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4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3,1-9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여러분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나는 여러분에게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3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4 어떤 이는 “나는 바오로 편이다.” 하고
어떤 이는 “나는 아폴로 편이다.” 하고 있으니,
여러분을 속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5 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6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7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8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9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병고를 통해서도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병고가 찾아와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분들, 얼마나 고통이 크십니까? 얼마나 답답하십니까? 때로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저도 언젠가 크게 한번 아파봐서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를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우선 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 내가 약해졌다는 것으로 인해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몸이 아프다 보니 평범하고 정상적인 생활도 힘들어지고 자연스럽게 열외가 잦아집니다. 기력이 떨어지고 자주 위급상황에 빠지다 보니 자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종국에 가서는 병고를 하루하루 상해가는 내 몰골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합니다. 투병하느라 내가 계획했던 그 모든 것이 올스톱 됩니다. 가장 괴로운 일은 아무래도 세상과 인간으로부터의 점점 소외되는 것입니다.
이런 환우들에게 있어 가장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치유일 것입니다. 죽어가는 환자들, 불치병 환자들에게 치유란 단어처럼 반가운 단어가 또 있을까요?
이런 이유로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신경 쓰셨던 부분이 바로 치유 활동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시급한 필요성에 우선적으로 응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수제자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마침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시몬의 장모! 그 둘 사이의 관계가 참으로 특별합니다.
시몬의 장모 입장에서 예수님은 미운 사람이었습니다. 사위 시몬을 빼앗아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딸을 생과부가 되게 한 원인 제공자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사위 시몬과 자신을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으니 장모 입장에서 열불나게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에게 가까이 다가가시어 특별한 작업을 하십니다. 열을 꾸짖으십니다. 참으로 기이한 모습입니다. 그러자 즉시 열이 가셨습니다. 시몬의 장모는 즉시 일어났습니다.
그 누구도 어떻게 하지 못하던 펄펄 끓는 열까지 호통치시고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메시아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시몬의 장모는 조금 전까지 꼴 보기조차 싫은 예수님이었는데 즉시 태도가 바뀝니다. 정성껏 예수님의 시중을 들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장모의 열병뿐만 아니라 억울했던 마음까지 한꺼번에 치유하신 것입니다.
시몬의 장모 열병 치유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환자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고 정성껏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그들을 오랜 병고로부터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있어 가장 시급한 필요성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시는 주님께 우리의 아픈 환부를 가감 없이 보여드리면 좋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오랜 병고를 치유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께로 아가면 좋겠습니다.
끔찍한 병고 한가운데에서 매일 부르짖고 견뎌내면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병고를 통해서도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너그럽게 만들고, 단단한 각오를 하고, 죽기 살기로 병고와 맞서 싸워 이겨내면서, 그 병고를 통해 하느님의 승리와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더 이상 어찌할 바 없는 상황 앞에서는, 그런 힘겨운 상황 앞에서도 그런 끔찍한 현실조차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부단히 주님 자비와 섭리의 손길에 하루하루를 맡기는 것, 그것 역시 하느님을 증거하는 일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첫댓글 병고를 통해서도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려야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