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때에는 병력수가 140만 명에 달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실전경험이 없는 오합지졸이라서 송나라 시기 내내 북방민족의 위협에 시달려야만했다. 실제로도 송군이 이긴 전투는 거의 없다. 정말 안습.
당나라 군대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실제 전투력은 송나라군이 훨씬 뒤떨어졌다. 송대 이후로, 중국 정통 왕조에서는
정규군보다 정계 및 재야 유력자가 모병한 의용군이 더 잘 싸우는 현상이 매번 발생하게 되었다.
이를 증명해주는 극단적인 사례가 실제로 있었다. 송 지방관 중 한 명이 공을 세우려고 지나가던 금의 사신을 공격했는데 이 때 병력 2000명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호위무사 17명에게 가볍게 발렸고, 금의 사신은 제 갈 길 갔다...
이 때 금 무사 17명은 중앙에 7명, 양익에 5명씩 배치하는
진까지 짰다.
더욱이 송나라는 문치사회라서, 무인을 매우 폄하했다. 그래서
좋은 철은 못에 없고, 좋은 인간은 군대에는 없다라는 말까지 있었고, 이 때문에 질 나쁜 범죄자들이 주로 병사가 되었기에 (수호지만 봐도...) 규율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보병 위주라서,
기병 위주인 여진족이나 거란족 같은 이민족과의 전투에서 훨씬 불리한 요인이 되었다. 하여간 진짜 개막장 군대. 거기다 무려
60만이 넘는 군대 대부분을 수도방위 겸 해서 수도인 카이펑 근처에 밀집시키고, 군사지휘권을 여타 장수들이 아닌
황제가 직접 가지게 하였다. 이는 전 통일 왕조인
당의 실책에서 배운것이라 하였으나,
진짜 위협인 이민족 방어에 허술하였다. 거기다 국경 지대에 배치하는 군사는
서류상으로는 수만 대군이었으나 실제 배치 병력은.....또 앞서 말했듯 장수들의 반란을 견제하기 위해 장수 직속부하들을 대폭 줄여 군사 훈련과 상하 교류를 적게 만들어 버렸고, 이민족의 침략 당시에는 멀리서 파병한
생판 처음보는 군사를 억지로 조련하여 싸워야 했으니... 이게 게임이 될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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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사(지방 군벌)들 때문에 나라 말아먹었으니 절도사(지방 군벌)들 약화시키고 금군을 강화하면 괜찮겠지!
하지만 압박을 덜 받은 이민족을 통합크리!
제가 전에 올렸던 글에서 언급한 거란, 여진, 몽골이 여기에 탄력을 받고 [이하 생략]
그리고 언급하신 만주족만 해도 그렇습니다.
누르하치는 건주 여진 출신으로, 1583년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명군을 도와 반명 성향의 여진 족 마을을 치는 과정에서 명군에게 오인 사살된 후, 그 뒤를 이어 푸순 동쪽 지방의 추장이 되었다. 누르하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명은 누르하치에게 상당한 특혜를 베풀어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여진족을 통합하기 시작, 만주 북동부의 여진족 대추장으로 청의 전신인 후금을 세웠으며,
만주어를 위해
몽골 문자를 이용한
만주 문자의 제작을 명했다. 1616년 그는 주위 여진족들을 정복하여 만주 지방의 대부분을 수중에 넣은 후에 랴오양, 묵던(Mukden, 지금의 랴오닝성 선양시)에서 나라를 세워 한으로 즉위하였는데, 예전에 여진족이 세웠던
금나라를 잇는다는 뜻에서 국호를 후금(後金)으로 하고, 연호를 압카이 풀링가(天命)라 하였다.
뒤통수 감사!
PS.
전국시대는 전국 7웅 중에 하나인 조나라 하나만으로도 흉노족을 캐발살을 내서 몇 년 동안 국경에 얼씬도 못하게 했고 통일 蓁나라는 몽염을 시켜서 흉노를 위로 밀어냈으며 한나라만 해도 솔직히 유방의 백등산 전투는 적의 주력군이 온전한데 보기가 따로 추격하다가 포위 당한 '기본도 안된 군사 행동으로 인한 병크'를 터뜨려서 캐치욕을 본 것이고 한나라 무제 당시에만 해도 곽거병 위청 이릉이 흉노를 상대로 전과를 세웠으며 (하지만 나중에 이광리가 다 말아먹는다. 역시 외척을 가까이 하면...흉노는 구사일생, 한나라도 헐떡거리면서 쳐들어간 것인데) 사마염의 진나라는 첫단추 황제부터 막장이라 5호 16국 초래하고 캐발살 당하고 수나라 때 돌궐 복속시키고 당나라 때 돌궐에게 황제천가한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했고 (하지만 토번의 미칠듯한 위엄을 보여주는 가르친링 ㅠㅠ 뭐 토번을 유목민이라고 보기는 좀 그러니 제외) 송나라는 그냥 늘 쳐털리고 명나라는 50만 대군으로 몇 번이나 북원으로 원정 가시고.....
