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79]바보도 여러 가지…‘쭈대’를 아시나요?
# 동네 이장님(1955년생. 2년 선배로 서울시청에서 정년퇴직한 후 7년 전 귀향)이 ‘동네가리’(1년에 한번 백중이나 말복날 하는 마을 정기총회)하는데, 아줌마들(우리는 ‘아가씨’라고 부른다)이 애썼다며 개인돈으로 점심을 한번 사겠단다. 임실 옥정호근처 어느 식당. 무지개송어회를 중자로 3개나 시켜놓았다며, '청년'들도 초대했다. 불감청고소원. 청년들은 나를 비롯한 나의 꾀복쟁이 2명. 그리고 5살, 6살 연상의 형님. 모두 10명.
“아니, 올해 복숭아농사 망쳤는데, 어떻게 비싼 밥을 산다고 그려?” “밥값은 안나왔어도 내년에 하늘이 알아주겠지” 시골에서의 농담은 보통 이렇다. 내가 이 동네 막내청년이다. 흐흐. ‘늙은 아가씨’은 56년생이 두 명. 70대중반이 한 명. 남편들이 ‘깨 팔아간 지(세상을 뜬지)’ 수삼년이기에 애칭으로 괜찮은 것같다. 아무튼 송어회 중자가 65000원이니, 신경을 상당히 쓴 것이다.
56년생 청년 한 명이 더 있는데, 이 친구는 5년 전인가 처가동네로 귀향을 했다. 이삼년 나와 죽이 잘 맞아 ‘늦깎이친구’로 거의 붙어살다시피 했고, 또 5년선배와도 3년 동안 형아우로 절친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무 일도 없었는데’ 고개를 돌렸다. 나뿐만 아니라 동네 누구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본인이 나와 그 형님과 놀지 않으려 작정한데야 어떻게 하랴. 한동네에서 불편하기 짝이 없어도, 우리는 그냥 감수할 수밖에. 이장이 여러 번 물어봤다고 한다. 이유를 대지 않으니 알 수는 없어도, 내가 이웃마을 어느 후배와 어울리는 게 싫어서라고 했다던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사회적 동물(관계)’을 포기한 그 친구는 ‘백퍼’ 실패한 귀농-귀촌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얘기를 꺼내는 까닭은, 식사하여 이런저런 얘기하던 중 ‘그 친구만 삐치지 않았으면 오늘같은 날 같이 어울리고 얼마나 좋을까?’가 화제였다. 좋은 자리이니 어찌 수삼년 동안 어울린 그 친구가 생각나지 않겠는가? 이때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 사투리인지 방언인지 몰라도 “그놈 쭈대 중의 쭈대 아니야”였다. 아니, 쭈대라니? 언제 듣고 안들었던 말이 내 입에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데 대해, 솔직히 나도 놀랐다. 일동 모두 ‘쭈대’라는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 졸문을 읽는 독자가 있다면 ‘쭈대’라는 말을 아시는가? 아아-, 내가 이제 진짜 촌놈이 다 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40년도 넘게 한번도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했던, 까마득히 잊어먹었던 ‘우리 말’이 내 입에서 나왔을까? 아마도 어머니 배 속에서 들었던 ‘탯말’이 아니었을까?
쭈대가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서론이 길까 궁금하신가? 쭈대는 바보, 멍청이를 뜻하는 우리 동네 표준어이다. 바보를 칭하는 단어(우리의 표준말)는 두 개가 더 있다.‘농판’과 ‘버파’가 그것인데, 모두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소싯적 친구들과 다툴 때, 상대방을 쭈대나 버파, 농판이라고 하면, 끝내 코피가 터져야 끝나는 가장 모욕적인 욕이다. 바보나 멍청이(멍충이), 돌대가리라고 해도 그렇게 화가 나지 않는데, 유독 이 세 단어만 들으면 '니 애비 누구냐?' 라는 욕처럼 난리가 나는 욕이었다. 평생 시골만 지킨 형님들도 ‘쭈대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다’며, 나란 놈을 희한한 듯 쳐다봤다. 사투리(방언) 한 단어에 웃음판이 벌어졌다.
# 그 웃음 끝에, 귀향하여 4년을 살면서 자주 듣는 사투리 중에 ‘어장을 냈다’ ‘어장났다’는 말이 있어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역시 없다. 어장났다는 한마디로 폭싹 망했다, 큰일났다는 뜻이고, 어장을 냈다는 못된 일이나 불합리한 일을 한 사람을 엄청나게 몰아붙였다는 뜻이다. ‘영금을 보였다’라고도 하는데, 다시는 무슨 일을 못벌이도록 크게 혼냈다는 뜻이다.
* 동네마다 ‘법 없이도 살 호인’이 한두 명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고진’이라고 불렀는데, 임실지역 아니고는 쓰지 않는지, 같은 전북인이어도 모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고진은 자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동네일나 남의 일이라면 발 멋고 나서 도와주는 사람, 말하자면 지극히 착한 사람을 일컫는다. 동네(마을)도 조직체인지라 희한하게도 고진이 있는가하면 고진하고 정반대되는 사람도 한둘 있다. 고진의 반대되는 사람을 뭐라 부를까? 흔한 말로 꼴통이고, 저밖에 모르는, 민폐 대장인데도 ‘나몰라라’ 모르쇠로 일관하는, 공동체생활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마땅한 호칭이 생각나지 않는다. 사투리로 해로운 ‘벌걱쟁이(벌레)’인데, 처치방법이 마땅치 않다. 자만 잘 났고, 저만 잘 살면 된다고 우겨대는 데야, 법치국가에서 천하장사인들 무슨 소용이랴. 쉽게 말하면 '우리 대통령'이라고 할까? 쭈대, 농판, 버파, 바보, 멍충이, 머저리, 개나발.
# 아주 옛날이다. 형님이 새 직장동료들을 초대하는 집들이를 하는데,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도, 우리 남원출신 형수가 “섬닷해서 죄송하다”고 했다하여, 집안모임에서 웃음폭탄이 터진 적이 있었다. ‘삼닷하다’ 역시 국어사전에는 ‘비끔’(흔적)도 않는데, (반찬이) 어설프다, (대접이) 소홀하다는 뜻이다.
# 내 막내동생은 충청도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퇴직했는데, 어릴 적 쓰고 들었던 말들을 여지껏 적재적소에 어쩌면 그렇게 기 막히게 잘 사용하는지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예를 들면, 좁은 방에서 앉을 때 옆사람에게 “요리 뽀짝 와!”하는데 ‘뽀짝’을 수십년만에 들어보는 말이라, 식구들이 웃음보를 터트리며 즐거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너도나도 잊고 있었던 진짜 사투리들을 하나씩 기억해 들춰내는 ‘대회’까지 열렸으니, 이 아니 즐거운 일이었던가.
# 정말 이상하고 희한한 일이다. 말 한 마디에 눈물이 날 정도로 울고웃는, 재미난 일들이 벌어지다니? 하여, 결론은 이렇다. 사투리든, 방언이든, 탯말이든, 어릴 적부터 듣고 쓰고 했던 말들은, 초등학교 시절 소풍 때 하던 ‘보물찾기’처럼 ‘보물寶物 그 자체’라고. 그 보물, 잊어버리면 ‘죽음’이라고. 사투리나 방언 그리고 탯말은 아름답다고. 나는 죽어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고.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