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지금 술래잡기 하나?
“그 어느 조직보다 투명해야 할 공익재단이 입만 열면 이미 사회로 환원돼 있다던 정수장학회 이사회를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 국민들의 온갖 불신과 의혹을 감수하면서 꼭꼭 숨어드는 정수장학회가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이사회의 이면에 ‘박정희, 육영수’로 대변되는 군사독재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 아니냐... 박근혜 전 이사장이 선임한 현 이사들끼리 신임 이사장감을 높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고, 현 이사진이 재단을 개혁할 수 있는 전향적인 인물을 내놓지 않으면 정당성 시비에 휘말릴 것이다. 정수장학회 이사회는 공론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부산일보 노조가 정수장학회의 거듭되는 밀실이사회를 보고 발표한 성명에서 일부 발췌한 글이다.
한나라당 박근혜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던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한 언론사임에도 오죽하면 위와같은 성명을 발표했을까.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곳 부산의 시민 대부분은 부산일보가 박근혜 개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덤덤한 편이다. 묵시적 동조라고 할까, 아니면 부정이 합리와 되던 시절에 세뇌된 사고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서일까.. 박정희향수의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부산의 많은 시민들이 박근혜대표의 묻지마 지지자인 것을 그동안 만나본 사람들을 통해 들어 알고 있다. 그러한 부산 민심을 모를 턱이 없는 부산일보 노조가 위와 같은 성명을 내놓았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잠깐 말을 돌리겠다. 외환위기와 함께 들어선 국민의 정부시절에 정치인이 개입된 게이트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당시 사건에 연루된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구속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실망보다는 오히려 믿음이 갔다. 일찍이 투명한 정치, 투명한 정책을 펼치는 정권을 경험하지 못했고, 정권고체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반세기 동안 우리 몸에 익숙해진 부정·부패가 당장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외환위기를 겪던 어려운 시절인데도 5년의 임기 동안 외국인들의 투자가 50년에 걸쳐 투자되었던 금액보다 많았던 이유도 김대중 정부가 이루어놓은 게 많아서가 아니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투명한 정치, 투명한 경제가 이루어지니까, 외국인들이 신뢰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기업이 투명해지면 당연히 이익이 창출될 것을 믿는 투자자들이 몰려든 것이었다.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박근혜 대표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는 데도 정수장학회는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국민과 여론의 눈과 귀를 피해 다니며 밀실이사회를 한다고 지난날의 부정이 영원히 가려질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아직도 박근혜 대표의 영향이 미치는 모양인데 박 대표를 비롯한 정수장학회 이사들은 이점을 깨달았으면 한다. 그동안 세차레나 이사회를 열었지만, 공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소식을 듣자니 박정희 시절의 무시무시한 밀실정치가 떠올라 섬뜩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만들어진 공익단체라 하더라도 자율적인 기부나 보통사람들의 호응 내지 참여가 없다면 의미가 퇴색되게 마련이다. 민심은 천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정수장학회의 현 실상은 무력과 권력이 개입하면 끝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으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여론이 들끓는데도 정작 나서야 할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과거 친일, 군부독재자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설립했고, 그들에게 물려받은 정치인들이 지금까지도 단체의 자율성을 빼앗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수장학회라고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지난 5일 열린 이사회에서도 새 이사장 후보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잘 나가던 남덕우·신현확씨 등이 거론됐으나 이사들의 의견이 엇갈려 이사장 선임을 하지 못한 것을 보면 조금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박정희 시절 같으면 이사장을 미리 정해놓고 만장일치로 뽑아 박수치며 끝났을 터이기에 그렇다.
유신의 마지막 총성이 울린 지 26년이 되었지만 박정희의 잔재는 아직도 사회 구석구석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정수장학회의 거듭되는 밀실이사회를 보며 확신이 서게 되었다. 정수장학회의 거듭되는 밀실이사회가 독재자에게 빌붙어 살던 사람들이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언짢다.. 학생들에게 보탬이 되는 장학사업도 투명하지 않으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부디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참여할 수 있는 투명한 경영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