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고수 4명의 '김장 대전(大戰)'
김장철이다. 겨울 내내 식구들에게 맛깔스러운 김치 먹이기 위해 김장을 담가야겠지만 산더미처럼 쌓은 배추와 무 등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벌써부터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어쩔 수 없이 해치워야 했던 과거와 달리 김장에 대처하는 주부들의 해법도 다양해졌다. 시중 절임배추 등으로 뚝딱 해결하는 주부도 있고, 필요할 때마다 사 먹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주장하는 주부도 있다. 뚝심 반 정성 반으로 김장 담그는 주부도 여전히 있다. 우리 동네 김장고수들에게 물었다. "부담스러운 김장, 해법을 말해봐요."
분당_최병란씨 "김장 경력 40년, 사골국물이 비법"
- ▲ 분당_전통 손맛 최병란씨
일년에 한번 하기도 힘든 김장을 올해 세 번째 담그고 있다는 주부 최병란(60·분당구 서현동)씨. 손맛 버무린 최씨의 김치가 입소문을 타 지인들이 김장을 담가달라고 요청하기 때문이다. 벌써 40년째 김장을 담그고 있단다. '최병란표 김장'은 재료를 고르는 과정부터 꼼꼼하다. "색깔이 선명하고 속이 꽉 찬 배추를 고르죠. 손가락으로 두드렸을 때 맑은 소리가 나는 것이 좋아요. 저는 가평에 있는 지인 농장에서 매년 직접 가져와 쓰고 있어요." 최씨는 배추를 절일 때도 공을 들인다고 한다.
"사람도 관심 가져야 잘 크듯 배추도 정성 들여야 맛이 나죠. 절일 때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정성껏 만져주고 뒤집어주어야 간이 딱 맞게 밴답니다." 설탕 대신 직접 만든 매실즙을 이용하는 것도 특별하다. 김씨의 비법은 꽃게 또는 사골을 끓인 육수로 김장맛을 낸다는 것. "올해는 사골육수를 쓰고 있어요. 사골을 하루 종일 푹 고아 기름을 걷어낸 뒤 여기에 찹쌀가루를 되직하게 넣어 찹쌀풀을 만들죠. 이 찹쌀풀에 각종 양념을 넣어 김치속을 만들면 김장 맛이 시원하게 됩니다."
강남_전소연씨 "파프리카김치 등 별미 김치만 골라 구입"
- ▲ 강남_사먹는 즐거움 전소연씨(오른쪽)
전소연(45·강남구 삼성동)씨는 5년 전부터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가사에 신경을 쓸 수 없게 되면서 김치를 사 먹기 시작했다. 처음 홈쇼핑을 통해 김치를 구입하다 지인 소개로 색다른 맛의 김치를 접하게 됐다. "파프리카김치였어요. 숙성된 파프리카의 향긋하고 달콤한 맛이 독특했죠." 이때부터 전씨는 책과 인터넷을 통해 별미 김치를 찾았다.
전씨가 별미 김치를 사기 위해 주로 들르는 곳은 요리연구가 이하연씨가 운영하는 '봉우리 찬김치'(www.bongkimchi.com)다. 이곳에서는 홍어김치(5㎏, 7만1200원), 파프리카김치(5㎏, 5만원)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전씨의 남편은 갓김치를 특히 좋아한단다. "남편이 입맛 없다고 할 때 쌉쌀한 맛의 갓김치를 뜨거운 밥과 함께 내면 두 그릇 정도 뚝딱 해치운답니다."
전씨는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2동에 있는 '엄마손 반찬'(031-265-2551)에서 돌산갓김치(5㎏, 3만5000원)를 전화로 주문한다. 꾸준히 사먹다 보니 노하우도 터득했다. 먼저 구입할 때는 소량으로 주문하는 것이 좋단다. "5㎏ 단위로 주문해요. 보통 5㎏ 이상은 배송비를 물지 않아도 되죠. 저희 식구는 3명인데 이 분량이면 한달 남짓 먹을 수 있어요." 전씨는 구입한 김치를 잘 보관해야 제대로 맛볼 수 있단다. "도착한 후 하루 정도 상온에 두었다가 김치냉장고에 보관해요. 딱 먹을 분량만 꺼내 먹고 있어요. 먹다 남은 김치는 별도로 냉장고에 넣었다 찌개나 국거리용으로 써요."
