라 호구지책이 될 만한 법적 녹봉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일이 터지면 언제나 다치는 건 아전뿐이었다. 이번 삼남지방 곳곳에서 일어난 민란에도 몰매 맞아 죽은 것은 아전뿐이었다. 원민(怨民)이 동헌으로 몰려들면 겁먹은 수령들은 으레 자기 심복 아전을 홍분한 군중 속에다 가차없이 내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느 고을 수령은 자신의 결백을 강변하려는 듯이 몸소 매를 들어 이방올 장살(杖殺)했다지 않는가. 아무리 상전과 하전 사이에 맺어진 신의라고 하지만 그렇게 쉽사리 저버릴 수가 있는가. 아, 이 일올 어떡하면 좋단 말이냐. 어디 가서 누구에게 발명한단 말인가. 윤관영의 눈에서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이것은 바로 그저께 일이었다. 효수형 대신 부형을 받기로 몇 번씩이나 사또로부터 다짐을 받고 난 다음 윤관영은 그날로 당장 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다. 일단 부형을 받으면 효수형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부형이 아무리 솥찜질 시늉에 불과한 요식행위라 한들 그것 또한 엄연히 사형의 한 방법일진대, 일단 부형 받고 죽은 사람을 다시 끌어내어 목 벨 수는 없는 게 아니냐. 그리고 명색이 살신속죄(殺身贖罪)하는 것이므로 족척(族戚)에게 범포양곡을 물어내라고 하지도 않는 법이니, 자, 안심하고 솥뚜껑 위에 잠깐 올라갔다 내려오기만 하면 된다. 그러고서 몇 개월만 집에서 쉬고 있거라. 집에 있기가 정 불안하거든 속편하게 아주 타관으로 떠나 버려도 좋지. 나도 어서 이 고을을 떠나야 하겠다. 요즘 아무래도 낌새가 심상치 않거든. 웬 빌어먹을 민란들은 돌림병처럼 시끌시끌 번져 가는지. 어디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아 견딜 수 있나. 이대로 두었다간 저 실성한 것들이 꼭 무슨 일을 저지르고 말지, 아마. 그러니, 부탁하네. 그저 저 미친것들을 살풀이로 달래주는 셈치고 죽는 척 시늉만 해주게. 아무려면 내가 자네의 신의를 저버리겠나. 지금 감사영감을 통해서 물산 좋은 경기지방에 줄을 놓고 있는 중이니 그때가 되면 지체없이 불러 올리겠네.
윤관영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또의 대속물(代贖物)로 점찍혀 버린 지금 밤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섣불리 거절했다간 달리 무슨 죄로 또 옭아맬지 모를 일. 결국 사또의 처분만 바랄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드디어 사또의 행차를 알리는 사령의 긴 군호 소리가 들려왔다.
