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가 어째서 왜? “분권만이 길”이라고 오도했던가?
-트로이 목마 바이러스에 말 잘 들으면 ‘개혁’?-
한나라당의 ‘정치헌금시비’는 전적으로 잘못이고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문제는 오세훈예비후보와 홍준표예비후보가 주도한 한나라당 개혁 프로그램이 만든 예고된 재앙이었다는 점이 문제적일 것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중앙집권제’와 ‘지방분권제’는 평행하게 맞선 논리였다. 왕과 집권자는 중앙집권제를 원했다. 통치의 효율성이 이유이다. 반면에, 신하들과 귀족들은 지방분권제를 원했다. 이는 중앙정부에 억압되지 않는 ‘신하’의 자율성과 ‘귀족’의 귀족성을 유지하려는 바탕에서이다. ‘하이에크’-‘마가렛 대처’의 신자유주의 분권처방은,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정계은퇴한 마가렛 대처의 집필행위의 분권 극복의 중앙집권처방으로 고쳐지고 있는 추세(강산이 몇 바퀴 변해도 과거의 처방대로 유지하는 일은 없다. 가능하다면, 후진국의 학생의 머릿속만이다.)이다. 평행하게 공존하는 논리였으면서도, 시대에 따라서 ‘강조점’이 달라지기도 한다. 꽉 째여서 ‘신하’의 자율성과 ‘귀족’의 자발성을 허락해도 될 시기라 여기면 ‘분권주의’가 앞서고, 기강이 무너지면 ‘중앙집권주의’가 나선다.
좌파 정부는 ‘지방분권’을 앞세웠다. 그 저변은 대한민국 응집력의 약화란 친북좌파 정치의 목적의식이 느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로 그러한 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과거의 동지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바가 아니라고 말 못하는 인사들이, 좌파의 흉악한 프로그램을 다른 방식으로든 인정하고 ‘추인’하고 있다. 조갑제기자, 이명박서울시장, 오세훈서울시장예비후보, 등등이다. 중앙집권주의가 현재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합리 합법적 처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을 막아내려는 박대통령의 강한 중앙집권적 통치력을 ‘반민주’의 표상으로 세뇌교육하고 있다.
두 번째, 야당 한나라당의 한계가 여당의 안을 반대할 입장이 아님에 묵묵히 따르고 있는 현실파이다. 한나라당 당 지도부의 입장이 사실상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 ‘좌파’들이 주도하는 ‘도덕적 우위’의 선점 어법과 ‘새것’의 선점 어법에 휘말리게되는 다수의 군중심리이다. 중앙집권제가 혼란을 막을 때 언제 어디서든 출현한 통치 방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운동을 추구했던 경력자들이 한나라당 안과 밖에서 ‘부도덕’한 것으로 몰아버렸고, “남이가~”논리로 중독되었다.
조선왕조 ‘사림’의 의지도 ‘분권제’였다. 즉, 박정희대통령이 1950년대 말기의 귀족 봉건 정치에 대하여 당쟁의 정치라고 비난한 바탕과 일치된다. 선비는 왕의 부름을 받고 싶었지만, 왕의 도구로 머물고 싶은 게 아니었다. 따라서, 선비가 다들 제각각 이야기하면 왕권은 혼란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좌익경력자들이 ‘분권’을 맞이할 때 내세우는 공식은 대개 두 가지이다.
첫 번째, 강만길 교수의 [고쳐쓴 한국 현대사]나 북한식 유물사관의 역사발전론을 전제로, ‘중앙집권제’의 시효가 끝났다는 식의 ‘입소문’ 네트워크만들기이다.
유물사관 자체가 ‘유물사관’까지를 최대의 지식으로 아는 좌익경력자 노인들에겐 청천벽력같지만, 말이 안되는 것이다. 자기의 뇌를 세척할 줄도 모르면서 맨날 386만 욕하는 ‘인간될 가능성’ 1%의 정치부기자들이 전적으로 문제이다.
역사가 북한식 유물사관으로 발전하는 일은, 송건호기자 문하의 좌파 지식인만 가능하다. ‘분권’의 시대가 대세라는 근거는 결국은 좌익 지식인의 좌익 지식에서만 판가름 지어진다.
두 번째, 성숙한 시민의식과 서구 사회의 신자유주의 공부이다.
한국의 국민성은 퇴행했고 서구 사회 공부는 초학자 보다도 한심해 보인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니, 사학법안의 열린당안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야당은 권력의 약화 국면이다. 당연하게 ‘중앙집권제’로 위기탈출로서의 공동의 꿈을 꾸어야 한다. 역대 야당은 전부 중앙집권제로 위기를 뚫었다. 모든 기업도 위기 국면에서는 경영권 강화를 주장했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홍준표와 오세훈 개혁안은 위기 국면에도 사원들은 믿을 수 있으니 경영인의 경영권을 약화하자는 주장이다.
비논리와 몰상식은 ‘개혁’이란 말에서 터지는 무당의 주문에서, 논리 밖을 할 수 있다는 신비감으로 대체되거나, 얼어죽을 ‘남이가~’타령으로 묻혀져왔다.
경영권 위기에 봉착한 기업에서, 경영권을 약화하자는 개혁안은 스파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왜, 한나라당은 덩달아 개혁안이라고 추인하는가? 송건호기자를 부정하지 않는 조갑제기자의 영향력 때문은 아닐까?