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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스펀지쏘옹
일단 학창시절 국사를 배웠고
사극을 좀 보고 했다면
걍 기본적으로 성씨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잘 알것임.
왕 - 이도, 이산... 등등 이씨..
신하 - 한명회...정약용.. 등등 한씨 정씨..
백성 - 갑돌이... 돌돌이... 등등...... 갑씨 돌씨...일리가 없자냐!!!!
고로 성은 거의 왕과 신하(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고 봐도 무방.
(우린 성씨있는데 에베베베~~~ 에베베베~
평민들 극딜하는 귀족들 - 상상임)
물론 평민들도 성씨가 있었음.
그러나
평민들 계층에서 성씨를 사용 할 수 있게 된 것은
고려 시대 이후 부터였음.
이런 상황에서 조선으로 넘어옴.
조선 초기에는 정말 성씨란 것은 부의 상징 권력의 상징
희귀템이였음.
왜냐하면 고려 -> 조선으로 체인지 되는 과정에서
고려시대나 니들이 양반이지 ㅃㅃ 멀리 안나감.
하고 고려의 귀족을 숙청하여 인실좆 시킴.
고려의 일반적인 성씨들이 씨가 마름.
고려 왕족의 성씨였던 왕(王)씨도
감히 전주 이씨 앞에서 살아 남을 성 싶으냐?
인실좆 당함
이 과정이 상당히 쟈니~난 부분도 있어서
언급은 ㄴㄴ하기로 함...
궁금하면...
아무튼 그래서
왕씨 성을 쓰던 많은 고려 왕족들이
숙청을 피하기 위해 숨어 살면서
왕씨(王)성을 왕자에 다른 획을 추가한
전씨(全)나 옥(玉)씨 등으로 성을 고쳐 신분을 숨기고
살거나 아예 성을 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았음!
나 일코할거임.
조선에선 일코할거임 ㅠ
그렇다보니 조선 건국 초기에는
고려 시대 성들이 많이 사라지고
몇개의 성씨들만 겨우 남아 존재했던 상황.
심지어 조정 대신 들 중에는 성씨가 없는
신하들도 있었다고 하니..
성씨는 레알 희귀 간지템
우왕 굳
그런 상황에서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조선 중기..
임진왜란이 터짐..
(하여간 일본은 도대체....험한말 험한말 험한말..
곁다리로 선조도 험한말 험한말...)
그로 이해
나라가 매우 매우 어려워짐
뭐가? 재정이..
(재정이 어려워진 조선을 손현주로 표현해 봄 - 상상임)
임진왜란에
선조가...
후...
(할많하않.....)
이때 아부지의 무능함과 재정파탄을
보다못한 광해군이 공명첩이라는 제도를 만듬
(설움을 토해내는 중인 광해군 - 상상임)
공명첩이란?
나라에 돈이나 곡식, 땅 당을 바친 사람들에게
관직을 내리는 임명장을 써서 준 것이었는데
실제 벼슬을 준게 아니고 형식상 문서만 써서
내려 준 거라서 양반 행세는 할 수 있으나
레알 벼슬직을 맡은 것은 아닌 뭐 그런 것..
한마디로 나라에서 주도한
합법적 매관매직 되시겠슴다.
올ㅋ
돈만 있으면 나도 양반 ㅋ
이 공명첩은 후대에도 계속 이어져 나라 재정이
어려 울 때마다 요긴하게 쓰이게 되고...
이로 인해 성씨를 갖게 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
나라도 갖다 줄 돈 땅 낭낭하면
벼슬 살거 같음.....(쥬륵....)
벼슬 그 까이꺼 얼마면 돼! 이제 돈으로 사겠어!!!!
(돈으로 벼슬을 사겠다는 호기로운 강원도
정선의 한 유부남 - 상상임)
그리고 공명첩과 비스무리하게
그냥 몰락 양반가의 족보를 사거나..
돈을 주고 그 족보에 이름을 올리거나..
돈 없는 양반가와 사돈을 맺으면 그 가문 성씨를
같이 쓰게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성씨를 득템하는 사람들도 많았음.
(얼마전 큰 돌을 벌어 양반 신분을 산 장돌뱅이 출신
오덕삼씨가 엄지를 들어 보이며 웃어 보이고 있다. - 상상임)
역시 돈은 좋은 것이여.....b
이래나 저래나 성씨 득템.
그렇게 조선 후기인 19세기 즈음에 도달해서는
조선 초기 10%도 안되던 양반 비율이
70%까지 늘어나는 기염을 토함.
고로 성씨를 갖게 된 사람들도 폭풍~
늘어났다는 ㅇㅇ
하지만 아시잖아요..
그 중 레알 양반 비율은......얼마 안된다는 거..
(참고로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양반 비율은
반올림하여 전체 인구의 약 2% 정도 밖에 안됐음.)
아무튼!!!
그렇게 양반 성씨 비율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고
세월은 야속하게도 일제 강점기로 흐름..
(일본 험한말 험한말....)
일제강점기에
일본놈들은 민적법이라는 걸 시행함.
