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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묵상글 (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 나도 평온하고 세상도 평온하도록. 등 )
*** 9:06, 다시 게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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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나도 평온하고 세상도 평온하도록
우리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미래와 관련하여 기도해야 하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치 지도자들과 특히 대통령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우선 무관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하는 짓을 보면 눈 감아 버리고 입을 다물고 싶습니다.
꼴 보기 싫고 입 더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이지요.
두 번째로 기도하는 것은 걱정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사도 걱정하지 말고 기도해야겠지만
국가 대사는 더더욱 걱정에 머물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기도하는 것은 분노와 비난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인 특히 내가 반대하는 정당의 정치인을 볼 때
분노하게 되고 비판과 비난으로 일관하기 쉬운데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이런 부정 에너지를 사랑 에너지로 바꿀 필요가 있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살만한 공동체로 바꿀 것입니다.
이 얘기를 길게 한 것은 얼마 전 꽤 연세 있으신 한 분이
요즘 정치와 나라 상황 때문에 괴롭다고,
이 나이에 정치 돌아가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마음 평화 잃지 말아야 하는데 평화가 없고 괴롭다고 토로하신 데다
오늘 바오로 사도가 이렇게 권고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여 우리가 아주
신심 깊고 품위 있게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지금 우리나라는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앞을 향해 달리지 않고 뒤를 향해 그렇게 달립니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은 거의 모두 싸움꾼인 것 같고,
그래서 싸움만 하지 발전적이고 생산적이지 않으며,
사람들은 먹고사는 것도 힘들어 허덕이는데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 뽑은 것 아니잖아요?
이러라고 우리가 뽑은 것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두 가지로 잘 대처해야 합니다.
다음 선거에선 현명하게 투표하고 지금 당장은 기도하는 것으로.
우리는 정당인이 되지 말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당인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정당에 속하고 그 정당을 따르지
하느님 나라에 속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신앙적인 자존심을 잃지 말고 그깟 정당에 몸을 담그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세상을 심판하고 복음화해야 할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며
그러나 흙탕물 속의 연꽃처럼 세상에 복음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향기를 풍기고 다른 한편 복음으로 세상을 심판하는데
그 심판이 선거에서 복음적인 투표로 나타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미 우리가 뽑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걱정이나 하고,
욕하거나 분노하지 말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평온하도록 그래서
우리가 아주 신심 깊고 품위 있게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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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 7,7)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에서 이방인을 위한 최초의 이적으로서,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지설교를 마치시고 가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을 때, 병들은 노예를 위한 백인대장의 청을 전하는 유다인 원로들의 말을 듣고 백인대장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백인대장의 친구들이 와서 백인대장의 말을 이렇게 전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루카 7,6-8)
이 말씀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군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 7,9)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실 자격이 없는” 이방인임을 알았으며, 또한 자신이 군사력을 지닌 백인대장이지만 왕에게 속해 있듯이, “상관 밑에 매인 사람”, 자신이 누구에 속해 있는 지를 철저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깨달음, 곧 자신의 부족과 한계와 무능함과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 존재인가를 깨달은 데서 한편으로는 ‘겸손’이 다른 한편으로는 ‘믿음’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 ‘밑에 매인 사람’인지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신에게 매여 있고 속해 있는 종을 소중하게 여길 줄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이 속한 분께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가졌고, 무엇보다도 그분의 말씀에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가 청한 것은 오로지 한 마디의 “말씀”뿐 이었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 7,7)
그는 말씀의 권능을 믿었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시어 은총을 입은’ 성모님처럼, 그도 은총을 입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께 속해 있는 존재임과 우리의 무능과 나약함을! 그러나 그분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존재임을! 그러기에 우리 또한 주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함을! 그리고 주님의 말씀의 권능을 믿고 의탁해야 함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루카 7,8)
주님!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 아래에 있게 하소서!
당신을 믿게 하소서. 제가 아직도 자유롭지 못함은
매여 있어서가 아니라 믿지 못한 까닭입니다.
