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천금같은 때를 허비하는 자가 되지 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은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한 번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청춘시대도 한 번밖에 없는 전무후무한 시기입니다. 청춘시대가 또 올 수 있어요? 장년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아무리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한번 맞이한 시대가 언제 다시 오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뜻을 중심삼고 여러분을 보면 무책임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먹고 자고 일하는 일상생활 속에서 기쁨과 슬픔 등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살고 있습니까? 나를 중심삼고 사는 것 같지만 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여러분의 생활이 여러분을 탄식하게 하는 요건은 될망정 살려주는 절대적인 요건은 못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은 어느 때 이러한 운명과 인연을 맺고 판가리를 지을 것인가? 정성을 들일 때는 어느누구도 그 정성의 기준을 메울 수 없고 그것을 떼어내려야 떼어 낼 수 없는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도의 길, 혹은 선의 길에서 정성들이던 기준을 능가하는 그 이상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한 정성의 기준이 없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 입장에서 볼 때, 참부모라는 이름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참된 자식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그 자식도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참부모 참자식의 입장에서 정성의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참된 기준을 중심삼고 참된 생애노정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그것은 지나가다가 생각나면 멈추어서 처리하고 다시 지나가는 그런 자리에서가 아니라 긴장되고 심각한 자리에서 처리해 가야 할 생애노정입니다.
역사상에 참부모로서 정성들이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요구하고 온 세계가 요구하고 역사가 요구하는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를 생각해 볼 때, 그것은 편안히 쉬면서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자리에서는 세울 수 없습니다.
온 정성을 다하여도 부족할 정성을 어떻게 다 채우느냐? 이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족함을 느끼고, 정성을 다하고 나서도 하늘 앞에 자기 면모를 내세울 때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자기 스스로를 완전히 포용해 가지고 생애를 이끌고 나가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마저도 내 일신에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을 완전히 실천하지 못하겠거든 하나님의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잘해 놓고도 부끄러움으로 머리를 숙일 수 있고, 못하였을 때에는 머리를 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 의식까지도 망각해 버릴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그런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을 보면, 무슨 일을 조금만 잘했으면 자기를 인정 해주지 않느니 어쩌니 하며 불평들을 하는데, 자기가 해 놓고서도 오히려 칭찬받을까봐 부끄러워해야 됩니다. 칭찬을 받을까봐 부끄러워하고, 또 칭찬받으면 무한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칭찬받는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더더욱 가중된 동정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고 온 정성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직선을 그으면 아름답게 그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생애노정을 엮어 가야 합니다.
앞으로 선생님에게 선생님 자신의 일생을 중심삼고 어떻게 정성들여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생애의 3분의 2. 혹은 4분의 3을 지내버린 나이 많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머지 3분의 1. 또는 4분의 1의 생애를 중심삼고 이러한 거룩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기가 막힐 문제입니다.
흘러간 생애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때를 거의 다 잃어버린 늙은 몸으로 어떻게 혈기왕성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과 지성을 다하여 어느누구보다도 굳게 맹세하며 나갈 수 있는 때를 맞을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기력이 쇠진하고 소망이 흐려진 자리에서 비로소 충성을 해야 하는 입장인 것을 원통하게 여기면서 하루를 천년으로 대신하겠다는 마음으로 남은 생애를 헌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부족함을 느껴야 할 나이 많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과연 그런 마음으로 살아 왔느냐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청춘시절을 참되고 의의 있게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생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일생에 해야 할 모든 정성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시련과 고통을 기쁨으로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국가가 당하는 시련 고통, 세계가 당하는 시련 고통이 찾아와도 부딪쳐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소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그 시련 고통을 내가 참음으로써 소화하겠다고 몸부림치며 정성들이는 청년 남녀가 얼마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한탄하는 길을 그들 역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여러분의 젊은 시절의 한 때라는 것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때라는 것입니다. 민족을 대신할 수 있고, 세계를 대신할 수 있고, 자연적인 환경의 인연을 갖추고 있는 한 때밖에 없는 청춘시대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