뭐 쉽게 풀이하면 지금의 호적과 같은 것임.
호적 = 민적 ㅇㅋ?
나는 김아무개요 가족으로는
아부지 김개똥 어머니 홍말숙 딸....누구누구
주소 어디어디..뭐 이런거..
본관은 어디고...
이런식으로 등초본 떼면 나오는 사항들 조사한 것이였음..
시행한 이유는?
조선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하무니다.
알차게 쏙쏙 등골 빼먹기 위하무니다.
혹여나 빼먹고 수탈 못하는 닝겐이 있을까봐이무니다.
이런 개늠들...
그렇게 가가호호 (아 집집마다 라는 유식한 말입니다 찡긋~!)
민적법이 시행이 되니...
성씨가 없든 사람들도 성을 포함한 이름을
적어서 내야했음..
왜냐..
아부지 득출이 어머니 갓난이
아들 똘이 딸 언년이
우리 한 가족이여유... 해도
서류상 한 가족으로 알아보기 쉽지가 않음!
근데
아부지 김득출 어머니 오갓난
아들 김똘이 딸 김언년
하면 뭔가 한가족 같고 어머니가 으이고 저 놈의 김씨들
때문에 내가 몬산다!!!!!! 으이고!!!! 할 것 같고...
딸은 아부지 얼굴 똑! 닮아서 아빠 닮았네? 소리만
들어도 짜증나고 그와중에 아들은 외탁을 했지만...
엄마는 뭐만 하면..아빠 닮아 저모양이라고
할 것 같은 그런 그럴싸한 집안 냄새가 나는거임.
(엄마 왜죠? 왜 안 좋은 건 다 아빠
닮았다고 하는거죠?)
그리고 성씨가 없는 건 왠지 지는 느낌?
이제 신분제도 폐지 된지 오래고
너도 나도 성씨를 가진 참에..
본격적으로 공식적인 조사를 하니
나도 이제는 성을 가져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성씨 없이 버팅기기 마지노선에 다다른 느낌?
일본 놈들이 성씨 없다고 놀리니까 개빡치는
느낌적인 느낌 아니라 정말 빡치는 느낌?
그.러.하.다. 헤. 헷.
그리하여 성씨가 없는 사람들도
민적법 시행으로 인하여 성씨를 적어서 내게되고....
이후 성씨 득템율은 전국민 100%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근데!!!!!!!!!!!!
애초에 성이 없던 사람들이 성을 득템할 때
고르는 기준이 뭐였을까????????????
이것은 우리나라 성씨 베스트 3순위가
김이박인 걸 보면 알 수 있음.
스아실~~~~ 요즘 우리가 흔히 쓰는 성씨들은
김이박최정한장송 등등...의 성씨는
조선 건국 이후에 뜨기 시작한 성씨들이고..
이전에 고려 시대나 삼국시대 등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시대마다 흔한 성씨가 달랐음!
고구려의 경우
고, 예, 위, 우, 을, 송, 목, 주, 명림, 손, 을지
음, 창, 연, 강 씨 등의 성씨가 존재했고..
백제의 경우에는
사, 해, 진, 목, 국,연,묘,협 씨 등의
성씨가 존재했는데
(이거 뭐야......어렵...
이글을 읽는 언니들의 표정 궁예 - 상상임)
딱봐도... 어...음....어.... 좀 낯설다 너?
싶은 성씨들이 많지?
물론 이중 요즘도 쓰이는 성씨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라가 망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없어지게 된 케이스가 많음.
그렇다보니
조선시대엔 조선 왕족들의 성 (전주이씨) +
양반들의 성씨 이런 구조였는데
그럼 이중에서 내가 성씨가 없는데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좋은 가문의 본관.
있어 보이는 본관, 유명 본관의 성씨를
따라 쓰는 일이 많았겠지?
따라서 조선 시대 이전에 사라진 성씨들을
따라 쓰는 경우가 드물었을거고 ㅇㅇ
전주 이씨 - 조선 왕가의 본관이니... 정말 이건 뭐...
캡죠은 성씨 딱 봐도 죠은 성씨..
그리고 전주 이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공노비의 해방이였어.
신분제가 철폐되고 노비들이 해방되는 과정에서..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동공지진한 노비들은..
성씨를 정하는 것에 있어 어려움을 겪었지.
우리가 뭘 알아야.....글자도 하나도 모르는디유...
그렇다보니 그냥 편하게...
그려 난 박대감님네 노비였응께 따라서 밀양 박씨하련다.
그럼 나는 영의정을 지낸 최대감님 노비였으니까
경주 최씨하면 되겠구만!
이런식으로 자신이 일하던 양반 집안의
성씨를 따라 쓰기 시작한거야.
(왕족 성씨말고 일반 성씨들은 이런 식으로
세력을 뻗어나감)
그러면 공노비들은??????
공노비 = 나라에 소속된 노비였음
우리는 그럼 나라 소속이였으니까
전주 이씨를 하면 되겠네?
유레카!!!!!!!!
가 되니까...