당신은 속박이 아니라 자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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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그저 말씀만 하소서
한 신자분께서 “저는 기도를 잘 하지 않습니다. 믿음도 부족합니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됩니다. 마음은 간절한 데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도를 하는 대로 들어 주신다면 매달려 보겠는데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에나 성당을 찾는 발바닥 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두고 하는 말씀으로 알아들었습니다. 미사를 봉헌하고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에 급급해하는 자신을 보면서 기도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들은 대로 행함으로써 하느님을 체험하라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루의 끝맺음에 서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후회하며 부끄러워합니다. ‘내일은 잘해야지’하고 결심하고서는 아무 의식도 없이 또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러고서도 굳센 믿음의 소유자가 되길 바라고 있으니 뻔뻔합니다.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는데 제가 그렇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내가 살아있는 한,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간절한 청은 물론 불평 불만하면서 뱉어버린 말도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투덜대지 않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원하고 바라는 때가 아니라 당신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때에 당신의 뜻을 이루어 주십니다. 따라서 오늘 이루어 주실 수도 있고, 내일 이루어 주실 수도 있으며 내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 이루어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저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백인대장은 자기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예수님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청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의심하는 고향 사람들 앞에서는 별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지만(마태13,58), 믿음으로 준비된 사람에게는 당신 말씀의 능력이 살아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믿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구원을 주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다만 내가 믿음으로 준비되지 못한 탓으로 그 능력을 체험하지 못할 뿐입니다. 주님의 능력은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습니다. 그러니 믿고 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구하는 바대로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얻게 될 것입니다. 백인대장의 겸손으로 기도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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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신문 홍보를 위해서 LA 성 아그네스 성당에 다녀왔습니다. 신문 홍보를 다닐 때면 늘 막막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걱정도 되고, 신문 신청은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걱정도 됩니다. 감사할 일은 신문 홍보를 다니면서 그냥 돌아온 적은 없었습니다. 많을 때는 50명이 넘었고, 적어도 20명은 넘었습니다. 신부님들께서 신문을 구독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잠자리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신문을 이미 보시는 분들 중에는 ‘후원금’을 내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비행기로 왕복 12시간이 걸리는 LA 신문 홍보지만 신청서를 들고 돌아오는 마음은 넉넉합니다. 신문 홍보를 하고 있는데 샌프란치스코에서 온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9시간을 운전해서 왔다고 합니다. 매일 올리는 묵상 글을 보았다고 합니다. LA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고, 기쁜 마음으로 먼 길을 달려왔다고 합니다. 미사가 있고, 홍보로 바쁜 중이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저를 위해서 먼 길을 오셨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저는 10분 정도 만나기 위해서 9시간 넘게 운전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믿음에 대해서 조금 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2005년 겨울입니다. 토론토에서 연수할 때입니다. 방을 새롭게 구하면서 짐을 옮겨줄 봉사자를 기다렸습니다. 약속시간은 8시였습니다. 30분을 기다리다가 택시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봉사자는 오는 길에 사고가 있어서 늦었다고 합니다. 제가 성격이 급하기도 하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기에 출발했지만 나중에 사정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안했습니다. 이왕 기다리는 것 조금 더 기다려도 될 것인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였습니다. 저를 믿어준 고마운 일도 있었습니다. 1988년 겨울입니다. 제게 예비자 교리를 배웠던 학생이 취직을 했습니다. 첫 월급을 탄다고 제게 식사를 대접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학다방에서 5시에 만나자고 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천마산엘 가면서 그만 약속시간을 잊어버렸습니다. 저녁이 되어서야 약속이 생각났고, 너무 늦은 시간이었지만 약속장소로 갔습니다. 다방 한 구석에서 저를 기다리던 학생을 보았습니다. 선한 눈망울에 웃으면서 제가 올 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고맙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능력이나 업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기도와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열심히 하였지만 더러는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강한 사람들을 칭찬하셨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믿음은 간절함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는 ‘백인대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몰랐지만 마음은 이미 하느님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삶은 참된 신앙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을 위해서 회당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병든 종을 내치지 않고 정성껏 돌보아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한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은 피부색, 신분, 학식에 따라서 커지는 것’이 아님을 늘 말씀하셨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시로페니키아 여인, 백인대장’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분들의 믿음을 칭찬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 해도, 교만과 욕심에 사로잡혀있으면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야단치셨습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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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민동규 다니엘 신부님.
