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주교들이 11월 6일 사목 현장 체험의 하나로 낙동강 중류와 내성천을 찾아가 ‘4대강 사업’의 결과를 살펴보고, “자연 보호, 존중”을 위한 노력과 고민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주교 현장 체험’에는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와 정의평화위원장 유흥식 주교, 염수정 추기경(서울대교구), 장봉훈(청주교구), 김지석(원주교구) 주교, 조규만, 유경촌, 손희송, 옥현진 보좌주교가 참여했다. 또 주교들이 방문한 낙동강 지역 교회의 대표인 조환길 대주교(대구대교구), 권혁주 주교(안동교구), 박현동 아빠스(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도 함께해 주교회의 회원으로서 참여한 사람은 모두 12명이었다. | | | ▲ 경북 구미 해평면의 낙동강 철새도래지를 방문한 천주교 주교들이 남유진 구미시장(오른쪽 끝)과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오른쪽 둘째)의 설명을 듣고 있다. ⓒ강한 기자 |
주교들은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과 사진가 박용훈 씨 등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낙동강, 내성천의 훼손 문제를 꾸준히 알려 온 활동가들의 안내를 받았다. 주된 일정은 칠곡보, 해평습지 철새도래지, 구미취수장, 구미보, 내성천 현장을 차례로 살펴보고, 4대강 사업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농어민의 증언을 들었다. 주교들이 방문한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과 공무원들도 현장에 와 4대강 사업 이후 강의 변화와 지자체의 입장을 설명했다. 경북 구미 낙동강 철새도래지(해평습지)에서는 4대강 사업 이후 철새 수 변화에 대해 천주교 평신도, 활동가와 남유진 구미시장이 상반된 주장을 해 눈길을 끌었다. 정수근 사무처장은 해평습지는 유명한 철새도래지였는데 4대강 사업 뒤 철새의 “씨가 말랐다”고 표현했다. 그는 강이 호수가 돼 버렸고 철새도 상류로 옮겨갔다면서, 새롭게 철새가 찾아드는 모래톱은 자연 스스로 만든 것이며 국가와 지자체는 철새와 어민들을 못 살게 한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다고 비판했다. 임성무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 사무국장도 해평습지에는 천연기념물 ‘흑두루미’만 2500마리가 날아오던 곳인데 “4대강 사업이 되면서 철새도래지의 명성을 잃었다”고 말했다. 반면 남유진 구미시장은 해평습지에 대해 경북대 연구자들과 함께 조사하고 있다면서, “4대강 사업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남 시장은 “해평습지 모래톱은 없어졌지만, 전이나 지금이나 흑두루미, 재두루미, 청둥오리 개체 수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 | | ▲ 4대강 사업 관련 현장 체험에 나선 주교들, 동행한 활동가, 평신도 참가자들이 맨발로 내성천에 들어서고 있다. ⓒ강한 기자 |
주교들은 해평성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구미보 등을 둘러본 뒤 내성천 우래교 근처에서는 맨발로 내성천을 걷는 시간을 가졌다. 내성천은 길이 106킬로미터에 이르는 낙동강 지류로 ‘모래가 흐르는 강’으로 유명하며, 경북 예천군에 있는 회룡포의 뛰어난 경관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주교들에게 내성천을 안내한 사진가 박용훈 씨는 4대강 사업의 하나인 영주댐 건설이 시작되면서 내성천의 모래가 줄어들고, 모래강에서 사는 생물이 사라져 가고, 인동 장씨 집성촌인 금강마을과 금강사 터, 내매교회 등 문화재도 수몰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교들의 내성천 방문에 동행한 장욱현 영주시장은 “영주댐 건설은 상당히 진행돼 올 연말 담수(댐에 물을 채우는 일)를 눈앞에 두고 있다”며 “저도 모래가 흐르는 아름다운 강을 가능하면 지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똑같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장 시장은 모래가 줄어드는 데는 산림이 많아진 것과 소규모 저수지들이 늘어난 영향이 있는 것 같다면서, “가능하면 원래 모습대로 돌릴 수 있는 방안을 지금이라도 검토하고 강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해 수자원공사와 협의를 진행해 나갈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정이 조금씩 늦어지면서 주교들은 처음 계획했던 영주댐 현장 방문을 생략하고 내성천에서 현장 체험을 마쳤다. 정수근 사무처장에게 마이크를 넘겨받은 주교들이 한 마디씩 소감과 다짐을 밝혔다. 염수정 추기경은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자연이 얼마나 좋은지 체험하며 지냈다”며 “그것이 사라져가고 자연을 이용 가치로만 생각하는데, 인간의 교만이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 그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류 공동의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 나가고 더불어서 살 수 있는 자연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외국 사례를 보면 자연에 손 대려면 십수 년, 수십 년 동안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구해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자연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찾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자연을 보고 있다”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정신에 따라 그리스도교 공동체뿐만 아니라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민사회와 더불어 자연 보호를 위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김 대주교는 장 시장에게 ‘찬미받으소서’ 한 권을 선물했다. | | | ▲ 장욱현 영주시장(오른쪽)이 김희중 대주교가 선물한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펼쳐 보고 있다. ⓒ강한 기자 |
유흥식 주교는 “많은 것을 깨달은 아주 좋은 하루였다”면서 “결코 이렇게 훼손되고 살기 어려운 지구를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환길 대주교는 “저도 현장에 와서 보니까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한다”면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고, 각자 생각을 많이 하고, 풀어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권혁주 주교는 “무엇보다도 모래 위를 걷는 체험이 좋았고,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그 느낌을 느끼면서 우리가 자연과 함께, 자연을 잘 보전하면서 살아야 되겠다는 것을 다짐했다”고 말했다. 주교회의에 따르면 지금의 ‘주교 현장 체험’은 2013년 6월 열린 주교 연수에서 결의돼 2014년 5-6월에 처음 열렸다. 올해에 주교들은 주교회의 복음화위, 사회복지위, 정의평화위가 준비한 4가지 프로그램 중 한 곳을 선택해 참석했다. “생태적 회심”을 촉구한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가 발표된 올해 분위기를 반영한 듯, 참석자 수는 주교회의가 밝힌 다른 프로그램의 참석 예정자 수보다 2-3배 많았다. 다른 프로그램으로는 중증 장애인 요양시설 ‘둘다섯해누리’, 노숙인 복지시설 ‘들꽃마을’ 방문, 대전교구 산성동 성당 소공동체 탐방이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