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aver.me/FJbbhAyP
바디2/ 정지용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 발랐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발톱에 찢긴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상채기
가까스로 몰아다 붙이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었다
이 앨쓴 해도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흐르도록
희동라니 받쳐 들었다
지구는 연잎인 양 오므라 들고----펴고---
https://naver.me/xZVJ2qR1
https://naver.me/xv3UPl9e
감상
「바다2」의 해석을 돕기 위해 알려지지 않은 문화적 배후를 탐색했다. 그 결과 구약성경의 창조신화와 고대 근동의 신화 “신들의 싸움” 모티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신화들에서 바다는 혼돈의 괴물이고 신은 투쟁 끝에 혼돈을 제압하고 질서를 부여하는데 이것이 곧 세계의 창조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면 「바다2」의 난해성은 쉽게 해소된다. 도마뱀떼는 용이나 뱀, 악어로 묘사되는 성경의 바다 괴물에서 왔고, 바다에 변죽을 두르고 해도를 만드는 것은 바다와 육지를 분리하고 세부적으로 조형하는 창조 작업이다. 변죽은 성경의 거대한 저수조 “놋바다”를 계승했고 해도는 성경에 나타난 창조의 측량적 성격을 집약한 표현이다. 창조가 완료된 바다는 지구의 일부로서 지구의 움직임에 종속된 운동성을 가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조석(潮汐)이라는 질서다. 따라서 「바다2」는 혼돈에서 질서로 바다에서 지구로 가는 창조의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그러나 창조신화 자체가 「바다2」의 주제는 아니다. 「바다2」는 시 창작 과정의 알레고리로 창조신화를 차용했고 극단적인 축소 지향을 통해 신의 창조와 차별을 두었다. 「바다2」를 시 창작 과정으로 볼 때 바다는 무질서하고 미분화된 시의 질료이며, 변죽은 카오스에 형상을 부여하는 시의 언어다. 변죽을 두르는 것이 시상을 잡는 단계라면 정밀한 해도를 만드는 것은 본격적으로 시를 쓰는 과정이다. 손을 떼었다가 다시 받쳐드는 것은 창작의 종료와 감상과 평가의 시작을 가리킨다. 완성된 지구/바다의 조화로운 운동성은 상상과 감동의 여지, 해석의 다양성과 관계될 것이며, 이러한 운동성을 보장하기 위해 변죽(언어)은 연잎 같은 유연성과 신축성을 지녀야 한다.
「바다2」는 『정지용시집』 출간기념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지용시집』과 관계가 깊다. 『정지용시집』과 연결 지어 해석한다면 들어 올려진 바다, 지구는 바로 새로 출간되는 『정지용시집』일 것이다.
https://naver.me/xkqEZXYd
이 시는 『정지용시집』(시문학사, 1935)에 수록된 작품이다. 각 연이 2행씩으로 구성되어 전체 8연 16행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바다의 움직임을 감각적이고 선명한 이미지의 시어들로 포착하려 하고 있다. 1,2,3,4연이 움직이는 바다의 역동적 움직임을 근경으로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면, 5, 6, 7, 8연은 원경으로 지구 전체를 바깥에서 관찰하고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파도가 치는 바다의 모습을 생생하고 참신한 비유로 그려내고 있다. 파도에서 해안, 바다로 시선을 이동하여 시상이 전개되는데,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지구 밖까지 시선을 확장하여 우주적 총체성의 시각을 부여하고 있다. 1연, 2연, 3연에서는 파도가 재빠르게 밀려왔다 나가는 모습을 '푸른 도마뱀떼'로 형상화하여, '달어 날랴고', '재재발렀다'로 표현함으로써 생동감을 살리고 있다. 4연에서는 '흰 발톱'과 '붉고 슬픈 생채기!'의 색채 대비를 통해 흰 돌과 포말의 부딪침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5연에서는 겨우 해안에 당도한 파도가 해변가에 안착한 상황이며, 6연에서의 '앨쓴 해도'는 시인이 애를 써 상상해 만들어낸 지도에 손을 씻어내고 이제 손을 떼는 상황이다. 7연에서는 지구를 둘러싼 바다의 모습이 넘치는 것 같기도 하고, 구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8연에서는 이렇듯 바다가 휘감고 있는 지구를 손에 받아든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는 바다와 파도의 이미지를 역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재빠르고 섬세하게 움직이는 바다의 모습을 마치 생명체처럼 그리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시적 운율의 특징으로는 '달아날라고', '재재발렀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처럼 울림소리 'ㄹ'을 자주 사용하여 생동감 있는 효과를 주었고, 음성 상징어와 의태어를 사용해 시에 더욱 풍성한 이미지를 더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지구를 감싸고 있는 바다를 '연 닢'처럼 오므라도 들고 펴기도 한다고 묘사함으로써 율동감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