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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사람 될라 카노?
전 호준
“아이고! 이노마 자슥아! 언제 사람 될라고 그 카노?” 사춘기 부모님 속을 썩일 때 어머님이 부지깽이를 들고 금방이라도 후려칠 듯 노려보시며 긴 한숨으로 치시던 고함이다.
고교 시절 주말 오후 대구에서 나온 친구들과 어울려 빙계 계곡에 벚꽃놀이 갔다가 패싸움이 벌어졌다. 폭행치상으로 난생처음 은팔찌라는 쇠고랑을 차고 경찰서에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
피해자들은 이웃 면에 사는 휴가 나온 해병과 그 친구들이다. 술에 취해 해병대 제복을 과시하며 행패를 부리다 낭패를 본 것이다. 운동을 한다고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대던 시절, 유도며 태권도 유단자인 동생들에 당한 것이다.
지역 깡패들로 착각한 의성경찰서 형사들의 새벽 같은 기습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나는 교복 차림으로 친구 다섯 명이 줄줄이 잡혀가 의성경찰서 유치장 구경을 했다.
잡고 보니, 철대가리 없는 학생들이라 경찰서장의 선처와 중재로 부모님들이 피해자와 부모들 앞에 손이 닳도록 빌고 빌어 겨우 합의로 풀려났다.
궁핍한 살림살이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적잖은 합의금을 물어야 했으니, 그 애타시던 마음은 어떡하셨을까? 집에 돌아온 나을 보고 애가 타서 하시는 어머님의 잔소리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사내자식이 남에게 얻어맞고 들어오는 꼴은 못 본다고 은연중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식의 잘못을 혼쭐을 내시면서도 은근히 아이들의 기를 꺾지 않으시려 했다. 오랜 세월 외세에 억압과 기득권층의 횡포에 시달려온 우리네 선조들의 가슴에 쌓인 체질화된 오기(傲氣) 같은 것이리라.
그래도 뭘 잘했다고 어머니의 소낙비 잔소리에 반항 아닌 반항심이 생겨 사람보고 또 사람이 되라고 다그치니 어쩌라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단군 신화에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되기 위해 100일 동안 근신한 신화를 들먹이며 나도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되겠다고 동굴에 들어가 버릴까? 애가 마르는 어머님께 되레 부아를 돋우며 뛰쳐나갔든 철없던 때가 있었다.
사춘기는 고사하고 고희의 세월에도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정답이 없다. 쑥과 마늘은 먹지 않더라도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사람답게 살아 보려는 생각은 늘 하지만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는 게 어떤 것인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지금도 철이 들고 있는 중인지 모르겠다.
사람이란 어원은 살아감의 뜻으로 곧 하나의 생명체로 살아 있다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인 것 같다. 영혼이 깃든 생명체란 뜻을 내포한 듯하다. 일본어 히토(사람)는 영혼(靈魂)이 머무는 곳 즉 영혼이 머무는 사물이라는 견해가 있다. 사람이 다른 생명체와 다른 것은 영적(靈的)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생각의 범주에 따라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 그래서 사람을 영적(靈的)인 동물, 즉 만물의 영장(靈長)이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사람은 어디에 살며 소속이나 계층에 따라 부르는 호칭과 소견이 달라진다.
가령 새로 시집온 사람은 새사람, 자기 부인은 집사람 또는 안사람이라 한다. 또한, 연령이나 촌수에 따라 손윗사람 손아랫사람으로도 나누기도 한다. 하는 행실에 따라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특별한 지위나 능력에 따라 특별한 사람 보통사람으로, 사람의 지위와 됨됨이 인품과 능력에 따라 난사람 숫사람 큰사람 홑사람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사는 지역에 따라 서울사람 부산사람 도시사람 촌사람 산사람 섬사람이라 칭하기도 한다. 사람이 아니면서도 사람 소리를 듣는 눈사람 같은 사람도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주어진 자리에서 본분을 지키며 살아갈 때 진정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경구처럼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보편적 행복을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 동시에 사람값을 해야 할 의무도 부여받는다.
또한 어두(語頭)에 사람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사람값 사람대우 사람대접이라는 말이다. 사람값을 하는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 사람대우 사람 취급을 말하는 것은 소위 인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자주 회자되는 가진 자와 힘 있는 자의 갑질 논란, 어린 여중생들의 상상을 초월한 또래 폭행 사건 등, 날로 흉포(凶暴)해지는 각종 범죄, 인륜을 망각한 패륜 행동 이런 사람을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 하지 않고 짐승만도 못한 년, 놈이라 한다. 인권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한국구비문학 대계에 실린 조선조 청백리 오리(梧里) 이원익 대감의 일화다.