양천·강서_정상옥씨 "절임배추 구입해 간단하게 해결"
- ▲ 양천ㆍ강서_절임배추로 간편하게 정상옥씨
정상옥(51·강서구 화곡8동)씨는 주위에서 '김장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실력을 갖췄다. 그런 정씨였지만 배추 절이는 일만큼은 매년 힘든 과제였단다. 김장용 배추는 밤새 절이기 마련. "중간에 뒤집어줘야 하기 때문에 잠도 설칠 뿐더러 너무 많이 절이면 물에 빨 수도 없고 곤란하죠." 그러던 중 정씨는 절임배추에 관해 듣게 되었고 간편하게 김장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써보았다.
잘만 고르면 직접 절이는 것만큼 맛도 좋다는 걸 알았다. 당연히 좋은 절임배추를 고르는 게 중요하단다. "조금 뜯어 직접 맛을 봐야 해요. 좋은 절임배추는 아삭하게 씹히고 특유의 단맛이 남아 있죠. 눈으로 봤을 때 겉대는 녹색, 속은 노란색이 선명하고 윤기 나는 것이 좋아요." 정씨는 올해 이웃 주부들과 천일염 생산지인 전남 해남으로 직접 가서 절임배추를 사왔단다. 20㎏에 2만5000원이 들었다고.
정씨는 좋은 젓갈도 김장맛을 좌우한다고 전한다. "젓갈은 새우젓에 황석어젓을 섞어 써요. 담근 지 2년 이상 된 곰삭은 것만 고르는데 김포시 대명포구나 강화도 외포리의 젓갈을 구입하죠. 이곳 젓갈은 간이 강하지 않아 김치맛을 부드럽게 하고 풍미를 깊게 해줍니다."
일산_김민강씨 "김장 담그다 남은 재료로 만드는 별미, 풋고추물김치"
- ▲ 일산_재활용의 센스 김민강씨
김민강(42·일산동구 정발산동)씨는 이웃들 사이에서 '김장 잘 담그는 주부'로 통한다. 특히 김씨는 매년 김장철이면 특별한 김치로 식구들은 물론 주변 주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바로 '풋고추물김치'다. 꼼꼼히 준비했다고 해도 김장하고 나면 재료가 남기 마련. "남은 재료를 이용해 풋고추물김치를 담가요. 방법도 간단해 초보 주부들도 쉽게 만들 수 있으니 설명을 잘 들어보세요."
먼저 중간 크기의 풋고추(400g, 4인 기준)를 골라 꼭지와 밑 부분 각 1㎝ 정도를 남기고 가운뎃부분을 가른다. 씨를 털어내고 소금물에 재워둔다. 보통 1~2시간 재는 것이 좋다. 적당히 절인 풋고추를 건져 소금과 설탕을 뿌려 30분 정도 더 재어둔다. 그리고 밤, 배, 무, 홍고추, 대추, 마늘, 생강을 2㎝ 크기로 채 썰고 액젓, 소금, 설탕을 넣고 버무린 후 절인 풋고추 속에 채운다. "속에 넣기 직전 채 썬 재료를 버무려야 해요. 미리 버무려두면 채소 즙이 빠져나와 맛이 안 좋아지기 때문이죠." 속을 채운 풋고추는 무명실로 감는다.
"이 풋고추를 과일육수에 넣으면 완성입니다. 물(5컵)과 찹쌀풀(물1컵+찹쌀1큰술)을 섞고 여기에 매실원액(3큰술), 배즙ㆍ양파즙(약간씩)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 과일육수를 만들 수 있어요." 완성된 풋고추물김치는 냉장고에서 이틀 정도 저장했다 먹으면 제대로 맛이 난단다. "고추에는 비타민 C가 풍부해 감기예방, 피로회복에 좋다고 하죠. 물김치의 시원한 맛에 배, 밤 등에서 우러난 달콤함이 더해 겨울철 별미 김치로 손색없어요. 올해 김장할 때 풋고추를 넉넉히 준비해 한번 만들어보세요."
글=전범준 기자
취재지원=행복플러스 이승연, 박분, 최진희 리포터 사진=행복플러스 사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