땅바닥에 자리잡고 앉아 한참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무릎뼈를 우두둑거리며 일어나자 또 한번 마른 먼지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아올랐다. 윤관영도 군뢰의 부축을 받아 일어섰다. 갑사관대 차림의 사또가 좌수별감과 육방 관속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사또를 보자 금세 윤관영의 가슴은 울렁거리며 들떠 올랐다. 한편 반갑기도 하고 한편 두렵기도 한 심정이었다. 설마 사또가 자기 죄를 대신 뒤집어쓴 사람을 제 손으로 잡아죽일 그런 파렴치한온 아닐 테지. 진휼날에 형집행을 같이 몰아서 하는 것도 어찌 생각하면 사또의 깊은 요량에서 우러나온 것 같다. 진휼을 베풀어 놓고 먹을 것에 걸신들려 경황없을 때 형집행을 슬쩍 편승시켜 얼렁뚱땅 끝내 버릴 요량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효수형이 아닌 부형이란 요식행위를 가지고 눈 가리고 아웅할 수 있을까? 저 굶주린 무리들이 죽 한두 사발 먹었다고 사또의 뜻대로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갈까? 저 사람들 중에는 분명 동헌 뜰에 투석질하고 사또의 선정비를 박살낸 작자들이 끼여들어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사또의 위의(威儀)는 예나제나 다름없이 당당했다. 그가 입은 갑사관대는 아무도 범접 못 할 위엄을 화사하게 주위에 퍼뜨렸다. 사또가 병풍 앞에 좌정한 다음 가볍게 손짓하자 서 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흡사 큰바람에 삼밭 쓰러지듯 워석버석 소리를 내며 땅바닥으로 다시 가라앉았다. 윤관영은 적이 마음이 놓였다. 사람들이 어쩌면 저렇게 금방 다소곳해질 수 있을까? 내내 저렇게 고분고분 굴어 준다면 좋으련만. 그래야만 사또가 마음먹은 대로 형집행이 수월하게 끝날 텐데 말이다. 윤관영은 초조한 심정으로 사태의 진전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진휼 시작을 알리는 임춘일의 목청 큰 소리가 터지고 누렇게 부황 든 얼굴들이 다시 땅바닥에서 솟아올랐다. 이번엔 사또도 일어났다. 금방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다시 일어나라니, 무슨 일일까? 그렇지, 국궁배를 시키는구나. 그럼, 진휼이란 모름지기 엄숙해야 하는 법, 자칫 허투루 굴었다간 떼거지 취급한다고 부글부글 불평이 끓어오르면 일이 사뭇 귀찮아진다. 애당초부터 엄중하게 다스려서 법도와 염치를 일깨워 놓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임금이 계신 븍녘올 향해 땅에 엎드려 부복했다. 국궁배(鞠躬拜). 진휼을 베풀어 주신 성은에 감축함이 망극하여이다. “국궁, 배! 홍! 평신!” 하는 구령에 맞춰 사람들은 사배(四拜)하였다.
사람들이 다시 자리에 앉자마자 개다리소반에 받쳐 죽사발 하나가 사또 앞으로 올려졌다. 전에 없던 일이라 사람들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사또를 바라보았다, 사또는 숟갈을 들고 사람들을 둘러보며 참으로 인자한 태깔로 웃어 보인다.
“이것은 손님들을 대접하는 주인의 예의요.”
그 말을 듣자 윤관영은 절로 웃음이 피식 나왔다. 참으로 약은꾀였다. 맨땅에 퍼질러 앉아 죽사발을 들이켤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약이 있을까. 윤관영은 점점 안심이 되면서 마음이 흐뭇해졌다. 사또는 오늘 일을 위하여 저렇게 하나하나 면밀하게 계획하여 두었음이 틀림없었다.
사또가 죽사발을 남김없이 훌훌 들이켜고 나자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젊은이가 발딱 일어나더니 격정에 겨워 울먹거리며 머리를 조아린다.
“사또님! 진휼이 진실로 이렇게 법도 있고 체통이 있을진대, 우리가 얻어먹는다고 어찌 부끄럽다 하겠소.”
젊은이가 손등으로 눈물을 문지르며 자리에 앉자 장내는 더욱 숙연해졌다. 그러나 윤관영은 못 볼 걸 본 것처럼 낯이 화끈 붉어졌다. 도포를 벗어 버리고 헐찍한 중치막으코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그자는 평소에 안면 있는 향교 유생이었던 것이다. 가세가 넉넉한 사족의 자제가 어떻게 진휼부에 올라 있는가? 아니, 저자는 필시 진휼할 때 울어 달라는 사또의 부탁을 받고 기민들 사이에 끼여 있는 것이리라. 하여튼 모든 일이 사또의 뜻대로 착착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것이 윤관영은 여간 기쁘지 않았다.
