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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경(勝景)
구효서
소바 알갱이를, 하고 말한 뒤 그녀는 숨을 멈추었다. 오후 두 시였고, 밖은 5월의 봄빛이 화창했으나 실내는 약간 어둡고 서늘했다. 길고 가느다란 그녀의 손이 백자(白磁) 포트를 기울였다. 잔에 고이는 갈색 찻물을 바라보며 소바란 물론 메밀이겠지,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볶아 만든 차입니다. 찻물을 따른 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녀가 백자 포트를 탁자 위에, 소리 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그녀의 수척한 팔 위로 푸른 정맥이 지나갔다. 57세. 하루미. 터무니없어. 나는 고개를 흔들 뻔했다. 그녀의 관능을, 불현듯 보았고, 내치려 했다. 나 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미망인. 무렴하게도 첫 대면에 관능과 싸우다니. 곤혹스러워 잔을 들었다. 소바차는, 차갑고 깔끔했다. 나도 모르게 홀랑 잔을 비워 버렸다는 사실을, 마신 다음에야 깨달았다. 빈 잔은 곧 채워졌다. 독주를 마신 듯 가슴과 얼굴이 홧홧했다. 그 모든 것이 바깥의 봄빛과 완연히 대비되는 실내의 어둠과, 녹은 땅에서 끼쳐 올라오는 은근한 냉습, 오래된 큐슈 전통가옥에서 배어나오는 묵은 목향과, 그녀의 날카로운 콧등이 드리우는 각진 음영 때문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버렸다. 침대 다리 하나가, 살짝 열려 있는 문틈으로 보였다. 냉기를 떨쳐내기라도 하려는 듯 나는 노란색의 침대보를 잠깐 동안, 간절히 바라보았다. 사이드 테이블 위의 소라 껍데기, 마른 풀과 열매들, 그리고 이런저런 자잘한 물건들은 여행지에서 모아온 것들일까. 한국에서 오신, 하고 말한 뒤 그녀는 다시 숨을 멈추었다. 아련한 기운이 그녀의 눈빛에 얼핏 스쳤다. 작가 선생님이시라고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놀랄 것도 없이 놀라 아, 예, 김현수라고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혼잣소리로 긴, 긴상…. 을 입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양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구십 도로 머리를 숙여 지나치다 싶을 만큼 깍듯이 인사를 했다. 짧은 생머리가 귀밑에서 흔들렸다. 고개를 든 그녀는 숨을 멈추는 법 없이, 활기찬 보국대원처럼 절도 있게, 누추한 집을 방문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환영합니닷, 이라고 말했다. 활짝 열어 웃는 입술 사이로 하얀 덧니가 보였다. 터무니없는 긴장을 들킨 것 같아 나는 얼른 함께 웃지 못했다. 창문밖엔 영산홍 꽃무더기가 봄볕에 바래고 있었다. 타떼노 마을의 유일한 산, 오기야마(扇山)의 푸른 정상이 멀리 바라다보였다.
히라타 씨가 나의 방문을 그녀에게 미리 통보했을 것이다. 히라타 씨는 타떼노 마을의 이장쯤 되는 육십 초반의 남자였는데 나에겐 관광 가이드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다변을 나는 친절로 받아들였다. 도착 사흘 만에 마을의 거의 모든 것을 알아버린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던 것도 히라타 씨 때문이었다. 그의 친절은 어딘가 분명 지나친 점이 있어 보였지만, 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하루미를 방문할 것을 그는 일찌감치 내게 권했다. 저로서도 잘 모르는 부분은 있거든요, 라고 말한 뒤 그는 습관처럼 하루미 씨라면…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나는 하루미를 방문하지 않았다. 히라타 씨의 다변의 팔할이 어차피 내게는 궁금하지 않은 것들이었으니까. 나중에, 시간이 있거나 필요하다면, 이라고 혼자 생각해버렸다. 내가 타떼노에 도착한 것은 마을의 내력이라든지 마을 사람들의 삶 같은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원고지 7백장 정도의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한적한 환경. 그런 곳이면 되었다. 다만 내가 쓸 소설의 공간 배경이 나가사키라는 것. 그래서 이왕이면 나가사키와 가까우면서, 나가사키 보다는 체재비가 적게 들 법한 만만한 지역이면 좋겠다는 게 내가 타떼노를 선택한 이유의 전부였다. 관심이 필요했던 곳은 나가사키였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전기철도를 타고 다녀오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했고, 계획했던 3개월이 지났다. 소설은 당초의 생각대로 나가주진 않았지만 늘 그렇지 뭐, 라고 자조 섞인 한숨을 지으며 짐을 꾸렸다. 거의 두문불출하다시피 한 지난 3개월과, 어쨌든 7백장의 원고를 마쳤으니 만족하기로 했다. 나가사키를 들러 후쿠오카에서 하룻밤 잔 뒤 첫 페리를 타고 느긋하게 부산에 도착하기로 했다. 오전에 히라타 씨를 만나 그동안의 친절과 보살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하루미 씨를 잠깐 만나고 갔으면 좋겠다는 뜻도 함께 전했다.
