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최소 두 명 이상이 어떤 주제에 논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문으로는 '會議'라고 하며 영어로는 'Meeting' 또는 'Conference'라고 합니다.
회의는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에선 유교 문화 및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는 관계로, 갑과 을 구조로 인한 의사소통 제한, 중간관리직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시간 낭비가 되고 아무 결론도 없는 회의가 무척 많다고 하는데 특히 대한민국 국회가 그런 모양입니다
어떤 회의든 회의의 목적, 회의의 유형을 명확히 정해야 하고, 이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시간낭비가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의 회의를 보면 말 그대로 시간낭비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대한민국 국회 뿐이겠습니까?
대한민국의 대부분 회의는 의견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힘을 자랑하는 판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국가대표 선수들로부터 받은 신선한 충격이 여전히 생생하다.
메달은 물론이고 정제된 세계관과 당당함이 배어있는 말은 압권이다. 참 청명했다. 태권도 57㎏급의 김유진 선수는 금메달은 운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라고 했다. 매일 2시간씩 1만 번 이상 3차례씩의 발차기 훈련. 3만 번 이상 한날도 많았다. 혹독하게 최선을 다하고 최고가 된 자의 자신감다웠다.
양궁 전 부문(개인전, 단체전, 혼성) 챔피언 김우진은 세계 최고 성적을 낸 선수에게도 한 점 우대 없는 대표선발제도의 공정성과 첨단의 과학적 훈련을 창안해내는 이노베이션 체제의 양궁 시스템의 일원임에 자부심을 표하면서,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으로 작동하기를 희망했다.
배드민턴의 안세영 선수는 자신을 키운 것은 분노라면서 협회의 잘못된 운영과 관행의 개혁을 요구했다. 공정과 개혁을 향해 금빛 화살과 셔틀콕을 날린 것이다.
남자 유도 60㎏급의 김원진 선수는 패자부활전에서 패배함으로써 2016년 리우 올림픽부터 세 번 연속 출전에서 메달의 숙원을 풀지 못했다. 이게 나의 역량이다, 그러나 온 힘을 다해 왔기에 후회하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탁구 신유빈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 선수에 패배한 뒤에 “저보다 모든 면에서 앞섰다고 인정하고 배워 다음에 도전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최고만이 최선이 아니며, 최선을 다해도 승자와 패자의 세계가 존재하고, 자신보다 더 나은 상대가 있는 세계를 이해하는 감동적인 말이었다.
못난 말도 있었다. “이번 올림픽 선전은 해병대 입소 훈련의 결과물”이라고 한 대한체육회장의 경우이다. 2박 3일 극기 훈련에 참여케 한 결정이 좋은 성적을 거둔 배경이라는 자화자찬이다. 그러나 선수들의 의지, 물심양면으로 선수들을 보살핀 지원진, 국민의 응원을 생각하면 낯 뜨거운 공치사다.
더구나 무차별과 비정치를 지향하는 범 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을 군대와 연결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1972년 제20회 뮌헨 올림픽 남자 사격 소구경 복사에서 금메달을 딴 북한의 이호준이 “원수의 가슴에 총알을 날리는 심정으로 쐈다”라고 하여 세계를 경악시킨 적도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예정된 해단식이 갑자기 취소된 것은 부적절했다. 선수와 국민이 마땅히 함께 누려야 할 공공 축제의 기회를 앗아버린 안하무인의 결정이었다.
당연히 ①준비와 성과에 대한 회고 ②선수들의 노력과 성취에 대한 평가 ③후속 계획과 정당화 ④선수와 국민의 정서 공유를 통한 공동체 의식 고양의 기회로 삼아야 했다. 국민과 함께 ‘올림픽 서사’를 기억하고 축하하며 공동체 구성원으로 함께 어울리는 기회를 삭제한 것은 공인의식의 부족이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안하무인과 공인의식의 결여는 조화(cosmos) 대신 혼돈(chaos)을 낳는다. 국회도 그 전형이다. 개원 이래 탄핵·특검·청문회 등 다양한 이름으로 소집한 대부분 회의에서 유용한 정보는커녕 눈길을 끄는 새로운 정보도 선을 보이지 못했다.
