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기쁨으로
어느덧 사순의 네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의 네 번째 주일은 기쁨의 주일이라고도 합니다.
파스카를 향한 여정의 반을 걸어와 이제 잠시 멈추어 누리면서 남은 기간을
다시 힘내어 걸어갈 준비를 하자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입당송은 그러한 기쁨을 잘 드러내줍니다.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는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이사 66,10~11참조)
사실 사순절의 의미와 정신은 그 시작에서부터 파스카를 지향하고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명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이한 여정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순절 여정은 시작부터 기쁨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그의 저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에서 ‘심층종교’에
대하여 언급하며 -종교적인 삶도 결국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종교의 길은
희생의 길이 아니라 걸어가는 자체가 즐거움의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우리가 생각하는 자기희생, 이타적인 실천과 다름)
신앙의 길 자체를 희생이라 여기면 그 길은 괴로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책에서 대담하는 성해영 교수도 “종교가 너무 심각해졌다.
기쁘고 행복하기 위해 종교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죄와 벌을 피하기 위해
지나치게 진지하고 강박적으로 노력한다는 느낌이다. 강박적 행위 속에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있을 것 같지 않고 또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들은
그릇된 자만심이나 우월감의 근거가 되기 십상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두 가지 종류의 눈멂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볼 수 없는 사람의 육체적 눈멂과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볼 수 없는 바리사이들의 영적 눈멂입니다.
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유다교에서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본인이나 부모의 죄 때문에 하느님이 주신 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인간 불행의 원인일 수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시며 그 시각장애인을 고쳐 주십니다.
바리사이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람에게 율법을 주고 글자 그대로 지키라고 요구하시는 분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문자에 매어 말했고 빛이신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복음의 시각장애인은 예수님이 시력을 회복시켜 주자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다시 만나자 “주님, 저는 믿습니다.”하며 예수님께 경배합니다.
육체적 눈만 뜬 게 아니고 영적인 눈까지 뜨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이 사순절을 걸어가고 있는지요?
우리의 사순절도 시작부터 기쁘고, 영적 눈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는 사순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글 : 이 동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주교구
소록도에서 보고 배운 것
저는 1986년 1월부터 1년 4개월간 국립 소록도 병원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했는데, 이 시기 동안 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결정되었습니다.
정형외과를 전공하게 된 것, 지금의 가정이 이뤄진 것 외에도,
멕시코 과달루페 외방 선교회에서 오신 한조룡 신부님과 벽안의 두 천사 마리안나,
마가레트의 삶을 보며 10년의 냉담을 끝내고 다시 교회로 돌아온 것 등입니다.
지금까지도 관계가 이어지는 소중한 동료들(의사 약사 간호사)도 얻었고요.
저의 첫 책 『땜장이 의사의 국경 없는 도전』의 부제가
‘소록도에서 팔레스타인까지’인 것만 보아도 현재에 이르는 과정의 출발점이
소록도였으니 그곳으로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이비인후과를 담당하였는데, 주로 하는 일은
늘 염증 상태인 양성(陽性) 환자들의 코를 깨끗이 청소하는 것이었지요.
한센병(나병, 문둥병)은 양성 환자의 코 점막을 통해 배출된 비말 속
세균(Mycobacterium leprae)을 다른 사람이 코를 통해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흡입한 뒤에 감염됨이 밝혀졌는데요, 저도 1년 4개월간 양성 환자의 코 청소를
하였으니 엄청난 양의 균이 저의 코로 들어왔을 테고,
‘확진자’를 면할 길이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그때, 그리고 이후 37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왜 감염이 안 되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면역력’입니다.
정상 면역체계를 갖춘 사람은 나균이 몸에 침투해 들어와도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 소록도 병원에서 근무했던 수많은 의료진, 행정 직원 중 아무도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핵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핵균은 호흡기를 통해
우리 몸에 침투한 뒤 여기저기를 돌며 살 곳을 찾아다닙니다. ‘아 저기 좋겠다.’ 하고
자리를 잡았는데, 아무도 쫓아내지 않으면 그곳에 터를 잡고, 친구도 부르고
자식도 낳으며 정착하게 됩니다. 반대로 가는 곳마다 경찰 등 안전 요원이
순찰을 돌며 쫓아내면 정착을 못 하고 쫓겨나가게 됩니다.
우리 몸에서는 백혈구를 중심으로 한 면역 세포와 면역 물질들이 온몸을 순찰하고
있지요. 이러한 선천 혹은 내재 면역력(innate immunity)은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하느님이 주신 감사한 선물입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마르 7,15, 마태 15,11).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다’(마태 10,30).
이제는 두려움과 걱정을 벗고, 제가 소록도에서 보고 배운 것, 즉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신 것들에 감사하며,
서로 돕고,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나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김용민 베드로 – 국립경찰병원 정형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