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증원을 놓고 벌어진 정부와 의사들과의 갈등과 대립이 이제 7개월째로 접어들었습니다. 정말 점입가경입니다. 몸이 건강해서 병원신세를 지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요즘은 대박입니다. 억만장자도 요즘에는 조금 아파 병원에 가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물론 수억을 준다면 달려올 의사들이 한두명이 아닐 것이고 억만장자 정도되면 대형병원에서 VIP 대접을 받을테니 별 문제가 없겠습니다. 해외로 병원 원정을 갈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힘도 빽도 없는 일반 시민들입니다. 요즘 몸이 아파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정말 괴로움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얼마전 유명한 원로정치인이 머리에 부상을 당해 응급실에 연락했지만 22곳에서 거절을 당했다는 소식에서 현장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또한 최근 뉴스에서는 2살짜리 아이가 경련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11곳의 응급실로부터 진료 거부를 당해 의식불명에 빠진 일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지인은 지금 맹장염때문에 대형병원 응급실에 가 있지만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같으면 응급실에 도착하자 마자 긴급 수술 결정이 내려질 사안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강한 진통제로 버티고 있다고 합니다. 중환자로 분류돼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 경우 맹장염환자정도는 이른바 명함도 못내밉니다. 맹장염은 시간이 지체될 경우 복막염으로 진행돼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는 중증이지만 의사가 없으니 죽을 각오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응급실을 비롯한 의료계 전반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권력의 최고봉에 있는 분도 얼마나 원활하게 의료기관이 작동하는지 한번 의료기관을 방문해 보시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제가 직접 병원을 방문해 보지는 않았지만 지인에게 받은 연락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그 지인이 심심해서 제게 농담한 것은 아닐테니까 말이죠. 모르지요. 권력의 최고자가 다니는 병원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라 느껴집니다.
정부와 의사들과의 갈등과 대립은 날이 갈수록 더 대담해지고 거칠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벌써 7개월째 지리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국민들은 무덤덤해졌습니다.의료개혁을 앞세우는 정부도 밉고 그냥 대립하는 의사들도 싫은 상황입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의료기술을 높이자는 것이 의료개혁인데 지금 행해지는 것은 그와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국민의 생명을 등한시하고 의료기술을 붕괴시키는 그런 결과를 낳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 정부는 응급실 대란을 우려해 전국 4천 개의 당직 병의원의 문을 열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명절보다 10% 더 많이 문을 열고 진료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진료를 안할 경우 업무정지 등 처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무조건 강하게 밀고 나가면 된다는 정부의 의지가 읽혀집니다. 의료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처벌 언급을 자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자발적 참여를 당부한다고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번 추석에 의사들 상당수가 근무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면 정부 고위공무원들은 추석연휴에 당연히 근무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정부의 지시에 의사들은 도저히 정상적인 근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정부가 24시간 근무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고 협박만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의사협회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추석 기간 응급 진료 이용 안내는 해당 병원뿐 아니라 정부 기관 또는 대통령실로 연락하시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의협은 의료대란이 지난 2월부터 갈수록 악화일로에 있지만 이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곳에서는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면서 추석 연휴 응급 진료 이용 안내에 대통령실 전화번호도 함께 기입해 놓고 있습니다. 이 번호는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한 전화번호라고 합니다. 정부와 의사들과의 대립이 이제는 노골적인 감정싸움으로 격화되는 양상입니다. 정말 지긋지긋한 소모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특히 아프면 안될 것 같습니다. 아프면 그냥 죽을 체험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음식도 조금씩 먹고 술도 아주 조금 마셔야 탈이 없을 듯 합니다. 특히 교통사고가 날 경우 대단히 위태로울 수 있기에 조심조심 천천히 운전하길 바랍니다. 하긴 교통체증으로 속도낼 일도 없기는 하겠습니다. 이래저래 피곤한 추석이 될 듯 합니다.
2024년 9월 3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