찬미 예수님
백인대장이라는 직위는 대단한 직위입니다. 백 명의 병사를 거느리는 것은 물론이고 종이나 노예를 거느립니다. 아주 오래전 시대는 군인이나 무인이 사회적 권력의 윗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런 백인대장이 주님께 청합니다. 명령을 하거나 거만을 떨만한데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욱이 청하는 이유가 자기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서 아닙니다. 자기 노예를 위해서 청합니다. 노예는 버리거나 죽으면 그뿐입니다. 재산 목록에 들어가는 물건이었습니다.
여기까지도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인데 주님 앞에서 엄청난 믿음을 보여줍니다.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을 낫게 해주십시오.’
로마인이 아닌 이방인인 주님 앞에서 로마인인 백인대장은 믿음을 고백합니다. 이 모습에 주님께서도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종은 나았습니다.
백인대장의 믿음이 부럽습니다. 말씀 한마디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모든 삶의 문제를 백인대장처럼 기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금방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드러냅니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도는 너무 많은 수식어나 많은 말들로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한마디만으로도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믿음의 한마디로 오늘을 시작해볼까요?
믿습니다. 당신의 한마디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멘.
고객 감동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있던 작은 식당에
손님들이 바글바글합니다.
그곳에서 음식을 먹은 모든 사람은
모두 감동을 입으로 말합니다.
어느 공연장에
관객이 바글바글합니다.
그곳에서 공연을 즐긴 사람들은
모두 감동을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어느 교회에
그리스도인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왜일까요?
무엇 때문일까요?
어떤 감동이 그 안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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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어떤 아이가 방학 때 하루 종일 게임만 했던 적이 있다고 말해주더군요. 부모님께서 마침 친척 집에 가신 날, 이날은 후회 없이 게임만 하겠다고 다짐했고 실제로 화장실 갈 때와 주문 배달한 피자 먹을 때 말고는 게임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원 없이 게임했으니 이제 게임하기 싫겠다.”라고 말했더니, “아직도 부족해요.”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게임만 하는 것이 몸에 좋을 리가 없겠지요. 이 사실을 아이도 잘 알고 있었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게임을 끊기는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동물보다 품위 있는 이유는 욕구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품위를 버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납니다. 욕구를 계속 표출해서 자기에게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아픔과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아마 대표적인 예가 ‘묻지마 범죄’가 아닐까 싶습니다.
욕구 조절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가 품위를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간이기에 어렵더라도 반드시 욕구를 참아낼 수 있다는 자기에 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욕구를 조절하면서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할 때, 주님의 멋진 자녀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욕구를 참아내서 자기 품위를 높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백인대장의 품위를 오늘 복음에서 봅니다. 로마의 백인대장인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예수님께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편하고 쉬운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백인대장은 쉬워 보이는 방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주님의 입장도 헤아립니다. 유다인이 이방인의 집 안으로 들오면 불결해진다는 율법을 알고서, 당신 말씀만으로도 자기 노예의 병이 고쳐질 것이라는 믿음을 보입니다. 이 믿음이 너무나 대단하기에 우리는 영성체 때에 그의 말을 인용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굳은 믿음이 없다면 그러한 행동을 전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백인대장의 품위였고 그 품위가 사랑하는 노예의 병을 고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품위는 어떤가요? 그냥 품위는 치워 버리고 자기 멋대로 살려고 하는 편하고 쉬운 길만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 상태에서는 주님께서 절대로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표징도 볼 수 없으며,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사랑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동물처럼 본능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그 본능을 조절하면서 품위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품위를 지키면서 멋진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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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언: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마라. ‘최선’이라는 말은 내 자신의 노력이 나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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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예수님파 사람
-참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이념전쟁”
이번주 ‘시사IN’ 주간지 표지 제목 글자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이 이념전쟁에 이념중독입니다. 극단의 이념에 중독되어 광신(狂信)이 되면 약이, 답이 없습니다. 정말 무서운 악령같은 것이 이념입니다. 좌우 이념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념전쟁으로 한반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요! 그래서 어제 집무실 태극기 아래 내 신원의식을 분명히 하는 글귀를 써서 붙였습니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수도사제이다.”
이념중독을 치유해주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때로 이념전쟁의 전쟁터와도 같은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양진영 서로간의 증오와 멸시의 댓글들이 난무합니다. 똑같은 사실에도 반응은 얼마나 극단인지 인간성 상실을 목도합니다. 참으로 냉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이념이 아닌 민생이, 복음적 삶이 참으로 절실하고 절박합니다. 참으로 이념에 중독되지 않은 참사람이, 예수님파 참 복음의 사람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참고로 오늘 강론 제목은 “예수님파 사람-참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입니다.
