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19 진행된 3일간 성탄 캐롤링이 드디어 끝났다.
ㄱ인 가정이 많아서 3일이 걸린 것이 아니라 하루 일과를 마친 저녁에 방문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새벽이나 늦은 밤에 동네를 돌아다닐 수도 없다.
밤 10시 이후에는 집회 소음이 제재를 받을 수도 있거니와 사람들이 적은 시간대에 ㄱ회 이름으로 돌아다니면 자칫 잘못하면 돌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종교에 관대한 이들이지만 그들의 종교와 달리 ㄱ독교가 유일신관에 배타성을 알면 언제든지 방해와 박해가 시작되는 땅이기 때문이다.
또 정권을 잡은 정당의 조치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이 행사가 중단된 경우도 있었던 바 우리 축제라고 우리 뜻대로 이 행사를 진행할 수도 없다.
다행히 올해는 분위기도 좋지만 이들의 묵인 속에 이 행사를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첫날은 먼 집들을 골라서 우리 차량과 아이들의 오토바이를 동원해서 8 가정을 돌았는데 저녁 6시에 출발해서 돌아오니 11시 반이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밤에는 경찰이 없다고 우리 청년들 절반은 헬멧도 없이 다녔는데 사고가 없어 감사할 뿐이다.
둘째, 셋째 날은 가까운 곳이어도 차량과 오토바이가 동원되어야 했다.
처음에는 실로암 주변에 살던 우리 ㄱ인들이 이 지역이 개발되면서 자꾸 외곽으로 밀려나기 때문에 저녁에 열 집 이상을 걸어서 다 돌 수 없기 때문이다.
캐롤을 도는 멤버는 성가대 중에서만, 그것도 한 해 출석이 미진한 아이들을 자르고 나니 열두 명이다.
아이들이 가장 참여하고 싶어 하는 이 행사에 어중이떠중이를 다 허용하면 스므 명도 되지만 ㄱ회가 질서도 지켜야 되지만 성실하지 못한 이를 ㄱ회 이름으로 마구 내보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방문한 집 앞에서 촛불을 켜고 캐롤을 부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경을 한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주변의 눈에 위축되었는데 이제는 모두 덩치가 큰 청년이 되었고 또 경험도 많아서인지 이제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껏 캐롤을 부른다.
간혹 구경하던 옆집이 자기 집에도 오라는 요청을 하지만 일정상 그럴 수도 없다.
성구 낭독과 ㄱ도를 마치면 무조건 들어오라는데 준비한 선물을 주고 들어간다.
예전 한국서 캐롤을 돌 때는 커다란 자루들 들고 가서는 집집마다 주는 선물을 받아왔었는데 여기서는 ㄱ회가 가정마다 선물을 준다.
가난하고 또 아직 덜 깨인 이들이 1년을 ㄱ회 다닌 댓가로 뭘 기대하는 이도 있고 또 가난한 집을 보고는 그냥 나올 수 없는 것도 한 이유인데 아무튼 ㄱ회가 가정마다 선물을 주는 것이 여기 문화인 모양이다.
올해는 ㄱ회서 준비한 선물 외에 이곳에서 자라서 취업과 결혼으로 멀리 가 있는 우리 딸들이 마련한 선물까지 가정마다 전해 주었다.
선물들을 받고 환하게 웃으며 받아준 우리 ㄱ인들이 고마울 뿐이다.
우리 실로암 ㄱ인 집을 방문할 때마다 살림살이가 바뀌고 있다.
자전거에서 스쿠터로, 없던 집에 TV가 생기고, 32인치 TV가 45인치로, 슬레이트 지붕에서 슬라브 지붕으로...
모두 단칸방 월세로 살고 있지만 매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마 실로암에 다니고 말씀을 들고 ㄱ도를 하니 눈과 귀가 열려서 예전보다 더 많은 기회가 생긴 모양이다.
아니 위에 계신 분이 이들에게 서서히 복을 주시는 모양이다,
집을 방문하면 방 하나에 한두 평 되는 거실, 한 평쯤 되는 부엌... 작은 화장실이 붙어있는 집도 많아졌다.
성탄이라고 반짝이 불도 달고 별을 단 집도 있다.
그런데 반짝이 불보다 더 밝은 것은 이들의 얼굴이고 마음이다.
집안에 들어가면 열댓 명이 좁은 거실 바닥에 앉아야 한다.
때론 거실에 있는 침대에 대여섯 명이 올라가 앉아야 하고...
그래도 나를 위해서는 좋은 자리를, 적어도 플라스틱 의자라도 앉으라고 주는데 그렇게 대우해 주는 이들이 고맙다.
자리에 앉자 마다 다과가 나온다.
튀긴 과자, 과일, 빵, 음료수... 금방 끓여서 나온 커피는 뜨겁고 너무 달다.
몇 집을 돌면 배가 부른데 배가 부르다고 해도 모두 자기네 집 음식을 먹이려고 한다.
대부분이 서너 가지 간식을 푸짐하게 내놓는데 집에서 혼자만 ㄱ회 다니는 우리 청년 하나는 Subway 샌드위치 열네 개를 내놓는다.
적게 잡아도 그게 노동자 이틀치 임금이 넘는데... 적은 월급으로 그렇게 대접하는 그 마음이 감사하다.
3일간 일정의 마지막 순서는 우리 집인데 다른 집에는 다 주던 선물을 하나도 주지 않는다.
나는 그냥 주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는지... 고얀 녀석들이다.
순서를 다 마치고 집안에 들어와서는 다른 집에서는 잘 먹지도 않던 녀석들이 한국 컵라면을 주었더니 국물 한 방울 안 남기도 다 먹는다.
그리고 케잌도 자르고 감자튀김, 과일 등 간식을 다 먹었는데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도 가지 않아서 빨리 가라고 팝콘을 튀겨줬는데도 가지 않는다.
이미 배는 부르고 뭘 더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는데 자기들 좁은 집에 가기 싫은지 아니면 아이들이 서로 헤어지기가 싫은 모양인지 마냥 앉아 있다.
결국 12시 넘어서 갔는데 여차하면 우리 거실에서 모두 재워주고도 싶은 아이들이다.
직장을 마치자마자, 또는 늦게 마치더라도 합류해서 끝까지 동행한 청년들, 함께 한다는 공동체 의식, 집집마다 받은 환대...
여기서 누리는 꿈같은 행사이고 또 우리 젊은 아이들과 같이 만들어가는 작은 역사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적지만 그래도 우리 청년 열두 명, 우리 부부, 현지 ㅁ사등 열 다섯 명이 3일간 펼친 멋진 성탄 캐롤 행진이다.
(사진은 캐롤링 행사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