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첫해 겨울에 나는 군불 때다가 외가에
불을 냈다.
외할머니와 삼촌이 이모 결혼식 참석차 부산에
가시면서 군불때는 요령을 가르쳐 주셨다.
할머니와 같이쓰는 안방은 고랭이가 깊어서 불때기
상그랍다고 건너편 삼촌방에서 자라고 하셨다.
혼자자기 무섭다고 이웃에 사는 반아이 하나를 붙여
주셨는데 군불때는 실력은 도찐개찐 이었다.
아궁이에 장작을 밀어넣고 짚단으로 불쏘시개를
했는데 짚이 지혼자 버러럭 타버려서 불이 잘 안붙었다.
더구나 삼촌방 아궁이는 고랭이가 얕고 솥단지도
안걸려 있어서 바람에 불길이 밖으러 솟구쳤다.
눈물 콧물 흘리며 아궁이만 들여다 보고 열심히 짚을
밀어넣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훤해지고 뜨뜻해서
보니..
세상에 불이 옆에 쌓아둔 짚단 더미에 붙어서 너울너울 타올랐다.
(외가는 터도 넓고 집채도 큰편 이었는데 그때까지
초가지붕 이었다)
반아이랑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불길이 초가 지붕에
붙어서야 이웃 사람들이 발견하고 쫒아와서 불을 껐다.
바람이 바깥으로 불어서 안방쪽은 안탄게 그나마
다행이라고들 했다.
반아이는 저거집에 가버리고 나는 안방에서 이불을
있는대로 깔고덮고 누웠는데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동네 사람들도 경황이 없어서 미처 내생각을 못했는지
나중에야 누가 데리러 와서 그집에 가서 잤다.
뒷날 연락을 받고 혼자 먼저 온 외삼촌 한테 머리통을
쥐어 박히고 교육을 단디 받았다.
지서에 가서 고구마 구워 먹다가 그랬다고 하라고.
미성년자 한테 군불 운운 했다간 어른들이 걸리는
모양 이었다.
지서에 참고인으로 불려가서 삼촌이 시키는 대로
위증을 했다.
그리하여 그 겨울에 외가는 기와 올리는 공사를 했다.
나중에 외할머니가 오셔서 알았는데 고방 항아리에
그득하던 밀가루를 누가 반너머 퍼갔더라고 했다.
그 와중에 누가 그랬는지..할머니는 짐작을 하시는
눈치셨다.
지금의 내 나이도 안되셨던 외할머니는 내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른다..고. 입버릇 처럼 하시더니
30년을 더 사시고 97세에 돌아가셨다.
회갑때부터 장만해둔 수의가 두벌이나 삮아서
마지막 가시는길에 새옷을 입혀서 보내 드렸다고 했다.
자식들이 사다준 옷들이 이층장에 그득 한데도 편하고
만만타고 늘 허름한 옷만 고집 하시던 분이 왠 수의 욕심을 그렇게 내셨는지..
할머니 돌아가시고 버린거나 다름없이 방치됐던
외가를 누가 헐값에 사서 새집을 짓는 중이라고 진작에 소식을 들었다.
행정상으로 인근 도시에 편입된 덕이라면 덕일거다.
건조한 겨울이 되니 여기저기 불소식이 잦네요
오랜만에 안부도 전할겸 옛 이야기 떠올려 봤어요.
저는 요즘 눈 건강상 카페 활동을 자제하고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첫댓글
좀 안보이신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눈이 아직도...
빨리 쾌차 하시기를 바랍니다.
해솔정님의 이야기는
항상 외할머니댁에서 일어난,
듣고 보면 재미난 이야기 입니다.
불이 난 것은 큰일 날 뻔한 일이라서
재밌다고는 할 수 없으나...
군불 땐 일이,
고구마 구워 먹는 일로 끝났으니
다행한 일입니다.
해솔정님 이야기는
항상 구수한 이야기입니다.^^
콩꽃님 안녕 하세요
제눈은 돌이킬순 없고 오래 볼려면
아끼는수밖에 없다니 저도 답답합니다.
언제가 되든 또 뵈올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수필방 님들의 베풀어주신 정은 잊지 않겠습니다.
