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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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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의 자연 담은 송이, 제철 맞아
복된 땅 위 달실마을, 고즈넉한 경치에 가을 분위기 물씬
9월의 문턱을 넘은 지 꽤 지났지만, 여전히 낮은 후덥하다. 일교차가 점점 커지면서 새벽과 늦저녁 공기는 꽤나 쌀쌀해 긴소매 옷을 꺼내야 할 시기임을 전한다. 반면에 낮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땀이 등줄기를 탄다. 그럼에도 작은 변화가 곳곳에 눈에 띈다. 덥다는 이유로 '가까운 곳, 간단한 음식'을 찾던 이들이 점점 '맛있는 음식, 먹고 싶었던 음식'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초여름에 가출했던 입맛이 하나 둘 귀가하는 모양이다. 복날 음식으로 유혹해도 오지 않던 입맛, 무엇으로 이들을 기쁘게 해줄까. 고민 끝에 제철 음식을 찾던 중 '송이'를 찾게 됐다.
송이, 갓은 뭔가 꿍한 것이 있는 듯 오므렸고 자루는 주먹을 꽉 쥔 팔뚝처럼 단단하고 굵다. 흙에서 양분과 색까지 흡수한 듯한 무늬에서 야생의 모습도 담겼다. 여러 버섯이 뭉쳐있는 것들과 달리 송이는 홀홀단신임에도 사방을 자신의 향으로 가득 메워버리는 존재감의 소유자다. 그 쫀득한 식감까지 떠오르니, 어서 송이를 찾아가보자.
송이로 유명한 고장은 강원도 양양군, 경상북도 봉화군, 울진군 이렇게 세 곳이 꼽힌다. 수도권에서 송이만 맛보러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다. 각 지역의 송이 특성과 주변 볼거리를 살펴보던 중, 좋은 궁합을 찾았다. 태백산 자락의 마사토 토양에서 자라 수분 함량이 적고 향이 뛰어난 '송이'와 택리지에서 길지로 기록된 '달실마을'이 있는 경상북도 봉화군이다.
봉화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 백두대간의 척추와 가까운 고장이다. 거친 지형 때문에 봉화까지 도착하는 시간은 타 지역에 비해 거리 대비 소요시간이 긴 편이다. 그런 단점을 극복하고도 남을 자연의 선물이 풍부하다. 그 중 하나가 송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일단 든든하게 배를 채워야 풍경이든 경치든 눈에 들어오지 않겠는가. 봉화군청 근방 시내에서 송이요리 전문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중 한 곳에서 송이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손님이 드문 시각에 찾아간 송이전문점은 여느 식당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분위기였지만, 송이돌솥밥, 송이전골을 주문하고 5분이 지났을까. 주방에서 미미한 송이향이 번지더니 이내 실내을 가득 메운다. 동시에 흥건히 침이 고이니 기다리는 시간이 참 고역이다.
부부가 같이 송이전문점을 운영한 지 7년 째, 송이는 어떤 버섯인가 물어봤다. "송이가 얼마나 까다로운 녀석인지 모르시죠. 죽은 나무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소나무 중에서도 자기한테 영양분을 잘 대줄 녀석을 골라서 관계를 맺어요. 관계를 맺다가도 주는 영양분이 시원찮으면 다른 소나무로 갈아타죠"
밑반찬을 먼저 내어주며 안주인은 어머니가 직접 농사를 지어서 그곳에서 난 작물로 대부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두루 맛을 보니 '조금 심심하다'는 느낌이다. 경상도 음식이라 으레 짤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송이요리가 비교적 고가의 음식이기에 현지인보다는 외지인이 자주 찾고 그들의 입맛에 좀 더 편안하도록 조리하다보니 지금의 간을 잡게 됐다고 한다. 일본인 손님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집의 음식 간은 매력임이 분명하나, 몇몇 봉화군 주민에게는 '맹맹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고···.
곧 송이돌솥밥과 송이전골이 나왔다. 돌솥 뚜껑을 여는 동시에 김이 올라오면서 따뜻한 송이향이 번진다. 향이 날아가기 전에 얼른 송이버섯부터 먹으라며 재촉하는 주인장. 기름장에 찍어 송이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쫄깃한 식감이 탱탱한 촉감이 참 찰지다. 진한 향과 씹을수록 우러나는 버섯 즙이 동시에 입속을 가득 메운다. 크게 뜬 밥 한숟가락에는 은행, 감자, 배추, 당근, 밤, 대추, 팥, 검은콩, 흰콩 등 푸짐한 자연이 그대로 올려져 있다.
