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축하연에 가서 단상에 올라가서 하객의 의무를(?) 다하면 바로 식당에 내려가 식사를 하라고 권유한다.
식사는 술도 고기도 탄산수는 없지만 음식은 얼마든지 먹을 수가 있다.
또 식후에는 껍질을 깐 코코넛을 비닐봉지에 담아 선물로 주기도 한다.
이는 신부 측에서 주는 선물인데 하객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환영하는 의미이다.
또 코코넛은 다산과 풍요와 번영의 상징으로 신혼부부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리기를 기원해 달라는 의미도 있다
그리고 이는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전통적인 관습이다.
예전엔 구경꾼으로 결혼식(실은 리셉션) 구경을 몇 번 갔었는데 구경 왔다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고 가라고 해서 공짜 밥을 먹은 적도 있다.
얼굴이 희거나 자기들보다 나을 듯한 외국인은 잔치에 와서 먹고 가도 손해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여기는 식권도 없고 통제를 하지 않으니 옷만 제대로 갖춰 입으면 누구나 가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손님이 많을수록 좋아하는 느낌이다.
또 행사 중에 주변에 서성이는 이들을 쫓아내지도 않고 불러서 먹이기도 하는 인심이다.
인도가 가난한 나라라고 하지만 음식에 대해서는 관대한 이들이다.
식탁은 한 줄에 30명 정도 앉는 길 식탁인데 두루마기 긴 흰 종이와 비닐을 깔고는 바나나 껍질 위에 음식을 주는데 고기 한 점 없는 베지 음식이다.
신성한 결혼식이기에 그날에 고기는 안 먹는 이들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하객에게 고기 못 먹인 게 미안하면 집안 사정 따라 결혼식 몇일 후에 손님을 다시 초대한다, 푸짐한 고기 요리를 준비하고서...
그런데 거기서 고기 한 점 없어도 약 10가지 베지 음식이 나오는데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밥을 거절하고도 정말 배부르고 맛있게 먹었다.
200명 이상이 동시에 앉을듯한 식당인데도 손님이 계속 밀려드니 거기서 시간을 보내며 먹을 수도 없다.
긴 식탁에 앉아 거의 동시에 음식을 받은 한 줄 손님은 어느 줄이든 30분 내로 식사를 끝내는데 끝나자마자 바로 한 줄 식탁을 치운다.
남은 음식과 함께 거기 깔린 비닐을 둘둘 말아버리니 설거지고 청소도 필요 없이 간단하다.
시골인데 남자 직원만 아니라 여자 청년들 열댓 명도 음식을 나르고 배분한다.
정식 직원은 아니고 아르바이트생 같은데 여자들이 결혼식 식당에서 써빙하는 것을 처음 본다. 그것도 시골인데...
음식을 배분하는 이들에게 모두 ‘Thank you’를 연발했더니 기분 좋게 반응한다.
그걸 본 한 직원은 필요한 것이 더 없냐며 몇 번이나 와서는 묻는다.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왔더니 10대 여자아이 둘이서 다가오더니 셀피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한다.
우리 같은 외국인을 처음 보는 모양이다.
자기 아빠들보다 훨씬 더 늙은 외국인인데 뭐 볼 게 있다고...
시골로 가도 허스름한 복장만 아니고 온 피부색이 약간 흰 외국인에게는 호감이 있는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들은 이야기는 그날 찾아온 손님은 1,200명, 이제껏 가본 리셉션에 평균이 3-400명, 많아야 600명이었는데 결혼식에 1,200명은 처음이다.
뻑적지근한 결혼식을 마치고는 몇 년간 숟가락, 아니 여기서는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할 정도로 결혼식 손님 숫자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두고두고 남을 결혼식 이야기, 특히 ‘그 집 결혼식 잘 했다더라’ 는 그런 한마디 들으려고 빚을 내서라도 많은 손님 부르고, 차리고, 장식하는 것이 여기 문화인데 그래도 그렇게 많은 손님을 부르다니...
그중에 적게 잡아도 그 밤에, 뱅갈로에서 600명이 갔다는 소린데 얼마나 주변 관리를 잘한 집인지...
결혼식을 마치고 나니 그 신랑이 힌두 결혼식을 고집한 것이 이해가 된다.
물론 세상적 관점에서이다.
그 부모는 ㄱ인이지만 자기는 힌두식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또 부모가 원해도 ㅅ례는 자기가 결혼한 후에 받으라고 요청한 아들이다.
한 20년 전에 7-8세 되던 큰아들을 갑자기 잃은 그 부모는 그 아픔과 트라우마 때문에 하나 남은 아들이 잘못될까, 또는 아들과의 충돌 때문인지 아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준 부모이다.
주변에서 교회 다닌다는 눈초리나 비난은 다 이겨냈어도 아들을 이기지 못해 몇 년간 ㅅ례를 받지 못했었는데 이번 결혼식도 아들의 요구대로 치룬 것이다.
그 아들이 원하는 결혼식은 힌두식 결혼,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결혼식이다.
사실 부모의 신앙을 따라 ㄱ독교식으로 하면 그렇게 많이 모일 수가 없다.
힌두로 살다가 힌두가 아닌 다른 종교의 결혼식을 하면 힌두 공동체를 떠나 다른 공동체로 가는 모습으로 보이니 친척이나 지인 중에도 반발이나 방해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 핑계로 참석하지 않은 이들이 있을 수도 있고 또래 주변 친구들로부터 소원해질 수도 있고 그들 입장으로는 선을 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신앙이 없기 때문이고 세상적인 잣대로 숫자나 규모를 생각하니 힌두식 결혼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년에 서너 번 ㄱ회에 나오지만 주일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아이라 스스럼이 없는 아이, 아니 새신랑, 결혼 전 주일에 그 아이가 청첩장 돌릴 겸 해서 ㄱ회에 왔을 아내가 ‘이제 결혼을 하면 신부를 ㄱ회에 데리고 오느냐’고 물으니 시원하게 대답한다, 데리고 오겠다고...
자기는 잘 나오지 않는데도 부인을 ㄱ회에 보낸다?
열심히 ㄱ회에 나오는 시부모와 같이 살아야 하는 그 힌두 신부는 졸지에 우리 실로암에 와야 될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녀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그녀의 앞길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 신부가 알았으면 얼마나 황당했을까?
결혼식 때는 본 그 시골 신부는 완전 완고한 힌두의 모습으로 보였는데 ㄱ회도 없을듯한 그 마을에서 자란 그 신부는 또 생애 최초로 ㄱ회에 나오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생애 첫 ㄱ회 방문이 일상으로 이어지고 Siloam 가족이 되기를 바래본다.
철저한 힌두였지만 실로암 신랑을 만난 신부들이 모두 생애 처음으로 ㄱ회를 온 것처럼...
(사진은 그날 결혼식 피로연 후 저녁 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