진휼이 시작되었다. 관노들이 물장군에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죽을 퍼담고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잰걸음으로 옮아 다닌다. 운두에 걸쭉한 죽건더기가 묻어 있는 죽통을 보자 사람들은 대번에 게걸들린 눈빛으로 변했다. 바싹 마른 목구멍으로 군침 넘기는 소리가 딸꾹질처럼 일어날 뿐 장내는 무거운 침묵이 내리깔렸다. 죽사발을 받고서도 쓰다 궂다 말이 없다. 다만 죽을 불어 식히는 소리와 달각거리는 숟갈질 소리만 한데 어울려 봉긋이 부풀어오를 따름이다. 윤관영은 다시 마음이 언짢아진다.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눈깜짝할 사이에 제 몫의 죽을 들이켜고 나서 남의 죽그릇을 힐끗힐끗 훔쳐보는 흰 눈이 두려웠다. 저 걸신들린 눈빛을 식곤증으로 게슴노레해지도록 죽을 양껏 먹여 주어야 하는데…… 죽 한 사발 가지고는 턱도 없지. 겨우 죽 한 사발로 저 열길 깊은 깜깜한 공복을 어찌 채울까. 가마솥이 차례차례 비워지고, 비워진 솥에다 새로 죽을 쑤고 있지만 그건 서서 기다리는 다음 차례의 사람들 몫이었다. 그러면 혹시 건량(乾糧)을 배급할 때 됫박질이나 좀 넉넉하게 주려나?
곧 이어서 마른쌀(건량) 배급이 뒤따랐다. 죽을 먼저 먹은 사람들부터 때묻은 쌀자루를 들고 앞으로 나갔다. 쌀도 보리도 아닌 기장싸래기였다. 그것도 고작 한 됫박. 그러니까 사또는 범포양곡 이백 가마 중에서 기껏해야 열 가마쯤 게워 놓았을까말까 한 걸 가지고 이 진휼을 베풀고 있는 셈이다.
그럭저럭 일차 진휼이 막바지에 다다랐는데 별안간 소동이 일어났다.
“하이고! 저런, 아까운 죽을…….”
“저녀러 자슥, 아까운 죽을 얻다 맥질치는 거여?”
뒤쪽 자리에 죽통을 나르던 관노 한 놈이 어찌 잘못하여 그만 죽을 엎지른 것이었다. 죽 한 통이 질퍽하계 쏟아진 땅바닥에서 더운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사발을 든 사람들이 당장 거기로 깔따구처럼 덤벼들었다. 엎질러진 죽을 퍼담으려는 것이다. 울담처럼 둘러섰던 구경꾼들도 거기로 와르르 무너지면서 덮쳐들었다. 사발 깨지는 소리, 욕지거리, 비명 소리가 낭자하게 터졌다. 이 아우성을 휘감고 황진기둥이 공중에 뻗어 올랐다. 넓은 비석거리는 온통 그쪽으로 급경사지면서 당장 그 회오리바람 속에 휩쓸려 들어갈 기세였다. 다 된 일이 엉뚱한 데서 비끗해 먹은 것이다. 자칫하면 난장판이 될 판이다. 윤관영은 가슴이 후들후들 떨렸다. 사또도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주장(朱杖)을 거머쥔 나졸들이 급히 내달았다. 죽을 쏟은 관노가 붙들려오자 당장 형틀이 마련되고 곤장 한아름이 와르르 쏟아졌다. 곤장 십도에 댓돌에 태질친 개구리처럼 허벅지에 경련을 일으키며 까무러친 관노가 등에 업혀 나가자 장내는 다시 엉거주춤한 침묵이 도사렸다. 사람들의 거친 숨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들려왔다.
이제 비석거리 복판은 관노 한 놈이 쏟아진 죽을 치울 뿐 텅 비워졌다. 참으로 어중간한 어간이었다. 다음 차례인 강 서편 사람들은 엉거주춤 서 있을 뿐 선뜻 나오지 않는다. 이쪽에서 나오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 어찌할 요량일까? 죽이 끓을 때까지 사람들을 저렇게 마냥 세워 놓을 참인가? 이제야 가마솥에 물을 새로 넣고 불을 때기 시작했으니 어느 하세월에 죽이 끓는단 말인가. 저 사람들이 기다리다 못해 또 무슨 소란을 피울지 모를 일이다. 차라리 방리별로 질서있게 앉혀 놓고 기다리게 하는 것이 한결 다스리기에 편할 텐데.
