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편은 아래 " 경인 아라뱃길을 답사하고" 를 Link해 보십시오.
https://cafe.daum.net/pkq59/ixkL/100
보행의 건강이 중요합니다. 등산은 더 좋고...
투병중인 사람이 글로써 외치니 실감이 나겠지요.
오늘처럼 PD( Parkinson Disease )로 보행에 불편하기 이전에는
걸어서 이 곳 저 곳을 다니면서 구경을 많이 했었는 데,
흐르는 세월은 늦은 걸음으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며 천천이 가라고 한다.
소외된 지역에 발령이 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고교동기 중에서 은혜를 많이 입은 金DG박사를
일전에 만났는데, 인천시 계양구에 산다고 한다.
진주 중앙시장의 구석진 Room에서 아구찜 수육과,
중앙시장남쪽 농협의 길 맞은 편의 실비 횟집에
소주잔를 기울이며 만났을 때는
초전동 교차로에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었는데,
한반도의 남쪽과 서쪽에서 Ubiquotous 생활을 합니다.
진주에 있을 때는 吳GH박사도 아들만 둘 이어서,
고교동기 3명이 딸이 하나도 없어서 쬐끔 삭막했는데
지나오고 보니까, 그런대로 깔끔하였네요.
인천에 살고 있다길래, 먼저 물었다.
“ 그러면 작전동도 알겠네 ?“ 하니까.
” 작전동에 살고 있다 ”고 한다.
“ 그러면 作戰(작전) 잘 되고 있겠네 ”하니까
“ 작전동은 어찌 아는 데 ?” 반문한다..
“ 내가 과거에 인천지점에 근무했었잖아 그래서 좀 알지 ”
그래서 지금의 인천지하철 1호선이 건설되기 이전,
부평역에서 내려 자동차로 가까웠던 작전동(鵲田洞)은
한자 표기대로 ' 까치들이 놀던 밭 ‘이었고,
글 쓰는이가 ‘ H알미늄의 신규 공장건설 ’을 위하여
현지답사하여 자금지원검토를 할 때(1978년)는 허허 벌판이었다.
지금은 인천의 노른자위 지역이 되었으니, 桑田碧海(상전벽해)다.
네이브 지식백과는 '작전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남쪽 중앙에 위치하는 법정동이다.
경인고속도로를 경계로 하여 남쪽으로 부평구와 접한다.
구한말 작정리 · 화전리 · 신대리 · 가현리 등이 있었던 지역이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천군 부내면에 편입되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작전정(鵲田町)이라는 지명이 처음 출현하였다.
작전이란 작정리의 '작'과 화전리의 '전'을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광복 이후 1946년 작전동으로 개칭되었다.
1968년 구제(區制)가 실시되면서 북구 작전동이 되었다가,
1995년에 북구로부터 계양구가 분구되면서 계양구 작전동으로 되었다.
작전1~2동의 2개 행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글쓰는 이는 지금으로부터 약 7년전인 2014. 2월에,
계양역을 기준으로, 서쪽의 정서진부터 계양역까지 1회
동쪽은 계양역에서 개화산역까지 1회,
모두 2회로 나누어서 경인 아라뱃길을 답사했었다.
Bicycle Mania 말고는 사람의 발걸음이 뜸했던 동쪽지역은
김포아라대교 동쪽에 있는 하나교 다리 위로
경인 아라뱃길을 지나 김포시에 진입하였고
그 이후는 한창 건설공사 중인 지역을 지나 김포항구를 답사하였다.
김포항구를 훑어 본 후 전호대교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걸었는데,
전호대교 바닥이 수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무섭기 까지 했다.
서울특별시에 진입한 이후에는,
조류 인플루렌자(AI, Avian Influenza)가 있을 때 마다
뉴스에 단골로 폐쇄소식이 났던
강서한강공원과 강서 습지생태공원을 지나,
집에 오기 쉬운 개화산 역에 도착했으니,
혼자서 가는 답사여행치곤 수행자처럼 다소 무모한 일정이었다.
그러나 고생한 일정 일수록,
길을 잃어버리고 짧은 거리를 다시 돌아 왔을 때,
배가 고파도 음식점 가게가 안 보일 때,
우리는 뚜렷한 기억으로
그 때의 어려웠던 순간들이 더 생각난다.
그러나 어울려 같던 여행은 같이 갔던 사람생각으로
조마조마 했던 기억이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경인 아라뱃길은 많은 支川(지천)도 있고,
정서진의 노을처럼 아름다운 풍광도 있어
다시금 걸음을 옴길 기회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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