첫댓글 뭐 전체적인 의도에는 공감하지만, 예가 좀 적절치 않은 것 같아 지적해 봅니다...^^; 먼저 송대의 거란은 이미 5대10국시절부터 [통합]을 이룬 상태였습니다. 이민족의 민족의식 각성과 국가형성은 이미 당나라 중후기부터 움직임이 있었고, 이에 따라 '회흘(위구르)'이 먼저 상당히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합니다. 뒤를 이어 거란이 통합에 성공하여 강대국이 되었고, 후진의 석경당 시절이 되면 이른바 [연운 16주]를 할양받습니다. 성경당의 뒤를 이은 석중귀 시절에는 거란이 그 수도 개봉을 함락하고 황제를 사로잡아가는 것은 물론- 화북을 일시적으로 점령하기까지 하죠...-_-; 즉 송나라가 거란을 압붹하기 전에 이미 거란은
통합을 이룬 강대국이었다는 겁니다.
또한 토번의 민족인 티베트족은 [유목민족] 맞습니다. 그 일족인 '당항족(탕구트족)'이 서하를 건국하고요...ㅋ
마지막으로 "송나라는 그냥 늘 쳐털리고..." -> 이 부분도 그런 것이 만약 송나라가 그렇게 약체였다면 일찌감치 망해야 정상입니다. 근데 오히려 요-금보다 더 장기간 생존해요...^^; 송나라가 전투에서 패하는 경우가 부각되어서 그렇지 초반 밀어붙이기도 그렇고, 강력한 '방어체계'도 그렇고 만만한 애들이 아닙니다. 북송 때 송나라가 크게 털리는 경우는 '전연의 맹'이나 '경력의 역(서하 정벌전)' 정도인데, 거란은 전연의 맹 이후로 돈이나 받고 화평유지합니다. 국경에서
가끔 도발 좀 해주는 수준이고... 왜냐하면 얘들은 연운 16주도 유지하기 버거울 정도로 역량이 후달렸기 때문이죠. 전연의 맹 이후로 거란이 망할 때까지 양국 간에는 큰 충돌이 없었습니다. 서하의 경우도 요나라와 연합하여 송나라를 압박했기 때문에 송나라로부터 [독립]을 유지한 것이지, 얘들 자력으로 맞붙으면 송나라의 '경제제제'만으로도 무릎꿇을 수준이었어요...-_-;
남송 때도 금나라는 송나라가 아주 망한 상황에서도 중원을 다차지하지 못합니다. 장방창 같은 애들 섭외해서 '괴뢰정권'인 초나라를 세우는데, 역시 요나라와 같은 통치역량의 부족이죠...ㅋ 이후 성립된 남송과의 전쟁에서 금나라는 단 한번도 남송의 장강-회수
방어선을 넘지 못합니다. 오히려 남송이 북벌한다고 군사를 일으키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고, 금나라 해릉왕이 남송 친다고 난리치다 '자중지란'으로 실패하고 장종이 즉위하고요...^^; 남송의 방어선이 뚫린 것은 한참 있다가 몽골에 의해서죠. 그것도 한 3번 만에 뚫었고요. 당시 회수에서 사천까지 이어지는 방어선에 주둔한 [상비군]만 100만입니다. 쿠빌라이가 이를 뚫고 들어온 와중에도 남송은 '정가주'에서 각주 정병 13만을 동원하여 전투를 치르죠...ㄷㄷ
송나라는 아주 강국입니다! 군사적 역량과 군사체제가 좀 아스트랄해서 그렇지, 당시 어떤 나라도 맞먹을 수 없는 부국이자 대국이죠. 천하의 절반으로 쪼그라든 남송의 인구만 무려 6천만입니다. 동시기 금나라의 인구는 3천만 정도?! 고려는 많이 잡아야 5~600만, 몽골 100만...-_-;
까고 말해서 송나라를 아주 깔보다 못해 "고려가 송나라 턴다"는 ㅂㅅ들이 많은데, 얘들이 남송과 고려의 '대몽항쟁'이 어떤 양상으로 벌어졌는지 진실을 알게 되면 정줄 놓을 겁니다...ㅋ
뭐...항상 제가 쓰는 말이 있죠. "무식하면 용감하다." 넵.
삼한갑부님 의견 감사합니다 ^^
말씀하신 당나라 중후기 때 주변국이 통합하고 강대해진 계기 중 하나는 안사의 난에 의해서 당나라의 주변 통제력이 저하되어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말씀하신대로 송나라 초반 조광윤 조광의 형제 당시에는 확실히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남송 당시에 강력한 방어체계에 대한 언급도 본 적이 있습니다. 다만 요-금보다 장기간 생존한 것에 대해서는 군사력보다도 외교력이 한몫했다고 보아야하지 않을까 제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안사의 난 / 남송 군사력에 대해서는 나중에 펌질 해오겠습니다 ㅎ1ㅎ1
남송의 경우 몽골군의 공격에 수수방관한것이 아니라 역으로 몽골쪽을 공격하기도 한 기록도 있더군요. 맹공이던가 맹홍이던가. 가물하지만 이사람도 나름 날렸던 명장인줄 압니다
몽골이 금나라를 패는 김에 송나라도 같이 공격해서 점령한 것 처럼 인식되지만 사실 약 50년간 몽골의 공격에서 버텼지요. 말이 50년이지 한국 역사가 이제 60년이니 (…)
몽케 칸도 결국 못뚫고 GG처버린 공포의 떡장을 두르고 정말 처절하게 버텼죠. 남송.
삼한갑부님.
송나라가 항상 ㅄ인줄 알았는데 그런 면도 있었군요.자세히 알고 싶어서 그런데 블로그 주소나 역게에 연재해주시면 안될까요?
12님 고거 제가 또 준비 중에 있습니다. 남송 군사력이랑 편제에 관해서 ^^
옙.감사합니다.
진나라 한자가 잘못됐군요. 풀초변이 없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