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등은 솜빡 피고 (외 1편)
강영란
떠난 사람의 여린 발목이 그리워질 때면 저 꽃이 온다네
그가 걸어간 천 년의 건널목
절벽을 움켜쥔 꽃들이 흰 풍등을 올리면
마음이 먼저 따라가는 저물녘
소리 없는 바람개비에 향기 실어 보내며
몇 번이나 생을 건너야
그 고요에 닿을 수 있는 건지
내가 올린 풍등은 어느 날에 푸른 달의 심장이 되어 떠오르는 건지
피지 마라! 꽃 따위로는
그 말 들어주지 못한 후회로
백화등은 솜빡 피고
피어서 그대를 닫을 수 없어져 버리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만 몸을 기울이는 허공
사무친 것들이 있어서
열린 꽃 문으로 향기 몇 동이
퍼붓는 것이니
사랑이여
희게 오는 사랑이여
그만 건너 오시라
봄밤은 짧으니
월평포구
산수국색으로 어둠이 온다
포구에 묶인 두어 척 배들이 꽃 속으로 잠겨 든다
산수국은 헛꽃이 핀대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물 위에 뜬 달은
헛달임을 눈치챘다
너는 자꾸 너울거렸다
심연 깊었다
기억이 아픈 시간
얼마나 많은 산수국이 지고 나야 너울거림이 멈출까
없는 것이 보였다
환시라 했다
없는 것이 들렸다
환청이라 했다
돌아갈 곳이 길들여지지 않는다
마음이 자꾸 차고 기울었다
주상절리
오를 수 없는 단애가 세워진다
여기는
내가 조금 울어도 되는 곳
가만히 왔다 가만히 가는
달, 문이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