어중간하고 불안한 침묵이 잠시 멈칫멈칫 흘러가더니 사또 앞을 얼쩡거리던 수형리 김진곤(金鎭坤)이가 앞으로 썩 나서며 벼락같이 소리질렀다.
“듣주어라! 죄인 윤관영을 끌어내려라!”
기어코 올 게 오고 말았구나! 윤관영은 숨이 막힐 지경으로 가슴이 바싹 오그라든다. 깊은 공동(空洞)처럼 텅 빈 비석거리 한복판. 벼랑 끝에서 깊은 소(沼)를 굽어보듯 심한 어지럼증이 일어났다. 두 발이 땅에 붙박여 버린 듯 떨어지지 않았다. 어떡헐거나, 어떡헐거나? 군뢰한테 우악스럽게 떠밀린 윤관영은 주춤주춤 걷기 시작하면서 사또를 바라보았다. 원님, 원님, 제발 약속대로만 거행하여 주옵소서. 문득 사또와 눈이 마주쳤다. 윤관영은 혼신을 다하여 사또의 눈길에 동동 매달렸다. 제발, 제발……그러자 즉시 답이 왔다. 사또는 가만히 머리를 주억거려 보이는 것이었다. 오냐, 오냐. 사또의 걱정 말라고 넌지시 전해 오는 고갯짓을 보자, 윤관영은 천야만야 가라앉았던 가슴이 다시금 봉긋이 떠올랐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공연히 걱정을 했구먼. 아무려면 사또가 금석의 맹약을 저버릴까. 형집행을 앞당겨 거행하는 것도 다 나를 위해서 요량한 것이 틀림없지. 아무렴. 진휼을 다 끝낸 다음에 별도로 격식 차려서 거행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안한 구석이 없지 않아. 진휼이 끝나서 더 이상 얻어먹어 볼 것도 없고 동냥자루를 더 채울 것도 없어지면 혹시 저 사람들이 그때 가서 돌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고, 어서 가자.
윤관영은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한복판으로 나아가 거적때기 위에 무릎을 꿇었다. 약속대로 부형으로 집행되는가 보다. 석산이가 가마솥에서 솥뚜껑 하나를 벗겨 오자 형집행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왔다. 덩덩덩덩. 그런데 웬걸, 북소리는 흡사 걸궁패의 허튼장단처럼 흥겹게 들리지 않는가. 윤관영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제, 요것이 소드방놀이것다. 죽이 익을라몬 아직도 멀었고 그냥 내처 기다리기도 하 심심한께, 벌어묵을, 심심풀이삼아 소드방놀이나 한판 놀아 볼거나? 요놈의 놀이 내력 들어 볼라치면 오리(汚吏)는 쓸어 내도 있고 일소해도 있어. 몰아내도 있고 추방해도 있어. 뿌리뽑아도 있고 근절해도 있어. 자, 그러니, 어쩔거나? 빌어묵을, 아주 꼬르륵 증발시켜 뿌려야제. 펄펄 끓는 가마솥에 달궁달궁 삶아 내어 아주 씨알머리를 죽여야제. 고 생각 한번 장히 좋았으나, 허허, 누가 누굴 죽일꼬? 누가 누굴 벌줄거나? 내 죄를 대신 업은 놈을 어찌 삶아 죽여? 넨장, 별수없네. 진퇴양난에 고육지책을 쓰는디 아궁이에 불을 빼고 식은불을 때것다. 시늉불을 때것다. 에라, 그것도 번거롭네. 소드방 하나 달랑 놓고 올라라 해라. 엄살 한번 되게 피고 죽는 시늉 하라 하것다. 허허, 요렇게 솥찜질은 시늉만 남고 오리징치(汚吏徵治)는 껍질만 남고 상징(象徵)만 남아 허구한 날 아무 말썽 없이 전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덩덩 덩지 덩지.
