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 홈커밍데이 행사를 잘 치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흐르는 세월 속에 늘어난 주름과 흰머리를 서로 보았고,
70년의 교회 역사 속에서 함께 했던 지난날들을 감사의 마음으로 돌아보았습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들을 영상을 통해 보며 그리움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장차 80주년을 생각하며
수고한 봉사자들이 지친 몸이지만 함께 기쁨으로 사진을 찍으며 행사를 마무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남은 삶도 주님께 단단히 붙어 있게 하옵소서.
피곤한 몸이지만
오전 복생반 모임과 오후 교회 청소도 기쁨으로 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음은
보혈로 덮어주시는 주님의 은혜요, 넘치는 평안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밝히 볼 수 있도록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5.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26.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27.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28.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29. 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
30.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31.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
32.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33.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본문 주해)
25~27절 : 압살롬의 아름다움이 소개되고 있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는 자라고 함은, ‘흠 잡을 데가 하나도 없는 미남’이라고 온 이스라엘에 칭찬이 자자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의 머리카락에 대한 칭찬은 굉장하다.
머리카락은 남성다움의 상징으로서, 보통 사람의 1년 머리카락 무게가 500g 정도인 데 비해 압살롬의 것은 2kg가 넘었다고 한다.
이렇게 압살롬의 출중한 외모를 이야기함은 그가 차기 왕으로 손색이 없는 자로 온 백성들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압살롬의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아들들의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릴 때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삼하18:18). 그런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고 하여 자기 누이의 이름과 같으니 압살롬의 누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28~33절 : 압살롬이 요압의 중재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버지 다윗 왕이 아들의 얼굴을 보려 하지 않는다.
다윗이 압살롬에 대해 적극적으로 징계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쩌면 2년 간의 외면은 다윗이 내린 징계일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것은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것에 대해 회개하고 돌이키는 일이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압살롬이 차라리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불평을 하며 요압을 자극해서 다윗과 화해 아닌 화해를 한다.
그런데 그 화해의 장면 어디에도 압살롬이 잘못을 인정했다거나 다윗이 용서를 했다는 표현이 없다.
(나의 묵상)
압살롬의 외모 이야기가 나온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는 것을 온 백성들이 칭찬했다는 것은 인물도 뛰어나고 머리카락이 상징하는 힘도 넘치는 그를 차기 왕으로 생각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담은 표현이다.
사실 압살롬은 외모만 출중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무엇인가 마음에 담으면 꼭 이루어내는 자이다.
다말의 복수로 2년이나 잠잠하다가 아무도 생각지 못한 때, 단번에 암논을 해치워버린 것이나, 어떻게든 요압을 움직여 자기의 뜻을 실현해 나가는 추진력도 대단하다. 이후의 내용이지만 그런 기질로 아버지 다윗을 반역하는 일도 행한다.
그러니 인간적으로 보면 왕의 자질을 부족함 없이 갖춘 자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살인을 했고, 다윗은 압살롬을 5년이나 외면함으로, 압살롬의 왕위 계승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압살롬의 행보가 성경에 계속 기록되는 동안 솔로몬이 자라고 있었겠다.
하나님께서는 이 솔로몬을 다음 왕위를 이을 자로 정해 놓으셨다.
그러니 요압의 계책도, 압살롬의 회개하지 않음도, 다윗의 무징계도 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주관하지 않으시니 열매가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압살롬의 특출난 외모 이야기가 나온다.
압살롬은 스스로 왕이 될 자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지 않은 것을 그는 꿈꾸었고, 그래서 자기주장의지가 충만하고 교만한 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미 알고 있듯이 압살롬은 자기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그 머리카락으로 말미암아 비명 속에 죽게 된다.
한편 이 두 아들을 키울 때 다윗의 마음을 비교한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술 왕 달매의 딸과 정략 결혼함으로 승승장구하던 다윗이 낳은 아들이 더할 나위없이 멋지게 자람으로, 압살롬을 볼 때마다 다윗의 마음이 뿌듯하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솔로몬은 다윗으로 하여금 지난 시절 강간죄와 살인죄를 기억나게 했을 것이다.
자기의로 키운 아들과 죄와 회개 속에 키운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압살롬은 암논을 처치한 상태에서 스스로 왕이 될 것(하나님의 허락과는 상관없이)을 꿈꿀 만큼 교만함으로 가득 찼고, 솔로몬은 아버지의 겸비함을 배우며 자랐다.
부모 된 자로서 자녀들을 어떤 마음으로 키우고 그것이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후에 솔로몬이 변질되어 하나님의 성전을 우상의 소굴로 만든 장본인이 되기도 하지만)
계속되는 압살롬의 이야기 속에 솔로몬이 자라고 있음을 생각한다.
인간들이 자기의 뜻을 이루고자 온갖 계획과 계책을 세우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은 따로 열매 맺어지고 있는 것이다.
압살롬은 인간의 뜻,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이다.
압살롬이 아니라, 솔로몬을 키워내야 한다.
보기에 번지르르한 세상적인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죄와 회개의 자리-초라하고 낮아짐으로 피하고 싶은 자리-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뜻을 따르는 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좋아 보이는 압살롬의 외모가 화근이 됩니다.
그것은 자기의와 자기주장의지로 연결되는 세상의 방식으로서
마땅히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것들입니다.
죄와 회개의 자리가 저를 살리는 자리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초라하고 낮은 자리이지만
복된 자리, 하늘나라 방식의 자리임을 생각합니다.
여디디야로 잠깐 등장했던 솔로몬이지만
그를 이미 준비하고 계신 주님의 뜻을 봅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좇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