간강을 기원합니다.
저도 눈 때문에 고생을 하기에
해솔정님 눈의 불편함이
꼭 회복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요즘은 당근을 자주 먹습니다.
감사 합니다.
그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윤정님도 관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글 곳곳에 겨울 연기 냄새와 외가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 있네요.
그때의 두려움과 따뜻함, 꾸중과 정,
모든 장면이 군불처럼 서서히 피어오릅니다.
불길은 한순간이었지만
그 속에서 흘러간 세월과 사람의 마음은 오래 남습니다.
초가가 기와로 바뀌던 풍경도,
할머니의 말투와 고집도,
지금 떠올리면 다 삶의 결이 되어 있지요.
읽다 보니 제 어린 시절의 외가도
살며시 문을 열고 따라 나오는 듯했습니다.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눈 건강도 꼭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참 정감가는 댓글주셔 감사합니다
자랄때 잠시 생활했던 시골 풍경이
오래도록 남아 있답니다.
옛기억 떠올려 주시고 그 시절을 공감해주셔
거듭 감사 드립니다.
시인이신가 본데? 수필방에서 좋은글로
정나눔 하시길 바랍니다^^
어린 해솔정 님이 얼마나
놀랐을까 싶네요.
불길은 보기만 해도 넘 무섭지요.
어쩜 외가는 해정님 덕에 기와집으로~ㅎ
웃으면 안되는데요.
불조심은 늘 잊지 말아야 하는데
가끔 가스렌지에 빨래 올려놓고
깜빡할 때가 있곤 해요.
힘든 눈으로 올려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시고요~♡
그러게 불도 무섭고 물도 무섭지요
기와올릴 생각은 진작했나 보던데
그덕에 시기가 빨라진거지요 ㅎ
늘 감사해요
우짜든지 이베리아님도 건강 하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옛날 시골에선 끼니걱정 하며 사는 사람도
있었다보니 그런일도 있었겠지요.
집을 홀라당 태울판이었는데 그깢 밀가루가
대수였을까요 ㅎ
저의 이종동생 남편이 백내장 수술하는데
6개월을 기다려야 해서 한국에 와서 수술하고
갔다더만 케나다는 그런게 파이네요
암튼 큰탈 없기를 바랍니다.
"겨울밤 따스했던 군불처럼, 그 시절의 기억이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불을 지피던 소중한 손길이 가족의 사랑으로 오래도록 이어지길 기원합니다.""사랑과 추억이 담긴 그 불씨가 삶의 온기이자 빛이 되었네요.""할머니의 삶과 가족의 이야기가 마음 깊이 울림을 줍니다.""어린 시절의 불안과 따뜻함이 교차하는 그날의 기억, 오래오래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말씀 감사합니다
휴머니스트 단석님 내내 평안하세요 ^^
어릴 때 살던 집 담이 판자 담이었어요.
군데군데 나무 옹이가 빠진 구멍이
있었는데 하루는 그 구멍에 신문을
말아넣고 불 붙이는 장난을 하다가
판자에 불이 붙어 냅다 도망친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할머니가 얼른 물을 부어
금방 꺼졌다더군요.
지금도 그 기억 떠올리면 가슴이
펄뜩거리는데... 해솔정님은 어린 나이에
얼마나 놀랐을까요. ㅎ
맘자리 소년의 호기심어린 장난에 큰일낼뻔
했군요 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해도네님 관심 가져주셔 감사해요
제눈은 좀 복잡한 케이스라 쉽지않나 봐요
망막에 귄위있다는 안과의한테 다시 정밀검사
했는데 해줄게 없다고 그나마 오래 볼려면
관리 잘하라는 냉정한 말만 들었어요.
저의 외삼촌이 그해 군대서 제대하고 돌아와서
취업 하기전 고향집에 머물땐데 일을 벌였으니
황망 했겠지요.
저도 요즘 바뻐서 이제야 카페 들어와 봤어요.^^
그래도 불이 잡혀서 천만다행이예요.
얼마나 놀라셨어요ㅠㅠ
평생 잊지 못 할 추억이네요.
늘 활기차게 사시는 나무랑님.
그 열정 높이 삽니다. 건강도 잘 챙기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