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輕肥)
가벼운 가죽옷과 살진 말이라는 뜻으로, 부귀영화를 형용해 이르는 말이다. 중국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외출할 때의 모습을 비유한 말이다.
輕 : 가벼울 경
肥 : 살찔 비
(유의어)
경구비마(輕裘肥馬)
경장비마(輕裝肥馬)
비마경구(肥馬輕裘)
당대종(唐代宗) 대력(大曆) 7년인 772년에 태어난 작자 백거이(白居易)가 덕종(德宗)과 헌종(憲宗) 연간인 785-810년 동안 장안에 체류하는 동안 보고 듣을 일 중에서 기억나는 일들을 10수의 시로 지어 진중음(秦中吟)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시는 진중음 중 7번 째다. 진중음의 창작 시기는 810년 경으로 백거이가 비교적 젊었을 때 지은 시다.
진중음(秦中吟) 7수
경비(輕肥)
가벼운 가죽옷과 살진 말
意氣驕滿路 鞍馬光照塵.
의기교만로 안마광조진.
길바닥 휩쓸며 기세등등하고, 먼지 속의 말안장 빛나는구나.
借問何爲者 人稱是內臣.
차문하위자 인칭시내신.
무얼하는 사람인가 물었더니, 사람들은 내신이라고 말한다.
朱紱皆大夫 紫綬悉將軍.
주불개대부 자수슬장군.
붉은 관복 입은 사람은 대부들이고, 자주색 인끈을 두룬 사람 모두 장군들이네.
誇赴中軍宴 走馬去如雲.
과부중군연 주마거여운.
군영의 연회 간다고 거드름 피우며, 달리는 말 구름떼와 같다.
樽壘溢九醞 水陸羅八珍.
준루일구온 수륙나팔진.
두루미에 좋은 술 넘쳐나고, 산해진미 별찬이 줄지어 있네.
果擘洞庭桔 膾切天池鱗.
과벽동정길 회절천지린.
동정호의 귤 쪼개놓고, 천지의 물고리로 회를 쳤구나.
食飽心自若 酒酣氣益振.
식푸심자약 주감기익진.
배부르니 흐뭇해 개트림질, 거나하니 기운이 솟구치누나.
是歲江南旱 衢州人食人.
시세강남한 구주인식인.
이해 강남에 가뭄이 들어, 구주에선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데!
재조집(才調集)에서는 이 시의 제목을 강남한(江南旱)이라 하였다. 이 시는 황제의 측근들이 호사한 생활을 하며 연회를 벌이는 상황과 강남에 한재(旱災)가 들어 사람이 사람을 먹는 참상을 대비시켜, 관리들의 교만방자한 권세의 남용을 풍자한 작품이다.
시의 제목인 경비(輕肥)는 논어(論語) 옹야(雍也) 중의 승비마의경구(乘肥馬衣輕裘), 즉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가죽옷을 입는다는 구절에서 취하여 호사스런 생활을 비유하고 있다.
이 시에서는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사회 현상을 첨예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작자가 어떤 부가적인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그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게 하였다.
내신(內臣)은 황제를 좌우에서 모시는 환관(宦官)이고, 주발자수(朱紱紫綬)는 고대의 인끈이나 비단으로 꼰 허리띠로 고관(高官)은 홍색이나 자색의 것이었다.
구온(九醞)은 맛있는 술을 말한다.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정월에 술을 담그고 8월에 술이 익는데 이를 주(酎)라하고 일명 구온(九醞)이라 했다.
팔진(八珍)은 용간(龍肝), 봉수(鳳髓), 이미(鯉尾), 교자(獟炙), 성순(猩唇), 표태(豹胎), 웅장(熊掌), 수락선(酥酪蟬)을 말한다.
당대 정치가 부패하게 된 원인의 하나는 태감(太監)의 전횡에 있었다. 이 시는 환관의 전횡을 풍자한 시다. 그들은 홍색의 관복과 자색의 인끈을 착용하고 위풍당당한 말을 타고 무위를 뽐내녀 군영에서 열리는 향연에 참여해서 맛있는 술과 산해진미를 즐기며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방약무인(傍若無人)했다.
시의 마지막 구절은 돌연히 분위기가 바뀌어 이 해에 강남에 대한(大寒)이 들어 지금의 절강성 구주시(衢州市)인 구주(衢州)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 참극이 발생했다고 했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한 마디로 본래 인민의 고혈을 빠는 도적은 관리들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한 시다.
초반 도입부는 먼저 주위의 분위기를 묘사한 후에 본론을 말하는 기교(技巧)다. 문장변화 자유분방하고 묘사가 생생하다. 기새등등한 교만한 기색은 도로를 가득 채울만하고 말안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택은 말발굽이 일으키는 먼지를 찬란하게 빛나게 하니 어찌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고 나서야 비로소 어떤 사람이건데? 라는 의문을 갖게 한 다음 그 무리들은 바로 내신(內臣)들임을 밝혔다. 내신은 즉 환관(宦官)이다.
독자들은 마음속에 든 의문이 드는 것을 금할 수 없다. 황제의 가노(家奴)에 불과한 가노가 무엇을 믿고 그렇게 교만방자하게 노는가? 원래 주불(朱紱)을 차고 자수(紫綬)를 두른 환관이 정권과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거만한 모습을 띠게 된 것이다.
과부군중연(誇赴軍中宴) 주마거여운(走馬去如雲), 두 구는 의기교만로(意氣驕滿路) 안마광조진(鞍馬光照塵)과 앞뒤에서 호응하며 상호 보완하고 있다.