그녀는 이목구비가 또렷했을 뿐 아니라, 분명한 미인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과 팔, 이마와 코와 턱을 유심히 보았다. 육십이 가까운 몸이었으나 아무것도 와해되지 않은 것 같은, 아담하고 가느다란 체형. 히라타 씨로부터 들은 바로는 그녀의 남편은 장애인이었다.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었던 남자의 아내. 어쩔 수 없는 나의 선입견을 스스로 탓하는 순간 문득 그녀의 관능이 느껴졌던 것일까. 그녀는 비장애인이었으며 뛰어난 미모를 간직한 여성이었다. 나는 차가운 소바차를 한 잔 더 마시며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이 어서 씻겨 내려가길 바랐다. “미꾸라지군요.” 나는 더 이상 그녀의 모습을 훔쳐보지 않기로 하고 도망하듯 시선을 돌렸다. 어두운 거실 한켠에 제법 큰 수조가 놓여 있었다. 미꾸라지들이 활기차게 움직였다. “이왕이면 내일, 불탄일에 풀어주려구요.” “방생?” “음, 저는 불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부처님 오신 날에 풀어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녀가 웃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 저놈들은 킨린코에서 자유롭게 살겠네요.” “미꾸라지는 물속 토양을 헤집어서 공기를 공급하지요. 호수가 썩지 않는 거예요. 수초와 그리고 다른 물고기들의 생장에도 이로워요.” “킨린코 주인다운 말씀입니다.” “주인은요. 이름을 킨린코라 지은 게 호수한테 미안할 뿐이지요. 자꾸 미꾸라지만 넣으니까요. 하지만 뭐 미꾸라지도 배의 색깔이 노랗긴 하죠?” 겸연쩍은지 하루미는 입을 가리고 찡그리며 웃었다.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어째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내와 결혼할 생각을 했을까. 내 천박한 선입견과 궁금증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건가.
킨린코(金鱗湖). 말 그대로라면 금빛 비늘 물고기가 사는 호수라는 뜻이다. 잉어쯤이라면 알맞겠지. 하늘을 반사하고 있어 늘 눈부신 호수. 그것만으로도 이름에 값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천천히 걸어도 7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을 만큼 호수는 작았다. 깊이도 그다지 깊어 보이지 않았다. 호수라기보다는 연못이라 할만 했다. 보잘 것 없는 호수는 그러나 명소였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호숫가로 줄지어 봄소풍을 왔다. 제법 먼 곳에서 찾아오는 여행객도 있었다. 각별한 게 있을까 싶어 유심히 호수와 호수 주변 풍경을 관찰했다. 얕고 작아 수면이 늘 잔잔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비췄다. 그뿐이었다. 채색한 지 오래된 양옥의 불그죽죽한 지붕과 버드나무 가지들이 호수 가장자리에 겨우 투영되고 있을 뿐.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었다. 산이 있고 나무가 있고 물이 있으면 하루 봄소풍 장소로는 안성맞춤. 그래도 어딘가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궁금했던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석 달 전, 잠시 머물 장소를 추천해 주면 좋겠다는 메일을 면사무소에 해당하는 무라야쿠바(村役場)로 무조건 보냈다. 신분을 밝히기 위해 작품평이 실린 국내 일간지 리뷰 기사와 내 소설책 표지 사진 몇 개를 첨부파일로 보냈다. 쓸 소설의 배경 설명을 간단히 덧붙였고 머물 기간도 함께 적었다. 대학에서 일어문을 전공하긴 했지만 내 메일은 많은 부분 영어 단어로 채워졌다. 무라야쿠바로부터 날아온 답신은 놀랍게도, 모두 한글이었다. 환영하며, 영광이라고까지 했다. 타떼노 마을을 추천했고, 숙식비는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저렴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가겠노라, 한글로 답했다. 단 한 번의, 일방적인 메일로 계획이 성사되다니. 타떼노 마을에 대한 첫인상은 그렇게 깔끔했다. 히라타 씨의 친절한 안내와 배려 때문에 나는 칙사(勅使)라도 된 기분이었다. 낯선 이방인을 대하는 타떼노 마을 사람들의 태도 또한 히라타 씨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나 보다 먼저 그들이 인사를 건네 왔고, 아이들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4년 전의 월드컵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환대가 월드컵 4강까지 오른 우리 축구 선수들의 눈부신 활약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런 건지는 물론 알 수 없었다. 한국의 어느 마을에서도 한 일본인 방문자에 대해 이토록 우호적일 수 있을까. 역시 알 수 없었다. 타떼노 마을의 공기는 다른 곳에 비해 산소 함량이 다소 높은 건 아닐까.
