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한 묵상을 많이 하면 할수록 우리는 평안함과 안정감을 누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대신 인간의 열심을 끊임없이 요구하게 되면 우리는 절망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할 계획을 변경한 것에 대해서 경솔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행동을 악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바울과 교인들 사이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신뢰를 깨뜨렸습니다. 바울은 이런 오해와 비난을 해명해야 했습니다.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오해는 상대방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을 오해한 것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바울이 처음에 계획했던 것은 마게도냐를 방문하면서 고린도교회를 두 번 방문해서 그들에게 더 많은 유익을 주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그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이 계획을 변경한 동기를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대적들의 비난을 듣고 바울을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경솔하고 이기적인 동기로 계획을 변경했다고 여겼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자신이 계획을 변경하게 된 동기를 진심을 담아 설명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로서 성도들의 성숙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쏟아지는 성도들의 비난은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정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인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이 납득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온유한 태도로 자신의 동기를 해명했습니다.
자신의 동기를 일일이 해명해야 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구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왜 나를 오해하느냐’라며 상대를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내려놓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자기를 정당하게 해명하는 것은 곧 사랑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사도 바울을 오해해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오해하는 내용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자신은 양심과 하나님 앞에서 거리낌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이든지 이기적인 유익을 구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했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증인이 되어 주실 것이라고 확언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이유 없이 비난받고 오해받을 때 낙심하거나 분노하기에 앞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을 보고 오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받는 온갖 오해와 비난을 거두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오해를 받으면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왜 자신을 비난하는지 이유를 찾으려는 데 온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난하는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대신 하나님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보호하시고 피할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뜻하지 않게 사람들에게 오해와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억울한 마음에 분노와 험한 말들을 쏟아놓거나, 내 편을 들어 상대방을 함께 비난할 사람들을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문제만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오로지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지혜를 구하십시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일수록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