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가 260만명을 넘어서면서 우리경제의 또 하나의 위협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1.4%에 이른다.
특히 현재와 같은 증가세라면 올해 하반기에는 신용불량자수가 3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돼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신용불량자로 등록될 경우 각종 대출의 상환기한 연장이 안되는 것은 물론 신용카드 사용을 비롯한 정상적인 경제생활이 불가능해 지는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 20대 신용불량자 위험수위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현재 신용불량자는 263만5723명으로 전년 동기대비 18만5420명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신용정보 관리규약을 개정, 신용불량자 등록기준 금액이 종전 5만원에서 30만원 초과로 상향됨에 따라 신용불량자수가 25만154명이나 줄었다. 결국 이를 감안할 경우 올 한해에만 45만명 가량이 신용불량자로 신규 등록된 셈이다.
신용불량자가 전체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20대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용불량자로 등재될 경우 금융거래에 불이익을 받는 것은 물론 취업 마저 어려워져 자칫 사회로의 첫발을 내딪지도 못하게 된다.
은행연합회에 등록돼 있는 20대 신용불량자는 남자가 27만9535명, 여자가 20만8624명에 이른다. 여기에 20세 미만 신용불량자도 남녀가 각각 2601명과 3928명으로 집계됐다. 20대 신용불량자의 증가율 역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30대와 40대는 12월 한달간 신용불량자가 각각 2.96%와 1.18% 늘어난 반면 20대는 5.29% 증가했다.
◇ 신용카드, 신용불량자 양산의 주범?
이처럼 신용불량자가 급증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표면적으로는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지난해 12월말 현재 개인 신용불량정보 등재건수는 총 962만4000건으로 이 가운데 신용카드 및 카드론 관련 등재건수는 437만1000건으로 전체의 45.4%를 차지하고 있다. 신용불량자 인원수를 기준으로 볼 때는 전체 260만 신용불량자 가운데 카드관련 신용불량자가 149만4000명(56.6%)으로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또 증가율에 있어서도 전체 평균을 4배 가까이 웃돌고 있다. 2001년말 전체 신용불량정보는 668만4900건에서 2002년 962만4900건으로 43%증가했지만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정보는 같은 기간 201만600건에서 351만4400건으로 74% 늘어났다. 카드론은 33만1100건에서 85만6900건으로 무려 159%라는 놀라운 증가율을 기록했다.
특히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 현황을 살펴보면 카드사들이 본격적인 한도관리에 들어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증가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난해 2/4분기의 경우 카드 관련 신용불량자 증가율은 1.5%에 불과했지만 3/4분기에는 16%로 급증했다. 또 10월 한달에만 카드 관련 신용불량자는 5.3% 늘어났으며, 11월과 12월에도 3.6%와 5.1% 각각 증가하는 등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에 접수된 상담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11월과 12월에 접수된 상담사례 가운데 카드 채무로 인한 상담이 6만3741명으로 전체의 45.4%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으로 볼 때 신용카드가 신용불량자 양산의 주범이란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신용카드가 소비의 최종 목적물이 아니라 이를 중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를 찾은 505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08명(41.2%)이 '생활고로 인해 빚을 지게 되었다'고 응답했으며, 124명(24.6%)은 채무원인을 '사업실패'로 꼽았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용카드사들이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했고 이에 따라 사치품과 유흥 등 불필요한 소비가 늘어나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기존의 지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개인워크아웃제도 보완 시급
신용불량자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신용회복지원위원회를 통한 개인워크아웃제도를 비롯해 개별 카드사들도 연체이자 감면과 같은 신용갱생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원제도들이 신용불량자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처방에 그친다는 점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또 이런 지원제도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고, 경제활동에 대한 책임을 자신 스스로가 진다는 시장경제원리를 해칠 우려마저 있어 대상을 무작정 확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대상 금융기관을 모든 금융기관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 동시에 개인워크아웃 심사를 보다 강화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현행 제도가 많은 허점이 있는 만큼 보완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금융연구원 김동환 박사는 "일부 금융기관만 가입되어 있을 경우 협약에 가입한 금융기관만이 개인워크아웃을 지원하게 돼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이 때문에 모든 금융기관이 동일하게 개인워크아웃협약에 가입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현재 모든 은행과 카드사, 보험사는 개인워크아웃협약에 가입했으며, 할부금융사 16개(대상 21) 리스사(9), 상호저축은행 89(115)이 가입한 상태다. 아직 신용협동조합과 새마을금고, 대부업체 등은 가입이 돼있지 않아 이들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이 20%를 넘을 경우 개인워크아웃제도를 이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또 신용회복지원위원회에서 일괄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별 금융기관과 채무조정 협의를 기피함에 따라 채권회수가 더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워크아웃 결정 후 신용불량정보 삭제 및 각종 채권보전 조치(급여가압류, 임대차보증금 가압류 등은 예외)가 해제될 경우 채무자가 재산을 처분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금융기관에 의해 워크아웃안이 거부당할 경우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특히 신용회복 지원 채무자의 상환능력 파악을 위해 재산 및 소득원을 명시한 워크아웃 신청서가 금융기관에 직접 전달됨에 따라 채무자의 재산을 확인한 금융기관에 의해 일시에 채권확보조치가 실행될 소지도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개인워크아웃제도의 문제점이 단시일내에 해결하기 힘든 만큼 신용불량자의 등록원인에 따라 다른 처방이 내려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500만원 미만(생계형)의 채무을 진 신용불량자가 전체의 34.52%에 이르는 만큼 이들을 먼저 구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