바로 14년전 2009년도에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이 그런 분입니다. 추기경이기 이전에 참사람, 예수님파 복음의 사람 김수환 추기경이었습니다. 어제 뜻밖에 14년전 당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의 추도사를 읽으며 공감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을 나누고 싶습니다.
-“추기경님은 젊은 시절부터 간직하신 한가지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복음을 말로써 가르치는 것보다 그들 곁에서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사시는 것이었습니다. 주교직에 오르고 추기경직에 오르시며 그것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당신 영혼의 밑바닥에서 누구보다도 당신 자신에게 큰 빚을 지고 사셨습니다. 연세가 높아지신 다음에는 도저히 그 빚을 갚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요모양 요꼴’이라 탄식하시고, 당신 자신에게 ‘바보야!’라고 읊으셨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추기경님, 저는 믿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어서 오너라, 내 사랑하는 바보야! 그만하면 다 이루었다!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평안히 가십시오, 추기경님. 그리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시면 당신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애틋하게 사랑하셨던 우리 백성을 위하여 주님께 간구하여 주십시오. 많이 아껴주셨던 강우일이 인사 올립니다. 2009년 2월20일”-
김수환 추기경님은 좌우 이념에 물들지 않은 참 복음의 사람이자 참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푸른 하늘에 흰구름 같은 영혼이었습니다. 저에게 자주 사진을 보내 주는 분의 사진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한결같이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있는 사진들입니다. 부단히 푸른 하늘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순수한 영혼입니다. 어제는 예전 글이 생각나 답글로 대신했습니다.
“하늘
보면
마음은
훨훨 날아
흰구름 되네!”
또 하나 이런 글도 생각납니다.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
푸른 하늘 안
흰구름이 되어
임의 품안에 노니는 이”
분명 참사람, 복음의 예수님파 사람, 김수환 추기경님 영혼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반갑게도 이런 순수한 영혼을, 겸손한 믿음의 참사람을 만나니 바로 이방인 백인대장입니다. 예수님의 평지설교후 등장하는 첫 인물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순수한 영혼의 참사람은 종파를 초월하여 곳곳에 있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을 찾고 만나는 과정 전체에서 백인대장의 고결한 인품이 잘 드러납니다. 감동적인 것은 자기가 아끼던 노예가 죽어갈 때 자존심을 내려 놓고 겸손히 주님을 찾는 모습입니다. 백인대장의 진면목을 증언하는 유다인 원로들입니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백인대장의 진면목의 절정은 다음 대목입니다. 주님께서 백인대장의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백인대장은 친구들을 보내어 주님의 방문을 만류합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주십시오.”
바로 여기서 유래된 우리가 이 거룩한 미사전례중 주님의 성체를 모실 때,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이어 백인대장의 믿음에 감탄하시는 예수님이요 곧장 백인대장 노예는 치유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일이 없다.”
참으로 이런 진실하고 겸손한 믿음이 주님은 물론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도 바로 이런 믿음의 표현입니다. 겸손한 믿음의 사람, 백인대장이야말로 참 예수님파 사람이라 할 수 있겠고 이후 그의 예수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도 날로 깊어졌을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가 좋은 깨우침을 줍니다. 참으로 예수님파 참사람이 되어 신심깊고 품위있게,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물론이고 모두를 위해 기도하라는 권고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모두를 위한 끊임없는 감사 기도와 더불어 그리스도 예수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예수님파 참사람의 실현입니다. 이어지는 바오로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파 바오로의 신원의식과 이어 우리를 위한 기도의 권고에 감동하게 됩니다.
“나는 이 증거의 선포자요 사도로,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과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할 뿐,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남자들이 성을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 없이, 어디서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이념에 중독되지 않고 참사람 예수님파로 살기위해 진실하고 항구한 기도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백인대장같은 겸손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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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내 곁에 당신 아니 계셔도>
내 곁에
당신 아니 계셔도
당신께서
계시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마냥 좋습니다
내 곁에
당신 아니 계셔도
당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마냥 좋습니다
내 곁에
당신 아니 계셔도
당신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마냥 좋습니다
내 곁에
당신 아니 계셔도
당신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마냥 좋습니다
내 곁에
당신 아니 계셔도
당신께서
계시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마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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