덩덩 덩지 덩지…….
다시 한번 북소리가 울리자 군뢰 두 명이 달려들어 양옆에서 윤관영을 잡아일으켰다. 열댓 발짝 앞에 있는 솥뚜껑을 바라보며 막 걷기 시작하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야트막하게 들려왔다. 가슴이 섬뜩했다. 뭘까? 가래 끓는 소리 같기도 하고 먼 우레 소리 같기도 한 저 소리가. 그 소리는 그런데 한 발짝씩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주춤주춤 커지는 듯싶더니, 솥뚜껑 앞에 당도하자 별안간 무섭게 커져 올랐다. 우우우―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아우성 소리가 우지끈 두 발로 일어선 것이다. 형집행을 떡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이제 막 두루마리를 펴고 죄목을 낭독하려던 수형리 김진곤이 칼침 맞은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양옆에서 윤관영올 붙들고 있던 군뢰 두 명도 제풀에 손을 놓고 옆으로 주춤 물러선다. 흩어졌던 나졸들이 삽시간에 병풍 속으로 몰려들어 사또의 둘레를 겹겹이 에워싸 호위한다.
복판에는 댕그렇게 윤관영 혼자뿐이었다.
사나운 짐승 목소리로 카랑카랑 울부짖던 사람들은 이제 몰이꾼같이 숟갈로 빈 사발을 두들기고 발을 구르면서 복판의 윤관영을 무섭게 몰아붙였다. 장내는 온통 흙먼지에 횝싸여 뿌옇게 들떠 올랐다.
문득 사기그릇 하나가 날아들어 목에 걸린 칼 밑동에 부딪혀 박살이 났다. 윤관영이 흠짓 놀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자 뒤미처 돌과 사발이 비 오듯 날아들었다. 윤관영이 외마디 비명도 없이 모로 픽 쓰러진 다음에도 돌팔매질은 한참 계속되었다. 솥뚜껑만 혼자 살아서 쩽겅쩽겅 미친 듯 비명을 올리고 있었다.
소요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거기서 끝이 났다. 내친김에 사또에게 대들거나 아니면 뿗불이 흩어져 도망치거나 하지도 않고 사람들은 그 자리에 그냥 병신스럽게 우두커니 서 있었다. 윤관영이가 너무 창졸간에 죽어서 허망스러웠던가? 맥없이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복판에 수북이 쌓인 돌무더기와 깨진 사금파리들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던 그들은 이윽고 모두 땅에 엎드려 대죄(待罪)하였다.
어라, 이게 웬 떡이여. 숨막히게 되우 놀라 있던 사또는 눈이 더욱 호동그래졌다. 그러면 그렇지. 무지한 것들이 감히 어느 앞이라고 대들 거냐. 제 주인을 무는 개가 어디 있어. 자, 그럼, 수창자(首倡者)가 따로 있을 턱이 없는 이 우발적인 난동을 어찌 다스린다? 누가 죄인을 처벌했든지 간에 아무튼 일단 끝나 버린 일, 공연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지. 더구나 저것들이 죄를 뉘우친다고 엎드려 대죄하고 있는데…… 형집행권이 잠시 농락당한 것이 서운하다면 서운하지만 저 실성한 것들이 그만하면 실컷 화풀이도 됐을 테니 오히려 잘된 일이다. 하여튼 죽은 놈만 블쌍하구나. 쯧쯧…….
사또는 잠시 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다음, 남은 진휼을 마무리짓기 위해 피 묻은 돌무더기와 윤관영의 시신을 치우라고 명했다.
(『순이삼촌』, 창작과비평사, 19θ4)
2016년 4월 22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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