그 중 한 가지 궁금증은 얼추 풀렸다. 타떼노에 도착한 지 2주 만이었다. 킨린코에 관한 것이었다. “역시 작가 선생님이라 다르군요.” 히라타 씨가 한 말이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민망하게도, 그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늘 특별한 어떤 것으로 인식되었다. “작가가 아니더라도 이곳을 찾는 이방인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하지 않을까요? 킨린코에서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으니까요.” 내 궁금증을 히라타 씨는 반겼다. “그럴지도 모르죠. 명소가 된 호수의 내력을 모를 테니까.” 그는 입맛을 한 번 쩍 다시고는 고개를 들어 오기야마(扇山)를 바라보았다. 오기야마는 원래 쥘부채를 거꾸로 놓은 형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정상이 뾰족하다면 모를까, 오기야마는 거꾸로 놓은 부채꼴이 아니었다. 정상은 평평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부채 선(扇)자를 평평할 편(扁)자로 잘못 읽었다. 히라타 씨의 말에 따르면 오기야마의 정상이 평평해진 것은 전쟁 이후였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오기야마 정상에 우뚝 솟아 있던 크고 뾰족한 바위가 산 뒤쪽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가사키와 3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오기야마의 거대한 바위가 원자탄의 폭풍에 굴러 떨어졌다는 건 아무래도 과장인 듯했다. 정말 그랬다면 우연일 뿐이었다. 폭심(爆心) 바로 곁의 우라카미 성당 벽돌기둥이 아직도 그 자리에 얼마간 남아 있지 않은가. 폭심에서 10분 거리에 서 있는 외다리 도리이도 어쨌든 반쪽이나마 그대로 서 있질 않던가. 하지만 오기야마의 크고 뾰족한 바위가 원폭 투하일에 쓰러져 버렸다는 것만큼은 사실인 듯했다. 그래서 타떼노 마을 사람들은 평평해진 오기야마의 정상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가슴이 아픈 것뿐만 아니라, 태어나 늘 보고 살아온 오기야마의 모습이 일순간 변하면서 타떼노 마을 사람들은 균형감각을 잃기 시작했다. 유실된 바위의 존재감만큼 마음 한 귀퉁이에 텅 빈 상실감이 들어앉았다. 패전의 우울과 아픔, 쉽게 치유되지 않는 상흔과 말 못할 속앓이쯤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정상이 없어져 버린 오기야마는 타떼노 마을 사람들에게 보다 더 직접적인 증상들을 불러 일으켰다. 마을 유일의 산. 그 산의 중요한 일부가 유실됨으로써 마을 전체가 중심을 잃었다. 유실된 만큼 산이 가볍게 느껴졌고, 균형 반사작용 때문인지 사람들의 몸이 기울기 시작했다. 현기증으로 비틀거렸고 길을 잃었다. 걷던 사람들끼리 부딪히거나 전신주에 걸려 넘어졌다. 논두렁을 지나다 균형을 잃고 무논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논흙이 기도를 막아 숨진 노인도 있었다. 마을 전체가 빈혈에 걸려 구토를 앓았다. 불면에 시달린 사람들처럼 모두 창백했다. 수년이 지나도록 증상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 사태를 마침내 진정시킨 것이 킨린코였다. 킨린코는 하루미와 그녀의 남편 야마가와 겐타로가 막대한 비용을 대 완공한 인공호였다. 킨린코는 하늘을 반사해 늘 희게 빛났다. 오기야마가 그 정상을 잃어버림으로써 가벼워졌고, 상대적으로 땅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처럼 무거워졌다. 오기야마의 대칭점에 못을 파 하늘을 반사하게 함으로써, 땅의 무게를 줄였다. 하루미의 남편 야마가와의 아이디어였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는지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그러나 야마가와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말을 아끼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을까요?” 히라타 씨에게 내가 물었다. “나라고 다 아는 건 아니에요. 하루미 씨라면…….” 그는 내가 하루미를 만날 것을 은근히 바랐다. 하루미의 남편 야마가와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던 건지 전혀 모르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루미를 만나게 하려는 데는 왠지, 내가 작가이기 때문일 가능성도 없지 않은 듯했다. 킨린코가 나름대로 명소일 수 있는 이유를 알긴 했지만 궁금증이 다 풀린 것은 아니었다. 호수를 만들면 땅이 가볍게 느껴져, 상실한 균형 감각이 회복될 거라는 것. 그런 힌트를 어디서 얻었는지도 물론 궁금했으나, 내심 다른 의문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저러하여 킨린코가 의미 있는 명소가 되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전전세대의 명소일 뿐이지 않을까. 전쟁 뒤에 태어나 오기야마를 원래 평평한 산으로 알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균형 회복의 필요성도, 보잘 것 없는 호수를 명소로 여길 까닭도 없는 것 아닌가. 전전세대의 우울과 상흔, 그리고 그들의 간절했던 치유욕구가 지금의 어린 세대들에게까지 유전되고 있다는 말일까. 봄소풍이 끊이지 않다니. 그런 것이 유전될 리는 없었다. 일본인들의 국수주의 냄새가 나는 부분이었다. 전쟁에 대한 일본인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태도가, 보잘 것 없는 호수를 대를 이어 명소로 만드는 건 아닐까. 하루미를 만나게 하려는 히라타 씨의 은근한 권유마저 알량하게 느껴졌다.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해 버렸다. 어쨌든 타떼노 마을의 공기가 전체적으로 가볍게 여겨지는 까닭만큼은 짐작이 됐다.