전주 이씨가 파워~~~~~~ 늘어나게 됨.
그러나... 전주 이씨는 왕족 성인데 너무 대놓고
전주 이씨하면 좀 티나자냐... 없이 보이자냐...
빼박 내 출신 성분 사람들 다 아는데 좀 부끄럽자냐..
난 좀 다르게 하고 싶은데?^^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
그래서 그럼 좀 덜 티나게 옛날 왕족 성씨를 써볼까?
해서 김해 김씨, 경주 김씨, 밀양 박씨 같은 성씨도 파워 증가함.
그 외 당대 유명한 세도가들의 성씨들도 캡 각광받음.
ex)안동 김씨 등등..
노비들은 대게 주인 가문 성씨를 따랐지만!
그리고 성씨가 널리 퍼지는데
집성촌의 역할도 컸는데...
집성촌 - 같은 본관을 가진 성씨들 많이 모여 사는 곳 이자냐?
근데 조금만 생각해봐도 레알 양반 비율은
사실 얼마 안되는데
그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은 성씨의
양반이었을리는 만무하자냐?
보통 마을 단위로 한집... 뭐 많으면 두어집 정도
양반 가문이 존재했겠지? (궁예)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몽땅 그 양반 가문의 성씨를 따라
쓰거나 몰락한 가난한 양반 일 경우 대가를 주고 그 집 족보에
오르는 식으로 성씨를 득템했다고 보는게 정설.
ex) 우리 마을엔 양반이 온니~ 대제학을 지내신
강대감님 뿐이니까 우리 마을 사람덜도 오늘부터 강씨다잉~
그리고 그렇게 같은 성씨를 공유한 사람들이
몇대를 걸쳐서..그 마을에서 살아오면
그 마을은 그 성씨의 집성촌이 되는 시스템이 구축 됨.
아무튼 이런 과정들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성씨를 득템했고
조선 초기만 해도 희귀템이었던 성씨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100%가 되었다고 한다.
문제시..
동공지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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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스펀지쏘옹
ㅋㅋㅋㅋㅋ레알
근까 ㅋㅋㅋㅋㅋㅋ 제사 자체도 저런식으로 양반된 평민 노비들이 자기들도 양반처럼 조상섬기고싶어서 퍼진게 지금까지 여자들 괴롭히는거자나 ㅋㅋㅋㅋㅋ 조선전체에서 최대로 잡아도 7프로가 안되는게 양반이었는데 ... 아마 우리집도 평민아님 노비였을듯.
ㅋㅋㅋㅋㅋ엄청 재밌게 썼닼ㅋㅋㅋ 폭풍처럼 읽었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지 ㅋㅋㅋㅋㅋ
이렇게 다들 성씨 샀으니 여자들 제사음식 시키는 상놈의문화가ㅡㅡ.... 우리집부터ㅡㅡ
ㅋㅋㅋㅋ진짜재밌게읽었다 ㅋㅋㅋㅋㅋㅋㅋ흥미돋앙
울 아빠쪽 사람들 제사에 집착하는거보면 빼박 노비핏줄인거같애ㅋㅋㅋㅋㅋㅋ소름돋게 제사에 집착함
ㅋㅋㅋㅋ내동생 ㅋㅋㅋㅋ 저 소리 큰집가서 했다가 큰아빠한테 강제로 족보 공부하고 옴 ㅋㅋㅋㅋㅋ 그리고 족보를 보니 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곸ㅋㅋㅋㅋ 언니 우리 양반 아닌거 같어.. 진짜루...;;;;; ㅋㅋㅋㅋㅋㅋㅋ
전앀ㅋㅋㅋ국사쌤이 내 성씨 듣더니 저얘기해줬었어 왕씨가 모자씌우거나 점 찍어서 전씨 옥씨로 숨어 살았다고ㅋㅋㅋㅋㅋㅋ 지금은 이성계 셋째아들인가넷째아들의 자손분이랑 사구ㅣ는중 아이러니
홀랭 난 안동김씨는 아닌줄 뭔가 혼자서 뿌듯했는데 ㅋㅋㅋㅋㅋㅋ 족보있긴하지만 그냥 족보야 만들수도 있지...한번도 열어본적 없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박씨긴한데 밀양박아니고 무안박...우리친척들빼고 본 적 없오...
생각해보면 1~2%면 50명중에 한명있을까말까하는수준인대 사람들물어보면 다 지들이 양반이라고 출신이라고함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도 산 거 같아.... ㅋㅋㅋㅋ
우리 증조 할아버지가 훈장님이었다는데 그 주변 산이 다 증조 할아버지 땅 ... 이었는데 다 팔아서 망함ㅋ
우리집도 절대로 양반가문일수 없는 집안이지 암... 제일 흔한 김씨 어디서 따랐겠거니~~ 한댜 ㅋㅋ
우리는 공노비 집안이었나? ㅋㅋㅋ 꼰대들 하는짓보면 레알 왕족일리가 없음 ㅋㅋ
오오... 왜 특정 성씨가 이렇게 많은지 궁금했었는데 그래서 그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