비합리적인 정치 팬덤 집단을 제외한 국민에게는 독설, 인격 폄하, 인신공격, 괴담, 선동, 비속어가 난무하는 회의였다. 저질 언어도 모자라 고함을 지르고, 성난 표정을 짓고, 삿대질로 시비하고, 상대 발언을 방해하는 폭력적 비언어 난폭 행위를 되풀이하며 의견 공유나 합의 도출은 불가능한 파행 전문 회의에 머물고 있다.
상임위의 상임위로 군림하는 법사위 위원장은 “위원장이 바라는 답을 하지 않는다.”라고 채택한 증인을 ‘퇴장’시키고, 과방위 위원장은 “뇌 구조가 이상한 것 같다”는 막말로 상대와 회의 자체를 비정상적 존재로 재단한다.
‘법질서’ ‘발언권 정지’ ‘처벌’ ‘마이크 끄기’와 같은 위협 언어가 효율적인 회의 진행과 타협적인 결과 도출에 필요한 위원장의 회의 진행 전문성을 대체하고 회의의 생명력을 앗아가고 있다.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이나 회의를 주재하는 위원장이라는 권력자들은 협력과 합의를 형성하는 과정이 될 수 있게 회의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싸움박질 난장판 회의를 조장하고 만드는 안하무인의 권력자들은 공동체를 연결하고 결속시키는 게 아니라 단절하고 분열시키는 것이다. 국회는 왜 이런 회의와 진행을 계속하는 것일까?
답답한 일이다. 권력자들은 회의에서 신세대 올림픽 선수들이 보여준 열린 세계관(치열한 전문 실력 개발, 선한 영향력, 혁신, 상대에 대한 존중과 도전 의식)을 발휘할 수는 없는 걸까.
권력자들의 특권과 특전은 국민과 공동체를 위한 ‘협력과 합의’를 구축하라고 주어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중앙일보.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 오피니언 김정기의 소통카페 국회는 회의를 왜 여는 걸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6472
모처럼 대화 가능성이 열린 의대 정원 문제가 의료계의 과도한 전제 조건 요구와 정부의 경직된 태도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국회와 정부·의료계가 참여하는 여·야·의·정 협의체 제안에 대해 대통령실이 지난 6일 긍정적 반응을 내면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고, 의료계만 수용하면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 같은데 의료계의 이후 반응은 실망스럽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대한의사협회 측에선 ‘2025년 의대 정원의 원점 재논의’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미 발표된 입학 정원을 원점으로 되돌리면 엄청난 부작용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 의협 주장대로 재논의가 가능하다고 해도 이는 협의 테이블에서 따져봐야 할 사안입니다. 시작 전부터 원점 재논의를 받아들이라는 요구는 협의하지 말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의료계 곳곳에서 쏟아내는 사과 요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계와 대화에 최소한의 진정성이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막말·실언을 일삼은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 박민수 차관, 장상윤 사회수석을 즉각 파면하라”는 경기도의사회의 입장은 해결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뿐일 겁니다.
정치권 중재로 어렵게 마련된 협상 기회를 놓치면 의료계와 정부 모두 궁지에 몰릴 뿐입니다. 국민을 벼랑 끝으로 모는 자존심 싸움은 멈춰야 할 것입니다.
이런 국면에서 여·야·의·정 협의체 제안을 “환영한다”고 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의 성명은 다행스럽다고 할 것입니다. 이 같은 합리적 목소리를 증폭시켜 7개월간 지속된 국민의 고통을 끝내야 할 시점입니다. [출처:중앙일보 사설, 의료계도 무리한 조건 거두고 정부는 인내심 발휘를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6481
회의는 말 그대로 의견을 모으고 그 의견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입니다. 회의를 하기 전에 먼저 조건을 내 걸면 그 회의가 성사될 수가 없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 것 같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