탁자 위로 몇 개의 과자가 차례로 놓였다. 밤빵일까. 밤만주, 녹차만주, 소바만주……. 하루미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혼잣소리로 말했다. 모모야마, 유과……. 점심을 먹었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예, 라고만 대답했다. 점심 생각은 없었다. 그녀에게 어떤 질문을 했는지 깜박 잊고 있었다. 대답 대신 그녀가 점심을 먹었느냐고 내게 되물었고, 이어 아지노메이사쿠(味の 銘作)라고 적힌 종이 상자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내 질문에 대한 완곡한 거절의 의사로 받아들였다. 입을 다문 채 주방에서 탁자까지 천천히 움직일 뿐이었으므로. “이것은 락교.” 그녀가 작은 접시 위의 것을 가리켰다. 와인락교, 라고 덧붙였다. 함께 먹으면 목이 메지 않을 거라고. 포도 같았다. 그녀는 묻지도 않은 말을, 입 안의 포도 씨를 고르듯 가만가만 늘어놓았다. 락교, 레드와인, 설탕, 포도당, 식염, 산미료를 첨가한 거예요. “집 앞 텃밭에 토란부추를 잔뜩 심곤 했어요.” “아, 예.” 나는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모모야마라고 짚었던 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흰 팥앙금이 드러났다. 그녀의 시선은 집 밖의 텃밭을 향했다. “락교가… 토란부추의 뿌리거든요.” 그녀는 창가의 작은 나무의자 위에 자신의 여린 몸을 가만히 앉혔다. 몸에서 종이 접는 소리가 났다. 한때 한가득 토란부추였을 텃밭엔 유채꽃이 피어 있었다. 나는 문득, 그녀가 대답을 하려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겨울에도 토란부추를 재배해 봐야겠다고 야마가와가 말했다. 하루미는 땅거미가 질 때까지 텃밭에 비닐을 덮어 온상(溫床)을 만들었다. 마을에서 처음 시도해 보는 토란부추 온상을, 하루미는 혼자서 해냈다. 야마가와와 결혼하기 전이었다. 야마가와는 하루미를 일꾼처럼 부렸다. 그녀에게 밭일을 시키고 거들지도 않았다. 불쌍한 하루미에게 밭을 맡긴 뒤로 부지런하던 야마가와가 게을러져 버렸다고 마을 사람들은 혀를 찼다. 그 밭 말고도 자신이 일궈야 할 땅이 많다며 야마가와는 변명했다. 하루미는 농사에 서툴렀다. 그녀 혼자 삼백오십 평이나 되는 토란부추밭을 일군다는 건 무리였다. 그녀는 그러나 솜씨 좋게 그 일을 해냈다. 밤 때문이었다. 엉성하던 텃밭이, 밤이 지나고 나면 깔끔해졌다. 마을이 잠 든 사이, 야마가와의 손길이 지나갔던 것이다. 하루미는 병든 아버지와 타떼노로 흘러든, 당장의 끼니조차 어려웠던 스물 세 살의 처녀였다. 그녀에게 일을 주기 위해 야마가와는 낮에 게으르고 밤에 부지런했다. 텃밭에 비닐을 덮은 다음 날, 야마가와는 키 작은 벽오동들이 서 있는 마을 한켠을 가리키며 하루미에게 말했다. 저쯤에… 호수를 팔 거예요. 그러고 싶어요. 호수는 왜요? 하루미가 물었다. 어젯밤 텃밭의 비닐이 달빛을 반사하는 걸 보았어요. 호수가 하늘을 반사하면 땅이 가벼워질 거예요. 나는 와인락교의 향을 음미하며 창가에 앉은 하루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말을 하며 손으로는 연신 수화를 지어냈다. 그녀 앞 어디쯤에 야마가와가 서 있는 듯했다. 그녀의 마지막 수화는 말이 되지 않았다. “무슨 뜻이죠?” 내가 물었다. 그녀가 손을 내리고 말했다. “호수를 파려면 많은 돈이 필요할 텐데요…….” 호수가 들어선 곳이 원래는 벽오동 밭이었구나.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들 부녀가 처한 형편을 타떼노 마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중절모에 양복차림으로 마을에 들어섰다. 그녀도 도회풍의 밝은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머문 곳은 에도시대 말기 존왕파 지사였던 사카모토 료마의 별장(다만 그렇게 알려졌을 뿐 사실인지는 지금도 모르겠어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이었다. 처음부터 형편이 나빴던 건 아니었다. 그들을 보살폈던 나가사키 츠키마치도리 번영회 미우라 상무의 부도 소식이 전해지기까지는, 부족하나마 타떼노에서의 요양과 수발이 가능했었다. 친구이며 상인회 동료였던 미우라의 부도가 그들 부녀에게는 너무도 빠르고 갑작스러웠을 뿐이다. 원자병을 앓던 어머니가 일찌감치 죽고, 아버지마저 증상이 깊어지면서 겪었던 모진 유랑의 세월이 다시 하루미 앞에 닥쳤다. 미우라의 생활비가 끊기자, 원래 버려진 집이나 다름없던 별장은 더욱 퇴락해 갔고, 귀기마저 서렸다. 그것은 병든 아버지와 야윈 하루미의 생명을 시나브로 잠식하는 무덤이었다. 그녀의 원피스가 늘 눈부시도록 깨끗했으므로 마을 사람들은 그들 부녀의 형편을 얼른 알아채지 못했다. 계절이 바뀌어도 언제나 원피스 한 벌 뿐이었다는 것, 그 깨끗한 원피스가 시나브로 옥죄어 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내기 위한 주술이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어느 겨울, 야마가와는 자신의 빈 텃밭에서 서성이는 하루미를 보았다. 그녀는 무심함을 가장하고 있었으나 이따금씩 발끝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발길에 뽑혀 나온 형편없는 언 무를 집어 들었다. 슬프도록 민첩한 동작이었다. 그날 이후 부녀가 묶고 있는 별장 회랑에 하루에 한 번 밥이 놓였다. 간장에 절인, 이름을 알 수 없는 마른 생선과 함께. 언제나 흰 밥에 절임생선이었다. 바뀌는 법이 없었다. 절임생선의 맛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짜고, 군내가 났다. 누군가 버린 음식을 가져다 놓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음식을 가져다 놓는 사람을 탓할 계제가 아니었다. 