이원익이 한번은 부인과 함께 처가를 가는데 배를 타게 되었다. 배에는 이원익 부부와 한량 한 사람과 중이 타고 있었다. 강 가운데 이르렀을 때 중이 부인을 해치려고 했다. 그때 부인은 한량에게 소리를 질렀다. “한량 오라버니 저기 저 기러기를 좀 보십시오” 한량은 급히 활을 겨누었다.
중도 이 말을 듣고 목을 빼 기러기가 어디 있나 하고 바라보는데, 부인이 잽싸게 “한량 오라버니, 저기 저 기러기!” 하자 부인이 가르치는 손가락 쪽을 향해 얼떨결에 활을 쏘았다. 화살은 중의 모가지를 맞췄다. 그래서 위기를 모면했다.
드디어 나루에 닿아 이원익 부부는 이쪽으로 한량은 저쪽 길로 가게 되었다. 한참을 가는데 한량이 쫓아와서는 이원익에게 다짜고짜로 말을 걸었다. “대체 사람의 목숨을 건져 주었으면 감사를 표시해야 하지요”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이원익은 대꾸하기를 “그대는 대장이 될 줄 알았는데 소장밖에 못 되겠구려, 무릇 사람이 착한 일을 하는데 보상을 바라서가 아닌데 너는 보상을 바라느냐?” 오히려 꾸짖었다고 한다. 사람의 행동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짐작한 이원익의 일화다.
만일 보상을 바라고 선행을 한다면 그것은 선행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름난 청백리의 단호한 기상이 엿보이는 이야기지만, 인터넷에서 인용한 글이라 그 진위는 차치하고 아리송한 내용이다. 은의를 입었으면 당연히 감사함을 표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닐는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면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생각은 항상 전쟁에 임하는 병사같이 마음은 언제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심정으로 매사에 조심하고 행동 하나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남을 이롭게 하진 못해도 최소한의 해는 끼치지 말아야 한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윤동주 선생의 시가 떠오른다. 광풍에 뿌리째 나무가 흔들려도 괴로움을 모르는 사람이 어느 세월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갈까? 이 두둑한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지 염라대왕에게 연줄이라도 대고 사는 것일까? 지옥과 천국은 차치하고라도 제멋대로 살아온 세월에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언제 어디에서 들은 듯한 수수께끼가 생각난다. 사람 인자(人.人.人.人.人) 다섯 자를 나열한 뜻풀이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라는 말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정말이지 언제 사람이 될라 카노!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017. 9. 9
첫댓글 정도는 다르지만 젊은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사람되라고 걱정 안 끼친 자식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런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모두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사람됨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람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늘 사람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돌아볼 때가 많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또 돌아봅니다. 언제쯤 사람이 될 수 있을지.....저는 아마도 눈 감을 때쯤 되어야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사람인 자 다섯 자를 놓고 풀이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려 봅니다.
어릴적 부모님의 걱정을 끼친적이 많았습니다. 이제 부모가 되어보니 이해가 됩니다.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앞으로의 생활도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살겠습니디. 잘 읽었습니다.
글 앞 부분의 이야기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언제! 사람이 될라 카노? 하시며 부지깽이 들고 나무라시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모습일 수 있습니다. 호된 나무람이 있어 사람답게 살려 노력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눈 사람과 같이 겉모습만 사람같다고 진정한 사람다운 사람이 아니겠지요. 어머님의 꾸지람이 지당하시네요. 저도 팔뚝에 힘이 오를때 편싸움을 하다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진적이 있었답니다. 지금도 저는 내가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을 가질 때가 있답니다.
사람됨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어릴적 내 잘못에 대하여 침묵으로 지켜 봐 주시던 어머니 생각에 후회가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모두 인품있는 훌륭한 사람들 입니다. 반 평생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였으며 퇴직한 후에도 뒤돌아 보며 좋은글 쓰며 원로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철없던 시절 한두번 잘못도 하고 반성도 하며 살아가는것이 보통사람들이라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어릴때는 부모님의 나무람이 많았습니다. 아니 시골에 살면 집안 어른분들의 꾸지람도 들어야 했지요. 집안 어른께 혼이나도 부모님들도 어른이 가르치는 교육으로 받아들이고 살았습니다. 어머님의 부지깽이 교육이 이나라 산업역군이되고 그 가르침이 이토록 단기간에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보다 더 많이 학교교육을 받은 우리세대가 부모님 만큼이나 인성교육을 자식들에게 잘 가르쳤나 한 번 자문해 보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전선생님 어렸을 때 유순한 어린이였을 것으로 짐작 했는데 그렿지가 않군요. 어려서 부모 속 안 썩인 사람이 없겠지요. 그렇게 하면서 크는 것이지요. 부모님의 마음을 되새겨보게 합니다. 오리 이원익 대감에 관한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사람답게 사는길"이 어떤 길인지를 생각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