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사지
양변산 동남쪽 기슭의 옛 연당리 마을에 있는 흥덕사지는 '85년에 한국토지공사에서 시행 하던 운천지구 택지개발사업 중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공사를 중단하고 청주대학교 박물 관에 의하여 발굴된 고사지이다.
사찰의 창건 연대와 규모는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백운화상초 록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의 간기에 고려 우왕 3년 (1377)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하였음을 명기(明記)하고 있는데, 이것은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78년이나 앞선 것으로 1972년 "세계도서의 해"에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된 것이다.
그러나 흥덕사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던 중 발굴조사 결과 출토된 청동금구와 청동불발 에 "서원부 흥덕사"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 이곳이 바로 흥덕사지임을 입증하게 된 것 이다.
발굴 결과 남북 일직선 상에 중문과 탑, 금강, 강당이 배치되고 주위에 회랑이 돌아간 신 라의 전통양식인 단탑가랍식(單塔伽藍式)으로 밝혀졌으며, "대중삼년(大中三年)" 명와(銘 瓦)가 출토되어, 신라 문성왕 11년(849년)에 이미 이곳에 불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시 사하고 있다.
발굴 완료 후 사적 제315호로 지정되어 1987년부터 1991년까지 5개년에 걸쳐 43억원을 투입하여
12,400평의 부지위에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발달과정을 살필 수 있는 고인쇄박물관 과 정면 5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금당(金堂)과 3층 석탑(三層石塔)을 복원하고, 1992.3.17에 개관하였다.
흥덕사지 입구
고 인쇄 박물관
직지의 명칭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책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이 책의 이름을 줄여서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주최한 ’책’ 전시회에 「직지심경」이라 소개되면서 한때 잘못 불리기도 하였다. 불교에서 ’경(經)’은 불교경전을 뜻하는 것이다. 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불경이 아니므로 「직지심경」은 잘못된 표현이다. 여기에서는 판심제(版心題 )에 나타나는 가장 간략한 책의 이름으로 「직지」라고 부른다. 직지의 편저자 「직지」를 편저한 백운화상의 호는 백운이고, 법명은 경한(景閑, 1298∼1374)이다. 백운은 1298년(충열왕 24)에 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하였다. 1351년(충정왕 3, 54세) 5월에 중국 호주의 석옥(石屋)선사에게 불법을 구하였다. 석옥선사로부터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을 전해 받고 불도를 닦아, 1353년(공민왕 2, 56세) 정월에 마음을 밝혀 불도를 체득하였다. 또한 백운은 인도의 고승 지공화상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 후에 황해도 해주의 안국사와 신광사 등에서 주지를 지내고, 후진 양성에 힘쓰다 1372년(공민왕 21, 75세)에 성불산 성불사에서 145가(家)의 법어를 가려 상·하 두권으로 「직지」를 편집하여 저술하였으며, 1374년(공민왕 23, 77세)에 여주 취암사에서 입적(入寂)하셨다. 「직지」는 1901년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1865∼1935)이 저술한 「조선서지」보유판에 수록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실물과 내용은 확인되지 않다가 1972년 "세계 도서의 해(International Book Year)"를 기념하기 위한 ’책’ 전시회에 출품됨으로써 세계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 「직지」의 간행 장소인 청주 흥덕사도 1985년 청주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됨으로써 오늘날의 청주 흥덕구 운천동 866번지임이 확인되었다. 이를 계기로 1986년 충청북도 주최로 열린 <청주 흥덕사지 학술회의>를 통해 흥덕사가 학계에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1992년에는 흥덕사 터의 정비와 함께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개관하였다.
2000년에는 「직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2000청주인쇄출판박람회"를 개최하였으며,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직지」를 등재시킴으로써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공인 받게 되었다.
흥덕사
흥덕사는 어느 때, 누구에 의해서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흥덕사의 자취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기록도 전혀 없다. 흥덕사지의 발굴을 통해서 흥덕사의 대략적인 규모는 파악되었으나, 흥덕사가 화재로 없어지게 된 이유 등은 전혀 알 길이 없다. 옛 흥덕사지였던 청주시 운천동 866번지 일대는 현재 사적지 제315호로 지정되어 있고 40,990㎡의 부지에 80㎡(24평)의 금당이 복원되어 있으며, 청주고인쇄박물관이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흥덕사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직지」 때문이었다. 흥덕사는 일찍이 1377(고려 우왕 3)년에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직지」를 비롯하여 「자비도량참법집해」 등을 금속활자로 간행해낸 우리나라 금속활자인쇄술의 중흥지로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직지」가 흥덕사에서 간행되어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에 등재됨으로써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된 세계기록유산인 만큼, 흥덕사는 「직지」의 요람으로써 세계 금속활자인쇄사에 영원히 남게될 것이다. 「직지」의 위상이 곧 흥덕사의 위상이며, 흥덕사의 위상이 곧 「직지」의 위상에 직결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한국의 고인쇄출판문화에 대한 식견을 높이고 세계 문화예술에 대한 안목을 계발해 나갈 때, 세계기록유산 「직지」와 흥덕사의 위대한 금속활자인쇄술은 세계의 도처에서 살아 숨쉬게 될 것이다
흥덕사지 회랑터
흥덕사지 남쪽 회랑터
흥덕사지 삼층석탑
흥덕사지 금당
흥덕사지 회랑터
흥덕사지 발굴 석재들
흥덕사지 금당내 동종
흥덕사지 금당내 철조여래좌상
흥덕사지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 청주 IC→ 8㎞, 중부고속도로 서청주 IC→5㎞를 직진하여 청주 예술의 전당 앞 운천동으로 직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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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특히 초등생이 있는 집이라면 고인쇄박물관 꼭 한 번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볼만하더군요.
철조여래좌상,,,어디서 본듯한~~~ 그래도 흥덕사지는 갔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