허드레 음식이나마 그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누가 가져다 놓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미는 종일 그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아무도 별장 주변을 얼씬거리지 않았는데도 음식은 땅에서 솟은 듯 그 자리에 놓이곤 했다. 황조롱이 한 마리가 공중을 선회할 뿐이었다. 이따금씩 그림처럼 정지한 채 황조롱이는 땅을 굽어보았다. 어떨 때는 땅으로 내려와 음식 위에 앉기도 했다. 하루미가 본 것은 황조롱이뿐이었다. 황조롱이야 고맙다. 그녀는 날아가는 황조롱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시겠어요?” 그녀가 자줏빛 종지의 뚜껑을 열어보였다. 혹시 이것이 그때의 그 음식이냐고 내가 눈빛으로 물었고, 그녀 역시 눈빛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새까만 간장에 절여진 도막난 마른 생선. 형태가 부서지고 으깨져 생선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칡뿌리 같았다. 벗겨진 껍질 사이로 드러난 V자형 살갗 무늬가 낯이 익긴 했다.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코다리?”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북어……. 맞지 않나요?” 그녀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나도 따라 고개를 저었다. “후안테.” 그녀가 말했다. “황태?” 내가 되묻자 그녀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북어가 맞아요. 코다리도 맞는 거죠.” “아니요. 후안테에요. 후안테.” 그러면서 그녀는, 남편이 ‘후안테가 아니면 안돼.’라고 말했다고 했다. “큐슈지방에서는 한국의 총각이란 말을 의미 발음 모두 동일하게 사용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어요.” “그래요.” “그럼, 황태라는 말도 그런가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후안테는 한국 거예요. 시어머니의 고향 인제. 인제 후안테 덕장.” “시어머니가 한국인이셨군요.” “시아버지의 고향은 함경도.” “야마가와라고 해서 저는 남편분이 일본인인 줄 알았습니다.” “개명을 했어요. 하지만 고국산천이 그립다고 야마가와(山川)로 했죠. 원래 이름은 김, 상, 호.” 나는 그제서야 히라타 씨의 은밀한 권유와, 뭔가를 감추는 듯한 눈빛과 웃음의 정체를 알았다. 히라타 씨는 다변이었으나 지나친 다변은 아니었던 셈이다. 나도 모를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김상호.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환대와 우호가 아무래도 그 김상호라는 존재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다. 후안테에 얽힌 사연, 하고 말한 뒤 하루미는 숨을 멈추었다. 야마가와는 그녀에게 더 많은 일을 주었다. 농사에 서툰 그녀가 본때 있게 작물을 키워내는 까닭을 마침내 마을 사람들도 알았다. 하루미도 그 즈음, 황조롱이가 다름 아닌 야마가와라는 사실을 알았다. 야마가와는 일부러 게으를 필요가 없어졌다. 밤낮없이 부지런한 야마가와로 되돌아왔다. 가족처럼, 둘이 함께 땅을 일구었다. 야마가와 총각이 하루미를 맘에 두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런 소문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과연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조센징에게 하루미가? 그런 생각 또한 전혀 부자연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꽃피는 사월의 논밭에서 허리 숙여 괭이질 하는 두 남녀는 다정한 신혼이었다. 그러나 일이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지겨운 절임생선 반찬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그것이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생각과 소문의 근거였다. 멀쩡한 입으로도 하기 힘든 게 청혼인데 하물며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야마가와에게 있어서랴. 타떼노 사람들의 호기심이 깊어가던 어느 여름 날, 하루미는 처음으로 야마가와 집을 방문했다. 야마가와 노모의 청에 의한 것이었다. 나라츠케 담그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이유에서였으나, 아들의 맘을 가장 잘 아는 것이 그의 노모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하루미는 맛있는 나라츠케 담그는 법을 그의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비법은 술지게미에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꼬들꼬들하게 지은 밥에 누룩과 술약 섞는 요령을 보여주었다. 독에 넣어 온돌에 뜬다고 했다. 온돌이란 것을 하루미는 그의 집에서 처음 봤다. 장차 독 안에 흰 빛의 술이 고일 것이며, 그 술의 이름은 막걸리라고 했다. 막걸리를 걸러낸 술지게미에 율외나 노각을 박으면 특유의 나라츠케가 되는데, 그 맛이 워낙 유명해서, 야마가와의 노모가 만드는 것은 특별히 타떼노 나라츠케라는 상표가 붙었다. 이것이 백제인 수수허리가 오우진 천황을 위해 만든 최초의 방식 그대로라오. 그리고 노모의 말은 조금 더 이어졌다. 나가사키에서의 피폭과, 우키시마호가 현해탄에 수장된 이후 귀국을 단념한 얘기들. 무지한 부모 탓에 애당초 장애를 안고 태어난 데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열다섯 살부터 땅을 일군 불쌍한 야마가와……. 문 밖의 야마가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노모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 못할 그도 아니었다. 