이어서 버섯전골은 송이를 포함해 팽이, 표고, 느타리 등 갖가지 버섯이 들어갔다. 송이향은 여러 버섯이 함께 들어간 전골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소나무 숲내음을 얼마나 모으며 살았기에 이렇게 진한 향을 내뿜는 것일까 괜한 호기심이 인다.
송이의 보관에 대해 주인장에게 묻자. 냉동과 포장을 통해 향을 유지하면서 보관하고 있다고 간단하게 설명한다. 이어, 송이는 양식이 불가능해, 채취량을 가늠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또한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송이를 찾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가격 변동 폭이 크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송이가 풍년일 때 사들여 보관하는 것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대접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한다.
송이를 오래 먹으면 불로장수하며 신선이 된다는 옛말 때문일까. 배는 부르고, 어디로 가기보다 마루에 대짜로 누워 풍월이나 읊었으면 싶다. 이내 달실마을 전경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가고 싶은 맘에 곧 일어나 발길을 채촉했다. 어디로 가냐고 묻는 주인장에게 달실마을에 간다고 하자. 거기 좋다며 청암정에 꼭 들려보라는 당부를 남긴다.
달실마을은 약 500년 전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충재 권벌(1478~1548)선생이 마을에 첫발을 디딘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의 후손이 지켜온 집성촌이다. 단일 성씨 가족들이 모인 마을이기에 현재까지도 전통문화가 잘 보존돼 있어 명승지(구. 사적 및 명승 제3호)로 지정돼 있다.
작은 철교 아래를 지나, 달실마을 입간판이 보이는 곳으로 작은 다리를 건넌다. 작은 개천(가계천)이 마을 둘러 흐르고, 반원형 논의 반대편에는 문수산에서 내려온 능선이 아담한 뒷동산을 만들었다. 그 사이에 일자로 고택들이 자리해 있다. 달실마을이다.
가계천 가까이 논의 중심부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택리지 저술자 이중환이 달실마을을 길지로 꼽은 이유가 무엇이였는지 직감할 수 있다. 달실마을의 지세는 수탉과 암탉이 마주보며 서로 사랑을 나누고 알을 품는 모습으로, '금계포란형' 명당이다. 닭이 알을 품은 형태는 자손 번창을 의미하며, 재산도 풍족해진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달실마을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충재박물관에 먼저 가보자. 이곳에서는 종가와 마을에 전해오던 유물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덕분에 충재 권벌 선생의 내력과 그가 입향하면서 만들어진 달실마을의 연혁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이제는 달실마을을 거닐어보자.
박물관 입구 옆으로 고택의 낮은 담장 사이 문을 지나면 청암정이다. 충재 권벌 선생이 지은 정자다. 조경이라고 해야 할까, 건축미라고 해야할까. 딱 구분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공간감이 인상적이다. 정자를 받치고 있는 바위는 거북형상을 띄고 그 둘레에 작은 연못이 둘러져 있다. 정자를 등에 진 거북이가 수면 밖으로 나온 듯하다. 이런 매력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여러 작품이 촬영되기도 했다.
청암정을 지나 일자형 마을 사이사이를 거닐면 시골이지만 고택의 풍미가 깊고, 풍수지리 상 멋진 지형의 경치가 발걸음을 즐겁게 한다. 충재길에서 각 집으로 연결되는 샛길이 마치, 큰 줄기에서 뻗은 작은 줄기 같다. 통틀어 몇 채 안되는 고택들이지만, 오밀조밀 구성된 마을에서 주민 사이의 끈끈한 유대가 느껴진다.
마을 구석구석을 왕래하며 다른 여행객들과 마주치지만 다들 조용히 마을을 감상하는 모습이다. 마을 주민에게 방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만드는 풍경이 곧 달실마을의 매력이다. 가계천이 흐르는 곳으로 다시 빠져, 논과 자연에 어우러진 달실마을을 눈에 담아본다. 걷는 동안 가을냄새 물씬나는 바람이 마음을 훝는다. 달실마을의 일렁이는 벼들이 꼭 내 마음같다.
송이는 고가의 버섯이라기 보다 청정자연의 한 부분이였으며, 달실마을 또한 자연이 만든 좋은 자리에 머문 사람들의 터전이였다. 자연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봉화의 축제 '봉화송이축제'가 오는 22일(토요일)부터 25일(화요일)까지 열리니 이참에 봉화에서 가을냄새 진한 여행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취재협조**
솔봉이 (송이요리 전문점)
문의. 054-673-1090
주소.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232-11
유의사항
※ 위 정보는 2013년 9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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