주마거여운(走馬去如雲)은 환관의 무리들의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모습을 구체적으로 적시했고 그 중 만(滿), 조(照), 개(皆), 실(悉), 여운(如雲) 등의 단어는 군중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가한 환관이 한 두명이 아니라 큰 무리를 지었음을 말한다.
군중연(軍中宴)의 군(軍)은 황제의 신책군(神策軍)을 의미하고 당시 신책군은 환관이 지휘를 받고 있었다. 제멋대로 발호한 환관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했다. 내신의 묘사는 단지 산해진미를 배가 터지도록 포식하여 득의만만한 모습을 그려 비유로 했을 뿐이다.
식포심자약(食飽心自若) 주감기익진(酒酣氣益振) 양구는 사치와 교만을 그렸다. 기익진(氣益振)은 처음 첫 구절을 호응하고 있다. 연회에 참석할 때의 모습을 의기교만로(意氣驕滿路)라고 하여 지금은 비록 포식하고 술에 쩔어 자연 기고만장하지만 자기 살아있을 때까지도 지키지 못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붓끝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대부와 장군들이 술과 안주로 포만감에 젖어있을 떼 강남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먹는 참상이 발생했다는 말로 시를 끝내고 있다.
▶ 輕(경)은 형성문자로 軽(경)의 본자(本字), 䡖(경)은 통자(通字), 轻(경)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수레 거(車; 수레, 차)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巠(경; 세로로 곧게 뻗은 줄)로 이루어졌다. 곧장 적에게 돌진하는 전차, 경쾌한 일, 가벼움의 뜻이다. 輕(경)은 가벼운, 중량이 비교적 가벼운, 육중하지 않은 또는 경쾌하고 간단한의 뜻으로, 가볍다, 가벼이 여기다, 가벼이 하다, 업신여기다, 천하다, 빠르다, 가벼이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거울 중(重)이다. 용례로는 죄인을 가볍게 처분함을 경감(輕勘), 가볍게 다침을 경상(輕傷), 가벼운 홀몸을 경단(輕單), 가벼운 정도를 경도(輕度), 언행이 가볍고 방정맞음을 경망(輕妄), 아주 작고 가벼움을 경미(輕微), 기분이 가볍하고 유쾌함을 경쾌(輕快), 경솔하게 행동함을 경거(輕擧), 움직임이 가뿐하고 날쌤을 경첩(輕捷), 덜어내어 가볍게 함을 경감(輕減), 가벼운 범죄 또는 그런 죄를 저지른 사람을 경범(輕犯), 언행이 진중하지 아니하고 가벼움경솔(輕率), 언행이 경솔하고 천박함을 경박(輕薄), 가볍게 봄을 경시(輕視), 가벼운 무게를 경량(輕量), 가벼움과 무거움을 경중(輕重), 말이나 몸가짐 따위가 방정맞고 독실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경박자(輕薄子), 조그마한 일에 후한 답례를 함을 경사중보(輕事重報), 적을 가볍게 보면 반드시 패배함을 경적필패(輕敵必敗), 마음이 침착하지 못하고 행동이 신중하지 못함을 경조부박(輕佻浮薄), 가볍고 망령되게 행동한다는 경거망동(輕擧妄動), 경쾌한 수레를 타고 익숙한 길을 간다는 경거숙로(輕車熟路), 가벼운 가죽옷과 살찐 말이라는 경구비마(輕裘肥馬) 등에 쓰인다.
▶ 肥(비)는 회의문자로 月(월; 고기)과 巴(파; 卪절)의 합자(合字)이다. 肝(간)과 몸에 관계가 있는 月(월)과 물건의 알맞은 모양이 후에 파(巴)로 변한 절(卪=卩, 㔾)의 합자(合字)이다. 알맞게 살이 찐 사람이나, 동물에서는 주로 소나 양이 살진 것을 일컬었다. 지금은 사람이나 동물 또는 토질(土質)에 모두 쓰인다. 그래서 肥(비)는 살찌다, 기름지다, 살지게 하다, 비옥하게 하다, 넉넉해지다, 두텁게 하다, 투박하다, 얇게 하다, 헐뜯다, 거름, 비료, 지방, 기름기, 살진 말, 살진 고기, 물의 갈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름 유(油), 살찔 방(肪), 기름 지(脂), 기름 고(膏),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윌 수(瘦), 여윌 척(瘠)이다. 용례로는 살지고 굳셈을 비강(肥强) 또는 비경(肥勁), 살지고 몸집이 큼을 비대(肥大), 토지의 생산력을 높이고 식물의 생장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경작지에 뿌려 주는 영양 물질을 비료(肥料), 거름을 주고 가꿈을 비배(肥培), 몸집이 크고 힘이 셈을 비장(肥壯), 걸고 기름진 흙을 비토(肥土), 살져서 두툼함을 비후(肥厚), 살지고 맛이 좋음을 비감(肥甘), 살지고 깨끗함을 비결(肥潔), 살찌고 뚱뚱함을 비만(肥滿), 땅이 기름지고 좋음을 비미(肥美), 몸에 살이 찌고 습기가 많음을 비습(肥濕), 땅이 걸고 기름짐을 비옥(肥沃), 살이 쩌서 기름진 고기를 비육(肥肉), 살지고 번지르르함을 비윤(肥潤), 몸의 살찜과 야윔을 비척(肥瘠), 살지고 무거움을 비중(肥重), 자기 몸과 자기 집만 이롭게 함을 비기윤가(肥己潤家), 제 몸만 살찌게 함 또는 제 이익만 취함을 비기윤신(肥己潤身), 자기에게만 이롭게 하려는 욕심을 비기지욕(肥己之慾)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