멀찌감치 들판으로 도망쳐 나가 있고 싶었으나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부친의 병이 저토록 중하니 들어와 우리와 함께 사시도록 하세나. 노모의 말이 무얼 뜻하는지 하루미가 모를 리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대답을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 요즘은 웬만하십니다. 걸어서 산보도 하시는 걸요, 라는 말로 하루미는 대답을 대신했다. 문이 열리고 하루미가 밖으로 나오자 야마가와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방 안의 노모는 고개를 돌려 오기야마의 평평한 정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 둘 바를 모르던 야마가와는 쥐고 있던 부채를 얼떨결에 하루미에게 건네고, 환관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때 어디선가, 솜털처럼 흩날리는 홍화꽃잎과 함께 낯익은 냄새가 흘러들었다고 했다. “절임생선 냄새였어요.” 내 앞에 놓인 황태절임을 내려다보며 그녀가 말했다. “그때 아신 건가요? 황조롱이가 야마가와란 걸?” “그 전에 이미 알고 있었지요. 다만 냄새가 구수하다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지요.” “익숙해진 거였군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말했다. "…운명의 냄새였던가 봐요. 매일처럼 얻어먹던 그 허드레 음식의 정체를 알고 싶었거든요.” 음식은 매우 깊고 어두운 질그릇 안에 들어 있었다고 했다. 바닥에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은 절임생선은 얼핏 보아도 수년 전에 버려진 쓰레기 같았다. 울컥 욕지기가 올라왔다. 하루미의 창백한 낯빛을 거니챈 야마가와는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 말을 만들어냈다. “수년 동안 묵은 게 아니라, 정확히 이십 년이나 묵은 거라더군요. 이십 년 묵은 장에 담근 후안테. 한국의 강원도에서 얼음과 눈과 바람에 얼고 녹으며 마른 게 후안테라죠. 어렵사리 구해온 그것을, 노모가 직접 담가 스무 해나 묵힌 장에 절인 거였어요. 노모와 야마가와가 귀한 약으로 조금씩 아껴 먹는 거였는데, 저와 아버지에게 주느라 두 모자가 그동안 그걸 먹지 못했다더군요.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서 피폭당한 조선인들 중에는 후안테 백 축을 고아 먹고 정말 나은 사람이 있다고 했어요. 아버지의 증세가 호전되어 산보라도 하게 되었던 게 그 절임생선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었던 건 나중 생각이었어요. 제가 야마가와 집에 들어가 산 뒤로.” “야마가와 집으론 언제 들어갔는데요?” “그날로요. 그날 야마가와 집에서 아예 나오질 않았죠.” 나는 황태절임을 찬찬히 씹으며 웃어 보였다. “음, 정말 구수해요.”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5월의 햇살이 먼저 쏟아져 들어왔다. 침몰하는 배의 깨진 현창으로 바닷물이 들이닥치는 것 같았다. 잠시 뒤에 그 햇살을 밟고 노년의 한 사내가 들어섰다. 눈이 부셔 나는 잠시 눈꺼풀을 닫았다. 사내는 신발장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표정이 없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마른, 작은 체구였다. 그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하루미가 천천히 다가가 종이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그를 거실 한켠의 의자에 앉도록 했다. 하루미를 대하는 사내의 태도는, 정숙하고 공손하다 못해 비굴할 정도였다. 다이묘 시대의 사유 노비가 그랬을까. 하루미가 방 안으로 들어가고 거실에는 그와 나만 남았다. 그와의 거리는 일곱 걸음 정도. 사내는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초등학교 입학생처럼, 역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얌전히 앉아 있었다. 얼핏 봐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연보랏빛 오동나무 꽃이 한창이었다. 오동나무가 특별히 많은 마을은 아니었다. 나는 타떼노의 경치를 살피면서 알게 되었다. 산벚꽃이 필 때 사방은 온통 산벚꽃 뿐이고, 아카시가 필 때 또 사방은 온통 아카시 천지라는 걸. 오동나무도 그랬다. 머잖아 온통 초록으로 범벅되고 말 나무들은 꽃을 피울 때야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오롯이 드러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차례로 꽃 잔치를 벌일 때만 그랬다. 창밖으로부터 눈길을 거두어들였다. 의자에 앉은 노년의 사내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어이없을 만큼 활짝 웃는 웃음이었으나 정지된 화면 같아 생명력도 감정도 없어 보였다. 주름 많은 하회탈. 저 상태로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숨이 턱 막혔다. 상대로 하여금 아무런 감정변화도 유도해 내지 못하는 이상한 웃음은, 하루미가 방에서 나오자 금방 무표정 모드로 바뀌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예의 그 공손하다 못해 비굴한 표정으로 돌아가 버렸다. 너무 빠르고 완벽한 회귀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좀 전에 웃던 모습은 환영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내는 머리를 조아리고 하루미가 건네주는 두툼한 봉투를 받았다. 귀중한 물건 떠받들 듯했다. 더 깊이 머리를 숙이며 뒷걸음(뒷걸음이었다!)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고, 얼굴은 또 다시 완벽한 하회탈 모드로 바뀌어 있었다. 내게 보내는 모종의 인사인 듯했으나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잃어버리지 말고 잘 가지고 가세요. 하루미의 말에, 그는 다시 다이묘의 사유 노비처럼 허리를 굽히고 현관문을 빠져 나갔다. “호우지라고 해요.” 하루미가 멀어져 가는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호우지. 사내의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옛날 쇼군들이 쓰던 도장을 그렇게 불렀다나 봐요. 타떼노 절임식품임을 증명하는, 인증 딱지인 셈이죠.” 하루미가 사내에게 준 것은 도장 찍힌 상표였다. 우메보시 4백장, 나라츠케 4백장, 후쿠진츠케와 우엉절임 각각 8백장. 사내가 들고 왔던 종이는 일종의 상표 주문서였던 것이다. 호우지는, 시어머니를 이어 그녀의 남편이 관리하던 도장이었다. 이제는 타떼노 마을에서 생산되는 모든 절임식품 상표에 찍히지만, 원래는 야마가와 모자의 것에만 제한적으로 붙던 표지였다. 하루미가 야마가와의 아내가 되면서 절임식품의 종류와 양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노각을 재료로 한 데츠쿠리 나라츠케, 갓의 일종인 티카나츠케, 심해어류인 발광오징어를 간장과 주정에 담그는 호타루이카, 다시마 표고버섯 조림, 마늘된장절임, 깨다시마조림, 중국야채와 뿌리열매를 이용한 야마쿠라게와 자사이절임까지, 그 종류가 오십 가지를 넘었다. 두 사람의 각별하고 신바람 나는 사랑 때문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독특한 맛과 향 때문에 그들의 타떼노 나라츠케는 마침내 도쿄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절임식품으로 인정받았다. 운두 높은 독들이 줄지어 늘어났던 것만큼 가족 소유의 땅도 해마다 늘어났다. 야마가와는 밤 낮 없이 일했으나 왠지 지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다. 마을 전체의 땅을 사고도 남을 만큼 돈을 벌었다. 야마가와는 그때를 회상하며, 정말 원 없이 일해 봤노라 말하곤 했다. 한 가족이 감당하기엔 벅찬 주문이 밀려들면서 결국 야마가와와 하루미는 자신들의 비법을 마을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전수했다. 타떼노는 유명한 절임식품 마을이 되었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물론 도장을 어머니가 관리하셨죠. 어머닌 직접 일일이 맛을 보고 흡족해야 상표에 도장을 찍어 주셨어요. 그때부터 도장이 호우지라는 이름으로 불렸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야마가와는 도장을 마을 협의체에 맡기려 했어요. 검품 자체도요. 나라츠케가 마을 것이 된 거니까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극구 사양했죠. 호우지는 반드시 야마가와 댁에 있어야 한다, 고 했어요.” 쇼군의 보새(寶璽) 호우지. 과연 사내가 떠받들 만한 거였다. 이젠 그냥 형식적으로 제가 관리하는 것뿐이죠. 검품 과정은 생략한다고 하루미는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워낙 제조원칙을 잘 지키니까.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 여기는 타떼노 사람들이라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이가 아닐지라도 호우지에 대해 사내와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일 터였다.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 호우지의 권위를 지켜나가는 거였다.
연보랏빛 오동나무 꽃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흰 구름이 천천히 흘러갔다. 휘파람 소리 같은 새 울음이 들렸다. 자동차가 이따금씩 멀리 어딘가를 지났다. 낮잠에 빠져 들기 좋은 오후였다. “열차 시각이 돼서 전 이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달콤한 밤만주와 와인락교, 소바차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녀가 잠깐만요, 라고 말했다. 냉장고에서 종이 상자 하나를 꺼내 왔다. 아지노메이사쿠와 비슷한 규격의 상자였다. “이게 호타루이카예요.” 그녀가 상자를 열었다. 진공포장지 속에 식품 덩어리가 엉겨 있었다. 연한 갈색과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새끼 오징언가 봐요.” “사실은 다 자란 성어에요. 심해어류라 작지요. 2백에서 1천 미터 깊이의 수심에서 살아요. 몸에서 반딧불이 같은 빛이 나죠. 호타루. 반딧불이란 뜻이니까요. 이카는 오징어.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오징어란 뜻.”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했다. “4,5월이 산란기인데 그때 잡은 것이 가장 맛이 좋아요. 작년 이맘때 잡힌 것들이죠. 타떼노의 명품. 정갈하게 씻은 호타루이카에 간장, 식염, 설탕, 그리고 주정과 천연 다시마 조미료를 넣지요. 담그는 법은 간단하지만 맛만은 최고. 담백하면서도 내장에 아미노산이 많아서 좋은 맛을 내요. 그대로 먹어도 되지만 실파를 썰어 넣거나 고춧가루를 살짝 뿌려 먹어도 돼요. 술안주로 먹어도 되고 그냥 따뜻한 밥 위에 얹어 먹어도 좋아요.” 그녀는 당장에라도 밥 한 그릇을 내오고야 말 기세였다. 타떼노 마을 원조 절임식품 전문가다운 면모였으나, 그녀의 상기된 얼굴에는 아까 생긴 홍조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신바람이라고 해야 할지, 남편과 함께 킨린코 파던 얘기를 할 때 그녀는 피어오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벌어들인 돈으로 그녀 가족은 호수를 파기로 했다. 야마가와의 오랜 꿈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파는 것 치고는 꽤나 큰 호수였다. 마을 사람들이 공사에 동원되었다. 일당을 넉넉히 쳐 주었다. 어째서 갑자기 호수를 파는 거냐고 물어도 야마가와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루미에게 물으면 그녀는 금빛 잉어나 낚으며 살겠답니다, 라고 대답했다. 부자의 호사 치고는 연못이 너무 크다는 공론이 있었으나 야마가와는 당초의 계획대로 밀고 나갔다. 그들 부부는 마을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고 싶었다. 호수에 물을 가두는 날 비로소 회복될, 마을의 균형감. 상상만으로도 기뻤다. 미리 사실을 알리면 공사비를 갹출하자고 할까 봐 숨겼다. 야마가와는 비용을 혼자 대고 싶어 했다.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불도저는 한 대만 빌렸다. 나머지는 손수 만든 넉가래로 팠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달겨들어 땅을 파고 흙을 실어 나르는 광경이 두 달 내내 장관을 이루었다. 당시의 얘기를 하면서 하루미는, 미세하지만 전율하듯 다리를 떨었다. 살짝 벌어진 원피스 앞자락 사이로 그녀의 흰 무릎이 흔들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가늘고 푸른 정맥이 투명한 살갗 속에서 빛을 발했다. 그녀의 몸 구석구석 핏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차분하게 말했지만 그녀에게선 잔잔한 열기가 느껴졌다. 불도저를 한 대만 빌린 것은 온 마을 사람들에게 넉넉한 품삯을 나눠주기 위해서였지요. 그리고… 말소리에서도 약간의 경련이 일었다. 아, 야마가와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호수를 팠다는 성취감을 마을 사람 모두가 나눠 가져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지요.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창밖 어디쯤을 바라보았다. 나는 관능의 정체를 알았다. 야마가와에 대한, 조금도 식지 않은 그녀의, 사랑이었다. 호수가 완성되고 물이 들어찬 날, 마을 사람들은 기쁨도 환성도 없이 저마다 섰던 자리에 주저앉아 넋을 잃었다. 끼니도 잊고 말없이 눈만 연 채,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그렇게 앉아 신비에 젖어들었다. 수면 위로 금빛 노을이 떨어질 때까지. “이걸 드릴 게요. 방문 감사의 선물.” 하루미가 호타루이카 박스를 내게 잠시 내밀었다. 그리곤 다시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하지만 냉동식품이라 특별 배송을 해야 돼요. 서울 도봉구에 거래처가 있어요. 지금 주문을 넣으면 작가님 댁에 두 시간 안에 도착하죠.” 아파트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것으로 내 방문은 끝났다. 5월의 햇살을 읏샤, 밀치며 나는 그녀 집을 나왔다.
어디선가 삽살개 한 마리가 달려와 그녀의 종아리를 맴돌았다. 손을 뻗으면 마당 저쪽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와 종아리를 핥았다. 그러기를 반복했다. 삽살개는 오랜 친구처럼 그녀와 장난을 쳤다. 햇살이 삽살개의 털끝에서 부서졌다. 그녀의 원피스 자락은 커튼처럼 투명했다. 가늘고 흰 종아리가 눈부신 햇빛에 녹아 버릴 것 같았다. 그녀에게 자녀는 없는 걸까. 사요나라. 나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히…….” 그녀가 한국말로 응대했다. 킨린코로부터 흘러내리는 작은 개울을 따라 걸었다. 맑은 물 속에 피라미들이 움직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세 명의 아이들이 개울물처럼 맑은 웃음을 지으며 내 곁을 지나쳐갔다. 손짓을 해 보이자 까르르 웃었다. 타떼노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아이들은 나를 보고 맑게 웃었었다. 멀리 기차역 건물이 바라다보였다. 나는 잠시 서서, 뒤돌아보았다. 책가방을 등에 멘 초등학생들이 팔짝팔짝 멀어져갔다. 하루미는 삽살개를 잡으려고 이따금씩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을 피해 장난스레 도망치는 삽살개는 공연히 신나 있었다. 그들 광경 뒤로 평평한 오기야마의 푸른 정상이 보였다. 그리고 하늘을 반사하는 킨린코가 눈에 들어왔다. 유치원생들이 인솔교사를 따라 호숫가를 줄지어 걸었다. 갓 부화한 병아리들 같았다. 처음 보는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tanb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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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은 마음 먹고 그대가 올려주신 소설 두 편을 착실히 읽으려 했는데, 방금 손님이 온다는 전화를 받았다. 사는 일이란 게 아귀가 딱딱 맞아주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러면 또한 재미 없겠지. 구효서는 외국 배경을 잘 잡는구먼..
유후인의 긴린코 이른새벽 그 호수를 찾아나서느라 1시간이상을 헤매다 찾았던 기억이 새롭네요 아침이라서 그랬는지 물안개가 피어올라 우리들은 넋을 놓고 보았어요 아름다운 호수 였던 기억에....무에 그리 바쁜지 몇일을 미루고 나누어 이제야 다 보았습니다 덕분에 귀한 추억 다시 꺼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